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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10.04 작지만 충분한.
  2. 2016.09.09 위로 4
  3. 2016.08.27 마음이란 우주를 탐험하는 마음비행사
  4. 2016.08.26 성큼
  5. 2016.08.25 일상으로 돌아가지 않는 방법
  6. 2016.08.14 매일 이곳을,
  7. 2016.08.13 살기 좋은 곳 2
  8. 2016.08.12 아름다워서 슬픈.
  9. 2016.08.09 평범한 진리 2
  10. 2016.08.06 그 도시를 만나는 법 2



한적하고 느긋한 일요일 아침.
꾸미지 않은 편안한 복장.
크림이 적어 담백한 당근케잌1조각.
러시아에서 온 마뜨료슈까 텀블러.
그리고 따뜻하여 감미로운 카페라떼.
마지막으로 아껴읽는 책 한 권.
이 모든 조합이 어우러지는
작지만 충분한 나만의 행복.
일주일을 버텨내는 힘,
다음 주를 기대하게 하는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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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

■ 삶/II. 삶 2016. 9. 9. 19:24

망치로 얻어맞은 듯이 얼떨떨하다.
대충 짐작했고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충격이 덜한것 같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어안이 벙벙한 것은 여전히 극복되기 어려운 문제이기 때문이다.
여전히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진 느낌은 변함이 없다.

열이 나는 것 같다.
포근한 곳에 눕고 싶다.
이불을 덮어쓰고 세상으로부터 단절되고 싶다.
온 몸을 감싸는 이불에게 위로받고 싶다.
너가 잘못한게 아니라고 -
너는 그 때 그 때 최선의 선택을 해왔던 거라고-
하지만 그게 막상 겪어보니 괴롭고 불편할 수 있는 거라고.
누군가 내게 이렇게 말해줬으면 좋겠다.


이제는 가물가물한 너의 폭신했던 점퍼를 생각한다.
내게 힘든 일이 있으면 딱한 표정을 지으며 숨이 막힐듯 안아주었던
그 품과 그 점퍼를 생각한다.
난 그 뒤로 그렇게 파묻힐듯이 누군가에게 안겨본 적이 없다.
내 몸을 다 덮어버리는 커다란 포옹에 나는 마음놓고 위로받았다.
파묻혀버리면 내가 아무것도 아닌 느낌이 들었다.
내가 가진 고민도 책임도 모두 같이 작아져버린다.
내겐 지금 그런 위로가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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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금없이 쓰는 얘기.  
내게 가장 흥미로운 미지의 세계는 의외로 내 자신이다.

이 육체 안에 하나의 정신이 30년의 시간을 보냈는데 나를 가장 잘 알면서  또 여전히 나 스스로도 잘 모르는 나의 세계를 하나하나 알아가는 것 같다.
어릴 적 생활기록부에 "사교적이고 명랑하다"라고 일관되고 단순하게 정의 내려졌던 내 성격이 사실은 만나는 사람과 내가 처한 상황에 따라 얼마나 다양한  태도로 드러나는지 나조차도 내게 이런 모습이 있었는지 깜짝깜짝 놀랄때가 있다.
나는 항상 일관되게 행동하지 않으며 시시때때로 변덕을 부리고 때론 아주 모순된 마음을 가지고 있기도 했다.
이런 내 모습을 내가 이해하는 동안 나는 외부 환경과 타인과의 관계와 상호작용하며 또다시 조금씩 변해간다.
내가 변해가는 것인지 우주같은 내 정신세계에서 몰랐던 내 모습을 발견하는 것인지도 불분명하다.

나도 나를 다 모르는데 남들이 나를 이해하기를 바라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나도 타인을 이해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고. 하지만 서로가 서로를 충분히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은 이해할 수 있다.



다만, 나조차 몰랐던 내 모습을 발견해가면서 나와 다르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고 다양성에 대한 포용력이 늘어나는 것 같다.
사람은 그럴 수 있다.
사람이니까 그럴 수 있다.
나도 그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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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큼

■ 삶/II. 삶 2016. 8. 26. 15:43



가을이 왔다.
성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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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여름휴가가 그러하였듯이 나는 2주간의 휴가를 꽉 채우고서
회사 복귀 전날에서야 귀국하였다.

2주동안 일상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삶을 살았는데,
한국에서늬 내가 어떤 사람이었고 어떤 업무를 해왔고 어떤 고민을 하고 있었는지조차 인지하지 못할만큼
낯선 곳의 정취와 그  안에서 솟구치는 나의 새로운 생각과 감정들에 흠뻑 젖어지냈는데,
2016년 8월 16일 화요일 아침 7시 40분 지하철 2호선을 타는 순간
나의 정신은 순식간에 원래 일상으로 복귀해버렸다.
그리고는 마치 그동안 아무일이 없었던 것처럼 마음은 무덤덤했다.

어릴 적엔 여행이 끝나고도 한동안 들뜬 마음으로 지난 여행의 추억 속에서 허우적 거리고
여행의 여운을 온 마음으로 느끼며 현실 적응의 버퍼링을 즐겼었는데
이제는 마치 지난 2주간의 휴가가 심지어 내게 일어난 일이 아니었던 것처럼 느껴진다.
이런 휴가 패턴에 익숙해져서일 수도 있고, 업무에 복귀하면 넋놓고 있을 여유가 없기 때문일수도 있고
이유야 어떠하든 나는 그렇게 되어버렸다.
작년엔 귀국한 날 밤, 싱숭생숭한 마음에 혼란스럽기라도 했는데
올해는 어쩜 이렇게 아무렇지 않을 수 있는건지.


그렇게 일주일동안 출근을 하고 토요일 하루도 덥다는 핑계로 밍기적거리다가
귀국한지 1주일이 되어서야 나는 내 방에 펼쳐놓았던 캐리어의 짐을 정리했다.

카메라와 여권, 어댑터 같은 여행용 물건들은 모두 제 자리에 돌아갔지만
일상에서 집어갔던 물건들은 아직도 제자리에 돌려놓지 못했다.
사무실 모니터 앞에 놓아두었던 손 거울, 회사 사무실에서 쓰다가 가져갔던 칫솔 같은 것들.
이 사소한 물건들은 아직도 여행 파우치에 담겨 내 방 한구석에 방치되어있다.
매일 사무실 책상에 앉으면서- 화장실 사물함을 열면서 - 내일은 가져와야겠다고 생각하지만
웬일인지 집에가면 꼭 챙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깜박해서도 아니고 생각은 나지만 웬지 그냥 그렇게 내버려두고 싶다.


사소하지만 매일 쓰던 물건들, 나의 일상의 작은 습관들이 조금씩 어긋난다.
사소한 만큼만 불편하다.
나는 아차!하고서 1초 정도 머뭇거린다. 

그러면서 깨닫는다.
맞다. 내가 여행을 갔었지.

머뭇거리는 1초 동안에, 1초만큼의 그 불편함에 나는 일상에서 한 발자국 떨어진다.
그 불편함이 일상을 일순간 낯설게 만든다.
내가 아직 완전히 일상으로 돌아오지 않았다는 미묘한 안도감이 든다.


아마도 나는 그 불편함이 익숙해질때까지 그 물건들을 챙겨오는 일에 게으름을 피울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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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이곳을,

■ 삶/II. 삶 2016. 8. 14. 23:01




매일 이 곳에 시나몬 번을 먹으러 오는 사람은 어떨까
매일 이 호수가를 따라 조깅을 하는 사람은 어떨까
매일 가족과 아기와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하는 사람은 어떨까
매일 이 벤치에 앉아 이 풍경을 바라보는 사람은 어떨까

이 자리가 내 자리가 아닌 것을 알지만
잠시 앉아보았다.
이 풍경이 이 햇살이 이 바람이 이 녹음이
내 마음 속에서라도 내 것이길 바라면서.

2016. 08. 13.
Helsinki, Fin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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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투명하리만큼 맑고 깨끗하다.
구름 한 점 없다.
하늘은 원래 이런 빛깔이었구나.
마치 하늘을 처음본 것처럼 감탄하며 비라본다.
자작나무의 동전잎같은 나뭇잎들이 바람결에 차르라니 흔들린다.
바람이 차다. 그런데 나의 청바지에 닿는 햇살이 따사롭다.
패딩잠바를 베개삼아 벤치에 누웠다.
타닥타닥 이 호숫가를 따라 조깅하는 사람들의 발딛음 소리와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들의 찬란한 소리가 또렷하게 들려온다.


앓던 병마저 나을 것 같이 깨끗하고 맑은 자연인데 나는 이유없이 머리가 아프다. 헛웃음이 나온다.
맑은 공기와 호수와 바다와 나무와 잔디와 질서와 친절.
사람이 살기 좋은 곳은 다 이유가 있다.

2016. 08. 12.
Helsinki, Fin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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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떼의 첫맛은 조금 쌉싸름하지만 따뜻한 스팀밀크에 섞여들어간 커피맛이 깊고 풍부하다.
한국을 떠나고 열흘만에 느껴보는 깊은 커피맛이다.

지금 내가 앉은 자리에서 보이는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서 조금은 슬픈 마음까지도 든다.
청량한 공기, 쾌청한 하늘, 파란 바다와 녹음짙은 나무와 잔디밭.
이런 풍경은 세상에 밴쿠버뿐인줄로만 알았는데 그 세상 반대편에 이런 곳이 또 있다. 이 곳도 너무 맑고 깨끗하고 아름답다.
사람의 마음을 한 순간에 사로잡아버린다.
오래도록 이 자리를 떠나고 싶지 않을만큼.

2016. 08. 11.
Helsinki, Fin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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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진리

■ 삶/II. 삶 2016. 8. 9. 21:58


마음먹은 목적지는 있지만 햇살 좋은 날의 뻬쩨르의 풍경에 마음을 홀려 정처없이 걷다가
피의 구세주 성당 뒤편의 작은 공원에 들어서서는
성당이 보이는 잔디밭 작은 수목 아래
시티투어버스 지도를 펴고 눌러앉고야 말았다. 

성당 근처는 관광객들로 붐비는데
한 발자국 떨어진 이 곳엔 햇살을 즐기는 가족과 연인
그리고 나같은 방랑객이 한가로이 오후의 햇살을 즐긴다.

바람이 구름을 밀어내고 또 밀어오는 이 변화무쌍한 하늘아래
도시는 빛에 잠겼다가 어둠에 가렸다가를 셀 수 없이 반복한다.

시원한 바람이 분다.
도시를 다 덮고도 남을  크고 두꺼운 구름이 무심히도 밀려온다.
그래도 괜찮다.
또 바람에 사라져갈 것을 아니까.

항상 밝을 수만은 없다는 것을, 또 항상 흐리지만도 않다는 것을,
그 모든 것이 아주 빠르게 또 아주 천천히 이뤄진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지만 또 곧잘 잊어버리는 평범한 인생의 진리를
이 도시가 나에게 온 하늘의 해와 구름과 바람과 빗방울로 알려준다.

2016. 08. 09.
Санкт-Петербур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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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도시의 새로운 모습과 마주하는 방법은 조금 이른 아침에 홀로 그 도시를 산책 (혹은 조깅)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집 안에서 각자 아침식사와 외출준비로 부산스러울 때 -
사람도 차도 매연도 보트도 없이 텅 비었지만 선선한 아침 공기와 잔잔한 물결만이 가득한 도시 그대로를 비로소 만나게 된다.

물론 그 와중에 부지런히 일어나 길을 쓸고 있는 청소부나 할 일없이 자리를 지키며 잠시 루즈한 모습을 보이는 경찰을 보는 것은
이 아침을 같이 하는 동지를 발견하는 또 다른 즐거움이랄까 :)

06. AUG. 2016.
Санкт Петербург,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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