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가 가고, 새 해가 오는 것이 아쉽고 설레던 때도 있었는데
언젠가부터 그런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게 되었다.
마치 모든 것이 새로 시작하는 냥 호들갑 떨어봤자
지나고 보면 결국 하루하루가 똑같을 뿐이란 걸 -
지난해를 반성해도, 다가오는 해에 새로운 각오를 해도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깨닫고 있어서일까.
그래도 4시엔 퇴근할 줄 알았는데, 정시퇴근을 하게 될 것 같으므로
오늘은 2013년을 마무리하는 일기를 써야겠다.
지금 내 회사만큼 서울에서 멋진 노을을 볼 수 있는 곳도 없으니
여기서 2013년의 마지막 해를 감상하는 것도 의미있을 것 같다.
나의 2013년 어떠했나 생각해본다.
1월.
정말 캄캄하고 추웠던 1월 3일,4일,6일,7일.
중간에 포기하고도 싶었고, 잠도 못자고 쓰러질뻔도 했었고, 다시는 보기 싫었던 변호사시험을 봤다.
끝이 나고 후련할 줄 알았지만 우울한 시간들이 이어졌다.
시험결과가 나올때까지 아무것도 할 수 없으면서 마음만 졸이고 싶지 않았고,
충동적으로 비행기표를 끊고 미국서부와 밴쿠버를 돌아보는 여행을 했다.
많은 것이 달라지지는 않았지만 우울한 마음을 떨치고 좋은 추억을 만들기에 충분했던 것 같다.
2월.
3년간 지겹도록 다녔던 법학전문대학원을 졸업했다.
졸업사진을 찍고, 졸업가운을 입고, 학위기를 받고 나는 (어울리지 않지만) 법학석사가 되었다.
3월.
20년가까웠던 학생을 끝마치고 백수가 되었다.
영어학원을 다니기 시작했고, 토익을 쳤고, 못만났던 친구들을 실컷 만나며 내게 주어진 자유를 즐겼다.
그리고 그 중간중간 마음아프고 속상한 일들도 있었다.
4월.
합격발표일 (4월 26일)이 가까워질수록 마음이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충동적으로 여행을 떠나거나, 외박을 하거나 , 방안에 틀어박혀서 우는 날들이 있었지만
4월 26일, 다행히도 합격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고 그렇게, 변호사 자격을 취득했다.
5월.
자격증이 있는 백수가 되었다.그러나 아직은 행복한 백수였다.
낮에는 운동을 열심히 했고, 바이올린과 피아노 강습을 받았다.
저녁에는 통번역어학원을 다니면서 영어공부를 했고, 틈틈이 취직한 친구들을 만나며 밥을 얻어먹었다.
중간중간 변호사 연수를 들었고, 취직원서를 쓰고, 게중에는 면접도 보았다.
6월.
자격증 있는 백수 2개월차. 여전히 행복한 백수였지만,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맘에 드는 취직자리는 나오지 않았지만 다행히도 한 회사의 서류를 넘고, 인적성을 넘고, 1차 면접을 통과하여
실오라기 같은 희망을 잡고 있었다.
하지만 6월말쯤이 되니 막막하고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어느새 직장생활을 2-3개월씩하는 친구들을 보니 내가 초라해지기도 했다.
7월.
한 회사의 최종면접을 보았다. 임원진과 후보자 5명이 들어가서 면접을 보았고
NLL과 외교정책등, 예상못한 시사질문에 정신줄을 놓았는데, 기적처럼 합격문자를 받았다.
꿈같았고, 7월 22일 드디어 한 회사의 정규직원이 되었다.
한 회사의, 한 팀의 일원이 되어 긴장된 나날을 보냈다.
8월.
첫 월급을 받았다. 첫 월급의 선물로 내게 Personal Training 을 선물했다.
매일매일 출근하는게 즐거웠다. 콧노래를 불렀고 친구들에게 명함을 돌리고 감사 인사를 전했다.
9월.
가을이 되었다. 작은 일들을 맡아서 처리하기 시작했고
9월 중순에는 외부 로펌으로 파견되었다.
2학년때 인턴을 나갔던 로펌으로의 파견이라니,
미묘한 느낌이 들었지만 나쁘지 않았다.
10월.
한달 내내 외부로펌에서 강의를 듣고 과제를 하고 강평을 들었다.
하루에도 세 네명의 새로운 변호사님들을 만나고 친분을 쌓았다.
날씨는 쾌청했고, 행복한 나날들이었다.
그리고 6개월 의무연수가 끝났다.
11월.
본사로 복귀했다. 어색할 줄 알았지만, 팀원들과는 더욱 돈독해지고 친해지는 한 달이었다.
하지만 그 기쁨도 잠시, 팀장님이 이직하시는 바람에 싱숭생숭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우리들은 모두 아빠 잃은 슬픔에 한동안 허우적 거렸다.
12월.
드디어 변호사 등록비를 마련하여 등록을 하고 등록번호를 받았다.
정식 변호사가 된 것이다 . 여전히 회사원이지만서도.
즐거운 송년회가 이어졌고 틈틈이 퇴근길에 좋아하는 영화들을 보았다.
중간중간 마음쓸 일도 있었겠지만, 나쁘지 않은 12월이었다.
시험과, 졸업. 합격과 취직. 그 모든게 한번에 일어난 해였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다 거치게 되어서 기쁘다.
힘들었지만 그만큼 또 행복했다.
2014년도, 더도말고 덜도말고 지금처럼만 - 행복하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