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이치

■ 삶/IV. 삶 2024. 1. 23. 11:35


작년에 우리 회사 사람들과 Quartet을 결성해서 크리스마스 캐롤을 연주한 것을 기점으로,
바이올린을 다시 배워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바이올린 대신 첼로를 새로 배워볼까 진지하게 고민했지만
캐롤연습을 하면서 오히려 바이올린의 높은 E현 소리가 좋아져서 결국 바이올린을 다시 하기로)


그래서 작년 연말에 숨고랑 바친기 카페를 통해서 레슨 선생님을 열심히 찾았는데
의외로 조건이 잘 맞는 선생님을 고르기가 어려웠다.
거기다가 숨고로 찾은 12살이나 어렸던 바이올린 전공생이 시범 레슨을 잡아 두고 두 번이나 당일에 펑크를 냈다.
심지어, 한 번 미루고 다시 잡은 레슨날에는
레슨 시작 2분 전에 연락이 와서는 지금 일어났다고.
서울대 출신이라서 실력과 성실함은 기본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완전 뒷통수를 맞았다.


이 친구 때문에 바이올린 배우는 걸 때려칠 뻔 하다가,
결국 우리 Quartet에서 오보에를 하는 팀장님 딸들이 바이올린을 배우고 있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냥 그 분을 소개받아서 2024년 부터 드디어 레슨을 시작하게 됐다.

번쩍번쩍 닦은 바이올린


초등학교 3학년 때 처음 바이올린을 시작해서,
아마도 중학교 2학년때까지 바이올린을 했던 것 같은데
그 때도 풀 타임으로 바이올린을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래저래 이십여년 만에 다시 시작한 바이올린.
오래 쉬었던 만큼 레벨을 많이 낮춰서 시작할 줄 알았는데
나에게 스케일, 에튀드, 소품곡 다 시켜본 선생님은 (내 예상보다) 상당히 높은 수준에서 수업을 시작하셨다.
그 결과 지금 많이 지지직거리고 버벅거리고 있음 ^_^.....

진도 카드 쿄쿄쿄


아마, 악기를 배워본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비슷한 기억이 있을텐데
어릴 때 악기를 배우면 사과에 빗금을 긋거나 색을 칠하거나, 그런식으로 연습양을 체크했었다.
나는 그 때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모두 병행하고 있었는데
악기도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배우는 책의 권 수가 늘어나고 연습해야 하는 곡의 길이도 비례해서 길어진다.
그 모든 것을 하루에 5번씩 연습하려면, 솔직히 하교하고와서 저녁먹을 때까지 하루종일 연습만 해야하는데
어린 나이에 (사실 어른이 된 지금도) 그렇게 연습하는 것은 무리 그 자체였다.
당연히 연습을 해야 실력이 늘지만 전공할 것도 아니고, 즐겁게 익히는 정도면 충분했는데.

어쨌든, 어린 나이에 집에서 엄마가 매일 들으며 체크하니 연습하는게 고역이었는데
(5번 해야할 것을 4번만 연습하면 듣고 있다가 연습 덜했다고 지적을 받았다.)
그래서 엄마가 집에 없는 날은 연습을 대충하거나 아예 연습을 안하고서 했다고 거짓말하고 혼나기 일쑤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선생님께 연습량을 줄여달라고 하거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격일로 연습하겠다고 했었어야 했는데
어리고 순진해서 그 선생님들이 내주는 숙제하느라 혼난 기억밖에 없네. :P


어쨌든, 지금은 아무도 나보고 연습하라고 강요하는 사람도 없고
연습을 덜했다고, 또는 안했다고 혼내는 사람도 없는데,
나는 오후 6시가 되면 칼퇴를 하고 집에 달려가서는
하루에 1시간씩 바이올린 연습을 한다.
막상 연습을 해보니 내가 성에 차는 만큼 연습하려면 1시간도 짧다.
그래도 저녁도 먹어야 하고 8시가 넘으면 옆집에 민폐일것 같아서
내가 주중에 연습할 수 있는 최대한의 시간은 딱 1시간 뿐.


또, 스케일, 에튀드, 소품곡 중에 스케일 연습을 제일 먼저 집중해서 하는데, 사실 스케일 연습이 제일 지루하고 재미가 없다.
하지만, 가장 지루하고 재미없는 기본기가, 사실은 가장 중요하고 가장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하는 부분이라는 것을
이만큼 살아보니 누가 말로 하지 않아도 내 머리와 내 몸이 절절하게 알고 있더라.

어릴 땐 멜로디가 있고 화려한 곡들을 연주하는게 당연히 더 재미있고 그것만 하고 싶었는데
요즘엔 그 곡들을 더 잘하기 위해서 기본기 연습을 많이 해야한다는 생각이 절로 드니
동기부여가 되어 기본기 연습이 더 재미있다.
(아 물론 표면적 의미의 재미는 아니다. 내가 조금씩 발전한다는 관점에서 재미있다는 것)


무언가를 숙련되게 잘 하려면
아주 많은 연습이 필요하다는 것도,
그리고 그 중에서도 기본기를 다지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한다는 것도
모두 깨달은 그런 나이가 되었는데
정작 이걸 아는 이 나이에는 그 연습을 충실히 해낼 시간이 없구나.

시간이 많았던 어린 나이에는 연습을 왜 해야하는지를 몰랐고.
그런 관점에서 아직 충분히 연습을 못했는데 시간이 쫓겨서 부랴부랴 악보를 접을 때면
조금 씁쓸한 마음이 든다.


하지만, 어쩌겠어.
이렇게라도 해야지.
하루에 한 시간. 안되면 30분. 그마저도 안되면 10분.
그렇게 소소하게, 대신 꾸준히 하다보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상황에서의 최선의 결과가 나오겠지.



어쨌든, 올해 1년이라도 꾸준히 배워고 연습해보자.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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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진이 가득 내려앉은 바이올린 (인스타에 올렸다가 송진 닦으라는 클레임을 받음)


시작은 아주 즉흥적이었다.
점심을 먹고 옆팀(이라고 해봤자 같은 사무실)에 놀러갔는데
나의 멘토였던 N팀장님께서 오보에를 꺼내 만지작 거리고 계셨다.
곧 연주회가 있어서 연습하러 가지고 오셨다고.

갑자기 왜 그랬는지, 나는 장난반 진심반으로
"제가 바이올린을 할 줄 아니 같이 듀엣 해보는 건 어때요?" 라고 제안을 했다.

"좋아!"

사실 난 여기까지만 해도 이게 정말 실현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왜냐면 내가 진짜 바이올린을 들고 회사까지 올 생각을 안했기 때문)
N팀장님의 추진력으로 순식간에 우리 법무실 내에 악기를 다룰 줄 아는 동료들을 섭외했고,
바로 단톡방이 만들어지고,
바로 팀 이름 - Quartet de Legis-가 만들어지고
바로 연주곡과 악보를 구하고
내친김에 회사 근처의 연습실까지 예약을 해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시작된 크리스마스 캐롤 송 맹연습.
중학교 이후로 바이올린을 거의 꺼내지 않았었는데
(2020년에 큰 돈 들여서 점검받았는데 그 떄도 동기부여가 안돼서 그대로 케이스에 넣어뒀다)
진짜 오랜만에 바이올린을 꺼내서 연습이란 걸 했다.

선택한 곡의 난이도가 높지 않아서 초견으로도 금방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정작 내 바이올린 실력이 많이(=20년) 녹슬어서 소리가 이쁘게 나지 않더라. (당연한 얘기)

그래서 연습이 가능한 주말동안 카이저 교본까지 펴놓고 기본기 맹연습을 했고,
드디어 4개 악기가 다같이 첫 합주를 했다.

 

크리스마스 컨셉에 충실한 우리들


다들 어느 정도 실력인지 알 수가 없어서 큰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완벽하진 않지만 각자 맡은 역할들을 톡톡히 해내주었고,
오랜만에 이렇게 다양한 악기가 합을 맞추어 하모니를 이루어 과정 그 자체가 너무 행복했다.

중학생 때 청소년 오케스트라를 했었는데, 그때 기억도 새록새록 떠오르고-
오케스트라를 하면 웅장한 곡들을 할 수 있어서 좋긴 한데
개인적으로는 이런 4중주 정도가 더 좋은 것 같다.

오늘은 블랙으로 맞춘 의상 (악기연습보다 중요한 것이 컨셉)


한 번만 하고 끝날 줄 알았는데
이 사람들이 생각보다 악기 연주에 진심이었다!
(심지어 평소에 자기 의견을 전혀 내지 않는 신님도 한 번만 다시 하자고 할 정도로 적극적이셔서 깜짝 놀랐다)
내친김에 연습실을 한 번 더 예약해서 다시 한 번 합주를 했다.
확실히 연습량이 늘수록 합이 더 잘 맞는 느낌.

연주의 완성도가 아주 높진 않지만, 우리가 무사히(?) 연주를 해내었다는 사실 자체가
뿌듯하기도 하고 또 다른 것에서는 느낄 수 없는 새로운 행복함을 주기도 했다.
(출근길에 연주 녹음을 매일 들을 정도 ㅋㅋ)

 

10년을 함께한 이 능력자 동료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플룻, 오보에, 바이올린, 피아노


요즘에는 바이올린보다 첼로에 더 관심이 가서 첼로를 시작할까? 라는 생각도 있었는데
합주를 하다보니 바이올린의 간드러지는 소리에 다시 좀 매료된 것 같기도 하고.

합주를 하고서 영상을 부모님께 보여드렸는데 엄마가 되게 뿌듯해하셨다.
그 옛날에, 군인 아빠의 외벌이 월급으로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두 개나 가르쳐주고
심지어 지금 내 돈으로 사라고 해도 선뜻 사기 어려운 좋은 바이올린을 사준 엄마는 무슨 생각이셨을까. (대충 감사하다는 얘기)


Anyway, 이 기분좋은 설렘과 뿌듯함이 일회성으로 그치지 않고
앞으로도 꾸준한 기회로 이어지면 좋을 것 같다.
추진력 대왕인 N팀장님이 함께 있는 한, 적어도 듀엣은 확보된 것 같으니까
바이올린 연습을 꾸준히 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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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6월 24일 여행 2일차

 
 


이번 프랑스 여행은 꼭 여행기로 남겨야겠다고 다짐했었는데, 
이런저런 일에 우선순위가 밀리다보니 올 해는 커녕 내년 여름여행 전까지도 다 못 쓸것 같은 불안한 생각이..
최근에 좀 힘든 일이 있었지만, 무사히 잘 해결되면서 이런 저런 의욕도 같이 생긴 참에 프랑스 여행을 다시 복기해본다.


프랑스에서 맞이하는 두 번째 아침.
아직 적응하지 못한 시차 때문에 오늘도 아침 일찍 깼다. 
호텔 근처 카페에서 크로와상과 커피로 간단히 아침을 해결하고 파리 시내로 출발. 
오늘 일정은 도리가 가보고 싶어한 마레지구/보주광장, 그리고 오후 5시에 예약된 오랑주리 미술관 말고는 특별한 일정이 없다. 
지금 지도를 캡쳐하면서 보니 파리에 갈 곳이 이렇게나 많았는데 왜 이렇게 아무 일정도 계획을 안했지? 싶은...ENFP의 여행 😅
 


우리는 RER을 타고서 시테섬에 내렸다. 여기서부터는 마레지구까지 걸어가면서 찬찬히 풍경을 즐길 예정.
이른 아침인데 정말 구름 한 점 없이 맑다. (이번 주 토요일에 시드니에 가는데 내내 날씨가 흐리다고 해서 속 쓰린 사람)

 

시테섬 궁전 시계탑과 그 뒤에 콩시에르 주리, 그리고 노트르담 다리까지

 

시테섬과 센 강, 그리고 싱그러운 가로수까지, 파리가 이렇게 이쁜 도시였던가.

 

건물은 낮은데 나무는 키가 커서 도시가 더 예쁜 것 같다.

 


우리는 시테 섬을 건너 퐁피두 센터를 지나 마레지구까지 걸어갔다가 보주 광장으로 방향을 틀었다. 
도리가 어디서 본 건지, 보주 광장을 알아와서는 자신있게(?) 이 곳으로 인도했는데, 오 나쁘지 않아.

보주광장(Place des Vosges)은 파리에서 가장 오래된 광장으로,
광장이라기보다는 완벽한 대칭을 이루는 사각형의 작은 공원 혹은 정원 같은 모습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파리 건물느낌과 조금 다른 인상을 주는데 그 이유는 외벽이 붉은 벽돌로 되어 있어서 그렇다.

 

작은 동네 공원 같은 느낌의 보주 광장

 

 


아침에 가까운 오전이었는데도 불구하고, 햇살이 일광소독 급으로 너무 뜨거웠다.
이제 겨우 6월 중하순인데 이렇게나 해가 뜨겁다고?
파리 근처 브뤼셀에 살고 있는 현석오빠에게 물어봤는데, 지난 주까지만 해도 이러지 않았는데
이번 주 이상기온 떄문에 엄청 덥다고.. ㅠㅠ


저 햇살 속을 거닐 자신이 없어 보주 광장 나무 그늘 벤치에 앉아서 보니,
여기 보주 광장에는 (다른 파리의 관광명소에 비해 상대적으로) 관광객보다 파리 주민들이 더 즐겨 찾는 것 같았다.
이 뜨거운 날씨에도 어린 아기들이 까르르 웃으면서 뛰어놀고 있는데 평화롭고 또 행복해보였다.


보주광장 근처를 멤돌다가, 근처에 무료 박물관(?)이 있다고 해서 찾아갔다.
이름은 카르나발레 박물관(Musée Carnavalet)

이 카르나발레 박물관은 프랑스 유력 가문인 웬델 집안 소유의 카르나발레 저택을, 파리 시의회가 매입해서 박물관으로 재단장했다고.
60만점의 소장품 가운데 16~19세기 자료들이 많아서 그 시절 파리의 역사를 엿볼 수 있다.  

 

태양왕 루이 14세 조각상이 있는 카르나발레 박물관의 안뜰

 

1층에 들어가면 예전 파리 상점에 걸렸던 간판들을 모아놓았는데 앤티크하고 이쁘다.

 

프랑스 역사 잘 모르지만 열심히 보는 (척) 나..

 


무료라고 해서 솔깃하기도 했고, 또 너무 뜨거워서 더위를 피할겸 들어오기도 했는데
프랑스의 역사를 잘 모르니, 걸려있는 그림들과 초상화, 소장품들을 보아도 잘 와닿지는 않았다.

다만 한가지 기억에 남는 건, 지금 파리의 로맨틱한 이미지에 한 몫을 하는 파리의 많은 다리들 위에 사실 3~4층 짜리 집들이 줄지어 있었다는 것이다.
아마도 1800년대 후반 파리 개조 사업 때 다리도 함께 정비하면서 다리 위에 있는 건축물들을 쓸어(?)버렸나 싶다.

 

1556년 시테섬 지도 - 잘 보면 다리를 따라 건물들이 지어져있다.

 


카르나발레 박물관을 슉슉 둘러보고, 근처에 평점이 높은 한식당이 있어 점심을 먹으러 갔다.
여행하면서 꼭 한식을 먹어야 하는 타입은 아니었는데
나이들었나...어릴 때에 비해서는 한식이 땡기는 빈도가 늘어난 것 같다. ㅠㅜ

 

퀄리티가 좋았던 파리 순그릴의 돌솥비빔밥

 


점심을 먹고 나니, 2시 정도였는데 햇살이 너무 뜨거운데다 오전 내내 많이 걸어서 휴식이 절실해졌다.
20대였으면 꺾이지 않고 계속 돌아다녔을텐데
40대에 가까워지고 있는 30대 후반은 바로 꺾였다. 중요한 건 무리하지 않고 꺾이는 마음...
오랑주리 미술관이 5시 입장이었는데 그 때까지 카페 같은데서 죽칠까하다가 숙소로 돌아가서 한 시간 정도 쉬다 나오기로 했다.

RER을 타러 가기까지도 덥고 지쳐서 버스를 기다렸는데........땡볕에서 30분을 기다렸는데도 버스가 안와...

그냥 걸어서 RER 역까지 가자는 나와 조금 더 기다려보자는 도리 사이에 살짝 신경전이 벌어졌다.
결국 30분을 기다렸는데도 버스가 안와서 우리는 걸어서 RER을 타러 갔다.

그 동안 여행을 하면서 숙소를 한 번 출발하면 하루 종일 돌아다니다가 해가 지고나서야 돌아갔기 때문에
숙소의 위치가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었다.(내 여행에 중도 복귀란 없다)
그런데 이번에 파리 여행을 하면서 새삼 숙소가 도심 한 가운데 있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 (이번에는 숙소를 못구해서 그런거니까 어쩔 수 없었지만)

그렇게 숙소에 가서 도리는 한 숨 낮잠도 자고, 나는 일기도 쓰고 (그런데 이 일기장 지금 못찾겠다 ㅋㅋ) 전열을 재정비해서
5시 예약시간에 맞춰 오랑주리 미술관으로 향했다.

오랑주리 미술관에 가는 이유는 단 하나, 모네의 수련 연작을 보기 위해서.

Musée de'l Orangerie

 

이 모네의 수련 연작이 인기가 너무 많은 나머지 오픈할 때 가거나 끝나기 전에 가면 조금 한적하게 볼 수 있다고 해서 
일부러 오후 5시로 예약하고 갔는데도, 모네의 수련을 전시한 관은 사람들로 넘쳐났다.  
게다가 다들 조용히 관람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틱톡과 인스타에 올릴 사진과 영상을 찍으려는 사람들로 정신이 사나울 정도. 
이 그림과 이 공간이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은 느낌과는 정반대의 관람 분위기 때문에 작품에 집중하기 쉽지 않다. 

 

진심으로 문 닫는 시간이 되어서야 텅 빈 모네의 수련 연작관

 

자연광이 쏟아지는 하얀 전시실에 걸린 수련 연작.
아직 해가 떠 있건만 그늘이 져 캄캄해 보이는 연못, 그리고 그 수면 위에 비친 몽글몽글한 구름의 그림자. 뜨거운 여름날의 오후였을까.
이 수련 연작을 그린 지베르니에 가보지는 못했지만, 모네가 보았을 풍경이었을지 모네의 작품을 보고 상상하게 된다.    
수련 연작 자체는 상상했던 것만큼 압도적이고 특유의 아름다움으로 감동적이었지만 . 
틱톡이나 인스타에 올릴 수련 앞에서의 자신의 예쁜 모습을 담으려고 수십번 작품 앞을 거닐며 영상을 찍던 사람들 때문에 감동이 반감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오후 6시가 지났는데도 한낮같은 튈르리 정원의 풍경

 

오랑주리 미술관에서 수련을 보고 나와 루브르 박물관 건물이 보이는 튈르리 공원에서 잠시 멍을 때렸다.  
수백년 전에 지은 저 고풍스러운 건물과 2023년을 살고 있는 사람들. 
고궁, 유적지 같은 건물들을 제외하고는 현대적인 건물에 둘러싸여 살고 있는 한국인에게는 묘한 이질감이 드는 풍경이다.    
그래서 파리가 많은 이들에게 로망같은 도시인가 싶기도 하고. 

 

9시가 넘어야 조금씩 기울어지는 햇살

 

여유로운 여름날의 센강의 풍경

 

파티가 한참인 센강의 저녁

 

 

 

정처없이 떠돌아다니다 썩 만족스럽지 못한 저녁식사를 하고서 RER을 타러 가는 길에 센 강을 따라 한참 걸었다. 
시간은 이미 오후 9시를 넘어가는데, 세상은 이제 막 오후 5시가 되어가는 것 처럼 밝고 환하기 그지 없었다. 
여름 오후의 센 강에는 젊은 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나누고 또 야외 펍에는 맥주 파티를 하는지 힙하고 흥겨운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파리에 세 번째 오는데, 이런 센 강의 분위기는 또 처음이네.  
뭐랄까. 파리는, - 이 표현은 여러 모로 별로이지만- 지지 않는 태양같은 느낌이다.
도시도 흥망성쇠가 있어서 뜨는 도시가 있고 지는 도시가 있고, 한 때 핫했던 도시가 시간이 많이 지나면 촌스러워지기도 하는데
파리는, 언제와도 핫하고 힙하고 세련된 느낌. 2008년 처음 왔을 때보다도 더 힙해진 느낌이라니. 놀랍다. 

여행 전까지만 해도, 생각보다 더럽다, 위험하다는 얘기에 파리에 큰 미련이 없었던 도리도  
이틀이긴 했지만 파리의 매력에 푹 빠진 것 같았다.  특히 마지막 날 센강에서 느꼈더 분위기에. 
나중에 파리에만 일주일 정도 머물면서 여행해보고 싶다고.

  
이렇게 아주 짧은 이틀 간의 파리 일정은 마무리를 했다.  
마지막에 숙소로 가는 RER이 한참을 오지 않아서 지칠대로 지쳐 다시는 꼭 도심 한가운데 숙소를 잡자는 교훈과 함께.  
내일은 이제 고성들이 몰려있는 발 드 루아르(Val de Loire)지역으로 이동한다.
이제부터 진짜진짜 프랑스 로드트립 시작! 

 

 

Posted by honey,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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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지난 주 일요일 @ Sydney

 

 

이 정도면 (유행이 좀 지났지만) 나도 욜로...가 아닌가 싶다. :P

 

 

 

 

 

 

 

 

Posted by honey,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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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평화

■ 삶/IV. 삶 2023. 11. 17. 16:22

 



지난 주 화요일 오후 한 통의 전화에서 시작되었던, 마음의 고통
이렇게까지 흘러가지 않았을 수도 있는데
예상치 못했던 돌발 상황에 더 악화되어 버린 감당 불가의 나날들
불을 끄면 몰려오던 불안함, 불안함에 떨리던 온 몸, 잠은 오지 않고 숨이 쉬어지지 않았던 밤들.
눈을 떠 모니터를 보고 있지만 긴장감에 땀으로 마우스를 흥건히 적시던 낮들.

그로부터 열흘이 지난 오늘 아침 그 문제가 해결되었고
비로소 불안함에 떨고 불안함을 억누르고 있었던 내 마음도 평화로워졌다.
해결까지 시간이 더 오래걸릴 수도 있었고 일이 더 악화될 수도 있었는데
여기에서 해결되어서 다행이었다.  
막상 문제가 해결된 직후에는 마음에 큰 변화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얼마나 마음이 홀가분해지던지,  
그래, 이게 원래 평소의 내 마음상태였지.
다시 돌아와줘서 고마워, 나도 컨트롤 할 수 없는 내 마음아.

그 동안 평온한 삶을 지루하다고 불평하고, 작은 좌절에도 크게 상심했었는데
지루하리만큼 평온한 삶, 상심하는 정도의 작은 좌절만 있는 삶이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 깨달았다.
그 동안 내 계획대로 되지 않는 걸 견디지 못했었는데, 내 인생이 내 계획대로만 되어야 한다는 그 마음이 얼마나 오만한 것이었는지도.
지금까지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의 내 삶에 더 감사하고 또 내 계획대로만 될 수 없는 인생 앞에서 겸손하게 살아야겠다.
글로 적으면 뻔한 얘기이지만, 이번 경험을 통해 뼈저리게 느낀 소감을 꼭 적어놓고 싶다.


남은 2023년은 좋은 일만 있길 바라면서 잘 마무리해야지.
이 블로그에 들어오는 모든 분들, 언제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진심으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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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

■ 삶/IV. 삶 2023. 11. 8. 17:06



내가 너무 행복에 겨웠던 것일까?
알고보니 심각하지 않은 일인데 내 마음대로 잘 되지 않는다고 심통이 나서 그런 것일까?
인생에서 진정으로 소중한 게 무엇인지 일깨우기 위한 시험인걸까?
앞으로 투덜대지 않고 감사하게 살테니 여기까지만 시험하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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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부모님 아파트가 이제 시공을 거의 마무리해서 사전점검을 한다고 해서 도리와 함께 구경할 겸 다녀왔다.
날씨는 더할 나위 없이 화창했는데 부모님을 포함해서 소중한 보금자리를 확인하러 가는 집주인들의 마음들은 얼마나 설렜을까 싶다.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아직 상가를 짓는 중인건지 단지 앞은 공사판에 어수선했고 사전점검을 하러 온 차들이 길게 줄지어 주차장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주차장으로 진입하고 몇동 몇호라고 말하니, 차 앞에 동을 표시한 표지판을 올려주었고 인원수에 맞춰 놀이공원에서 찰 법한 종이팔찌를 나눠주었다.
차를 주차하고서, 엄마에게 전달받은 동호수로 엘레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초인종을 누르니  먼저 들어와있던 아빠엄마가 반갑게 우리를 맞아주셨다.  

 


동남향 집은 정오 즈음의 햇살이 들어와 화사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바로 거실에서 보이는 풍경!

 

한 폭의 그림같은 거실뷰

 

실물은 요런 뷰!



여기 서울 한복판이 맞나 싶은 알록달록 가을빛이 들어가는 너무 예쁜 뷰였다.
건물 앞에 가리는 건물 하나 없이 탁 트여있어 답답함도 없고 햇살도 잘 드는 데다가
그 앞으로는 산이 있어 집에서 사시사철 자연을 오롯이 누릴 수 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내가 제일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조건인데 그걸 우리 부모님 집이 해냈다니!
심지어 이미 완성된 집을 보고 산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래서였는지, 집을 방문한 부동산에서 오늘 사점점검으로 돌아본 집 중에 가장 뷰가 좋다면서, 너도 나도 부모님 집 거실 뷰를 사진으로 찍고 영상으로 찍고 수십 번을 찍어갔다.  
내 집도 아닌데 괜히 뿌듯.....

플랜카드 문구는 우리끼리

 


아, 사점점검을 하면서 뭔가 엄마아빠를 즐겁게 해드리고 싶어서 플래카드를 준비해서 갔다. 그리고 엄마아빠를 선동해서 기념사진 플래카드를 들고 우리끼리 사진도 찍었다.

내가 플래카드를 펼치니, 엄마는 이런 걸 왜 만들었냐고 하면서도 우리 딸 답다며...
(엄마 이거 칭찬이져?)

나도 안다. 이 플래카드가 별 의미 없다는 것을. 이게 부모님 첫 집도 아니고.  아파트 사전점검도 그냥 하나의 절차일 뿐이라는 것도.
하지만, 평범하고 당연한 일상 속에 우리 가족이 재미있게 기억할 수 있는 즐거운 추억을 만들고 싶었달까?

언젠가 시간이 많이 지나 저 플래카드를 보면서,

우리 사전점검하는 날 이런 일 있었지, 저런 일이 있었지. 부동산에서 우리 집 뷰가 좋다고 사진을 그렇게 많이 찍어갔지. 딸이 저런 플래카드도 준비해 왔었지 하면서 이 날을 즐거웠던 하루로 떠올렸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으로 플래카드를 준비했다.


살아보니, 가족이라는 존재가 참 소중한 것이었다.
그리고 가족이 함께 부대끼며 지내온 시간들이  지나고 나면 소중한 추억이 되는 것 같다. (나 진짜 철들었나 봐)
결혼하기 전까지 부모님과 함께 살았던 나라서, 가족과 일상생활을 함께 하는 게 너무나 당연했는데
결혼과 함께 독립한 이후로 원래 가족과는 일부러 시간을 내어 시간을 맞춰 만나야 하는 사이-혹은 환경이 되었다.
그리고 그런 환경 변화를 겪고서야, 우리가 원래 가족으로 새로운 추억을 쌓을 일이 많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함께 살 때와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이 사전점검의 날이 우리 가족에게 (동생은 일하고 있어서 못 왔지만) 특별하고 즐거웠던 추억으로 오래오래 기억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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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6월 23일 여행 1일차 

 

 

 

어제 (프랑스 현지 시간 기준) 초저녁부터 잠든 것도 있고 한국과의 시차 탓에 새벽 5시 좀 넘어 잠에서 깼다. 

"도리야, 일어나. 우리 에펠탑 보러 가야해"

"....지...지금???.............(도리살려)"

 

이번 2주 간의 프랑스 일정에서 파리에서 머무는 시간은 단 이틀.

나는 이미 파리가 세 번째이고, 도리는 파리에 큰 기대가 없었는데 (어디서 파리는 더럽고 소매치기가 많다는 얘길 들어왔음)

그래도 도리는 프랑스 자체가 처음이어서 관광객 모드로 파리를 집중적으로 이틀동안 돌아보기로 했다.

 

파리에서 가장 첫 번째로 보러 간 것은, 바로 에펠탑(Eiffel Tower)

일찍 일어난 것도 있지만, 조금만 시간이 지나도 사람이 바글바글해진다고 해서 에펠탑부터 가보기로 했다.

여러 스팟 중에서도 에펠탑을 한 눈에 볼 수 있다는 트로카데로 광장(Place du Trocadero)으로 바로 갔는데 

아침 7시 반인데 벌써부터 에펠탑을 배경으로 스냅사진을 찍으려는 커플들과 스냅사진 작가들이 각자 한 자리씩 차리하고 있었다. 

우리도 이렇게 아침 일찍 에펠탑에 오는게 가능할 줄 알았으면, 스냅사진 찍을걸 그랬나? ^_^........

 

 

 

아침햇살에 싱그러운 공원과 저 너머의 에펠탑

 

에펠탑 앞에서 포즈 고민 중.................

 

 

금요일 아침 8시 즈음의 에펠탑 주변은, 촉촉하고 상쾌하고 싱그러운 느낌이었다. 

도시는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나고 있었고, 우리처럼 일찍 여정을 시작한 몇몇의 관광객들 외에는 사람이 없어 한적했다.

어제의 피로는 다 날아간 듯 했고 날씨도 화창해서 시작이 좋은 느낌이었다. 

도리는, 에펠탑은 안봐도 된다더니 막상 보고나니 생각보다 엄청 크다는 인상을 받은 것 같았다. 

(도리는 일단 뭐든 다 안봐도 된다고 하면서, 막상 보고 나면 다 좋다고 하는 스타일) 

 

우리는 스타벅스에서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세느강을 따라 산책하듯이 튈르리 공원을 지나 루브르 박물관까지 갔다.

우리는 나비고 카드가 있어서 사실 교통편이 무제한이었지만 파리는 걸어야만 그 진가를 알 수 있다. 

 

 

파리에 세 번째 왔지만, 이런 초여름 파리의 싱그러운 모습은 또 처음인걸?

 

이번에 파리에 가면 꼭 부고 싶었던 튈르리 정원의 풍경- 정말이지 동화같고 예쁘다.

 

 

점심시간에 가까워지기도 했고, 파리의 Must visit place 중 하나여서 그런지 루브르 박물관 앞은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루브르 박물관 인기는 역시 여전하구나!

하지만 우리는 루브르 박물관 앞에서 인증샷 하나씩만 찍고 쿨하게 입장은 포기했다. 🤣

2008년, 이 루브르 박물관에 처음 왔을 때, 나란 인간은 박물관 관람보다 풍경을 더 사랑한다는 것을 제대로 깨달았었다. 

루브르 박물관 내부까지 입장을 했다가, (내내 우중충하던 날씨가) 갑자기 맑게 개이자 못참고 뛰쳐나왔기 때문이다. 

게다가 위에서도 말했지만, 도리는 꼭 안가도 그만이라는 굉장히 자유로운(?) 여행철학을 가지고 있어서 

루브르 박물관에 못 들어간다는 아쉬움보다 저 긴 인파와 함께 줄서지 않는 것만으로도 만족하는 것 같았다. 

 

 

어느새 이런 인생샷도 (가끔) 척척 찍어주는 도리가 되었다!

 

 

루브르 박물관에서 인증샷을 찍고 점심으로 쌀국수를 먹었다. 

어디서 들었는데, 파리에서 파는 쌀국수가 진짜 맛있다고. 

점심을 먹고나서는 오르세 미술관(Musée d'Orsay)에 갔다.

오르세 미술관도 처음은 아니라서, 유명한 미술 작품들 위주로 슉슉슉 보고 지나갔다. 

 그 중에서도 이번 여행 일정 중에 엑상프로방스(확정)와 아를(미확정)이 있어

프로방스 지역을 그린 세잔과 고흐의 그림들은 관심을 가지고 신경써서 보았다. 

 

 

세잔이 그린 "생트 빅투아르 산"의 전경. 나 며칠 뒤에 이 풍경을 직접 볼 수 있을까?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 중 하나인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

 

 

개인적으로 나는 고흐를 아주 좋아하는 편은 아니고,

그의 작품 "별이 빛나는 밤에"는 너무 유명하고 많이 접해와서 크게 기대하지 않았는데 

이 원작을 두 눈으로 직접 보았을 때,

고흐가 많은 고민을 하며 그려 넣었을 거친 붓터치에서 예상치 못한 감동을 살짝 받았다. 

이 그림을 사진으로 찍어 보면 붓터치의 결이 보이는 평면적인 그림이지만, 

실제로 보면 이 붓터치의 두께감과 높이 때문에 그림이 훨씬 입체적으로 보인다. 

왜 사람들이 이 그림을 참 좋아하는지, 비로소 알 것 같았다. 

미술관에는 선생님과 함께 현장학습을 나온 것 같은 어린이들이 그림 앞에 앉아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있었는데

이런 명작들을 어릴 때부터 당연하게 접할 수 있는 환경이 살짝 부러웠다. 

 

 

오르세 미술관에서 나와, 버스를 타고 생 샤펠 성당(Sainte-Chapelle)이 있는 시테 섬으로 왔다. 

예전에 여행 할 땐, 노틀담 성당(Cathedrale Notre-Dame de Paris)이 워낙 유명해서 시테 섬에 생 샤펠 성당이 있는 줄도 몰랐는데, 

2019년 노틀담 성당에 화재가 난 뒤로는, 생 샤펠과 콩시에르주리를 묶어서 많이 관광하는 것 같았다. 

 

 

시테섬의 풍경

 

노틀담 성당 근처의 크레페 가게 "La Creme de Paris"

 

 

개인적으로 크레페를 아주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 

무려 2008년 (몇...몇년 전인가...눈물이 앞을 가린다 ㅠㅠ) 처음 파리에 왔을 때 정처 없이 세느 강을 따라 걷다가

아마도 시테섬 근처이지 않았을까 싶은, 작은 창이 밖으로 뚫려있는 크레페 가게를 발견했었다. 

크레페 하나를 주문하자 흑인 주방장(?)이 동그란 철판에 반죽을 살짝 두르고 긴 막대기 같은 것으로 휘휘 얇게 펴 구운 다음

그 위에 누텔라를 발랐던가 초코를 발랐던가, 그리고 부채꼴 모양으로 착착 접어 주었는데

갓 구워낸 파르페가 바삭하면서도 촉촉하게 정말 맛있었었다. 

해질녘의 그 어둑어둑했던 그 시간, 파리에 있는 내내 우중충 해서 으슬으슬 했던 날씨가 아직도 생생히 기억날만큼. 

그 뒤 파리에 올 때마다 크레페를 시도해보지만, 기억 속 크레페만큼 감동을 주는 크레페는 아직 만나지 못했다. 

 

생샤펠 성당은 시테섬에 위치한 스테인드 글라스가 인상적인 성당인데, 

말 그래도 스테인드 글라스가 화려하기는 하지만 성당 규모도 꽤 작고

그동안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오만군데 성당을 둘러본 나에게는 크게 인상적이진 않았다.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의 생샤펠 성당

 

 

생샤펠 성당 관람을 마지막으로, 우리는 아르퀘이에 있는 숙소로 돌아왔다. 

여행을 3주 앞두고 비행기표를 예약하고, 그 때부터 숙소를 찾아봤는데 

파리 안의 웬만한 가격대의 호텔은 다 완판이 되어서 파리 내에서는 호스텔을 가거나 초고급 호텔을 가는 선택지 밖에 없었다. ㄷㄷㄷㄷ

그래서 가격대와 룸 컨디션을 고려해서 찾은 곳이 파리 남쪽 아르퀘이 지역의 코트야드 바이 메리어트 파리 아르퀘이 

파리 관광지로부터는 약 7km 정도 떨어져있는데, 다행히 호텔이 RER 역에 거의 바로 붙어있어서 

공항에서부터도 RER선을 타고 한 번에 오갈 수 있고, 또 노틀담까지도 RER로 20여분 걸려서 나쁘지 않았다.

그때는 성수기에 근접하고 있어서 그랬는지 1박에 거의 30만원 가까이 했는데, 지금은 가격도 훨씬 괜찮네.

 

지도로 보면 생각보다 멀어보이지만...숙소에서 노틀담까지 강남역에서 잠실역 정도 거리다.

 

 

새벽 5시 반부터 일어나 하루종일 파리를 헤메다 숙소에 도착해 저녁을 먹으니 밤 9시였다. 😅

오늘 하루에만 무려 2만 7천보를 걸었다. 내 도가니 살려!

밤 9시지만 날은 이제야 막 노을이 지고 있었다. 이렇게 해가 긴 여름에 여행하는 것도 축복이다.  

피곤하긴 했지만, 파리에서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은 이제 하루 밖에 남지 않아서 내일도 바쁘게 하루를 시작해야 할 것 같다. 

그럼 우리 내일 만나요. Bonne nuit😍 

 

 

6월 23일, 9시 반의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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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6월 22일 출국

우리가 탔던 에어프랑스. 에어프랑스도 12년만이네.

 

 

나이가 들기는 제대로 들었나보다. 고작 3개월 전 여행의 기억이 흐릿하다.

여행기를 쓰려고 노트북을 열었다가 순간 매우 당황스러웠다. ㅠㅠ.......

 

사실 올해 여름휴가는 오랫동안 미정인 상태였다. 늦어도 봄에는 여행지와 비행기표까지는 정해두는 나답지 않게.

그도 그럴것이, 모든 걸 자유롭게 정할 수 있었던 싱글인 때와 달리 이제는 도리(남편)의 스케줄도 중요해졌기 때문인데

도리가 올 초부터 이직 준비를 하고 있어서 타이밍 잡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결혼의 장점 : 같이 여행 갈 사람이 있다😀 vs. 결혼의 단점 : 그 사람과 맞춰야만 한다🤣)

그러다가 드디어 도리가 확정적으로 회사를 옮기게 되었고, 갑자기 3주 뒤에 떠나야 하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사실 그때까지도 딱히 떠오르는 여행지가 없었는데 (내 취향 여행지는 결혼하기 전에 다 돌아다녀버렸.....................)

갑자기 커다란 나무들이 있는 정원과 돌로 지은 프랑스 주택에서 느긋한 휴가를 보내고 싶다는 뽐뿌가 와서

이번 여름 휴가 여행지를 프랑스로 정하게 되었다. 

그렇게 아직 새벽 공기는 서늘하던 6월 하순, 우리는 서울을 떠나 무려 14시간을 날아 파리에 도착했다. 

 

* * * * * 

 

12년 만에 도착하는 파리의 샤를 드골 공항은, 내가 걱정했던 것과 다르게 특히 한국인에 대해 매우 호의적이었다.

12년 전만해도 중국인 취급을 받았었는데, 공항의 직원들은 우리에게 먼저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해주고 한국어를 더 배우고 싶다고 했다. 

@_@ 이것이 BTS와 블랭핑크의 힘인가요.............? 요즘 해외에서 대한민국 위상이 높아졌다더니. ㄷㄷㄷ

하지만, 이 기분좋은 파리의 첫인상은 오래 가지 못했는데,

입국심사 줄에서도, 나비고 카드를 사는 창구에서도 비효율적인 일처리로 어마무시한 시간을 기다려야 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다른 나라 외국인들이 항의하는 지경이었는데 프랑스 직원은 태연하게 "이게 바로 프랑스야"라고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 프랑스는 이랬었지.

무얼 해도 너무 오래 걸리는 일처리 때문에 여행 일정이 의도치 않게 질질 늘어지던 경험과

미묘한 인종차별이 그동안 프랑스를 여행지로 선택하는데 기피하게 하는 이유 중 하나였던 것이다. 

우여곡절끝에 두시간여만에 공항을 빠져나와 공항철도를 1시간 가량 타고서

(아참, 공항철도 의자 상태를 보고 도리와 나는 진짜 기겁을 했다. 정말 앉기 싫을 정도....ㅠㅠ)

파리 바로 아래 아르퀘이(Arcueil)에 있는 숙소에 도착했을 땐, 정말이지 녹초가 되어 있었다. 

출발전 3시간 + 비행 14시간 + 파리공항 2시간 반 + 숙소 이동 1시간 .......휴...................

너무 힘들어서 나는 저녁도 스킵하고 바로 뻗어버렸고, 도리만 호텔 근처에서 저녁을 먹고 돌아와 잠이 들었다. 

제대로 된 여행은 내일부터! 

 

 

 

 

 

 

Posted by honey,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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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이 한참 지난 것 같은데도 더위가 물러날 기미가 없더니,
이제 제법 아침 저녁으로는 선선하다 못해 쌀쌀하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내가 아직도 여름 옷을 입고 다녀서 그런가?)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했던가.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혼자 생각하고 있었네.
실질적인 내용은 틀리지 않았지만, 어떤 순서로 생각하느냐에 따라 느낌은 좀 다르구나.

어쨌든, 요즘 드는 생각이 그렇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란 생각.
일상생활에서도 그렇고, SNS에서도 그렇고 모두 아무 문제 없이 행복해보이지만
사실 저마다 크고 작은 어려움, 아픔, 슬픔 등을 갖고 있다는 것.

뻔한 얘긴데, 이 뻔한 얘기에 마음 깊이 공감되는 이유는  
나이가 들어서인가.

그래서일까,
희극과 비극이 공존하는 삶의 본질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노력은,
그냥 하루하루 행복하게 사는 것
이라는
(뻔한) 결론을 떠올리고 또 떠올린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게 정답인 것 같다.

어짜피 일어날 비극은 일어나고,
때로는 아니, 대다수의 비극은 우리가 컨트롤 할 수 있는 일들이 아니다.
그 비극의 크기가 너무 커서 감당하기가 어려운 날들도 있겠지만,
그것이 인생이라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오늘 하루 시간을 내어 열심히 운동하고,
내 곁의 사랑하는 사람들과 즐겁고 소중한 시간을 보내고,
내가 하고 싶은 취미활동을 하거나
내가 성취하고 싶은 목표를 위해 노력하는 것.
결국 나 자신을 사랑하고, 나의 하루를 나를 위해 살아가는 것.

나는 요즘 그런 마음으로 산다.

이렇게 쓰면, 요즘 나한테 무슨 안좋은 일이 있나 의아한 사람도 있을테지만
사실 아무 일도 없다.
그냥 하루하루를 열심히 또 행복하게 살고 있고
그런 날들이 조금씩 쌓이다보니
소소하게 행복한 날들의 집합이
내면의 단단한 힘이 되어주는 것을
비로소 느끼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모두들 행복하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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