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부모님 아파트가 이제 시공을 거의 마무리해서 사전점검을 한다고 해서 도리와 함께 구경할 겸 다녀왔다. 날씨는 더할 나위 없이 화창했는데 부모님을 포함해서 소중한 보금자리를 확인하러 가는 집주인들의 마음들은 얼마나 설렜을까 싶다.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아직 상가를 짓는 중인건지 단지 앞은 공사판에 어수선했고 사전점검을 하러 온 차들이 길게 줄지어 주차장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주차장으로 진입하고 몇동 몇호라고 말하니, 차 앞에 동을 표시한 표지판을 올려주었고 인원수에 맞춰 놀이공원에서 찰 법한 종이팔찌를 나눠주었다. 차를 주차하고서, 엄마에게 전달받은 동호수로 엘레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초인종을 누르니 먼저 들어와있던 아빠엄마가 반갑게 우리를 맞아주셨다.
동남향 집은 정오 즈음의 햇살이 들어와 화사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바로 거실에서 보이는 풍경!
여기 서울 한복판이 맞나 싶은 알록달록 가을빛이 들어가는 너무 예쁜 뷰였다. 건물 앞에 가리는 건물 하나 없이 탁 트여있어 답답함도 없고 햇살도 잘 드는 데다가 그 앞으로는 산이 있어 집에서 사시사철 자연을 오롯이 누릴 수 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내가 제일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조건인데 그걸 우리 부모님 집이 해냈다니! 심지어 이미 완성된 집을 보고 산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래서였는지, 집을 방문한 부동산에서 오늘 사점점검으로 돌아본 집 중에 가장 뷰가 좋다면서, 너도 나도 부모님 집 거실 뷰를 사진으로 찍고 영상으로 찍고 수십 번을 찍어갔다. 내 집도 아닌데 괜히 뿌듯.....
아, 사점점검을 하면서 뭔가 엄마아빠를 즐겁게 해드리고 싶어서 플래카드를 준비해서 갔다. 그리고 엄마아빠를 선동해서 기념사진 플래카드를 들고 우리끼리 사진도 찍었다.
내가 플래카드를 펼치니, 엄마는 이런 걸 왜 만들었냐고 하면서도 우리 딸 답다며... (엄마 이거 칭찬이져?)
나도 안다. 이 플래카드가 별 의미 없다는 것을. 이게 부모님 첫 집도 아니고. 아파트 사전점검도 그냥 하나의 절차일 뿐이라는 것도. 하지만, 평범하고 당연한 일상 속에 우리 가족이 재미있게 기억할 수 있는 즐거운 추억을 만들고 싶었달까?
언젠가 시간이 많이 지나 저 플래카드를 보면서,
우리 사전점검하는 날 이런 일 있었지, 저런 일이 있었지. 부동산에서 우리 집 뷰가 좋다고 사진을 그렇게 많이 찍어갔지. 딸이 저런 플래카드도 준비해 왔었지 하면서 이 날을 즐거웠던 하루로 떠올렸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으로 플래카드를 준비했다.
살아보니, 가족이라는 존재가 참 소중한 것이었다. 그리고 가족이 함께 부대끼며 지내온 시간들이 지나고 나면 소중한 추억이 되는 것 같다.(나 진짜 철들었나 봐) 결혼하기 전까지 부모님과 함께 살았던 나라서, 가족과 일상생활을 함께 하는 게 너무나 당연했는데 결혼과 함께 독립한 이후로 원래 가족과는 일부러 시간을 내어 시간을 맞춰 만나야 하는 사이-혹은 환경이 되었다. 그리고 그런 환경 변화를 겪고서야, 우리가 원래 가족으로 새로운 추억을 쌓을 일이 많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함께 살 때와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이 사전점검의 날이 우리 가족에게 (동생은 일하고 있어서 못 왔지만) 특별하고 즐거웠던 추억으로 오래오래 기억되었으면 좋겠다.
여행이 사라졌다. (물론 여행말고도 많은 것이 바뀌었고 전세계가 질병으로 고통받는 것은 별론으로 한다)
비행기가 멈추고 국경이 닫히고 비자가 없으면 입국할 수 없는, 자유로운 여행이 사라진 시대. 이런 날들이 올 것이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바로 6개월 전만 해도 하루가 멀다하고 항공사들이 새로운 노선을 광고하고 수많은 방송프로그램들이 해외여행 소개도 모자라 해외에서 요리하고 장사하고 노래부르고 숙소를 차리고 SNS에는 세계 방방곡곡을 여행한 사진들이 흘러 넘쳐났는데.
매년 이맘때면 곧 다가올 여름휴가를 생각하면서 설레는 마음으로 악착같이 회사생활을 버텼는데 이번에는 여름여행은 커녕 인생에 한 번 뿐인 신혼여행마저 사라져버린 것이 2020년, 현실이네.
코로나가 없었다면 3월엔 스페인에, 9월엔 뉴욕에 가는 것이 올해의 여행계획이었고 코로나가 한창이었던 초봄만 해도 여름만 지나면 코로나가 끝나서 해외여행도 가능해지지 않을까 기대했었지만, 코로나가 우리의 삶을 잠식한지 어느새 5개월이 넘어가는데 끝이 보이기는 커녕 이제 정말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것 같고 코로나가 바꾼 삶의 모습은 더 이상 임시적인 것이 아니라 깊이 고착화되는 것 같다. 소위 - 뉴노말.
이런 시대. 상상도 못했던 2020년.
요즘엔 잠들기 전에 가만히 눈을 감고 상상여행을 한다. 여행했던 곳들과 그 날의 날씨와 기분을 머릿속으로 생각하면서 그때의 느낌을 상상한다. 일상생황 속에서도 여행하던 순간들을 애써 끄집어내어본다. 이 노을의 빛깔, 이 바람의 간지럼, 이 습도의 청량함. 순간 순간 기억과 살결에 새겨진 비슷한 지난 날들의 감각을 흔들어 깨워보며.
점점 기약이 없어지는 불과 반년 전의 삶. 과연 돌아갈 수 있을까. 얼마나 걸릴까.
모든 게 멈춘 덕분에 2020년의 하늘과 공기는 맑고 청량하기 그지 없다. 야속할만큼 좋은 날들이다. 여행하기에.
그런 생각을 많이 했어. 난 이제 뭐가 될 수 있을까. 인생의 피크점에 닿아 이제는 내리막길만 남은 기분. 내 인생 여기서 그냥 평범한 - 대단한 무엇이 되지 못한 채로 아- 다른 어른들도 다 이렇게 아무인이 되었나보다, 나도 여기까지인가보다, 생각하면서 보통의 -무명인 - 삶의 주인공으로 시시하게 살다 가겠구나. 죽을 날까지 너무 많이 남았는데 지루해서 어쩌나.
그런데 문득 어쩌면 인생이란게 젊은날에 정점을 찍고 그저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생의 데드라인까지 나라는 존재가 완성되어 가는 것이 아닐까. 꺾여서 내려오는 그래프가 아니라 그 각도는 현저히 줄어들겠지만 내가 노력하는만큼 천천히 정(+)의 직선, 혹은 곡선을 그리며 내 가능성의 최대치까지 끝없이 상승하는 그래프가 되도록 만들 수 있는게 아닐까. 요즘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이런 마음의 소리가 조용히 들려오네.
여기가 나의 정점이라고 생각하고 이제는 무얼해도 하강선이라 생각한다면, 지금의 내 모습이 내가 꽃피운 나의 전부이겠지만, 앞으로도 여전히 내 노력에 따라 발전한다고 생각한다면 나라는 사람의 끝이 어디인지, 어느 정도까지 완성되는지 더 나아가 볼 수 있겠지. 그때는 나라는 사람이 어느 정도까지 완성되었는지 알게 되지 않을까. 그것이 꼭 세상이 알아주는 대단한 명성의 것일 필요도, 시험을 쳐서 얻어야만 인정받는 그런 것일 필요도 없더라. 내가 원하는 이상향의 내가 되는지가 가장 관건일거야.
그 무언가가 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되어가는 것. 내가 바라는 나의 모습에 다가가는 것. 나의 잠재력을 실현시킨 나의 모습으로 나아가는 것. 그런 내가 되어가기를.
그랬다고 해도 괜찮아요. 지적받고해서 또는 거절당했다고 해서 기죽지 말아요. 당신은 당신 자체로 충분히 완벽하고 또 행복할 수 있어요. 그렇다는 사실을 믿어요. 그런 자신을 믿어요. 당신의 행복을 타인이 정의하고 결정하도록 하지 말아요. 당신이 맞다면 맞고, 당신이 틀리다면 틀린거에요. 당신의 인생을 살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