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막한 나뭇가지 같던 날씨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 새 봄이 성큼 와버렸다고 느껴질만큼 아침 저녁으로 해가 길어지고 햇살이 따뜻해졌다.
눈부신 햇살 속을 걸어가는데 이유없이 외롭고 쓸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의 나는 이런 마음이 들때면 저 우주가 나를 사랑한다고 나를 다독였었는데, 요즈음의 나는 남편을 생각한다. 내가 슬퍼하면 일루오라면서 꼬옥 안아주는 남편 내가 속상해하면 괜찮다고하면서 꼬옥 안아주는 남편. 그렇게 따뜻하게 안아주는 너를 만나서 얼마나 다행인지.
너가 내게 손을 내밀었던 그 날 이후로 어느 새 6년. 고마워. 너가 있어서 내 삶은 참 따뜻하다.
어제 밤, 운동을 가려고 야무지게 운동복을 차려입고 나갔는데 바람이 차서였을까, 아파트 헬스클럽까지 가는 그 짧은 길에도 몸이 으슬으슬 추워 여기에 운동하고 땀까지 흘린 뒤에 집에 오면 아무래도 감기가 걸릴 것 같다(는 수백번의 경험으로 얻은 교훈) 생각에 도리만 운동하라고 보내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운동하려던 만큼의 시간은 남았고 혈액순환이 잘 되지 않는지 몸이 으슬으슬해서 오랜만에 욕조에 뜨거운 물을 받고 반신욕을 했다. 어지간히도 혈액순환이 안되고 있었던 것인지 따뜻한 물 속에 들어가 있어도 쉽게 몸이 데워지지 않더라. 그렇게 물 속에 잠긴 살갗이 빨갛게 익고 얼굴에 송글송글 땀이 맺혀 흐를 때까지 뜨거운 물 속에 몸을 담그고 한참을 기다렸다.
요즘, 신경쓰이는 것도 많고 고민할 것도 많고 결정할 것도 많았던 요즘. 다 행복하자고 하는 일들인데, 행복하기 위해서 너무 괴로운 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행복의 모습이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닌데 요즘 나는 눈 옆으로 가림막을 친 경주마처럼 오직 그 하나의 행복의 모습에 너무 몰입해서 마치 그것 아니면 다른 것은 모두 행복이 아니라는 식으로 지내왔던 것은 아닌지. 물 속에 앉아 그런 생각들을 했다.
정말이지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하리. 이렇게 행복해도 되고, 이렇게 안된다면 저렇게 행복하면 되지. 너무 하나의 방향과 목적에 얽매여서 그 남은 시간들을 다 불행하게 보내지는 말자. 그게 말처럼 쉽진 않다고 해도 말이지.
난 왜이렇게 예민한걸까. 남들은 떠올리지도 않을 걱정거리로 불안해 밤잠을 설치고 남들은 한 귀로 듣고 흘릴 얘기들에도 신경이 곤두서는 괜찮다는 전문가의 판단이나 실제 괜찮은 결과가 나올때까지 안절부절하는 내가 너무 피곤해. 그 불안과 걱정과 조급함을 느끼는 것도 피곤하고 가끔은 그런 불안, 걱정, 불편함에 잠식당해 일상생활이 완전히 헝클어지기까지. 여기서 빠져나오려고, 떨쳐보려고 애를 쓰는 것도 누적되니 너무 피곤해.
결혼을 기점으로 도리 덕분인지 많이 느긋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최근 몇 개월동안 눌려져왔던 신경들이 다 곤두서버린 것 같다. 이런 내가 정신적으로 너무 피로한 나머지 내 몸안에서 가시가 돋아나 내 살갗을 뚫으려는 것마냥 아프다 아파. 이 널뛰는 신경들이 좀 가라앉았으면.
작년에 우리 회사 사람들과 Quartet을 결성해서 크리스마스 캐롤을 연주한 것을 기점으로, 바이올린을 다시 배워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바이올린 대신 첼로를 새로 배워볼까 진지하게 고민했지만 캐롤연습을 하면서 오히려 바이올린의 높은 E현 소리가 좋아져서 결국 바이올린을 다시 하기로)
그래서 작년 연말에 숨고랑 바친기 카페를 통해서 레슨 선생님을 열심히 찾았는데 의외로 조건이 잘 맞는 선생님을 고르기가 어려웠다. 거기다가 숨고로 찾은 12살이나 어렸던 바이올린 전공생이 시범 레슨을 잡아 두고 두 번이나 당일에 펑크를 냈다. 심지어, 한 번 미루고 다시 잡은 레슨날에는 레슨 시작 2분 전에 연락이 와서는 지금 일어났다고. 서울대 출신이라서 실력과 성실함은 기본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완전 뒷통수를 맞았다.
이 친구 때문에 바이올린 배우는 걸 때려칠 뻔 하다가, 결국 우리 Quartet에서 오보에를 하는 팀장님 딸들이 바이올린을 배우고 있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냥 그 분을 소개받아서 2024년 부터 드디어 레슨을 시작하게 됐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처음 바이올린을 시작해서, 아마도 중학교 2학년때까지 바이올린을 했던 것 같은데 그 때도 풀 타임으로 바이올린을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래저래 이십여년 만에 다시 시작한 바이올린. 오래 쉬었던 만큼 레벨을 많이 낮춰서 시작할 줄 알았는데 나에게 스케일, 에튀드, 소품곡 다 시켜본 선생님은 (내 예상보다) 상당히 높은 수준에서 수업을 시작하셨다. 그 결과 지금 많이 지지직거리고 버벅거리고 있음 ^_^.....
아마, 악기를 배워본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비슷한 기억이 있을텐데 어릴 때 악기를 배우면 사과에 빗금을 긋거나 색을 칠하거나, 그런식으로 연습양을 체크했었다. 나는 그 때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모두 병행하고 있었는데 악기도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배우는 책의 권 수가 늘어나고 연습해야 하는 곡의 길이도 비례해서 길어진다. 그 모든 것을 하루에 5번씩 연습하려면, 솔직히 하교하고와서 저녁먹을 때까지 하루종일 연습만 해야하는데 어린 나이에 (사실 어른이 된 지금도) 그렇게 연습하는 것은 무리 그 자체였다. 당연히 연습을 해야 실력이 늘지만 전공할 것도 아니고, 즐겁게 익히는 정도면 충분했는데.
어쨌든, 어린 나이에 집에서 엄마가 매일 들으며 체크하니 연습하는게 고역이었는데 (5번 해야할 것을 4번만 연습하면 듣고 있다가 연습 덜했다고 지적을 받았다.) 그래서 엄마가 집에 없는 날은 연습을 대충하거나 아예 연습을 안하고서 했다고 거짓말하고 혼나기 일쑤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선생님께 연습량을 줄여달라고 하거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격일로 연습하겠다고 했었어야 했는데 어리고 순진해서 그 선생님들이 내주는 숙제하느라 혼난 기억밖에 없네. :P
어쨌든, 지금은 아무도 나보고 연습하라고 강요하는 사람도 없고 연습을 덜했다고, 또는 안했다고 혼내는 사람도 없는데, 나는 오후 6시가 되면 칼퇴를 하고 집에 달려가서는 하루에 1시간씩 바이올린 연습을 한다. 막상 연습을 해보니 내가 성에 차는 만큼 연습하려면 1시간도 짧다. 그래도 저녁도 먹어야 하고 8시가 넘으면 옆집에 민폐일것 같아서 내가 주중에 연습할 수 있는 최대한의 시간은 딱 1시간 뿐.
또, 스케일, 에튀드, 소품곡 중에 스케일 연습을 제일 먼저 집중해서 하는데, 사실 스케일 연습이 제일 지루하고 재미가 없다. 하지만, 가장 지루하고 재미없는 기본기가, 사실은 가장 중요하고 가장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하는 부분이라는 것을 이만큼 살아보니 누가 말로 하지 않아도 내 머리와 내 몸이 절절하게 알고 있더라. 어릴 땐 멜로디가 있고 화려한 곡들을 연주하는게 당연히 더 재미있고 그것만 하고 싶었는데 요즘엔 그 곡들을 더 잘하기 위해서 기본기 연습을 많이 해야한다는 생각이 절로 드니 동기부여가 되어 기본기 연습이 더 재미있다. (아 물론 표면적 의미의 재미는 아니다. 내가 조금씩 발전한다는 관점에서 재미있다는 것)
무언가를 숙련되게 잘 하려면 아주 많은 연습이 필요하다는 것도, 그리고 그 중에서도 기본기를 다지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한다는 것도 모두 깨달은 그런 나이가 되었는데 정작 이걸 아는 이 나이에는 그 연습을 충실히 해낼 시간이 없구나. 시간이 많았던 어린 나이에는 연습을 왜 해야하는지를 몰랐고. 그런 관점에서 아직 충분히 연습을 못했는데 시간이 쫓겨서 부랴부랴 악보를 접을 때면 조금 씁쓸한 마음이 든다.
하지만, 어쩌겠어. 이렇게라도 해야지. 하루에 한 시간. 안되면 30분. 그마저도 안되면 10분. 그렇게 소소하게, 대신 꾸준히 하다보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상황에서의 최선의 결과가 나오겠지.
지난 주 화요일 오후 한 통의 전화에서 시작되었던, 마음의 고통 이렇게까지 흘러가지 않았을 수도 있는데 예상치 못했던 돌발 상황에 더 악화되어 버린 감당 불가의 나날들 불을 끄면 몰려오던 불안함, 불안함에 떨리던 온 몸, 잠은 오지 않고 숨이 쉬어지지 않았던 밤들. 눈을 떠 모니터를 보고 있지만 긴장감에 땀으로 마우스를 흥건히 적시던 낮들.
그로부터 열흘이 지난 오늘 아침 그 문제가 해결되었고 비로소 불안함에 떨고 불안함을 억누르고 있었던 내 마음도 평화로워졌다. 해결까지 시간이 더 오래걸릴 수도 있었고 일이 더 악화될 수도 있었는데 여기에서 해결되어서 다행이었다. 막상 문제가 해결된 직후에는 마음에 큰 변화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얼마나 마음이 홀가분해지던지, 그래, 이게 원래 평소의 내 마음상태였지. 다시 돌아와줘서 고마워, 나도 컨트롤 할 수 없는 내 마음아.
그 동안 평온한 삶을 지루하다고 불평하고, 작은 좌절에도 크게 상심했었는데 지루하리만큼 평온한 삶, 상심하는 정도의 작은 좌절만 있는 삶이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 깨달았다. 그 동안 내 계획대로 되지 않는 걸 견디지 못했었는데, 내 인생이 내 계획대로만 되어야 한다는 그 마음이 얼마나 오만한 것이었는지도. 지금까지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의 내 삶에 더 감사하고 또 내 계획대로만 될 수 없는 인생 앞에서 겸손하게 살아야겠다. 글로 적으면 뻔한 얘기이지만, 이번 경험을 통해 뼈저리게 느낀 소감을 꼭 적어놓고 싶다.
남은 2023년은 좋은 일만 있길 바라면서 잘 마무리해야지. 이 블로그에 들어오는 모든 분들, 언제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진심으로요!
9월이 한참 지난 것 같은데도 더위가 물러날 기미가 없더니, 이제 제법 아침 저녁으로는 선선하다 못해 쌀쌀하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내가 아직도 여름 옷을 입고 다녀서 그런가?)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했던가.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혼자 생각하고 있었네. 실질적인 내용은 틀리지 않았지만, 어떤 순서로 생각하느냐에 따라 느낌은 좀 다르구나.
어쨌든, 요즘 드는 생각이 그렇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란 생각. 일상생활에서도 그렇고, SNS에서도 그렇고 모두 아무 문제 없이 행복해보이지만 사실 저마다 크고 작은 어려움, 아픔, 슬픔 등을 갖고 있다는 것.
뻔한 얘긴데, 이 뻔한 얘기에 마음 깊이 공감되는 이유는 나이가 들어서인가.
그래서일까, 희극과 비극이 공존하는 삶의 본질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노력은, 그냥 하루하루 행복하게 사는 것이라는 (뻔한) 결론을 떠올리고 또 떠올린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게 정답인 것 같다.
어짜피 일어날 비극은 일어나고, 때로는 아니, 대다수의 비극은 우리가 컨트롤 할 수 있는 일들이 아니다. 그 비극의 크기가 너무 커서 감당하기가 어려운 날들도 있겠지만, 그것이 인생이라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오늘 하루 시간을 내어 열심히 운동하고, 내 곁의 사랑하는 사람들과 즐겁고 소중한 시간을 보내고, 내가 하고 싶은 취미활동을 하거나 내가 성취하고 싶은 목표를 위해 노력하는 것. 결국 나 자신을 사랑하고, 나의 하루를 나를 위해 살아가는 것. 나는 요즘 그런 마음으로 산다.
이렇게 쓰면, 요즘 나한테 무슨 안좋은 일이 있나 의아한 사람도 있을테지만 사실 아무 일도 없다. 그냥 하루하루를 열심히 또 행복하게 살고 있고 그런 날들이 조금씩 쌓이다보니 그 소소하게 행복한 날들의 집합이 내면의 단단한 힘이 되어주는 것을 비로소 느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