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를 냈다.

사실 절실하게 쉬고 싶은 것은 지난 주였는데, 어쩌다 보니 이번 주에 쉬게 되었다.

휴가는 냈는데, 어떤 특별한 계획이 있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하루 종일 집에서 밍기적 거리고 싶지는 않고.

최근, 라울 뒤피 전시를 볼까 했다가 전시기간이 종료되는 바람에 놓친 기억이 있어

다른 괜찮은 전시회가 있나 싶어 검색했다가, 환기미술관에서 김환기 탄생 110주년을 기념해서

점점화(點點畵) 전시를 며칠 전부터 시작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마침 김환기 화백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화가 중 한 명이기도 해서 (지금 우리집 거실에 걸린 작품이 김환기 화백의 1950년대 작품이다) 

망설임 없이 가 보기로 했다. 

 

사실, 그 동안 휴가는 뚜렷한 목적이 있을 때만 내기도 했고, 또 휴가든 휴일이든 시간이 나면 대개 도리랑 시간을 보내거나

아니면 짬내어 부모님과 시간을 보내느라 최근 몇년 간 오롯이 혼자만의 긴 하루의 시간을 가져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결혼을 하고 나이가 들면서, 환경도 변하고  삶의 우선 순위가 바뀌어서 나 혼자만의 시간은 항상 다른 일에 밀려왔던 것이다.

오늘도, 시간이 난 김에 엄마랑 식사를 할까 아니면 엄마랑 전시회를 같이 갈까도 잠깐씩 충동이 일었는데 

오늘만큼은 나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누군가와 교류하지 않고, 내 마음 속 이야기를 들으면서 

바닥나버린 에너지를 차곡차곡 채우고 싶었다. 

 

휴가인데, 출근할 때 보다 30분은 일찍 일어나 회사 근처에 새로 등록한 골프 연습장에 가서

아침 9시부터 골프레슨을 받고 집에 돌아와 간단히 점심을 차려 먹었다. 

원래 계획은 점심을 먹자마자, 환기미술관에 갔다가 어디 풍경이 좋은 카페에 가서 블로그를 쓰는 것이었는데

환한 대낮에 집에 혼자 있는 느낌이 나쁘지 않아 순서를 바꿔 집에서 (아직 공개하지 않은) 블로그를 한 편 썼다. 

특별한 일을 하지 않는데도, 자꾸만 콧노래가 나고 노래를 흥얼거렸다. 

모처럼만에 사람들로부터 방해받지 않는 시간이 주어졌다는 사실에 신이 났었나보다. 

아니면, 내 시간을 내가 주체적으로 쓰다는 느낌이 행복했던 것 같기도 하다.

사회가 정해준 출근시간에 맞춰, 팀장님이 배정해주는 일을, 현업이 요구하는 시간 안에 해내야 하는 삶을 살다가

나의 바람과 필요에 따라, (남편과 조율하는 일도 없이) 내 시간을 어떻게 쓸지 결정할 수 있어서.

 

그렇게 오랜만에 노트북을 열어 나의 세계에 빠져있다가 오후 3시쯤 환기 미술관으로 향했다. 

버스를 한 번 갈아타고, 내려서 부암동 골목을 걸어 올라갔는데 

평소 올 기회가 없었던 낯선 동네, 낯선 풍경, 낯선 가게들.

도리와 차를 타고 다닐 때는 빠르게 지나가버려 잘 보이지 않던 풍경들이, 

오늘따라 왜이렇게 하나하나 눈에 들어오던지. 

호기심을 몽땅 잃어버린 줄 알았는데,

어디를 가더라도 항상 도리와 함께 다니며 도리와 교감하고 대화하다보니

오히려 그만큼 세상에 눈을 돌리기 어려워서였을까?

나혼자 오롯이, 어떤 생각이나 감정도 뱉어내지 않고 내 안에 머물게 두며 구경하고 또 걷는 시간이 참 좋았다.

 

 

그렇게 환기미술관에 도착했다. 

언덕길을 걸어오른 숨을 잠시 고르고, 점점화의 전시가 열리고 있는 본관에 들어갔는데

때마침 도슨트 프로그램이 막 시작하고 있어 운좋게 해설과 함께 김환기 화백의 작품들을 감상을 시작했다.

 

이번 점점화는, 1970년부터 1974년까지 김환기 화백의 점화가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지 그 흐름을 따라가보는 전시이다. 

작품설명은 1층에서부터 시작하여 3층으로 올라갔다가 2층, 그리고 다시 1층으로 내려오며 진행되었다.

김환기, ‘무제’. 코튼에 오일, 86×61cm. 1967. 사진=케이옥션

 

김환기 화백의 점화는 그가 뉴욕에 머물던 1960년대 중후반부터 등장하기 시작한다. 

처음에 그는,  뉴욕 타임즈 신문지 등에 유화물감으로 점화를 그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때의 작품들을 보면, 점 하나하나가 또렷하고 그 존재감과 의미를 담고 있는 것 처럼 보인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232x172cm oil on cotton 1970)

 

1970년즈음이 되면 김환기 화백의 유명한 점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와 같은 작품이 등장한다.

이때만 하더라도, 그의 점화는 동그란 점과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하얀색 사각형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구성이 단순한 평면의 느낌을 준다. 물론, 점의 색과 농도를 달리해서 높낮이가 있는 것처럼도 보이지만 말이다. 

 

1971년도 작품에서부터는 점화의 평면구성에 변주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점으로 만들어진 가로선의 나열 구성에서, 화면을 사선으로 분할하기도 하고, 동심원 형태로 뻗어나가기도 하고. 

그리고 초반 작품에서는 점 하나하나가 또렷한 느낌이었다면, 시간이 지날 수록 

점의 밀도가 높아지고 점 하나하나의 개성은 약해지면서, 

점화의 점들이, 점보다는 선으로, 선보다는 면으로 다가온다는 느낌을 받았다. 

무제 14-XII-71 #217, 1971, 출처 환기미술관
무제 14-Ⅲ-72 #223, 1972, 출처, 환기미술관

 

그러다가 1973년이 되면, 점화에 또 다른 변화가 나타는데 그 동안 화면에 빈틈을 주지 않고 구성에 변화를 주었다면

1973년도 작품부터는 구성의 경계가 되는 지점을 의도적으로 비워놓아 그 변화가 더 또렷하게 느껴진다. 

그동안 미디어에 많이 노출된 작품들이 주로 1971년에서부터 1972년 작품들이었는지 보자마자 친숙한 느낌이 들었는데

1973년이후의 작품부터는 처음보는 작품들인 것 같았다. 

1973년 이후의 작품들은 많이 알려진 작품(a.k.a. 경매에서 비싼 가격에 낙찰된 작품)들은 아니었지만

오히려 내 눈에 익은 작품들이 아니라서, 신선하고 새로워서 좋았다. 

그 중 아래 그림은, (작가가 의도한 바를 알 수 없으나) 나뉘어진 모습이 구릉같기도 하고 

김환기 화백이 뉴욕에서 우리나라의 산세를 생각하며 그렸던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16-IX-73, #318, 1973, 출처 환기미술관

 

 

그리고 마지막으로, (김환기 화백은 1974년 7월에 수술을 받고서 돌아가셨다) 1974년 작품에는

또 다른 변주가 나타는데, 화면을 분할하는 하얀색 틈 가운데 작은 동그라미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몸이 좋지 않아서였을까? 그 동안의 작품들은 굉장히 컬러풀하고 비비드한데 1974년 작품들의 색감은

굉장히 어둡다. 아래 작품은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에 완성한 작품이라고 한다.

 

7-VII-74, 1974, 출처 환기 미술관

 

이렇게 약 30분간의 도슨트 설명이 끝나고 나서 이번 점점화의 포스터를 보았더니,

(단순히 색감을 고려한 배열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번 전시에서 볼 수 있는 작품을 시간 순서대로 배열한 것이었다!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시간의 순서대로 나열된 김환기 화백의 작품들

 

도슨트 프로그램이 끝나고 다시 한 번 찬찬히 작품들을 혼자서 감상해보았다.

평일이면서 관람 마감시간에 임박해서였을까 전시관 내부는 사람이 거의 없어 고요했다.

마치 내가 이 전시관을 대관해서 혼자 관람하는 것 마냥.

사람이 없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환기 미술관이 사진 촬영을 금지하고 있는데, 

(SNS의 시대에 인증샷을 남기지 못하는 아쉬움도 있었지만) 이 아름다운 작품들에 온전히 집중해서 관람할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지난 여름, 파리에 놀러갔을 때 모네의 수련 연작을 보러 오랑주리 미술관에 갔었는데, 

그림을 감상하는 사람보다, 그 그림앞에서 인증샷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훨씬 많았다.

솔직히 말하면 다 인증샷만 찍으러 온 것 같았고, 틱톡인지 릴스인지 영상을 찍겠다고 그림앞을 수십번 걷는 사람도 있었다. 

그건 그것대로 싫었는데, 또 나도 괜히 인증샷 한 장 남겨야 한다고 부화뇌동해서

인증샷 찍을 틈을 찾은라고 그토록 보고 싶었던 모네의 연작을 집중해서 보지 못하고 마음만 조급했던 기억이 있다. 

 

어쨌든, 운좋게 도슨트 프로그램으로 점점화 전시에 대한 설명까지 듣게 되어서 더 흥미롭고 알찬 관람이었다.

김환기 화백의 그림을 좋아하기도 하고 그림 자체가 주는 영감이 있어서 해설이 없어도 충분히 좋았겠지만

해설 덕분에 점화를 실험하던 시절부터 점화를 완성하고 이를 변주해나가기까지의 

그 시간과 변화의 관점에서 작품들을 이해할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그리고 오늘, 하루 혼자 있는 시간도 좋았다.

남들이 다 일하는 시간에 여유롭게 골프 레슨을 받고, 

환한 낮에 버스를 타고서 차창밖으로 잘 모르는 서울 동네를 구경하고, 

한적한 부암동의 골목을 두리번 거리며 걷고

좋아하는 화가의 작품을 보고 느꼈던 시간. 

정말이지, 나를 채우는 시간이었다. 충만하고 행복했다. 

(충동적으로 미술관 샵에서 김환기 화백의 뉴욕시절에 대한 책도 사들고 나왔다.)

 

환기 미술관에서 나와 버스를 타고 다시 돌아가는데,

문득 이렇게 아직까지 좋아하는게 남아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매일 똑같은 루틴의 삶을 살고 있어서인지, 아니면 현재의 삶이 안정적이고 행복해서인지

어느 순간부터 열렬히 좋아하는게 없어져버렸다는 것을 알았다.

어느 한 순간에 깨달은 것은 아니고,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깨달았고 

그것을 부정하고 싶었지만 어느 순간에는 그것을 인정해버리고 있었던 나였다.

그런데 오늘, 아주 오랜만에 내가 김환기 화백의 작품을 얼마나 좋아하는지를 떠올릴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정말 나를 채우고 힐링하고 사랑하는, 좋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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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말 7월 초에 걸쳐 조금 이른 여름휴가를 다녀온 뒤에
(드디어) 코로나에 걸려 거진 한 달 가까이를 맥아리 없이 지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새 8월도 일주일 밖에 남지 않았네.

별 일이 있었다면 있었고, 별 일이 없었다면 없었던 여름.
11년째 다니는 회사,
5년째 살고 있는 동네,
4년째에 진입한 결혼생활. (연애부터 치면 6년째)
이제 이 모든 게 내 속에서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았다.

같은 일, 같은 장소, 같은 사람의 싸이클 속에서 돌아가는 매일매일이 때론 편안하기도 하고 때론 지루하기도 한데,
아무런 인과관계가 없지만 문득 중요한 것은, 사랑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 내 삶에 녹아들어 이제는 내 일부분이 되어버릴 정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변함없는 애정, 공감, 지지, 응원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담아내는 사랑.

당연한 이야기지만, 인생이 항상 순탄할 수만은 없다. 크든 작든  그 어려운 시간들을 잘 흘려보내야 할텐데,
결국 중요한 것은 그 순간 순간에 서로를 사랑하고 감사하고 애정하며 사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우리가 처음 만난 때로부터 어느새 6년, 그리고 가족이 된지 4년.
결코 짧지 않은 기간동안에도 크고 작은 어려운 문제들이 있었지만, 그 파고를 순탄히 잘 넘어온 것은 도리의 한결같은 애정이 가장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이건 하루하루의 다정함과는 다른 이야기이다.
그의 사랑과 애정이 한결같음을, 그는 긴 시간을 통해 보여주었다.

사랑하며 사는 것.
똑같은 하루, 지겨운 하루지만
그 하루하루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것.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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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어지는 낮

■ 삶/IV. 삶 2023. 6. 3. 22:03

 

어느 덧 6월.

하루하루 해가 길어지는게 또렷하게 느껴진다.

오후 6시가 되어도, 어느 봄 가을의 오후 4시처럼 해가 조금 기울어졌을 뿐.

 

바쁜 봄을 보냈다.

그런데 또 막상 뒤돌아보니 무얼하느라 그리 바빴는지 막상 기억에 또렷이 남는게 없네.

회사 일을 생각하면 3월에 터진 큰 사건의 담당자가 되어 정신이 없었고, 이제 Phase 1을 마무리한다.

3월까지 골프레슨을 모두 끝내고서는 3~4주에 한 번씩 라운딩을 나갔다. 

그 중에서도 5월 중순에 회사 임원과 나가는 라운딩이 있어 한 동안 부담을 느끼면서 연습을 숙제처럼 했었다.

퇴근하고 와서 저녁먹고 골프연습하고 나면 자야하는 시간이라, 사실상 퇴근 후에 골프 말고는 다른 걸 할 수가 없었는데

가끔은 너무 피곤하기도 하고, 다른 걸 할 시간이 안나다보니 은근히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다.

(일단, 이런 상황을 차치하고서라도 골프는 이래도 저래도 스트레스 받는 것이 디폴트이다ㅠ)

그러다가 또 5월에는 회사에서 지원해주는 전화영어 수업을 시작했다.

사실 입사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때에 전화영어를 시도했다가, 전화올 시간만 되면 스트레스 받아서 관뒀는데

혼자서 영어 공부를 해보겠다고 원서도 읽고 어쩌고 하다가, 위의 일들 (일, 골프, 유튜브 만들기)에

자꾸 우선순위가 밀려서 반 강제적으로라도 해야겠다 싶어서 시작해봤다.

초반에는 정해진 시간에 20분을 꽉 채워서 떠들어야 한다는 것 부터가 스트레스였는데

한달정도 하고 나니 조금 그 라이프스타일 패턴에는 적응을 한 것 같다.

일단 목표는, 올해말까지 한 달도 거르지 않고 쭈욱 하는 것이다. 

전화영어를 한다고 해서 영어실력이 갑자기 늘어나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주 3일 20분을 영어로 떠들기위해서 나름 준비를 하는데 

그것만으로도 아무것도 안하고 있는 것보다는 훨씬 나을 것이라고 생각이 된다.

과연 올해를 마무리할 때, 나 8개월 간 전화영어를 꾸준히 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의심하지 말고 꼭 해내자)

 

이런 일상생활의 주절거림을 쓰려고 한 건 아닌데..

일상은 큰 변화가 없지만 

나이가 들어서일까, 결혼을 해서일까

내 마음에는 많은 변화가 찾아온 것 같다.

과거의 나는, (그러니까 20대중반부터 30대 초반까지)

오늘의 나보다 과거의 나를 그리워하고- 일상의 나보다 꿈 속의 나를 좇았는데

지금의 나는, 지금의 나를 가장 편안하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과거도, 미래도 아닌 바로 오늘을 알차게 잘 보내고 싶어졌다.

어떻게 생각하면 막연한 꿈? 혹은 소망?이 없어진 것 같기도 했는데

또 다르게 생각하면 그 말은 지금 하루하루에 큰 불만 없이 행복하다는 의미이기도 한 것 같다.

그래서인지 요즘 내 관심사는, 미지의 곳을 탐험하고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내게 주어진 하루하루를 알차고 뿌듯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아, 물론 이번 달에 여름휴가가 있어 여행일정을 짜고 있기는 하지마 예전만큼 그렇게 여행에 절박하지 않다는 뜻이다)

이것이 어찌보면 행복일 수도 있고, 달리보면 안주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내 인생에서, 일, 가정, 건강, 우정 이런 것들의 조화가 항상 좋았던 것은 아니므로

어떤 새로운 변화를 추구하거나 또는 변화를 맞딱드리기 전에

지금 이 순간 스스로 느끼기에 만족스러운 이 조화로움을 잘 간직하며 좋은 에너지들을 많이 쌓아두고 싶다.

 

곧 하지가 오고, 덥고 습한 여름을 보내고 나면 

금방 가을이 오고 또 겨울이 오겠지. 

그 때까지,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알차게, 건강하고 행복하게 -

그렇게 잘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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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동안 열심히 블로그를 썼는데, 개설한지 1년 된 유튜브에 신경쓰느라 블로그에 너무 손을 놓았네.

지난 1년간 상당한 시간을 골프레슨/연습과 또 유튜브 영상만들기에 시간을 쓴 것도 사실이나,

조금 더 생각해보자면, 인스타그램 스토리와 같이 한두줄 쓰는 포맷에 익숙해지다보니

그 포맷에 맞추어 생각의 아웃풋을 내게 되고,

또 가끔은 길게 쓰고 싶은 얘기가 있다가도 각잡고 쓰는게 귀찮기도 하고 완성도 있게 쓰지 못할 것 같아

어영부영 포기해버리고 마는게 다반사였다.  

그런데 그러다보니, 나의 소중한 삶의 순간들도 인스타그램의 스토리와 함께 휘발되어버리고

나중에 추억하고 반추해보려고 해도 더 이상 어딘가에 정리되어 기록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았다. 

영상으로 남기는 기록도 좋지만, 나를 위해 기록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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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이 글은 2023년의 자하연 벚꽃 사진과 함께한 기념 사진에 대한 글이다. 

 

도리와 처음 만났던 2018년 4월, 대학원에 있던 도리에게 서프라이즈로 놀러가서 사진을 찍은 이후로

매년 빠지지 않고 자하연에 벚꽃이 피는 계절이 오면, 도리와 함께 가서 심플한 기념 사진을 찍곤 했다.

올해가 벌써 6년 째라니. 만으로 누군가와 5년이나 함께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심지어 2018년, 2019년도의 추억들은 이제 제법 오래된 추억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그동안 자하연이 서울의 다른 곳보다도 벚꽃이 일주일 가량 늦게 피었기 때문에

다음 주말즈음 필 거라고 마음을 놓고 있었는데, 친구의 인스타그램에서 벚꽃이 활짝 핀 사진을 보았다. 

주말은 이미 다 지나갔고, 화요일부터는 비가 온다던데. 월요일을 놓치면 올해 벚꽃사진은 포기해야할 것 같았다.

도대체 자하연 벚꽃사진이 뭐라고.

사실 특별히 기념할 만한 장소도 아니거니와, 특별히 기념할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아닌데

그저, 내가 매년 찍기로 혼자 다짐해왔을 뿐인데 이제 그만 찍어도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잠시 해보았다.

새벽에 일어나 가장 사람이 많이 몰리는 월요일 아침에, 서울대까지 들렀다가 출근하는 무리는 하고 싶지 않았으므로. 

 

그렇지만, 그것이 무리인 줄을 알면서도 나는 도리를 설득해 오늘 아침

부랴부랴 서울대에 가서 이제 막 관악산을 넘어 떠오르는 태양을 등지고 자하연의 만개한 벚꽃사진을 찍었다.

왜 자하연의 벚꽃사진에 유난이냐고 스스로에게 물어보았는데 나는 두 가지 답을 했다.

첫째, 나는 결혼생활이나 결혼식에 큰 로망은 없지만 (없는데 손태진님 부른거 실화?) 

같은 장소에서 같은 사람과 한 해, 두 해 기념 사진을 찍어가고 싶은 소망이 있었다. 

두번째, 처음 만날 땐 함께 겪는 계절들 모두가 낭만적이었지만, 이제 매일 같은 공간에서 살다보니 

자연스럽게 많은 것들이 일상이 되어버렸다. 사실 이제는 챙기는 것이 더 귀찮기도 하고.

하지만 자하연에서의 벚꽃 사진 찍기로 인해서 내 안의 귀찮음을 떨치고 

우리가 처음 만났던 봄처럼 사소한 계절의 변화도 특별하게 느끼는 순간을 상기하고 싶어서. 

 

어쨌든, 그런 이유로 아침 7시 40분 - 오늘따라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교정을 가로질러 

빠르게 휘휘 벚꽃 구경도 하고 사진도 찍었다. 

올해로 6번째 사진을 찍었으니, 정말 피치못할 사정이 아니고서야 10년은 채울 수 있겠지? :)

 

👇2022년도 자하연 벚꽃 사진 보러 가기👇

https://sollos.tistory.com/1260

 

2022 자하연 (다 진) 벚꽃 사진

도리랑 처음 만난 2018년도부터 연례행사처럼 (내가 하자고 해서) 하고 있는 자하연 벚꽃사진 찍기 (❁´◡`❁) 올해 벚꽃이 조금 늦게 피어서 평소보다 한 주 늦게 갔더니 지난 수요일 비바람 칠

sollos.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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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일곱

■ 삶/IV. 삶 2023. 3. 20. 16:48


나는 이제 안다.

나는 영원히 젊지도, 싱그럽지도, 예쁘지도 않다는 것을.

영원히 젊고 싱그럽고 예쁠 것이라 믿은 적은 없지만,

젊고 싱그럽고 예뻤던 시절의 내가 그 순간들의 내 모습을 당연하게 여겼다는 것을,

그 시절을 다 흘려보내고 나서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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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ndre Brazilier / AdAGP - paris, SACK-Seoul,2022

 

지난 연말, 이사갈 집을 구해야 한다는 현실에 부딪혀 연말다운 마음의 여유도 없이 바쁘게 지내다가

집 계약을 마치고나서야 마음의 여유가 생기고, 하루하루 사는 일에 미뤄두었던 문화생활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미술 작품 전시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검색해보던 찰나에

위 포스터에 실린 그림, 앙드레 브라질리에의 <장미빛 하늘로 향하는 요트 경기> 작품을 보고 너무 마음에 들어서

(주말이라 사람이 많을까 걱정도 되었지만) 바로 챙겨 예술의 전당에 다녀왔다. 

 

주말인데도 불구하고 마침 도슨트 해설이 있어서 시간에 맞춰갔는데, 

어림잡아도 한 7~80명이 다같이 50여분간 도슨트 해설을 함께 듣게 되었다. 

앙드레 브라질리에라는 작가의 이름은 무척이나 생소했지만

그의 그림은 마치 오래 알아온 작가의 작품처럼 따뜻하고 편안했는데

도슨트의 해설에 따르면, 자신의 작품을 보고 사람들이 불편하지 않고 편안하고 행복하길 바라는 작가의 신념이 있어서란다. 

 

작가의 초창기 작품부터 최근작까지 120여점의 유화작품들이 주제에 따라 전시되어 있었는데

이 작품들을 관람한 계절이 겨울이어서였을까?

작가가 가장 사랑하는 색이 파란색이어서 푸른 색 느낌의 작품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과 눈길을 사로 잡는 것은 분홍빛 하늘과 노란색 은행나무를 그린 풍경들이었다. 

 

ⓒ Andre Brazilier / AdAGP - paris, SACK-Seoul,2022

 

어떤 순간이 또렷이 떠오르는 건 아니지만, 

나도 언젠가 주황빛이 아닌 분홍빛으로 물드는 노을을 바라보며 그 아름다운 풍경에 넋을 잃었던 순간이 있지 않았던가.

작가가 그린 분홍빛 노을이 담긴 작품들을 보며, 어떤 과거에 느꼈던 감동의 마음들을 끄집어 내보았다. 

분홍빛 노을을 그린 작품들을 보면서, 2019년 야수파 전시에서 보았던 작품 중에 내가 제일 좋아했던 작품, 

앙드레 드랭의 <채링 크로스 다리> 를 많이 떠올렸는데, 나중에 작가에 대한 설명을 보니 실제로 앙드레 드랭과도 교류했다고. (내 미술 안목....)

https://sollos.tistory.com/1187

 

앙드레 드랭의 채링크로스 다리

지지난 주말에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리고 있는 에 다녀왔다. 미술전시를 열심히 찾아다니는 편은 아닌데, 최근에 을 읽고서 동기 부여를 받아 얼리버드로 덜컥 예매해놓고는 얼리버드 유효기간

sollos.tistory.com

 

 

ⓒ Andre Brazilier / AdAGP - paris, SACK-Seoul,2022

 

정확히 위 작품은 아니지만, 암스테르담의 가을을 그린 작품들도 너무 좋았다.

노란색 가을에 흠뻑 젖어드는 듯한 풍부하고 황홀한 느낌. 

나도 이런 순간들을 아름답다고 느끼고, 또 아름다워서 좋아한다. 

계절이 변하며 색이 바뀌는 순간들, 내내 초록이기만 했던 잎들이 다양한 색으로 물들어 풍성하게 흔들릴 때의

그 아름다운 순간들, 아름다워서 행복하다고 느껴지는 순간들.

작가가 생각하는 아름다움과 행복의 순간들에 나는 힘껏 공감했다. 

 

정우철 도슨트가 말하길, 앙드레 브라질리에는 시대적으로는 전쟁을 겪었고 개인적으로는 자식을 잃는 아픔을 겪었지만

그의 그림 인생 80년동안 따뜻하고 행복한 순간들을 주로 그렸는데,

그림을 통해 삶의 아름다움을 전달하고자 하는 작가의 신념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래서였을까? 

앙드레 브라질리에라는 작가에 대한 도슨트의 해설을 들으며, 작품을 감상하는 동안

마치, 그림들이, 그리고 아흔넷의 작가가 내게

삶이 결코 만만하지 않지만 그래도 삶은 행복하다고, 너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응원과 격려를 건네주는 것 같았다. 

내가 영화보고는 울어도, 그림보고 운 적은 없는데 

도슨트의 해설이 끝나는 지점에서는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남들 볼까봐 눈물을 훔쳤다. 

 

ⓒ Andre Brazilier / AdAGP - paris, SACK-Seoul,2022

 

50여분간의 도슨트 해설이 끝나고, 찬찬히 그리고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작가의 작품들을 들여다보았다.

그러다 전시관 한 켠에 마련된 영상물을 보게되었는데 그 영상물에서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자신이 회화를 그리는 이유는) 이 감정들을 포착하고 나누고 당신을 살아가게 하려 노력하는 것입니다"




작가는 단순히 풍경이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들을 그림으로 남기면서 이 그림을 보는 관객들에게, 

치열한 삶의 전투에서 지지 않고 살아가게 하려고, 살아가는데 필요한 힘과 의지를 주려고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역시 행복하길 바라면서

많은 작품들을 남겨온 것이었고, 그런 작가의 의도가 담긴 그림에 마음이 울렸던 사람이 바로 나였다. 

 

서른 중반. 동갑내기 남편과 종종 하는 얘기가 사는게 힘들다는 것이다. 

힘들게 산다는 것이 아니라, 산다는 것 자체가 힘들다는 얘기다. 

세상살이, 돈 벌이, 회사생활, 뭐 하나 쉬운 게 없다. 

지난 연말 집을 구하러 다니면서도 수십 번 생각했다.

뭐든지 엄마가 다 해주던 시절이 제일  행복한 시절이었다고.

어른으로 산다는게 너무 무겁고 힘들다고.

 

전쟁도 겪고 아이도 잃은 아흔넷의 일면식도 없는 작가가

내가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전해주는 따뜻한 격려와 응원에

서른 중반의 허무주의자, 나는 자꾸만 눈물이 났다. 

 

 

 

 

 

 

 

 

 

 

 

Posted by honey,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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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세상.
알아.
그래도 힘든 면 보다
좋은 면을 보고 살자, 우리.
:)




***







Posted by honey,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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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말에 세비야에서 찍은 스냅. 

노을 지는 시간으로 미리 예약했지만 

하필 그 즈음 에스파냐 광장에서 한 달간 공연이 열리면서

오후부터는 일반인 출입을 막아 오전으로 시간을 옮겨서 촬영했다. 

 

화장도 못하고 머리도 못하고 옷도 별로 없는 나라서

스냅사진 찍을 때마다 그게 가장 큰 장벽이지만 

그래도 찍고나면 

그래, 찍기 잘했다. 

다음 번 스냅사진을 찍을 아름다운 여행지는 어디일지 :P

 

 

 

내가 생각하는 베스트 샷. 적당히 역동적이고 생동감 넘친다.

 

오만 이쁜 척을 다 했던.....단독샷 ㅋ_ㅋ

 

제일 좋아하는 구도인데 빛이 없어서 좀 아쉬운 사진

 

 

이 회랑에서도 이렇게 저렇게 많이 걸었다.

 

 

어휴, 작가님 덕에 뽀뽀를 얼마나 했는지(?) 뒤에 배경 보세요 배경

 

 

단독사진 ㅎ_ㅎ

 

Posted by honey,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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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자신과 남들을 비교하지 않고, 또 어쩔 수 없이 비교된다고 하더라도
내가 부족하게 느껴지지 않는 방법은 하나다.


내가 만족하는 삶.

그러려면 내가 좋아하는 내가 되어야 한다.
내가 좋아하는 내 모습이 이미 되었거나, 적어도 그런 내 모습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길 위에 있다면,
남이 무엇을 하든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든지 부럽지 않고
남이 뭘하고 사는지 관심도 생기지 않는다.
나아가 남들과의 비교 자체가 의미가 없어져버린다.
왜? 나 스스로가 좋고 내 삶이 좋은데 남이 무슨 상관이겠어.


그러니까,
나에게 집중하고 나에게 몰입하고 나를 가꾸어나가는데 노력을 기울여서
내가 좋아하는 모습의 내가 되어버리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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