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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8.26 성큼
  2. 2016.08.25 일상으로 돌아가지 않는 방법
  3. 2016.08.14 매일 이곳을,
  4. 2016.08.13 살기 좋은 곳 2
  5. 2016.08.12 아름다워서 슬픈.
  6. 2016.08.09 평범한 진리 2
  7. 2016.08.06 그 도시를 만나는 법 2
  8. 2016.08.04 Санкт-Петербург
  9. 2016.07.28 무인도 2
  10. 2016.07.27 나의 열등감과 마주하며 5

성큼

■ 삶/II. 삶 2016. 8. 26. 15:43



가을이 왔다.
성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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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여름휴가가 그러하였듯이 나는 2주간의 휴가를 꽉 채우고서
회사 복귀 전날에서야 귀국하였다.

2주동안 일상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삶을 살았는데,
한국에서늬 내가 어떤 사람이었고 어떤 업무를 해왔고 어떤 고민을 하고 있었는지조차 인지하지 못할만큼
낯선 곳의 정취와 그  안에서 솟구치는 나의 새로운 생각과 감정들에 흠뻑 젖어지냈는데,
2016년 8월 16일 화요일 아침 7시 40분 지하철 2호선을 타는 순간
나의 정신은 순식간에 원래 일상으로 복귀해버렸다.
그리고는 마치 그동안 아무일이 없었던 것처럼 마음은 무덤덤했다.

어릴 적엔 여행이 끝나고도 한동안 들뜬 마음으로 지난 여행의 추억 속에서 허우적 거리고
여행의 여운을 온 마음으로 느끼며 현실 적응의 버퍼링을 즐겼었는데
이제는 마치 지난 2주간의 휴가가 심지어 내게 일어난 일이 아니었던 것처럼 느껴진다.
이런 휴가 패턴에 익숙해져서일 수도 있고, 업무에 복귀하면 넋놓고 있을 여유가 없기 때문일수도 있고
이유야 어떠하든 나는 그렇게 되어버렸다.
작년엔 귀국한 날 밤, 싱숭생숭한 마음에 혼란스럽기라도 했는데
올해는 어쩜 이렇게 아무렇지 않을 수 있는건지.


그렇게 일주일동안 출근을 하고 토요일 하루도 덥다는 핑계로 밍기적거리다가
귀국한지 1주일이 되어서야 나는 내 방에 펼쳐놓았던 캐리어의 짐을 정리했다.

카메라와 여권, 어댑터 같은 여행용 물건들은 모두 제 자리에 돌아갔지만
일상에서 집어갔던 물건들은 아직도 제자리에 돌려놓지 못했다.
사무실 모니터 앞에 놓아두었던 손 거울, 회사 사무실에서 쓰다가 가져갔던 칫솔 같은 것들.
이 사소한 물건들은 아직도 여행 파우치에 담겨 내 방 한구석에 방치되어있다.
매일 사무실 책상에 앉으면서- 화장실 사물함을 열면서 - 내일은 가져와야겠다고 생각하지만
웬일인지 집에가면 꼭 챙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깜박해서도 아니고 생각은 나지만 웬지 그냥 그렇게 내버려두고 싶다.


사소하지만 매일 쓰던 물건들, 나의 일상의 작은 습관들이 조금씩 어긋난다.
사소한 만큼만 불편하다.
나는 아차!하고서 1초 정도 머뭇거린다. 

그러면서 깨닫는다.
맞다. 내가 여행을 갔었지.

머뭇거리는 1초 동안에, 1초만큼의 그 불편함에 나는 일상에서 한 발자국 떨어진다.
그 불편함이 일상을 일순간 낯설게 만든다.
내가 아직 완전히 일상으로 돌아오지 않았다는 미묘한 안도감이 든다.


아마도 나는 그 불편함이 익숙해질때까지 그 물건들을 챙겨오는 일에 게으름을 피울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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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이곳을,

■ 삶/II. 삶 2016. 8. 14. 23:01




매일 이 곳에 시나몬 번을 먹으러 오는 사람은 어떨까
매일 이 호수가를 따라 조깅을 하는 사람은 어떨까
매일 가족과 아기와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하는 사람은 어떨까
매일 이 벤치에 앉아 이 풍경을 바라보는 사람은 어떨까

이 자리가 내 자리가 아닌 것을 알지만
잠시 앉아보았다.
이 풍경이 이 햇살이 이 바람이 이 녹음이
내 마음 속에서라도 내 것이길 바라면서.

2016. 08. 13.
Helsinki, Fin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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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투명하리만큼 맑고 깨끗하다.
구름 한 점 없다.
하늘은 원래 이런 빛깔이었구나.
마치 하늘을 처음본 것처럼 감탄하며 비라본다.
자작나무의 동전잎같은 나뭇잎들이 바람결에 차르라니 흔들린다.
바람이 차다. 그런데 나의 청바지에 닿는 햇살이 따사롭다.
패딩잠바를 베개삼아 벤치에 누웠다.
타닥타닥 이 호숫가를 따라 조깅하는 사람들의 발딛음 소리와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들의 찬란한 소리가 또렷하게 들려온다.


앓던 병마저 나을 것 같이 깨끗하고 맑은 자연인데 나는 이유없이 머리가 아프다. 헛웃음이 나온다.
맑은 공기와 호수와 바다와 나무와 잔디와 질서와 친절.
사람이 살기 좋은 곳은 다 이유가 있다.

2016. 08. 12.
Helsinki, Fin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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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떼의 첫맛은 조금 쌉싸름하지만 따뜻한 스팀밀크에 섞여들어간 커피맛이 깊고 풍부하다.
한국을 떠나고 열흘만에 느껴보는 깊은 커피맛이다.

지금 내가 앉은 자리에서 보이는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서 조금은 슬픈 마음까지도 든다.
청량한 공기, 쾌청한 하늘, 파란 바다와 녹음짙은 나무와 잔디밭.
이런 풍경은 세상에 밴쿠버뿐인줄로만 알았는데 그 세상 반대편에 이런 곳이 또 있다. 이 곳도 너무 맑고 깨끗하고 아름답다.
사람의 마음을 한 순간에 사로잡아버린다.
오래도록 이 자리를 떠나고 싶지 않을만큼.

2016. 08. 11.
Helsinki, Fin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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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진리

■ 삶/II. 삶 2016. 8. 9. 21:58


마음먹은 목적지는 있지만 햇살 좋은 날의 뻬쩨르의 풍경에 마음을 홀려 정처없이 걷다가
피의 구세주 성당 뒤편의 작은 공원에 들어서서는
성당이 보이는 잔디밭 작은 수목 아래
시티투어버스 지도를 펴고 눌러앉고야 말았다. 

성당 근처는 관광객들로 붐비는데
한 발자국 떨어진 이 곳엔 햇살을 즐기는 가족과 연인
그리고 나같은 방랑객이 한가로이 오후의 햇살을 즐긴다.

바람이 구름을 밀어내고 또 밀어오는 이 변화무쌍한 하늘아래
도시는 빛에 잠겼다가 어둠에 가렸다가를 셀 수 없이 반복한다.

시원한 바람이 분다.
도시를 다 덮고도 남을  크고 두꺼운 구름이 무심히도 밀려온다.
그래도 괜찮다.
또 바람에 사라져갈 것을 아니까.

항상 밝을 수만은 없다는 것을, 또 항상 흐리지만도 않다는 것을,
그 모든 것이 아주 빠르게 또 아주 천천히 이뤄진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지만 또 곧잘 잊어버리는 평범한 인생의 진리를
이 도시가 나에게 온 하늘의 해와 구름과 바람과 빗방울로 알려준다.

2016. 08. 09.
Санкт-Петербур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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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도시의 새로운 모습과 마주하는 방법은 조금 이른 아침에 홀로 그 도시를 산책 (혹은 조깅)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집 안에서 각자 아침식사와 외출준비로 부산스러울 때 -
사람도 차도 매연도 보트도 없이 텅 비었지만 선선한 아침 공기와 잔잔한 물결만이 가득한 도시 그대로를 비로소 만나게 된다.

물론 그 와중에 부지런히 일어나 길을 쓸고 있는 청소부나 할 일없이 자리를 지키며 잠시 루즈한 모습을 보이는 경찰을 보는 것은
이 아침을 같이 하는 동지를 발견하는 또 다른 즐거움이랄까 :)

06. AUG. 2016.
Санкт Петербург,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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Санкт-Петербур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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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도

■ 삶/II. 삶 2016. 7. 28. 00:04



무인도에 가고 싶다.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
스치는 사람도 아무도 없는 곳.

그 곳에서 자식이란 이름의 옷을 벗고,
장녀란 이름의 옷도 벗고,
누나란 이름의 옷도 벗고,
대리란 이름의 옷도 벗고,
변호사란 이름의 옷도 벗고,
친구라는 이름의 옷도 벗고,
동기라는 이름의 옷도 벗고,
주민이란 이름의 옷도 벗고,
여자라는 이름의 옷고 벗고,
오롯이 나로서만 있고 싶다.
오로지 나를 위해서만, 나의 힘으로만
그렇게 존재하고 싶다.


잠깐만이라도 좋아.
이 세상에 나 혼자이고 싶다.
관계를 모두 내던지고 그저 나로서만 존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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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있다가 집에서 보자"

"응"

웃으며 손을 흔드는 엄마에게 인사하고 나니 문이 닫히고 지하철은 내 뒷편에서 캄캄한 터널속으로 빨려들어갔다.

눈에 미각신경이 있는 것도 아닐텐데 왜 눈에서 짠 느낌이 나는 걸까?

손가락으로 짭짤하고 멀건 물을 훔쳤다.

계단을 오르며 연신 눈가를 닦으며 생각했다.

 

- 이게 나의 열등감이야.

 

라고.

 

 

마음속에 열등감이라는 커다랗고 묵직한 돌덩이가 들어있는 것만 같다.

그 열등감과 마주하지 않으려고 눈을 감고 고개를 돌리고 피하려고 하는데도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일정한 간격으로 돌고 돌아 그 열등감과 마주한다. 괴롭다.

 

 

격증이 있는 직업, 안정적이고 편안한 직장.

남들이 보기엔 부족할 것 없는, 만족스러운 삶을 손에 쥐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이 빠져있다.

남들이 그렇게 좋은 직장도 없는데 왜 그러냐고 되물을 때마다

나조차도 이것이 객관적으로 좋은 것임을 알기에 나도 괴롭다.

 

 

 

회사 건물까지 들어왔는데도 눈에선 자꾸 짠 물이 흐른다.

남들이 다 좋아하고 부러워하는 세상 속으로, 괴로워하며 들어가는 내가 있다.

 

 

 

나는 왜 이런걸까.

왜 이렇게 정신적으로 예민한걸까.

이게 열등감인지 아닌지조차 못느끼는 그런 무딘 사람일 순 없는 걸까?

욕심이 많은 걸까?

이 정도 가졌으면 한 가지는 빠져도 되는게 아닐까?

한 가지를 갖기 위해서 이 모든 걸 버릴 수 있을까?

버릴 수 없었기 때문에 나는 그 한가지를 포기했던게 아닌가?

그렇다면 나는 더 이상 괴로워도 하지 않고 가진 것에 만족하고 이것을 누리면 되는데

어째서 나는 이렇게 종종 괴로워하는 것인가.

결국 진심으로 그 한 가지를 포기하지 못했기 때문에 괴로운 것이 아닐까.

 

 

 

열등감은 갖지 못한 것으로부터 나온다.

내가 가지고 싶은 것을 가지고 있으면, 그 나머지 것들은 내가 가지고 있든 없든 아무런 소용이 없다.

남들이 그것을 나보다 더 많이갖고 있다 한들 그것 때문에 부럽지도, 배가 아프지도, 괴롭지도 않다.

나에겐 내가 갖고 싶은 그것이 있으니.

 

 

 

열등감을 느끼지 않는 방법은 2가지다.

끝내 갖고 싶은 것을 갖고서 열등감을 해소하는 것과

열등감을 유발시키는 상황을 피해서 최대한 열등감을 느끼지 않으며 사는 것.

 

 

지금까지는 두번째 방법으로 나의 열등감을 애써 모른 척, 아니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짐짓 그 눈을 돌려 부차적인 만족감으로 대리만족을 느끼면서 지내왔다.

하지만 점점 이 나라에선 두번째 방법이 소용없어지는 순간이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다.

이 환경에서 도망가고 싶지만 도망갈 수가 없다.

영원히 나는 스스로를 비교하고 씁쓸해하고 배아파하며 살게 될 지도 모른다.

그것만한 감옥이 또 있을까.

나는 차라리 그렇다면 더 멀리 도망가버리고 싶다.

첫 번째 방법으로 해결할 수 없다면 비교 대상이 존재하지 않는 그 더 큰 곳으로 도망가버리고 싶다.

그러면 나는 적당히 행복하게 살 수 있을텐데.

 

 

 

이 마음은 엄마 아빠조차 헤아려 줄 수 없다.

엄마 아빠는 단 한 순간도 나였던 적이 없다.

30년이란 시간과 환경이 쌓여 만들어진 나일 수가 없다.

왜 남들이 갖고 싶어하는 것들을 다 가지고 누리면서도 괴로워하는지

엄마 아빠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다.

왜냐면 엄마 아빠는, 당신들이 딸에게 바랐던 것들을 - 바로 그것을 이룬 딸을 가졌기 때문에

그들은 가지고 싶은 것을 가진, 행복한 부모가 되었기 때문이다.

아마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을 버릴 때 나는 행복하지만 나의 엄마 아빠는 불행해질 것이다.

엄마 아빠와 내가 바라는 것이 본질 적으로 같은 방향이 아니었다.

그래서 엄마 아빠는 행복하고 나는 괴롭다.

괴로운 나는 이 괴로운 마음을 엄마 아빠에게 말할 수도 없고, 말을 해도 엄마 아빠는 이것을 헤아려줄 수가 없다

그리고 엄마 아빠에게는 나 말고도 한 명의 자식이 더 있다.

그들에게는 그들의 행복, 나의 행복 뿐만 아니라 남은 한 명의 행복도 중요하기 때문에

나와는 본질적으로 입장이 다르다.

 

 

 

이 열등감의 뿌리는 어디서부터왔을까.

나는 내게 묻지만 나는 그 정답을 아주 잘 알고 있다.

아주 오래되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또 짧지만도 않은 시간이었다.

그것은 아주 작은 돌멩이로 시작해서 지금은 커다라고 묵직한 돌이 되었다.

  

 

나는 이 열등감에서 해방될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을 해소할 것인가 도망쳐 피할 것인가.

아니면 득도의 마음으로 열등감과 함께 살아갈 것인가.

 

 

나를 울게 하는 유일한 존재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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