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에 치뤘던 스페인어 시험 DELE 결과가 드디어! 나왔다.
7월쯤에는 나올 줄 알고 계속 메일함을 열면서 기다렸는데

3개월이 넘도록 결과가 안나와서 엄청 답답했네.
사실 합격/불합격보다는 각 과목별 점수가 궁금했는데
예상(?)대로 나온 과목 :  독해 (만점, Yay!)
예상(?)보다 잘 나온 과목 :  듣기와 회화. (회화 만점 Yay!)
평소(?)보다 못한 과목 : 쓰기...(...)
확실히 공부하면서 시간 안에 정확히 쓰는 연습을 덜했더니 시험장에서 바로바로 못쓰고 버벅거렸다.


사실 이 DEPE시험은 합격, 불합격만 따지고 점수는 중요하지 않은데
막상 점수를 보고나니 더 높은 레벨을 칠걸 그랬나...아쉽기도 하다.

 

 
사실 A2레벨은 조금 만만하게 생각하긴 했는데

시험공부를 해보니 독해, 듣기, 쓰기, 말하기 4과목을 과락 없이 골고루 점수를 내야 해서

듣기와 말하기가 생각보다 쉽지가 않았다.

게다가 회사를 다니면서 주말에 6시간씩 학원에서 수업을 듣고
주중에는 숙제하고 단어외우고, 출퇴근하면서 신나는 음악 대신 스크립트를 듣는것은

확실히 정신적으로, 체력적으로 여간 지치는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변호사 시험 이후에 합격과 불합격이 나뉘는 긴장감 있는 시험은 오랜만이라
스트레스 받으면서도 시험 준비하며 느끼는 적당한(?) 긴장감과 짜릿함.
그리고 시험을 만족스럽게 끝냈을 때의 성취감이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시험 직전일을 뺴놓고는 공부하는 것이 전반적으로 즐겁고 재미있었다.

 

 

또, 일만 계속 하면서 매일 나를 쥐어짜내고 소모시켜 버리는 상황이었는데

어린 대학생들과 같이 공부하면서 리프레쉬도 되고 자극을 받기도 했고,
어딘가 비어버린 뇌 한 구석이 새로 채워지는 느낌도 좋았다.

(젠장...나 공부변태인가봐....☞☜) 



어쨌거나, 2017년 새해 목표 중 하나가 스페인어 자격증 따기였는데
비록 레벨자체는 높지 않지만
쓸데없는 걸 돈 들여 왜하냐는 회의감을 이겨냈고,
주말과 주중 저녁을 쪼개가며 최선을 다해서 준비했고,

또 그 과정을 전반적으로 즐기면서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었다는데

스스로에게 기특하다고 말해주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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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한살하고도 5개월이 지나간다.
지금 회사에서도 만 4년차가 되었다.
유난히 예민하고 신경이 곤두섰던 2016년 겨울과 2017년의 봄을 보내고
고개를 들어 거울을 보았을 때
짜증으로 칙칙해져 폭삭 늙은 것만 같은 내 얼굴을 보았다.

20대처럼 어리고 생기발랄한 나이는 아니어도
꾸미지 않아도 빛나는 절세미인은 아니어도
나는 항상 생글생글 웃는 얼굴이었던 것 같은데
거울 속의 나는 웃음을 잃어버린 사람 같았다.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로 마음이 지쳤고
내적으로는 어른이 되는 성장통에 아프고
외적으로는 어려선 없던 알러지에 피부가 간지럽고 따가워 아프니
만사에 삐딱하기만 하고 웃고 싶지가 않았다.
어쩌면 나는 웃기를 스스로 거부했던 것도 같다.
제발 나 좀 건들지 말라는 얘기를 인상 쓴 얼굴로 대신했다.

그러다 거울을 봤을 때,
딱딱하게 굳어 있는 내 얼굴이
못생긴 것보다도 늙어가는 것보다도
더 안타깝고 께림칙한 얼굴이란 걸 깨달았다.

나는 무표정마저 아름다운 냉미녀도 아니고
앞으로 계속 눈가에 주름이 지고 피부가 늘어지겠지만
그리고 그 사실은 바꾸지도 막지도 못하겠지만
웃는 얼굴은 내가 할 수 있는 거잖아.

어른이 되니 웃을 일이 많이 없다고 투정하지만 말고
그냥 아무 일이 없어도 입꼬리를 올려보기로 했다.

입꼬리는 올라갔는데 광대근육이 뻑뻑하다.
하지만 며칠 입꼬리를 열심히 올렸더니 그 다음엔 광대근육이 웃고
뒤이어 자연스럽게 눈도 웃게 되었다.

광대 근육과 눈까지 웃고 있으니 언젠가 어디에선가 즐거웠던 느낌이 되돌아오는 것 같다.
웃는 척 하고 있는 건 줄 알았는데 괜시리 정말 좋은 일이라도 있는 것처럼 기분이 좋아진다.
이 볼록한 광대근육이 마치 즐거운 기분을 소환하는 버튼 같아.


우리 웃을 일이 없는 무미건조한 일상이더라도
눈가에 하나씩 주름이 지고 거울 속 모습이 조금은 초라하게 느껴져도
미소를 잃지 말자.
그럼 분명 웃고있는 주름마저도 아름다운 내 얼굴을 갖게 될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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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하고 선선한 바람이 쉬지않고 불어온다.
지금 저기 올림픽 평화의 문과 몽촌호수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산책로의 벤치에 앉아
시간이 멈춘듯 길게 늘어진 오후를 즐기고 있다.
오사카성공원이나 오호리공원이나 올림픽공원이나 다 비슷할거라 생각하면서.

창립기념일 덕분에 3일 쉬게 된 이번 주 주말.
오사카나 후쿠오카라도 다녀올까 싶어 몇번이나 비행기표와 숙소를 예약할까말까하다가
(그래서 주말에 약속도 일절 잡지 않았는데)
어제 빔 결국 가지 않기로 했다.
그렇지만 매일 가는 그렇고 그런 서울 속에서 뭉개고 싶지도 않았다.

요즘 내 마음이 그렇다.
새로운 곳에서 답답한 일상을 시원하게 떨치고 싶으면서도
낯선 곳에서 긴장하고 고생하고 싶지 않다.
마음이 편안한 곳에 가자니 너무 익숙한 나머지 새롭지가 않고
새로운 곳에 가자니 익숙치가 않아서 마음이 편치 않다.
이도 저도 아닌 상태에서 마음의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갈팡 질팡하고만 있다.

지금 매사가 그렇다.
가능성 있는 것들과 해야할 것들을 다 늘어놓고는 어떤 것을 어떻게 할지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포기하고 또 무엇을 감당하며 무것을 책임질지
나는 머릿속으로 셈이나 하면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내가 왜 그러는 걸까.
어디로 갈지 모르고 갈팡 질팡하는 것만큼 괴로운 것이 없다.
제대로 가고 있다는 확신이 있을 땐 페달을 밟고
잘못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멈추고 방향을 돌리면 되지만
어디로 가는지를 모르는데 움직여야만 한다면
가긴 가는데 가다 서다 머뭇거리다 기웃거리다 그런 것이다.
지금 내 삶이 딱 그런 지점에 있는 것만 같다.
이대로 밟아도 되는걸까?
여기서 이제 그만 브레이크를 밟고 유턴이라도 해야 하는 건 아닐까?


이런 고민들도 다 지나가게될까?
내가 이런 괴로움 끝에도 그 답을 못찾으면 어쩌나.
시간이 언제나 이런 오후와 같지 않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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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수

■ 삶/II. 삶 2017. 5. 8. 00:52



시험이 정말 코앞이라 연휴에 바짝 공부하려고 했는데
연휴내내 미드만 주구장창 봐버렸다.
아 나도 시험 앞에서 이렇게 나태할 수 있구나...
내일 해야지 내일 해야지 하다보니 5일뒤가 시험이네....

 


그건 그렇고

 

양주시립 장욱진미술관에 다녀왔다.
그 곳에서 가장 좋아하는 작품 <가로수>를 만났다.
<가로수> 말고도 장욱진 화가 특유의 사랑스럽고 따뜻하고 편안한 기운이 오롯이 느껴지는
좋은 작품들이 많았다.
미술관 뿐만 아니라 산에 둘러싸인 미술관 풍경도,
조각공원도, 들판도, 커다란 유리에 햇살이 가득 스며드는 카페도.
작품만큼이나 미술관과 이를 둘러싼 풍경이 아늑하고도 따뜻해서 참 좋았던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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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 뒤 재지 않고 사랑에 빠지는 것처럼

가끔은 뒷일을 생각하지 않고 우울에 빠지고 싶다.

 

 

밝고 건강한 정신을 위해서

자신을 사랑하라고 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라 하고,

많이 웃으라 하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라 하는데

그래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며 사는데

가끔은 정말 내게 밀려오는 허무함 속에서

그냥 한없이 허우적거리고 싶어.

 

 

무기력함을 누르고 꾸역꾸역 일상의 의무를 다하는 거 말고,

나를 사랑하려고 나의 사랑스러운 구석을 찾는 거 말고,

슬프고 비관적인 생각이 들 때 애써 떨쳐보려 스스로 파이팅을 외치는 거 말고,

허무한 생각에 빠지면 만사에 의욕을 잃을까봐 재빨리 나를 단도리하는 거 말고,

 

 

 

 

정말 가끔은

그래, 무기력함에 백기를 들고

내가 해야할 몫의 일을 모두 포기하고,

나를 미워할수 있을만큼 내 모든 것을 미워하고

인생이 잘못되어 간다고 한탄하고

나란 인간은 왜 이 모양일까 내 탓을 하면서  

허무한 마음이 들면 허무한대로,

무기력하면 무기력한대로

슬프면 슬픈대로

그냥 그런 우울함에 마음을 맡기고 그 안에 드러누워버리고 싶다.

 

 

-

 

 

다만, 그렇게 우울함에 너무 마음을 맡기면

그 결말이 비극이 되니까 그래서는 안되겠지만.

 

우울함에 빠져도 힘들고

우울함에 빠지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힘들고.

 

-

 

 

나는 '어른'이 되는 과정의 성장통을 오래 그리고 강하게 앓고 있는게 분명하다.

사회인이 되고 나서 생각하는 많은 주제가 결국 '어른이 된다는 것'으로 귀결되고

어른이 되는 과정, 어른이 되었다는 자각, 어른이 되어 느끼는 부담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대개는 그 방향이 부정적이네.

 

 

어른은 외롭고 괴로운 것이라고,

나는 영화 <맨체스터 바이 더 씨>를 보고 생각했다.

많은 사람들은 가족이 세상을 떠나고 남겨진 이들의 슬픔과 괴로움에 대해 얘기했지만

나는 보는 내내 어른이라는 존재의 본질적인 외로움과 괴로움에 대해서 생각했다.

 

 

-

 

 

학교를 떠나 사회생활을 한지 이제 제법 되었고,

많은 친구들이 결혼을 하고 엄마가 되고,

나의 인간관계가 자의반 타의반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궁극적으로는 좁아지고 있다.)

나만 그런 것은 아니니 이것도 어른의 자연스러운 인간관계라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외롭다는 생각이 드는 것는 어쩔 수가 없었다.

인간은 원래 외로운것인걸 알면서도.

외롭다는 감정은 마음을 힘들게, 지치게 한다.

 

 

외롭고, 외로워서 슬픈 감정이 밀려올 때

생각한다.

그래도 우주는 너를 사랑한다고.

부모님도, 하나님도, 예수님도, 부처님도 아니고

이 우주가 너를 사랑한다고.

 

 

그럼 내 눈에 보이지 않는 이 우주의 모든 별들이,

이 우주를 이루는 모든 생명과 시간과 공간까지도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그런 생각이 든다.

언제든 변할 수 있는 인간이 아니라,

단 한 명의 절대자가 아니라,

이 우주 전체가

나를 사랑하고 아껴주고 있다는 느낌.

 

 

인간이란 존재여서 외로울 때,

나란 존재가 스스로 미워질 때

나는 생각한다.

 

 

그래도 우주는 너를 사랑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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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집에 돌아와 다섯살 아이마냥 괜히 찡찡거리고서

이불을 들추다 끝내 눈물을 찔끔 흘렸다.

짜증이 났다. 그리고 조금 서글펐다.  

 



대학교 동창을 만났다.
이제 대학교 동창은 객관적으로도 오래된 친구가 되었다.
작년 3월 그 친구가 일하는 곳으로 찾아가서 밥 한 번 먹고
이렇게 개인적으로 시간내어 만나는 것은 1년만의 일이었다. 


그 친구와의 만남은 편안했다.

언제나 그랬듯이.
나도 인식하지 못하고 있던 내 마음의 경계를 다 내려놓는 느낌이다.
그냥 소소한 사는 얘기일 뿐인데 마음이 편안하고 심지어 안전하다는 안도감이 든다.
평소라면 늦은 시간에 입도 대지 않았을, 떡볶이까지도 아무런 걱정 없이 편안히 먹었다.

(이건 정말 엄청난 일이다.)


 

나는 -


아주 예전의 나로 돌아간 느낌이 들었다.

내 안에 숨겨져 있던 스무살의 내 마음을 꺼내올린것 같았다.

그리고 그 마음은 아주 오랜만에 느끼는 감정이었다.

우리는 현실에 있었지만 내 마음이 그랬다.

모든 것이 자연스러웠고

편안함, 안도감, 친밀감, 그런 감정들이 몽글몽글 나를 둘러쌌다.


보통 사람은 오래알수록 편안해지는 경향이 있지만
그 친구와 헤어지며 생각했다.
좋은 사람은 처음부터 좋고 끝까지 좋다.
오래 알아서 익숙해지는 것 없이도

그저 그가 좋은 사람이기 때문에,
혹은 나와 맞는 사람이기 때문에 계속 좋은 것이다.



집에 돌아오는 길은 3월 말 답지 않게 바람이 스산하게 서늘했다.

하지만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의 만남덕분에 추우면서도 추운 줄을 몰랐다.

마음 속 작은 난로에 불이 켜진 것처럼, 따뜻했다.

이 기분을 오래도록 느끼고 싶었다.


그리고 나는,

그 친구 옆에서 나도 모르게 마음의 경계를 풀었을 때,

그리고 내 안의 편안하고 따뜻한 온도를 느꼈을 때,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그동안 얼마나 보이지 않는 무의식적인 긴장감 속에서 살았나 깨달았다.
회사라는 곳에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도 친절하고 좋은 사람들이고

또 회사 밖에서 새로 만나는 사람들도 대개는 좋은 사람들이지만
나는 항상 긴장해있으면서 또 낯선 사람들에 대한 경계를 바짝 세우면서

그동안 피곤했었던 것이다.

살얼음같던 내 마음이 와장창 깨져버렸다.

 

 

이제 집에 돌아왔다.

마음은 여전히 따뜻했지만, 신데렐라의 마법은 끝났다.

나는 또 내일 그 날선 긴장과 불편한 사회 속으로 경계의 날을 바짝 세우고 가야만 한다. 

짜증이 났다.

아주 오랜만에 느낀 이 편안함이, 예전엔 당연했던 이 평온함이

이제는 아주 가끔만 느낄 수 있는 특별한 일이 되어버렸다는 생각에

그래서 서글퍼졌다.

이제는 어쩔 수가 도리가 없어서 짜증이 나면서도 서글프고 또 서러웠다.

 

 

갑자기,

추억들이 춤을 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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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으로 가득한 사무실 공간이 너무 칙칙하게만 느껴져서
꽃을 한 두 송이 공병에 꽂아두기 시작했다.

꽃집에 가서 그 순간의 마음을 잡아끄는 선명한 빛깔의 꽃을 고르고
유리병에 깨끗하고 차가운 물을 채워 꽃을 꽂고
마지막으로 꽃의 빛깔과 어울리는 가는 끈을 병목에 둘러 작은 리본으로 맨다.
그리고 매일 아침 컴퓨터를 켜면서
이 작은 꽃병을 들고나가 담겨 있던 물을 비우고
깨끗하고 차가운 물을 새로 담는다.

뿌리가 잘려나간 이 꽃들이 조금 더 오래 살아있기를 바라면서,
하루라도 더 생생하게 버텨주길 기도하면서,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매일 아침 잊지 않고 물을 비우고 새 물을 채운다.
아주 작고 사소한 일이지만 관심을 갖고 마음을 쓰고 정성을 들인다.

분명 돌보고 있는 것은 꽃인데
매일 아침 그 짧은 순간에 내 마음이 보듬어지는 듯한 그런 착각을 한다.
착각이 아니라 그런 느낌이,
물을 채우는 내 머리 위에서부터 어깨까지 차르르 나를 감싼다.

꽃을 위하여 물을 주는 데 되려 내 마음이 돌보아진다.
누구의 지시도 부탁도 아닌
오로지 내가 마음이 쓰여서 하는 이 작은 일로
꽃과 함께 내 마음도 보듬어진다.

꽃을 위하여 물을 주는가.
내 마음을 위하여 물을 주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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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짜리 여행을 위해서 프랑스어 학원을 다닐거란 얘기를 했더니
엄마는 엄마답게 이렇게 말(잔소리)했다. 

 


- 거기서 영어로 해도 되는데 한 두마디 하려고 시간들여 돈들여 학원을 다녀야겠니
- 차라리 그 돈으로 계속 영어를 하는 게 여러모로 더 효과적이고 나중에도 도움이 되지 않겠니
- 쓸모없는 것에 쓸데없는 것에 돈만 쓰는 것 같다.



어머니, 저는 이제 이렇게 대답합니다.


 

필요를 위해 공부하는 건 대학원 다닐때까지 질리도록 했어요.
미래에 필요할 것들을 배우느라
내가 정말 배우고 싶은 것들을 포기도 해야 했어요.
그래요, 그 때 필요한 것과 하고 싶은 것을 다 가르쳐주기에 생활비는 한정적이었고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엄마의 입장에서는 필요한 것을 가르쳐줄 수 밖에 없었다는 건 이해해요.

 

 

하지만 그 때 그렇게 해서 결국 내가 밥 벌어먹고 살만큼은 해냈으니
자유 시간만큼은 이제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살거에요.
(왜냐면 나는 내가 밥벌어먹고 사는 것도 하고싶어서 선택한 게 아니라 미래에 도움이 된다고 해서 선택했거든요.)
미래에 도움이 될(지도 안될지도 확실히 모르는 그런)거 말고요.
나는 현재를 살거에요.
그리고 그게 나를 미래에도 살아가게 할 거에요.

 

 



효용과 효과를 따지는 것은 주5일씩 회사에서, 회사를 위해, 회사에 의해 항상하고 있어요.
결과로 평가하는 것은 회사에서 돈 받으며 하는 일로 너무나도 충분해요.
내 삶은 이미 충분히 목표와 성과로 점철되어 있었어요.
제한된 시간과 자원안에서 가능한 실패하지 않고 효율적으로 목표를 이루는

그런 삶의 방식으로 훈련되고 그렇게 스스로를 최적화시켜 살아왔어요.
 


그러나 저는 생각합니다.
꼭 결과가 있어야만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요.
시도 그 자체와 중도 포기, 혹은 실패 그 어느 것도
나에게는 소중한 경험이고 중요한 의미라는 것을요.
나는 그것이 시간 낭비, 돈 낭비라고 생각지도 않아요.
그것이 내 인생을 풍부하게, 세상에 대한 내 시야를 폭 넓게 할 거에요.


나의 자유 시간 만큼은 엄마 보기에 쓸데없고 낭비같고

남는 것도 없고 몇 달 배우다 때려쳐서 배우나마나 하더라도

바로 지금 나를 위해서 하고 싶어요.
미래를 위해서 말고요.
나중에 필요할 것 같아서 말고요.
커리어에 도움이 되는 거여서 말고요.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은 효용도 효과도 인풋도 아웃풋도,
그런 것을 재야할 필요도 의미도 없어요.
그것으로 내가 행복할 뿐이에요.

그것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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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는 순간

■ 삶/II. 삶 2017. 2. 22. 08:43


죽는 순간을 선택할 수 있다면
나는 가장 행복한 순간에 죽고 싶다.
가장 행복한 순간을 미리 아느냐고 한다면
이제 더이상 여한이 없는 순간,
미련이 없는 순간,
나는 지금 이 찰나가 행복하고 이 순간이 끝나면
또 살아있으니 감당하고 버티며 살아야 하는 일상으로 돌아갈 일만 남았다는 자각이 드는 순간에,
'어짜피 살아보니 영원한 행복도 없고 영원한 사랑도 없고 영원한 만족도 없더라.'
이 순간 나는 행복하고 만족하니 여기서 내 인생에 박수를 보내며 끝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그 곳에서 안녕-  하고 싶다.

그런데 그게 어떤 순간인지 상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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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난은 칭찬보다 쉽다.
잘못을 가리는 데는 1개의 잘못으로도 충분하지만 잘함을 가리는데는 단 1개의 잘못도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얀 백지에 검은 점 하나가 찍히면 더이상 완벽한 백지가 아니듯이.
99점을 맞아도 1점이 틀리면 100점이 아니듯이.
99번을 잘해도 1번을 못하면 1번의 못한 것은 분명한데 잘한 것이 분명하다고 인정하기는 어렵듯이.

세상사가 그렇다.
잘한 것을 찾는 것보다 잘못한 것이 더 쉽게 찾아진다.
그러니까 우리는 스스로를 더욱 이쁘게 바라보고 좋은 점을 찾아내고 칭찬해주어야 한다.
나의 이쁨이, 착함이, 좋은 점이 몇 개의 잘못과 실수에 완전히 묻혀버리지 않도록.
열심히 들여다보고 찬찬히 살펴보아 스스로를 더욱 아끼고 사랑해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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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honey,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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