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아....
내가 이 돌로미티 편을 4번째 쓰고 있는 중...
다 쓰고 저장했는데 어디론가 날아가버려서 생고생 중입니다...ㅠㅠ
돌로미티에서 맞이하는 3일째 아침 (실제 여행에서는 5일째 아침).
오늘은 돌로미티하면 뺴놓을 수 없는 트레치메 디 라바레도 (Tre cime de Lavaredo, 줄여서 '트레치메')에 간다!
한국인들에게 돌로미티 여행은 크게 서쪽 South tyrol 지역의 알페 디 시우시&세체다, 그리고 동쪽 Cortina d'ampezzo 지역의 트레치메로 나뉘어지는데
같은 돌로미티 지역이지만 서쪽은 푸른 초원지대가 펼쳐진 아름다운 트레킹이라면,
동쪽의 트레치메는 돌바닥의 거친 느낌의 상남자 같은 트레킹이랄까.
(트레치메 트레킹 때문에 특별히 트레킹화도 새로 샀다! 그 뒤로 신발장에서 잠자고 있음...)
사실 돌로미티 여행 주간 내내 일기예보에서 흐림+천둥이라고 했는데
(날씨요정이 날씨얘기 듣고 신나게 Thunder노래를 부르다가 나한테 혼남)
다행히도 이 날도 날씨가 끝내주게 좋았다.
아침 일찍 트레킹 준비를하고서 트레치메 트레킹의 시작점인 아우론조 산장으로 고우고우씬~
아우론조 산장 주차장에 주차하고 차에서 내리니, 여태껏 느끼지 못한 싸늘한 공기가 느껴진다.
아직 8월 중순인데 산악지대라 그런지 살곁에 닿는 공기 느낌이 차갑다.
어제까지는 반팔에 자외선을 가려줄 얇은 셔츠 하나면 충분했는데,
햇살은 밝아도 기온은 낮은지 레깅스도 신고 야주 약간의 기모가 들어간 티셔츠도 겹쳐입었다.
그리고 트레킹화와 내 무릎연골을 지켜줄 잠스트 무릎보호대, 그리고 등산스틱까지!!
만반의 준비를 끝내고서 아우론조 산장을 거쳐 101번 트레킹 코스를 따라
전 세계에서 온 관광객들과 함께 트레킹을 시작했다.
처음 차에서 내렸을땐 공기가 싸늘했는데 그래도 해가 떠오르고 걷기 시작하면서 적당히 상쾌한 느낌이 난다!
트레치메를 돌아보는 코스는 크게 2가지로 나뉘어지는데, 101번과 105번 코스다.
두 코스 모두 아우론조 산장에서 시작해서 로카텔리 산장까지 왕복하는 코스인데,
101번 코스를 따라갈 경우 아우론조 산장(시작) ▶ 라바레도 산장 (스침) ▶ 로카텔리 산장 (반환점) 순서로 걷게 된다.
105번 코스는 트레 치메를 가운데 두고 101번 코스의 맞은편인데, 아우론조 산장에서 바로 로카텔리 산장으로 가게 된다.
돌아올 때 101번으로 돌아올지, 105번으로 돌아올지 결정하지 않고, 우선은 101번을 따라 걸었는데
101번을 따라 걸을 때, 왼편에는 거대한 트레 치메가 솟아있고, 오른편으로는 깊은 협곡과 아우론조 산장 뒷편으로 크리스탈로 산군이 펼쳐져 있어서,
그 풍경을 보면서 걷느라 힘든줄도 모르고 신나게 라바레도 산장까지 걸어갔다.
(걱정을 많이 했는데 사실 힘들 것이 없음ㅋㅋㅋ)
줄여서 트레치메라고 부르는 트레 치메 디 라바레도(Tre cime di Lavaredo)는 라바레도의 세 개의 봉우리라는 뜻.
치마 그란데, 치마 피콜라, 치마 오베스트라 이름붙여진 세 개의 거대한 암석 봉우리를 의미한다.
사진에서 보면 트레치메만 보이기 때문에 그냥 좀 커다란 돌덩이 같지만,
암석 하나당 약 500~600의 높이로, 30층 정도의 빌딩 높이랄까?
사진에서도 보면 왼쪽 귀퉁이에 사람들이 서 있는데 개미같아 보일 정도로 실제로 보면 어마어마하게 큰 암석봉우리다.
왕복코스의 1/4지점이자, 편도코스의 1/2지점인 라바레도 산장을 지나 트레 치메를 등지고 걷다보면
드디어 반환점격인 로카텔리 산장이 눈앞에 나타난다.
101번으로 왔든, 105번으로 왔든 모두 로카텔리 산장에서 모이게 되어 있기 때문에
로카텔리 산장에서는 우리보다 바지런히 걸어온 사람들로 바글바글했다.
날씨요정과 나도 트레치메가 한눈에 보이는 명당자리에 (로카텔리 산장 앞은 탁 트여있어서 사실 어디든 다 명당)
아빠다리하고 앉아서 저~ 멀리 맞은편에 우뚝 솟은 트레치메를 마음껏 구경했다.
그리고서, 대망의 인스타 동굴샷을 찍기 위하여 로카텔리 산장 뒷편의 급경사 언덕을 기어오름...
(여기가 제일 어려움....급경사라 기어 올라야...)
인스타그램에서 트레치메를 검색해보면 종종 등장하는 동굴에서 찍은 샷이 있는데,
바로 로카텔리 산장 뒤에 비밀스럽게 파여진 동굴에서 찍은 것!
로카텔리 산장에는 사람들이 진짜 많은데, 이 곳은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았는지
이런 보석같은 스팟을 아는 두세명만이 동굴샷을 찍는 영광을 누리고 있었다.
나도 그 영광열풍에 동참!
동굴에서 이렇게도 찍고 저렇게도 찍고 실루엣도 찍고 오도방정을 떨고서
로카텔리 산장에서 샌드위치로 점심을 해치우고서 처음 왔던 101번 길을 따라 다시 돌아간다.
105번 길은 가보지 못했지만, 101번 길을 걸으며 보는 풍경이 너무 아름다웠기 때문에
한 톨의 아쉬움도 없이 다시 101번코스를 따라 걷기로!
개인적으로, 트레치메는 돌로미티의 상징 같은 곳이라서 코스에 넣었는데
트레치메 자체는 커다란 돌덩이이고, 풍경을 좋아하는 나는 트레킹 코스에서 보는 풍경이 훨씬 좋았다 ♡
물론 트레치메 자체도 멋있긴 멋있고.
그렇게 돌로미티에서 가장 유명한 트레치메 트레킹을 마치고 나니, 시간이 어느덧 세시무렵에 가까워 지고 있었다.
아우론조 산장에서부터 로카텔리 산장까지를 왕복하는 것 자체는 사실 2~3시간이면 될 것 같은데
걷다가 사진 찍고, 걷다가 사진 찍고, 걷다가 감상하고, 걷다가 노래부르고(읭?)
동굴에 기어올라가서 오도방정을 떨고 로카텔리 산장에서 샌드위치까지 먹다보니 의외로 시간이 오래걸렸다.
물론, 나는 이만큼 걸릴 것을 알고 있었지.
이렇게 날씨요정과 함께 오전부터 시작된 산행을 마치고 차를 타고서
어제 스쳐지나갔던 라가주오이 산장(Rifugio Lagazuoi)으로 다시 고우고우씽!
우리가 첫날 샀던 슈퍼썸머패스는 개시일로부터 4일동안 3일을 선택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데
첫째 날 알페 디 시우시, 둘째 날 세체다, 셋째 날은 쉬고 오늘이 유효기간 마지막 날이어서
야물딱지게 슈퍼썸머패스를 써주기 위해서 라가주오이 산장으로 오르는 케이블 카를 타기로 했다.
참고로 라가주오이 산장으로 오르는 케이블 카 급경사가 으마으마함....고소공포증 있는 분들 조심
라가주오이 산장에 올라 내려다보는 돌로미티 산맥의 너른 풍경은 멋졌다!
하지만, 이미 알페 디 시우시와 세체다에서 보았던 감동 뒤에 마주한 풍경이어서 그랬을까,
처음 알페 디 시우시에서 몽삭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서 마주했던 풍경에 말문이 막히던 그런 감동은 없었다. 라가주오이 쏘리.
아마도 제일 처음 라가주오이를 왔다면 입이 쩍 벌어졌을텐데~!
어쨌든, 야무지게 슈퍼썸매패스를 마무리하고 돌아오는 길에 코르티나 담베초(Cortina d'ampezzo)에 차를 대고,
백화점 COOP에서 먹을거리가 있나 (혹시라도 아시아 음식이 있나) 살펴보다가
샐러드바에서 보리밥과 쌀밥으로 만든 샐러드를 발견했다!
아무래도 돌로미티 지역이 로마같은 대도시가 아니기 때문에 아시아 레스토랑찾기도 힘들고 마트에도 아시아 음식이 없어서 슬펐는데,
COOP 샐러드바가 우리를 구원하였다. (이후에도 쌀밥먹고 싶으면 COOP에서 해결함 ㅋ)
이번 여행을 위해서 시원스쿨 여행 이탈리아 편을 열심히 수강하고 중요한 단어들을 열심히 외워갔었는데,
여기 이탈리아 북부에서 아주 알차게 써먹었다는 거!
밀라노에서도 호텔 데스크에서 아꾸아 어쩌고 하길래, 내가 아꾸아 나뚜랄레(미네랄 워터)달라고 해서
날씨요정이 너 지금 이탈리아어 하는거냐 @@ 놀랐는데,
특히 여기 돌로미티 지역에서는 더더욱 유용한 이탈리아어를 구사함..호호
COOP 샐러드바에서 약간 나이가 지긋한 아주머니에게 짧은 이탈리아어로
쌀밥들어간 샐러드 주세요, 문어 샐러드 주세요, 포크랑 숟가락은 어디에? 등등의 표현으로
훌륭하게 음식을 주문하고 1회용 포크와 숟가락도 사서 나올 수 있었다능....
단어만 나열중인 내 이탈리아어에도 환하게 웃으면서 친절하게 대해주었던 이탈리아 아주머니♡
비록 단어만 나열하는 의사소통이긴 하지만 현지인과 대화가 된다는 그 기쁨은 이루 설명할수가 없다.
역시, 여행에서 그 나라 언어를 구사할 수 있으면 여행의 즐거움이 10배는 배가 되는 것 같다.
그렇게, 저녁까지 싸들고서 숙소에 돌아오니 어느 새 창밖으로는 미주리나 호수에 황금빛 노을이 내려앉고 있었다.
아, 그 풍경이 얼마나 평화롭고 아름답던지.
이번 이탈리아 여행을 하면서 좋았던 순간들이 너무나도 많았지만,
여기 미주리나 호수 숙소에서의 순간들이 물결처럼 마음을 휩쓸고 지나갈 때가 있다.
숙소 문을 열때마다 내 눈높이에서 바라보이던 창 밖의 호수 풍경,
잔잔하고 고요한 풍경이 너무나 당연하게 눈앞에 펼쳐지던 그 공간.
오늘 하루 트레킹을 하느라 고생많았다고, 이제 남은 시간은 모두 자유시간이라고, 이제는 푹 쉬어도 된다고 말해주는 것만 같았던
그 날의 공간과 그 날의 느낌,
크게 기대하지 않았지만, 아련한 여행의 추억은 항상 예상치 못한 곳에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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