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인 86% "행복하다"
캐나다인의 86%는 자신의 삶의 질에 대해 '양호하다'거나 '우수하다'고 생각하고 있어 대체로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14일 지역사회 연구ㆍ봉사 기관인 캐나다 커뮤니티 재단이 발표한 '삶의 질' 조사 결과에 따르면 캐나다인들은 야외활동과 친근한 이웃을 접할 때 가장 행복하다고느끼며 교외의 소도시 거주자들일수록 이 만족감이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에서 인구 5천 명 이하 소도시 거주자들 중 43%가 자신의 삶의 질이 '우수하다'고 응답한 데 비해 인구 10만 명 이상 대도시 거주자들의 이 같은 응답은 32%에 그쳤다.
응답자의 25%는 삶의 질을 결정하는 요인으로 야외활동 환경을 으뜸으로 꼽았으며, 20%는 좋은 이웃 등 거주지의 사회적 환경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일간 글로브 앤 메일은 이 같은 조사결과를 전하면서 캐나다인들이 삶의 질을 결정하는 요인으로 부(富)나 직업, 교육을 크게 중시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주목할 만하다고 평가했다.
특히 경제난의 고통이 한창이던 지난 8월 실시된 이 조사에서 '불경기가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63%의 응답자들이 '큰 영향이 없었다'고 밝힌 것은 예상 밖이라고 신문은 말했다.
또 지난 9월 시장조사 기관인 앵거스 리드가 실시한 조사에서는 돈을 더 벌거나 직업적 성공을 이루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캐나다인은 10명 중 한 명 꼴도 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신 자선활동, 새 진로 개척, 취미생활, 가족과의 유대, 여행 등 개인적 비전과 성취를 중시하는 응답이 주류를 이루었다고 일간 밴쿠버 선이 이날 전했다.
전국 1천3명을 대상으로 한 이 조사에서 응답자의 37%는 경제불황을 겪으면서 인생에서 중요한 것에 대해 생각을 바꾸어 돈과 직업적 성공을 중시하지 않게 됐다고 밝혔다.
이 같은 응답률은 경제적 타격을 가장 크게 입은 앨버타 주에서 51%를 기록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07년 겨울, 기말고사를 공부하다가 발견한 쌍무지개.
캐나다에서 돌아와선 한참을, 정말 오랫동안을 나는 캐나다를, 밴쿠버를 그리워했다.
캐나다를 떠나서 미국을 찍고 유럽까지 돌아보고 와서는 나는 순식간에 한국에 적응해버린듯 했었다.
하지만 캐나다의 여운은 아주 오랫동안이나 날 사로잡고는 날 놓아주지 않았던 것 같다.
특히 캐나다와 유난히 비슷한 한국의 가을을 보내면서,
캐나다에 다녀와서의 나는 너무나도 변했는데 여전히 똑같은 한국에 재적응을 하면서,
작년 가을엔 참 방황을 많이 했었던 것 같다.
친구들도, 부모님도 모두 나보고 변했다고 했다. 누군가는 긍정적 변화라고 했지만
어쨌든 다들 낯선 내 모습에 당혹스러워했다. 이전에 알던 내가 아닌 것 같다 했다.
UBC의 Main Mall. 공대까지 주욱 이어진 단풍이 정말 입을 벌어지게 했었다.
그렇지만 내가 처음 부터 캐나다를 그렇게나 좋아했던 건 아니었다.
사실 교환학생을 계획할때만 해도 나는 미국내에서 모든 학교를 결정하고 싶어했다.
기억나지 않는 어린시절을 미국에서 보냈다는 어렴풋한 노스탤지어의 마음도 있었고
왠지 광활한 자연환경밖에 떠오르지 않는 캐나다보다는 내가 지금까지 꿈꾸었던 활기찬 미국에서 공부하길 바랐다.
하지만 당시 언론과 경영을 함께 공부할 수 있는 학교는 북미를 통틀어 5개 정도밖에 없었고
UN에서 일하고 있던 사촌오빠는 5개의 학교중에서 가장 네임벨류가 쏀 UBC를 1순위로 추천해주셨다.
UBC에 가게 되긴 했지만, 나는 끝까지 뭔가 찝찝함을 지울 수 없었다.
나는 미국에 가고 싶었단 말이야..
노을이 지는 Wrek비치..그립지는 않았지만 가끔 이 곳에서 이 바다 건너의 한국을 생각했다.
그렇지만 나는 캐나다에 발을 딛고 단 하루만에, 캐나다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서울처럼 복잡복잡번잡번잡하지도 않고, 어디든 쉽게 시원한 바다를 만날 수 있었고
하늘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파랗고 깨끗했다. 햇살은 따뜻했고 바람은 시원했고.
사람들은 친절하고 삶에서 여유가 느껴졌다.
나는 부모님께 매일같이, 이런 곳에 올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다고 편지를 썼고
난 정말 순간순간 이 곳에 있음을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그냥, 말그래도 이 곳에 있음이 그렇게 행복했었다.
north Vancouver에서 바라본 밴쿠버 시티..
물론 영어가 완벽하지 않은 이방인으로서, 그러나 이미 그곳에 너무 많이 존재하는 동양인 중의 하나로서
여러가지 어려움과 괴로움도 있었다.
난생처음 성적표에 C를 찍어보았고, 옆집 남자아이들은 주말마다 날 불면증에 빠뜨렸고, 개방적인 성문화라던가 마리화나는
내게 크나큰 문화적 충격이기도 했다. 생각보다 친구를 사귀는 것도 쉽지 않았다.
나는 학생이었고 공부도 해야했고 문화도 익혀야했고 놀기도 해야겠고 영어도 배워야 했고
그래도,
그래도 나는 거기서 정신적으로 참 자유로웠다.
이것저것 챙겨주는 엄마가 없어서 아쉽다기보다 나는 내 스스로 내 마음대로 모든 걸 할 수 있어서 자유로웠다.
엄마는 날 애처럼 생각했지만 엄마 그날 밖에서 생각보다 의젓하고 어른스러운 내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그 곳엔 남의 시선이랄 것이 없었다.
남의 눈을 의식해야 하고 , 남의 말에 신경이 쓰이게 되는 한국에서 받던 그런 스트레스는 조금도 없었다.
내가 옷을 어떻게 입든, 무얼 먹든, 늦게 자든, 누굴 사귀든 말든 가장 중요한건 내 자신이었다.
9월 중순에 처음 밴쿠버를 멀리 떠나 White Rock에 갔다.
그런 남의 시선이 없어서였을까, 아님 오랫동안 뿌리내려져 온 그들의 가치관 때문이었을까.
그 곳에서의 삶은, 캐나다 친구들의 삶은 편안하고 행복해보였다.
부모님의 눈도, 이웃의 눈도, 사회의 눈도 없었고 사회의 압박도 없었다.
그 동네의 아이들은 우리나라처럼 출세에 큰 목적을 두지 않았다.
변호사나 의사에 집착하는 건 유학온 한국인들 뿐, 삼*이나 엘*같은 대기업, 혹은 공기업이나 공사에 들어가는게 좋다는
그런 압박도 없었다.
20살에 입학하고 25살쯤에 졸업해야한다는 인식도 그리 없어보였다.
사회에 1, 2년 더 늦게 나가는것에 대한 일말의 부담감이나 불안함도 없어보였다.
그들은 그저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고 자신의 마음에 충실하고 즐겁게 사는것에 가장 큰 의의를 두고 있었다.
Spring Break에 태영이가 밴쿠버에 놀러왔었다. Stanely Park에서.
비가 많이 와서 우울증에 걸릴까봐 매일같이 노심초사 했던 나였지만 진심으로 이 곳에서 영영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UBC의 교직원으로 일하면서 9 to 5 내 일에 보람을 느끼고 오후는 가족과 함께하는 그런 오붓한 삶
여름엔 비치에서 가족들과 햇살을 즐기고 불꽃놀이를 보고, 겨울엔 휘슬러에서 스키를 타며 여가를 보내는.
돌아가면 기업에 취직해서 상사눈치를 보고 야근을 하고 원치않는 회식자리에서 자리를 지키고
그러다가 나중엔 결혼과 육아의 문제에 부딪히면 엄마로서의 삶과 사회인으로서의 삶을 저울질해야하는.
그렇게 빡빡한 미래밖에 그려지지 않는 한국으로 돌아가기가 너무나도 겁이 났었다.
모르겠다. 하지만 변함없는 사실은 단 하나.
캐나다인들은 행복하다.
캐나다에 있었던 나도 행복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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