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lice of Life'에 해당되는 글 1119건

  1. 2009.10.07 감사합니다.
  2. 2009.10.06 가을 날씨. 2
  3. 2009.10.05 엄마의 응원
  4. 2009.10.04 연쑤와 칸민과 봉자 2
  5. 2009.09.30 자소서 쓰기 싫어어어엉.... 2
  6. 2009.09.27 90. 안녕? 오스트리아 :) 1
  7. 2009.09.26 천고마비
  8. 2009.09.25 89. 뒤죽박죽 엉망진창의 끝장. 2
  9. 2009.09.24 Chic Relationship.
  10. 2009.09.16 ..

감사합니다.

■ 삶 2009. 10. 7. 18:38

Roses in Paris, May. 2008 by honey,H






어떻게 생각하면 참 짜증나고 괴롭고 고통스러운 이 시기가
그래도 생각만큼 힘들다고 느껴지지 않는건,
내가 대놓고 전화해서 투덜거리고 징징거려도
날 먼저 이해해주고 위로해주고 격려해주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인 것 같아.

내 옆에서 항상 내 얘길 들어주고 조언을 주는 사람도 있고
내가 잘 하고 있는지 궁금해서 걱정되서 연락하는 사람도 있고
날 위해 항상 기도해주는 사람도 있고
그리고 지금의 나를, 내 가능성을 믿어주는 사람도 있고
어제 다들 너무 고맙고 고맙고 또 한편으로 든든했어.

게다가 4년전 면접날 날 단 한번 봤던 사람조차도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기억난다며 날 좋게 기억하고 계시다니
나중에 더 큰 사람이 될 내 이름을 기억하고 있겠다라는 말이
지금 아무것도 없는 내게 왜 그렇게 힘이 되던지.

내 곁에서, 혹은 멀리서 마음으로 날 응원해주고 아껴주는 사람들이 많아서
비록 지금 내 상황은 어려울지라도 힘내고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날 믿어주는 사람들을 실망시키지 않게, 결과가 아닌 노력하는 진솔한 모습을 보여드려야겠다고.



그럼 또 이만 나는 자소서의 세계로 슝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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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날씨.

■ 삶 2009. 10. 6. 08:57




날씨가 너무 좋다.
나는 방구석에서 자소서를 두들기고 있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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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응원

■ 삶 2009. 10. 5. 02:03


엄마의 딸 관계만큼 미묘한 관계가 없다.
때론 맘 편히 수다를 떨 수 있는 친구같은 관계면서
때론 같은 여자로서 부딪히기도 하고
그리고 부모와 자식이라는 상하관계에서 대립하기도 하니까.


그동안 나에게 '엄마'란 존재는 사실 뭔가 '부담'이 되는 그런 사람이었다.
내게 '부담'을 느끼게 했던 엄마는 내가 못한다고 질책하거나 다그쳐서가 아니라
항상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의 것을 내가 이뤄내길 기대하셨기 때문이다.
엄마는 어른이었고 나보다 세상을 더 많이 살았고 더 현실적이었으며 미래를 멀리 보는 눈을 가졌다.
여느 부모와 같이 항상 내가 잘 되길 바라셨고, 나는 대부분 그 기대에 착실히 맞추어 드렸다.
그런 엄마는 날 굉장히 신뢰하시기도 했고.

대학생이 되서 조금 머리가 컸다고 나는 은근 엄마가 제시해주는 방향 설정에 극렬히 반항하곤 했다.
내가 미리 알아채기 전에 내가 실패를 경험하기 전에 슬쩍 지름길을 일러주는 엄마가 
고맙기는 커녕 날 엄마맘대로만 키우려는 것 같아 그 길이 옳다는 것을 알면서도 괜시리 거부하고 반항하곤 했다.
엄마는 내가 조금이라도 덜 다치고 덜 실패하길 바라셨지만
나는 조금이라도 더 내가 직접 경험하고 부딪히고 깨져보길 원했고 그게 바른길이라 믿었으니까.


그러고 보면 엄마는 내게 기대를 하셨지 응원을 해주신 적이 없었다.
내가 사소한 걱정을 할 때면 코웃음을 치며 날 긁던 엄마가
왠일인지 올해는 그것도 두번씩이나 '괜찮다'는 말로 응원을 해주셨다.
(생각해보면 고 3때 딱 한번 엄마한테 위로를 받았던 기억이 난다.)


엄마,이게 잘못되면 난 어쩌지.

예전같으면, "잘못되긴 뭐가 잘못돼. 니가 잘못 안되게 하면 되지. 헛생각 말고 가서 니일이나 잘해"라며 핀잔을 줬을텐데
오늘 엄마는 머리털을 쥐어짜며 끙끙대는 나에게
"민아. 너가 나가서 길만 걸어도 햇빛 속을 걷다가 그늘 속을 걷다가 하지 않니.
사람 일이 항상 잘 될 수만은 없는 거야. 좀 잘 안되도 괜찮아. 다시 하면 돼. 
그리고 오히려 그 일이 후에 더 좋은 결과를 낳을수도 있어. 괜찮아"
라고 말씀하셨다.


우리 모두는 안다.
사소한 일일지라도 엄마라는 존재가 반대하고 싫어하면 괜시리 마음 한구석이 찝찝하고
맘에 들지 않던 것도 엄마가 좋다 하고 괜찮다고 추켜세우면 마음의 불안이 가시고 편안해진다는 걸.



지금 나는 내 인생에서 가장 오리무중의 길을 가지만서도 그 어느 때보다도 내가 가야할 길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가야할 길을 모르는 채로 하염없이 달리는 것과
지금 장애물 앞에서 이걸 넘을수 있을지 없을지 걱정하면서도 이 길이 정말 내 길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장애물에 덤비는 것
이 둘중에 선택하라고 한다면 나는 무조건 후자를 선택할거다.
내 길을 모르는 채로 달리는게 얼마나 절망적이고 우울하고 비참한지 정말 오랜 시간 겪었으니까.



엄만, 내가 정말 인생을 통틀어서 가장 힘들 때 이렇게 '괜찮다'는 말로 내게 위안을 주셨다.
엄마가 괜찮다고 하니까 괜찮다
그래. 괜찮다.
엄마가 괜찮다고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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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쑤와 칸민과 봉자

■ 삶 2009. 10. 4. 02:25




많은 사람들은 고등학교 때 친구가 진정한 친구고, 대학교에서의 인간관계는 그만 못하다 한다.
그런데 난 어떻게 된 사람인지, 그 말이 가장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리고 난 어떻게 된 영문인지, 내 인생에서 절대 없어서는 안될 두 친구를 대학에서 사겼다.
그것도 한 명은 남자동기고, 한명은 사실 대학선배인.



가끔 등하교를 함께하는 연쑤와 칸민



생각해보면 떠돌이 생활을 했던 내가 이렇게나 오랫동안 같은 학교를 다니며
오랜 친구관계를 유지한 것도 특이사항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무려 5년을 같이 보냈네.
그래도 그 와중에 쑤는 선교사업으로, 나는 교환학생으로, 봉은 군대를 갔으니
잠깐의 헤어짐의 시간이 있었지만.

그리고 우리는 어떻게 이런 세 명의 조합이 탄생하게 된걸까.
그 어느 누구도 서로를 소개한 적 없지만 서로가 서로 친해져서는
우리들은 어느 순간부터 서로 각자할 일을 하다가도 자연스럽게 모이는 그런 사이가 되었달까.


우린 크리스피크림도넛을 사들고 면회도 갔다♥




Anyway,
2학년이 끝나가던 그 겨울방학에, 나는 나중에 늙으면 연쑤와 봉자와 함께 살 수 있는 마을을 만들고 싶단 생각을 했다.
얼마전엔, 쑤랑 봉이랑 셋이서 자취하면 너무 재밌겠다는 생각을 쑤와 함께 했다. 봉은 싸울꺼라며 코웃음을 쳤지만.ㅋ
그리고 대학졸업을 앞둔 지금은, 너무 늙기 전에 연쑤와 봉자와 함께 배낭여행을 가고 싶단 생각을 해봤다. 그리고 꼭 할꺼다.


진지하게 봉의 얘기를 듣는 쑤.

3주가까이 미뤘던 얘기를 이제서야 꺼낸 봉.





쨌든, 천둥 번개가 치고 비가 흩뿌리는 신촌 탐앤탐스의 꼭대기 층에서 
봉자의 승리의 야딩 등반얘기에 흥분하고, 칸민의 여행남 얘기에 씁쓸해하다가, 연쑤의 뜻밖의 암초에 함께 머리를 싸매다가.
그렇게 시간가는 줄 모르고 수다를 떨었는데

나는 진심으로 생각했다.
연쑤가 선교를 가고, 칸민이 교환학생을 가고, 봉자가 군대를 갔다가도 이렇게 다시 만나 잘 지내는 것 처럼
앞으로 끝을 알 수 없이 창창한 우리의 앞날에 또 각자의 길을 가더라도 
계속 이렇게 함께 고민하고 함께 상의하고 함께 웃으면서 지내는 날들이 계속되면 좋겠다고.



겨우 작년 사진들인데도 저렇게 흑백으로 만들어버리니 아주 오랫적 사진같다.
마치 중년의 내가 20대의 내 추억을 떠올리는 그런 묘한 기분이 든다.

분명한 건, 나는 항상 연쑤와 봉자를 항상 믿어주는 그런 친구로 남아있을꺼란거.
이미 그 두사람도 언제나 그럴 것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우리 이렇게 함께 어른이 되자.
이건 연쑤와 칸민과 봉자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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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기 싫어어어어어어



내게 꿈과 희망만 주는줄 알았던 UBC에서의 생활은 학기가 시작하자마자 산산조각 나버렸다.
보통 수강정정을 생각하고 수업 첫 주는 널널하게 과목소개하고 자기 소개하는 한국 수업과 달리
UBC에서는 교수가 짧게 인사만 하고 바로 수업을 나가기 시작했고 바로 다음날부터 퀴즈가 시작됐다.
아직 밴쿠버 땅에 도착한지 일주일밖에 안되서 학교 지리도 모르는데 바로 수업을 따라가야 하다니.

레이첼이 일하고 있던 비너리 앞에서 처음으로 경영전략 퀴즈를 하며 케이스를 읽었다.
사실 10장 정도의 짧은(?) 케이스였지만 빽빽하게 쓰여진 케이스를 읽고 퀴즈준비를 하려니...
거기다 천상의 날씨를 자랑했던 9월 초반의 밴쿠버에서 말이다.

레이첼이 공짜로 타준 스트로베리 스무디와 아몬드 초콜렛을 아작아작 먹으며 
케이스는 읽는 둥 마는 둥 놀러나가고 싶어서 하염없이 하늘만 쳐다봤다.



요즘 자소서를 쓰는지 자서전을 쓰는지 자소설을 쓰는지 모르겠다.
처음엔 분명 자소서를 쓰는 줄 알았는데 6천자, 7천자씩 요구하는 자소서를 쓰다보니 어느새 내 자서전을 쓰고 있었고
또 나는 겪은 적 없는 항목들을 쓰려니 은근 사실을 바탕으로 나는 반픽션 자소서를 쓰고 있었다.
남들은 다작으로 승부한다며 나오는 기업들을 다 쓰는데
나는 배가 불러도 한참 부른건지,
성격상 ctrl C+ ctrl V를 못해서 회사마다 인재상을 뒤적거려 가며 거기에 맞춰 바꾸고 바꾸고 하다보니
점점 나 자소서들이 버전 업이 되어간다. 
같은 항목인데도 점점 싸이언>초싸이언 되듯이 진화하고 있다


이제 7장짜리 자소서를 써야 하는데
너무 어마어마한 자소서라 시작할 엄두도 안난다.
자소서도 마치 레포트와 같아서 한번 써버린 자소서는 새로 쓰는 것보다 고치는 것이 더 어렵다.


나는 시간의 비밀을 이미 잘 알고 있다.
힘들고 괴로웠던 시간들도 시간이란 마법이 쓸고 지나가면 나중엔 다 그리워진다는 것을.
2년전, 난 파란하늘만 보며 한숨을 푹푹 내쉬었지만
2년뒤, 차라리 그 때 그 시간이 좋았노라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걸 보면
언젠가는 일도 안하고 공부도 안하고 그저 자소서만 끄적거리던 이 천하태평 가을을 그리워할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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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6월 12일
세계여행 제 43일째 (1)
Wien, Austria



결국....도착해버렸다.
오스트리아 빈에.

뜨렌이딸리아에서 역무원한테 삥뜯기고 열받아서 메스트레역에서 남은 유로를 탈탈 털어 생맥주를 샀었다.
그리고 분한 마음에 벌컥 벌컥 들이키고는 야간열차 내내 그냥 한숨 푸~~~욱 자고 일어나니
어느새 오스트리아였다.




처음 계획대로라면 난 분명 넉넉하게 빈에서 이틀, 뮌헨에서 이틀, 프라하에서 이틀 그리고 벨기에에서 이틀을 보내야 하는데
중간에 이탈리아 일정을 최대한으로 늘리는 바람에 빈과 뮌헨을 통틀어서 2일밖에 여유가 없어져버렸다.
그렇다고 하루는 빈, 하루는 뮌헨을 갈 수도 없고....둘 중 하나를 포기해야하는데
클림트의 키스냐 (빈), 아니면 월트디즈니성의 모태, 노이슈반스타인성이냐(뮌헨), 고것이 문제로다.

...빈에 도착하자마자 발견한 강렬한(!!) 옥외광고 판. 오스트리아와 독일의 강렬한 노골적인 키스.



시은언니는 확실히 빈에서 하루, 그리고 다음날 할슈타트에 가기로 마음을 먹었는데
나는 빈에 도착해서까지 마음을 못잡고 갈팡질팡했다.
바로 여기서 뮌헨으로가는 기차를 탈까, 아님 빈에서 하루 머물다가 내일 당일치기로 노이슈반스타인 성에 다녀올까.....


....고민하는 사이, 빈 역에서 여행객들을 끌어모으는 적극적인 민박집 아저씨 손에 이끌려(;;;;)
나도 모르게 얼떨결에 짐들고는 민박집으로 들어가버렸다.; 민박집에 들어가면서도..이건..아닌데....를 외쳤으나
붙잡혀들어가서는 뛰쳐나올 용기가 없는 관계로, 나는 그냥 원래 빈에 오기로 했던 목적,
바로 클림트의 키스가 오스트리아에서의 이틀을 보상해주기만을 바라면서 결국 그렇게 빈에 눌러앉았다.



여행의 막바지에 다다르면서 이제 지치기도 했고 이탈리아에서 별별일들로 힘을 너무 많이 뺀데다가
사실 오스트리아에 대한 기대가 거의 없어서 시큰둥하게 민박집을 나섰다.



이 장엄하 대문은 클림트의 키스가 있는 벨베데레 궁전이랍니다.



이탈리아에 이어 오스트리아도 날씨가 좋았다.
다만 위도가 상당히 높아져서인지, 이탈리아는 뜨거웠는데 오스트리아는 갑자기 춥게 느껴졌달까.

바로크양식의 벨베데레 상궁. 19~20세기 미술품을 소장한 미술관으로 쓰이고 있다.

벨베데레 궁전 정원의 커다란 석상.



오직 클림트의 키스 원작을 보겠다는 일념하나로 들어온 벨베데레 미술관.
궁전으로 쓰이던 곳이어서인지 미술관 내부는 굉장히 화려했다.
보통 유럽이나 미국의 많은 미술관들이 사진촬영을 허락해주는데 반해,
이 벨베데레 미술관은 안타깝게도 사진촬영을 허락해주지 않았다. ㅠㅠ

화려한 내부의 벨베데레 미술관 내부.



클림트의 키스는 정말...
세기의 명작 천지창조와 모나리자를 볼때보다도 더 큰 감동이었다.

오스트리아 나라 자체에서 클림트의 키스 작품을 샀다고 하는데 강화 유리같은 것 안에 넣어놓았다.
진짜 모작으로만 보다 진짜 황금빛으로 반짝이는 작품을 봤을때의 그 감동이란!!!

...그러나 역시나 사진촬영불가....ㅠㅠ
사실 몰래 도촬을 하려다 걸려서 혼났다..........................................ㅠㅠ
단한번도 어글리코리안인 적이 없었는데 진짜 내 평생의 소원인 클림트 키스 앞에서는 나도 모르게..ㅠㅠ


그리하여 우리는 벨베데레 미술관의 관람을 끝내고 슬렁슬렁 빈 시가지로 걸어나왔다.

제법 도심분위기가 나는 빈

왠지 명동 삘이 나는 ..;



같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나라들인데 어쩜 이렇게 나라들마다 느낌이 다를까.
그러고 보면 확실히 이탈리아는 우리가 생각하는 유럽의 모습, 앤티크하고 유니크한 그들만의 모습을 간직했달까
분명 차들과 오토바이로 도로가 넘쳐나고 큰 현대식 기차역이 있었지만
도시들 자체는 대부분 옛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었다. 마치 중세시대 같은 그런 느낌.
높고 반짝거리는 현대식 건물도 보지 못했고, 지금 생각해보니 스타벅스도 구경을 못한 것 같다.

그런 곳에서 일주일을 있다가 오스트리아로 넘어오니 갑자기 현대로 시간여행을 넘어온 것 같은 그런느낌?
사실 그 때 당시에는 뭔가 오스트리아가 매력적이지 않다고만 생각했는데
그건 아마도 이미 내가 너무 익숙한 현대 도시들의 모습이 너무 많이 묻어나서였나보다.

St. Stephansdom. 슈테판 사원


빈의 옛 시가지 안에 빈의 상징물이라 할 수 있는, 오스트리아 최대의 고딕 양식의 슈테판 사원이 있었다.
미술 책에서만 보던 직선적이고 삐죽삐죽한 고딕양식 건물을 두 눈으로 직접 목격하던 순간이었다.

이거슨 기념사진.


후후, 점심시간이라 슬슬 허기가 진 우리들은 가이드북에 나온 음식점을 찾아나섰다.
빈에 가면 꼭 먹어봐야 한다는 슈니첼! 돈까스처럼 생겼는데 굉장히 얇게 썬 쇠고기 튀김이란다.
우리는 가이드 북 제일 첫 페이지에 소개된 <피그뮐러>에 들어갔다. ...그 곳에 이미 한 무리의 한국인들이...-.-

슈니첼은 언제 나오는거야...배고파

이게 지름 28cm의 슈니첼 한 장.;




가이드 북에 보면 슈니첼 한 개 지름이 28cm나 되니까 꼭 둘이서 하나를 시켜서 나눠 먹으라고 했는데
우리는 차마 둘이 와서 하나만 시키기는 민망하다는 핑계로 두 개를 시켰다,
한참 노닥거리는데 슈니첼이 하나 나왔는데 진자 어마어마하게 크길래
우리는 2개 시키니까 2개를 하나로 이어서 크게 만들어준건가보다 ....하고 둘이서 나눠먹고 있는데
곧이어 똑같은 크기의 슈니첼 또 등장이오.,,,,,,,,,,,,,,,,,,!;;;;;;;;;;;;;;;;;;;;;;;;;;;;;;;;;;

앞으로 가이드 북의 말을 꼭꼭 지키도록 합시다.
그러나 저러나 이탈리아에서 거의 기아 수준의 극기 여행을 했던 우리들은
크거나 말거나 맛있게 잘 먹었다는 :D


이제사 조금 유럽같은 빈의 시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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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고마비

■ 삶 2009. 9. 26. 11:19




바야흐로 하늘은 높고 나는 살찌는...(?) 계절인 가을이다.
아, 주말인데 창밖으로 보이는 날씨가 너무 좋아보여!!!
꽥. 그러나 나는 오늘도 자소서인지 자서전인지 알 수 없는 내 인생을 써내느라 방콕 신세를 못 면할 것 같다.

어디 카페라도 나가서 쓰면 기분이 좋아질까 했는데
이 동네에 스타벅스나 있나....? 본적이 없는 것 같아...; 게다가 우리 동네에 친구가 없어.............................


휘유
내가 날씨가 좋다고 한숨쉬면 아빠는 항상 이런말씀을 하셨지.
"히야~ 공부하기 딱 좋은 날씨다!!"




그래놓고 아빤 골프치러 나갔다. 아빠 뻥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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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6월 11일
세계여행 제 42일 째 (3) 
Venezia, Italy





맞은편의 주영오빠네 기차 문이 닫혔는데, 닫혔는데, 닫혔는데.
헉.
기차 문 너머로 주영오빠가 갑자기 휙 등을 돌리더니 왠 한국인 여자들이랑 말을 하기 시작했다.


1분전까지 우리랑 헤어져서 혼자 다니면 심심해서 어떡하냐고 죽을 상을 쓰고 있었는데
어떻게 또 저 칸에 한국인 여자들이 타고 있어서.........................................................
오빠가 심심하게 혼자 다니지 않게 된 건 다행이었지만, 왠지;; 왠지 모를 서운함이...-_-......


어쨌든, 드디어 우리 기차도 출발하고 승무원이 올라타 표검사를 하기 시작했다.
하필이면 제일 첫번째 검사했던 남자가 무임승차였나보다.
난색을 하더니 결국 주민증 같은걸 보여주고 뭘 적고....
항상 유레일패스만 쓰던 우리도 패스를 하루 아끼려고 1유로짜리 표를 사놔서 다행이었다.
무임승차한 사람에게 혼쭐을 내준 역무원이 우리에게 표를 요구했다.
나와 시은언니는 씨익 웃으면서 그 표를 내밀었는데
역무원이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딱 두 마디, 그리고 콩콩 찍는 손 모양을 해보였다
"no punch"




...


뭐....라고?
....노....펀치???!?!??!?!!!!!!!






그게...뭐..................................가 아니잖아!!!!!!!!!!!!!!!!!!!!!!!!!!!!!!!!!!!


그랬다 ㅠㅠ
이탈리아에서 기차를 탈 때는 꼭 표를 기계에 집어넣어서 펀치를 뚫어야 한다. 그게 개시(開始)다.

그래야 표가 유효하다는 뜻이다.
그동안 유레일 패쓰만 썼던 우리는 직접 펀치한다는 생각을 정말, 1g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이다.
거기다....이탈리아에 와선 주영오빠가 네비게이션 역할을 하면서 나는 가이드 북을 읽지도 않았다...


일단은 몰랐다고 손을 싹싹 빌어봤다.
표를 사면 된거 아니에요? 몰랐어요 ㅠㅠ


근데...얄짤없다.
갑자기 기관실 옆 칸으로 들어오란다.
사색이 되서 따라 들어갔더니, 벌금으로 각자 50유로씩 100유로를 내란다...................................


님....지금 장난?
각자 50유로?
50유로면 유레일 패스 없이 이탈리아 횡단을 하고도 남겠다.


일단은 현금이 없다고 봐달라고, 카드 밖에 없다고 했더니
그러면 경찰에 전화하는 수밖에 없다면서 핸드폰을 꺼내더니 번호를 누르기 시작했다
헐............................강경하게 나오는 구나.................................



....

진짜 돈이 없....................지는 않았지만 50유로를 벌금으로 내면 진짜 돌아버릴지도 몰라.
우리는 딱 한 정거장만 가면 됐고, 게다가 1유로짜리 표도 샀다고.
정말 울상을 지으면서 꼬깃꼬깃 접어놓은 50유로를 꺼냈다.

정말 이거 밖에 없어요..ㅠㅠㅠ


그랬던 선심쓰듯,
"좋아 원래 2명에 100유로인데 잘 몰랐다고 하니까 각자 25유로씩 50유로로 봐줄게
다음부턴 절대 실수하지마."




..............저기 있지나....

우리 지금 이탈리아 뜨는 중이야. 다음따위 없다고!!! 우리 이제 오스트리아로 넘어갈꺼라고!!!!!
뭐? 잘 몰라서 25유로 깎아줘? 처음부터 100유로가 아니었겠지. 니가 지금 중간에서 떼먹으려는거 다 알아!!!!!
(오스트리아로 넘어가는 기차에서 쓴 나의 일기장엔 욕이 난무한다 .....-.,-)


그렇게 50유로를 거의 삥 뜯기다시피 뜯기고....나는 거의 정신을 잃었다.
(맘씨좋은 나라에서는 잘 몰랐다고 하면 봐주기도 한다는데 ㅠㅠ)
순식간에 언니 벌금 25유로까지 뜯기고 나니 갑자기 눈물이 발칵 쏟아지기 시작했다.
겨우 한 정거장 가는데, 표도 샀는데, 25유로나 내야 해서 억울하기도 했지만,


갑자기 방금 다른 기차를 타고 떠나버린 주영오빠가 생각났던거다.


주영오빠를 만나기 전까지, 중간에 카드도 고장나고 돈도 없이 굶고 지갑도 잃어버리고 길도 잃어버렸지만
눈물이 찔끔찔끔 나기도 했지만 나는 항상 꿋꿋하게 잘 견뎌왔다.
그런데 스위스에서 주영오빠를 만나면서부터, 거의 궂은 일은 오빠가 다 도맡아 처리해주기 시작했다.
귀찮은 길찾기도 다 해주고, 물어볼게 있음 나서서 물어와주고, 짐도 다 들어주고
그러다 보니까 여행지인데도 오빠가 다 알아서 해준다고 여행지인데도 너무 마음 놓고 있었던거다.
한 열흘간 오빠 도움만 받다가 갑자기 큰 일을 당하니까 우르르 무너져버렸다.
오빠가 있었으면 내가 아니라 오빠가 싹싹 빌었을테고, 오빠는 돈 못낸다고 버티기라도 했을것 같고
행여 25유로씩 뜯겼어도 씩씩거리면서도 괜찮다고 다독여줬을텐데
오빠는 방금 전에 왠 한국여자들을 또 만나서 깔깔거리며 눈 앞에서 사라져버렸다.
오빠 처지랑 내 처지랑 비교가 되서 괜히 억울하기까지 했다.



그렇게 우리는 2분 뒤에....(제길..) 메스트레 역에 내렸다.
시은언니는 아침에 33유로, 저녁에 25유로, 도합 58유로를 뜨렌이딸리아에 기부했다.
제길.제길제길.
갑자기 모든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왔고 서있기가 힘들었다.
아침에 일기장에 쓴 것 처럼, 정말 뒤죽박죽 엉망진창이었다.


Posted by honey,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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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c Relationship.

■ 삶 2009. 9. 24. 16:56




내가 ex-밴쿠버와 post-밴쿠버로 달라진 또 하나의 것이 있다면
인간관계 있는 지지부진한 나의 미련들을 거의 다 떨쳐버렸다는 것이다.
그전까지 나는 사람에 대한,인간관계에 대한 일종의 집착이 있었다.
다른사람들로부터 나쁜 소리, 나쁜 평가를 들을까봐 매사 긴장했고
누군가에 나에 대해 오해하고 있으면 꼭 풀어야만 밤에 두다리 뻗고 잠이 왔다.
나의 열과 성을 다했던 사람이 나에게서 멀어져가고 있음을 느낄때면 심장이 난도질당하는 것처럼 아프기 그지 없었다.
어느 한사람도 나의 적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고, 어느 지인도 내게서 멀어지게 하고 싶지 않아했다.

그럳 내가 밴쿠버로 떠나서, 그리고 60일간의 세계일주를 하면서
그런 미련한 인간관계에 대해 학을 뗐다.
특히 할슈타트에서 빈으로 돌아오던 그 적막한 기차안에서의 나의 인간관계를 정리하면서
나의 ex-밴쿠버 인간관계에 대한 미련은 정리되었다.


댓글에 연연해하던 싸이월드를 버리고 블로그로 옮겨왔고
500명이 넘던 핸드폰의 전화번호 저장목록엔 이제 120명만이 남았다.


모든 사람들하게 이쁨을 받아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고
날 싫어하는 사람들은 그냥 무시해버버리면 되고
날 잊어버린 사람들은 깨끗하게 잊어버리면 되는 거였다.
날 좋아하는 사람들, 내가 반가운 사람들과 함께 지내는 것만으로 충분하니.

지금 그 언젠가 내가 열렬히 내 마음을 다했던 그 사람이 블로그를 즐겨찾기에서 일말의 고민없이 삭제하며 생각하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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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honey,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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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테고리 없음 2009. 9. 16. 01:05

옳지 그래 잘해!



다시는 고연전에 안갈줄 알았는데 무려 3년만에 고연전엘 갔다.
그것도 5학년 마지막 학기에 듣는 보도 사진 실습 때문에..........................
도착하자마자 폭우가 쏟아져서 사진따위 다 망했다고 생각했는데 다행히 다시 해가 쨍쨍.


몇장찍고 집에 갈랬는데 교수님 발견!
눈도장 찍을겸 인사드렸더니 얼른 내려가서 응원단을 찍으란다.
앗싸, 이건 바로 교수님의 힌트?!

역광안비치는 응원단원을 찾다가 요녀석을 찾았다.
검은색 단원복을 입은 요 녀석!


아이컨택?ㅎ


학교를 5년 다녔지만, 응원단을 또 이리 가까이 보기는 처음일세,
열심히 응원하던 이 검은 비늘 응원복 입은 녀석. 08쯤 되었겠구랴
하 이제는 나보다 다 어린 응원단들.ㅠ


쩜프!


많이 호리호리 하던데 많이 먹고 몸 튼튼히 키워서
부단장도 맡고, 단장까지 맡아서 고대 응원단을 맡아주렴
누나가 그럼 또 사진찍으러 가줄게 ^^

Posted by honey,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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