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있다가 집에서 보자"

"응"

웃으며 손을 흔드는 엄마에게 인사하고 나니 문이 닫히고 지하철은 내 뒷편에서 캄캄한 터널속으로 빨려들어갔다.

눈에 미각신경이 있는 것도 아닐텐데 왜 눈에서 짠 느낌이 나는 걸까?

손가락으로 짭짤하고 멀건 물을 훔쳤다.

계단을 오르며 연신 눈가를 닦으며 생각했다.

 

- 이게 나의 열등감이야.

 

라고.

 

 

마음속에 열등감이라는 커다랗고 묵직한 돌덩이가 들어있는 것만 같다.

그 열등감과 마주하지 않으려고 눈을 감고 고개를 돌리고 피하려고 하는데도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일정한 간격으로 돌고 돌아 그 열등감과 마주한다. 괴롭다.

 

 

격증이 있는 직업, 안정적이고 편안한 직장.

남들이 보기엔 부족할 것 없는, 만족스러운 삶을 손에 쥐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이 빠져있다.

남들이 그렇게 좋은 직장도 없는데 왜 그러냐고 되물을 때마다

나조차도 이것이 객관적으로 좋은 것임을 알기에 나도 괴롭다.

 

 

 

회사 건물까지 들어왔는데도 눈에선 자꾸 짠 물이 흐른다.

남들이 다 좋아하고 부러워하는 세상 속으로, 괴로워하며 들어가는 내가 있다.

 

 

 

나는 왜 이런걸까.

왜 이렇게 정신적으로 예민한걸까.

이게 열등감인지 아닌지조차 못느끼는 그런 무딘 사람일 순 없는 걸까?

욕심이 많은 걸까?

이 정도 가졌으면 한 가지는 빠져도 되는게 아닐까?

한 가지를 갖기 위해서 이 모든 걸 버릴 수 있을까?

버릴 수 없었기 때문에 나는 그 한가지를 포기했던게 아닌가?

그렇다면 나는 더 이상 괴로워도 하지 않고 가진 것에 만족하고 이것을 누리면 되는데

어째서 나는 이렇게 종종 괴로워하는 것인가.

결국 진심으로 그 한 가지를 포기하지 못했기 때문에 괴로운 것이 아닐까.

 

 

 

열등감은 갖지 못한 것으로부터 나온다.

내가 가지고 싶은 것을 가지고 있으면, 그 나머지 것들은 내가 가지고 있든 없든 아무런 소용이 없다.

남들이 그것을 나보다 더 많이갖고 있다 한들 그것 때문에 부럽지도, 배가 아프지도, 괴롭지도 않다.

나에겐 내가 갖고 싶은 그것이 있으니.

 

 

 

열등감을 느끼지 않는 방법은 2가지다.

끝내 갖고 싶은 것을 갖고서 열등감을 해소하는 것과

열등감을 유발시키는 상황을 피해서 최대한 열등감을 느끼지 않으며 사는 것.

 

 

지금까지는 두번째 방법으로 나의 열등감을 애써 모른 척, 아니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짐짓 그 눈을 돌려 부차적인 만족감으로 대리만족을 느끼면서 지내왔다.

하지만 점점 이 나라에선 두번째 방법이 소용없어지는 순간이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다.

이 환경에서 도망가고 싶지만 도망갈 수가 없다.

영원히 나는 스스로를 비교하고 씁쓸해하고 배아파하며 살게 될 지도 모른다.

그것만한 감옥이 또 있을까.

나는 차라리 그렇다면 더 멀리 도망가버리고 싶다.

첫 번째 방법으로 해결할 수 없다면 비교 대상이 존재하지 않는 그 더 큰 곳으로 도망가버리고 싶다.

그러면 나는 적당히 행복하게 살 수 있을텐데.

 

 

 

이 마음은 엄마 아빠조차 헤아려 줄 수 없다.

엄마 아빠는 단 한 순간도 나였던 적이 없다.

30년이란 시간과 환경이 쌓여 만들어진 나일 수가 없다.

왜 남들이 갖고 싶어하는 것들을 다 가지고 누리면서도 괴로워하는지

엄마 아빠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다.

왜냐면 엄마 아빠는, 당신들이 딸에게 바랐던 것들을 - 바로 그것을 이룬 딸을 가졌기 때문에

그들은 가지고 싶은 것을 가진, 행복한 부모가 되었기 때문이다.

아마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을 버릴 때 나는 행복하지만 나의 엄마 아빠는 불행해질 것이다.

엄마 아빠와 내가 바라는 것이 본질 적으로 같은 방향이 아니었다.

그래서 엄마 아빠는 행복하고 나는 괴롭다.

괴로운 나는 이 괴로운 마음을 엄마 아빠에게 말할 수도 없고, 말을 해도 엄마 아빠는 이것을 헤아려줄 수가 없다

그리고 엄마 아빠에게는 나 말고도 한 명의 자식이 더 있다.

그들에게는 그들의 행복, 나의 행복 뿐만 아니라 남은 한 명의 행복도 중요하기 때문에

나와는 본질적으로 입장이 다르다.

 

 

 

이 열등감의 뿌리는 어디서부터왔을까.

나는 내게 묻지만 나는 그 정답을 아주 잘 알고 있다.

아주 오래되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또 짧지만도 않은 시간이었다.

그것은 아주 작은 돌멩이로 시작해서 지금은 커다라고 묵직한 돌이 되었다.

  

 

나는 이 열등감에서 해방될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을 해소할 것인가 도망쳐 피할 것인가.

아니면 득도의 마음으로 열등감과 함께 살아갈 것인가.

 

 

나를 울게 하는 유일한 존재여.

 

 

 

 

 

 

'■ 삶 > II. 삶' 카테고리의 다른 글

Санкт-Петербург   (0) 2016.08.04
무인도  (2) 2016.07.28
사람  (0) 2016.07.20
way home.  (0) 2016.07.17
내 삶을 열렬히 II.   (2) 2016.07.09
Posted by honey,H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