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하기 싫어어어어어어



내게 꿈과 희망만 주는줄 알았던 UBC에서의 생활은 학기가 시작하자마자 산산조각 나버렸다.
보통 수강정정을 생각하고 수업 첫 주는 널널하게 과목소개하고 자기 소개하는 한국 수업과 달리
UBC에서는 교수가 짧게 인사만 하고 바로 수업을 나가기 시작했고 바로 다음날부터 퀴즈가 시작됐다.
아직 밴쿠버 땅에 도착한지 일주일밖에 안되서 학교 지리도 모르는데 바로 수업을 따라가야 하다니.

레이첼이 일하고 있던 비너리 앞에서 처음으로 경영전략 퀴즈를 하며 케이스를 읽었다.
사실 10장 정도의 짧은(?) 케이스였지만 빽빽하게 쓰여진 케이스를 읽고 퀴즈준비를 하려니...
거기다 천상의 날씨를 자랑했던 9월 초반의 밴쿠버에서 말이다.

레이첼이 공짜로 타준 스트로베리 스무디와 아몬드 초콜렛을 아작아작 먹으며 
케이스는 읽는 둥 마는 둥 놀러나가고 싶어서 하염없이 하늘만 쳐다봤다.



요즘 자소서를 쓰는지 자서전을 쓰는지 자소설을 쓰는지 모르겠다.
처음엔 분명 자소서를 쓰는 줄 알았는데 6천자, 7천자씩 요구하는 자소서를 쓰다보니 어느새 내 자서전을 쓰고 있었고
또 나는 겪은 적 없는 항목들을 쓰려니 은근 사실을 바탕으로 나는 반픽션 자소서를 쓰고 있었다.
남들은 다작으로 승부한다며 나오는 기업들을 다 쓰는데
나는 배가 불러도 한참 부른건지,
성격상 ctrl C+ ctrl V를 못해서 회사마다 인재상을 뒤적거려 가며 거기에 맞춰 바꾸고 바꾸고 하다보니
점점 나 자소서들이 버전 업이 되어간다. 
같은 항목인데도 점점 싸이언>초싸이언 되듯이 진화하고 있다


이제 7장짜리 자소서를 써야 하는데
너무 어마어마한 자소서라 시작할 엄두도 안난다.
자소서도 마치 레포트와 같아서 한번 써버린 자소서는 새로 쓰는 것보다 고치는 것이 더 어렵다.


나는 시간의 비밀을 이미 잘 알고 있다.
힘들고 괴로웠던 시간들도 시간이란 마법이 쓸고 지나가면 나중엔 다 그리워진다는 것을.
2년전, 난 파란하늘만 보며 한숨을 푹푹 내쉬었지만
2년뒤, 차라리 그 때 그 시간이 좋았노라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걸 보면
언젠가는 일도 안하고 공부도 안하고 그저 자소서만 끄적거리던 이 천하태평 가을을 그리워할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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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honey,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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