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김포공항역에 갔다가 어느 가게에서 커다란 수하물용 캐리어를 잡고 있는 사람을 보고서 약간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코로나 이후로 제주도 가느라 비행기는 두어번 탔지만 여행용 캐리어와 함께하는 여행의 기억은 어느새 저만치 희미해져버린 것 같다.
수하물용 캐리어를 끌고서 공항에 가고 싶다. 발권할 때 캐리어 올리라고 하면 번쩍 들어서 올리고 싶다. 도착해서 내 캐리어 언제 나오나 오매불망 기다리고 싶다. 트렁크에 실을 때, 기차에 실을 때 아 내가 할수 있다고 읏챠 들어서 넣으면서 힘 자랑 좀 하고 싶다. 숙소를 옮길때마다 짐을 쌌다 풀었다 하면서 내가 얼마나 테트리스를 잘하는지 보여주고 싶다. 캐리어를 들었다 놨다 올렸다 내렸다하면서 온몸으로 여행 중이라는 느낌을 만끽하고 싶다.
올 해 여름은 입사 이래로 해외여행 없는 첫 여름이었고 역대 가장 긴 장마로 내내 비만 내리면서 여름다운 느낌도 없었는데 처서가 지나자마자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아침과 밤으로 찬 기운의 바람이 분다. 이렇게 2020년 여름이 끝나는구나.
유난히도 맑고 청량했던 어제, 정말 매일이 이렇기만 하면 소원이 없을 것만 같던 날씨. 자전거를 타고 잠수교를 가로질러 강변북로 아래의 한강공원까지 달려갔다왔다. 일본 애니메이션에서나 봤을 법한 분홍색 노을이 물들여가는 서울의 풍경을 보니 노을때문인가, 평소와 다른 곳에서 보아서인가- 이 곳에서 보는 서울의 풍경도 참 아름답구나.
항상 차를 타고 다녀서 비슷한 속도로 비슷한 풍경을 보고 다녔는데 자전거를 타고 한 바퀴 한 바퀴 나아가며 보는 세상은 차를 타고 보는 세상과 또 다르다. 새삼 서울이 이렇게 커다란 도시였구나, (고작 잠수교 하나만 건넜을 뿐이지만) 강북의 자전거도로는 이런 풍경과 이런 느낌이구나. 새삼 강남과 강북이 내 마음 속에서 또렷하게 나뉘어져 다가온다. 차로 다니면 거기서 거기인 땅일 뿐인데 내 발로 가려니 강북은 내 세계와는 또 다른 세상인 것만 같다. 나와는 다른 삶의 양식을 가진 사람들이 (비슷하지만) 지금 나와는 또 다른 그들만의 문화를 만들어내며 살아가고 있을 것만 같다. 같은 공간에서 느끼는 낯설고 또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이 생경한 느낌,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