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으로 가득한 사무실 공간이 너무 칙칙하게만 느껴져서
꽃을 한 두 송이 공병에 꽂아두기 시작했다.

꽃집에 가서 그 순간의 마음을 잡아끄는 선명한 빛깔의 꽃을 고르고
유리병에 깨끗하고 차가운 물을 채워 꽃을 꽂고
마지막으로 꽃의 빛깔과 어울리는 가는 끈을 병목에 둘러 작은 리본으로 맨다.
그리고 매일 아침 컴퓨터를 켜면서
이 작은 꽃병을 들고나가 담겨 있던 물을 비우고
깨끗하고 차가운 물을 새로 담는다.

뿌리가 잘려나간 이 꽃들이 조금 더 오래 살아있기를 바라면서,
하루라도 더 생생하게 버텨주길 기도하면서,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매일 아침 잊지 않고 물을 비우고 새 물을 채운다.
아주 작고 사소한 일이지만 관심을 갖고 마음을 쓰고 정성을 들인다.

분명 돌보고 있는 것은 꽃인데
매일 아침 그 짧은 순간에 내 마음이 보듬어지는 듯한 그런 착각을 한다.
착각이 아니라 그런 느낌이,
물을 채우는 내 머리 위에서부터 어깨까지 차르르 나를 감싼다.

꽃을 위하여 물을 주는 데 되려 내 마음이 돌보아진다.
누구의 지시도 부탁도 아닌
오로지 내가 마음이 쓰여서 하는 이 작은 일로
꽃과 함께 내 마음도 보듬어진다.

꽃을 위하여 물을 주는가.
내 마음을 위하여 물을 주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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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honey,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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