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람 없는 일요일 아침,
느즈막히 일어나 암막커튼을 걷어보니
하늘은 맑고 푸른데 창 밖의 커다란 황금빛 나무잎들이
바람에 싸아아아아 - 싸아아아아 - 마치 파도가 치는 듯 소리를 내며 찬란하게 흔들리고 있다.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해서 내가 고른 첫 신혼집.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조건은 예산, 동네, 역까지의 거리, 회사까지의 이동거리, 그런 것들이었는데
(물론 그런 유용함은 매일매일 체감하고 있다)
이 집에 6개월 가량 살면서 느끼는 가장 큰 행복은
앞에 가릴 것 없이 시원하게 뚫려있는 공간과 그 사이 우리 창문까지 높게 뻗은 커다란 나무의 풍경이다.
여름에는 시원하고 푸르른 계절을, 가을에는 황금빛으로 물들어가는 계절을 바로 눈 앞에서 감상하는 기분이란.
서울 한복판에 살고 있지만, 어떤 날에 교외에 있는 듯, 또 이렇게 바싹 마른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릴 때는
밴쿠버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가고싶다)
창틀에 앚아 저 커다란 나뭇잎들이 바람에 차르르 차르르 흔들리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노라니,
문득 - 이 바람에 저 잎이 다 떨어지고 나면 한동안은 황량한 나뭇가지만 뻗어있을테고,
또 이런 풍경을 보려면 겨울과 봄과 여름의 사계의 시간을 모두 지나 보내야 하는구나.
그렇게 가을을 두 번 보고 나면, 어쩌면 이 곳을 떠나야만 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살아보니 너무 좋은 이 집의 단 한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내 집이 아니라는 것.
집주인은 이 집을 보지도 않고 샀다던데, 정말 운도 좋지.
같은 아파트라도 같은 동이라도 층 수에 따라 라인에 따라 보이는 풍경이 다른데 어쩜 이 집을 딱 골랐을까?
여튼, 그렇게 생각하니 이 집에서 이런 풍경을 보며 지낼 수 있는 시간도 빠르게 줄어두는구나. 아쉽다.
처음 집을 계약하고 신혼집이라고 도배를 하고 청소하러 갔던 초 봄의 어느 늦은 밤,
밖은 캄캄하고 집 안은 가구 하나 없이 덩그라니 휑한 가운데 내가 과연 결혼생활을 잘 할 수 있을까 두려워
방 닦다 말고 주저앉아서 엉엉 운 적도 있었는데.
살다보니, 도리와 함께하는 즐거운 추억들이 조금씩 조금씩 쌓여가면서 어느 새 이 집에 대한 애정이 많이 들었다.
나중에 이 곳보다 여건이 더 좋은 곳으로 갈 수도 있겠지만 - (지금 집값/전세값 생각하면 ....)
아파트 한 채만큼 커다란 나무 전체가 가을빛으로 물들어 시원한 바람소리를 내는 풍경을 가진 집은,
또 만나기는 어렵겠지.
먼 훗날, 이 풍경이 그리워질까봐 덜컹거리는 방충망을 열고서 오늘의 풍경을 소리와 함께 동영상으로 담아보았다.
창 밖의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서, 넋놓고 하염없이 보게되는 그런 집에 살았었다고 기억해야지.
여름은 짧았던 것 같은데, 올해 가을은 끝날 듯 끝나지 않고 여전히 가을 한 가운데 인것 같은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