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 온에어

2015.12.21. (4日)

 

 

 

해가 지고 있기는 하지만, 구름이 가득끼어 노을은 볼 수 없을 것 같은 날씨다.

이제 슬슬 오늘의 마무리를 해야겠다.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몰리기 전에 우메다 스카이 빌딩의 공중정원에를 갔다..

 

 

크리스마스를 맞아 소원을 적는 이벤트를 하고 있었다.

 

 

나의 소원은, 행복- 건강- 사랑. 욕심이 많은가?

 

 

공중정원 전망대에 올라서니 오사카의 전경이 내려다보인다.

360도로 돌아가며 그 모습을 바라볼 수 있다.

 

얼핏 한강같은 느낌도 난다. 조금 작은 한강.

 

 

번화한 우메다 지역. 빌딩 빛이 밤을 밝힌다.

 

 

공중정원에서의 야경은, 크게 인상깊지는 않았다.

그래도 그냥 스치기에 아쉬워서 들렀을 뿐.

 

이제 가는 곳은 아메무라 지역의 <타코타코킹>

에어비앤비 주인이 맛집으로 추천해준 곳이다.

오사카에 4박 5일 있으면서 가장 유명한 난바와 신사이바시지역은 가보지 않았는데

타코타코킹에 찾아가면서 처음으로 신사이바시의 뒷골목을 걸어보았다.

마치..홍대같은 느낌?

 

구글지도를 보면서 한참 따라가니, 아메무라 지역 뒷골목에서 드디어 타코타코 킹을 발견했다.

1층엔 Bar석만 있을 정도로 아주 비좁은 곳이었는데

다행히 1자리가 있어서 비집고 들어가 앉았다.

 

그런데, 여기 - 뭔가 아담하고 정겹다.

정말 홍대에 온 것 같다.

옛날 홍대.

내가 대학다닐 때 알던 그런 홍대.

 

 

여기 타코타코 킹

 

 

밀키스 맛이 나는 츄하이

 

 

원래 뒤에 문어를 찍으려고 했는데 귀여운 직원들.

 

작은 Bar 앞에 옆 손님들과 다닥다닥 붙어 앉았다.

모던하거나 세련되지 않지만, 손때와 정이 묻은 것 같은 이 자리가 왠지 정감이 간다.

한국인이라고 했더니 구글 번역기에서 돌린것 같은 한국어 메뉴판을 줬다.

타코야끼 6개에 300엔. 우리 돈으로 3000원.

소스를 고르고 토핑까지 고르고 츄하이도 한 잔 시켰다.

3일 연속 술이라니!

한국에서 2015년동안 술을 마신 날이 3일도 안될 것 같은데

일본에선 3일 연속 내리 술을 주문하고 있다 .

드디어 나왔다. 타코야끼!

 

 

타코야끼는 사랑입니다!

 

 

아담하고 코지한 분위기의 타코타코 킹.

 

내가 지금까지 타코야끼를 먹어본 것은,

언제나 종로 3가에 있던 타코야끼 트럭에서 만든 거였다.

그마저도 벌써 10년 전에 먹었지만.

김이 호호 나는 타코야끼를 입안에 넣어 깨물면 그 안에서 뜨거운 반죽과 문어가 입안으로 퍼지는 걸 좋아했다.

입안에 넣고 뜨겁다고 뜨겁다고 하면서도 그 뜨거운 타코야끼 맛을 참 좋아했다.

한국에서 먹어본 타코야끼가 전부여서 그게 타코야끼라고 믿으면서 말이다.

 

다행히 내가 지금까지 타코야끼라고 믿고 먹어온 것과

지금 내 앞에 있는 오사카의 타코야끼는 많이 다르지 않다.

갓 구워낸 타코야끼위에 바베큐 소스와 가츠오부시. 그 안에 들어있는 문어까지.

정말 맛있어서 순식 간에 6개를 다 먹어버리고야 말았다.

6개면 내 저녁으로는 충분했지만, 아쉬운 마음에 4개를 더 사먹었다.

친절하고 장난기 가득한 가게 직원들에게 엄지를 몇 번이나 치켜세우면서.

 

 

좋았다.

맛있었고, 또 편안했다.

관광지에서의 일본이 아니라

사람사는 일본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이런 여행이 좋다.

가이드 북에 써있는 곳 말고,

정말 현지인들이 가는 곳.

현지인들을 위해 열려있는 곳.

 

 

 

그리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

그리 늦지 않았는데 길거리는 한밤중이 된 것 처럼 캄캄하고 한국에 비하면 많이 조용했다.

나는 우산을 손에 꼭 쥐고서 걸어 걸어 숙소를 지나

다시 한 번 오사카 성 공원에를 갔다.

 

관광지기도 하고, 공원이기도 하니 밤에도 사람들이 많을 줄 알았는데

8시 조금 넘은 시간이었는데도 오사카성 공원은 귀신이라도 나올 것 처럼 인적이 없었다.

여행지에서는 안전이 최우선이라

이렇게 캄캄하고 인적드문 곳에 혼자 오는 것은 현명한 생각이 아니지만,

무슨 무대뽀같은 심정이었는지

나는 불도 거의 없는 캄캄한 오사카 성 공원에 혼자 걸어들어갔다.

엄마가 알게된다면 지금이라도 등짝을 맞을 일이다.

 

그리고 환히 밝혀진 오사카성을 보았다.

아침의 그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리던 오사카성 주변은 오싹하리만큼 고요했다.

조금 섬뜩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혼자여서 좋았다.

아침에 사람들의 분위기에 쌓여 보이지 않던 오사카 성만의 오롯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것 같다.

 

 

 

 

 

 

오전에 내린 빗물이 고인 웅덩이에

오사카성이 비쳤다.

바람한 점 없어 흔들림 없는 물의 표면에

오사카상이 그대로 비쳤다 .

그리고 나의 갤럭시는 그대로 잠들었다.

 

 

 

 

이것은 그림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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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 온에어

2015.12.21. (4日)

 

 

 

월요일 아침.

오랜만에 잠에서 깨지 않고 아침까지 푸욱 잠들었다.

물론 매일 깨던 시간이 있어 눈을 뜨고, 다시 눕고를 반복했지만.

 

커텐을 여니 일기예보대로 밖에서는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었다.

비도 오고, 할 것도 없고, 하고 싶은 것도 없고

그냥 집에 가고 싶다 생각했지만

천천히 일어나 샤워하고 나오니 그 마음이 조금 사그라들었다.

 

집 주인에게 우산을 빌려 나왔다.

어제 그제 오가면서 봐둔 집 앞의 프랑스 베이커리에서 조용히 커피를 마시고 싶었는데

이런, 오늘 문을 안열었다.

 

 

아, 오늘은 정말 아무런 계획도 없는데.

 

 

문닫은 베이커리앞에서 몇 초간 서성이다 나는 발길을 돌려

에어비앤비 주인이 추천해준 Tea Cafe까지 걸어올라갔다.

비는 내리고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발걸음은 가볍다.

 

그런데 막상 그 Tea Cafe는 완전 영국식 찻집이었고 나는 따뜻한 라떼 한 잔이 먹고 싶었다.

한숨 쉬며 돌아서려는데 바로 그 건물 옆에 사람들이 꽤 북적거리는 -

그리고 신사동에 있을 법한 브런치 가게가 있어서 조심이 문을 열었다.

 

 

- 저..커피만 마셔도 되나요?

 

 


 

분주한 오픈 키친. 그런데 왠지 낯익다.

 

 

 

따뜻한 분위기의 실내. 날씨가 좋으면 테라스에 나갔을텐데.

 

 

 

따뜻한 카페라떼를 한 잔 시키고서, 오랜만에 평일의 여유를 즐기고 있다.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니- 꼭 해봐야 하는게 뭐가 있을지 생각하게 되고, 마음이 조급해지지만

그러지말자.

따뜻한 라떼를 한 모금 마시니 조급했던 마음이 사르르 녹아내린다.

일본에 와서 꼭 일본스러운 것 하라는 법 있나.

그냥 휴가라고 생각해.

하고 싶은 걸 해.

그 어느 강박관념도 갖지 말아.

 

 

든든하게 차려진 함박스테이크 정식

 

 

 

이 곳 카페 이름은 Northshore.

늦게 일어나 늦게 아침을 먹기도 했고, 커피까지 마셔서

점심은 나중에 먹으려고 했는데

옆 사람들이 먹는 브런치 정식이 너무 괜찮은 것 같아서

나도 결국 함박스테이크 정식을 시키고야 말았다.

 

이 여유.

이 낯선 곳에서 여유와 평안을 느끼는 이유는 뭘까.

일하지 않는 평일은 시간이 천천이 흐른다.

월요병에 시달리지도 않고,

만원 지하철에서 치이지도 않고,

1시까지 점심시간을 맞출 필요도 없다.

 

나는 천천히 커피를 마시고

천천히 일기를 쓰고

천천히 식사를 한다.

나는 아직 오사카에서 오사카성 말고는 본게 없지만

지금 이 순간이 너무 좋다.

 

 

-

 

느긋하게 점심식사를 마치고, 나는 전철을 탈 수 있었지만

비도 그치고 해서 천천히 우메다역까지 걷기 시작했다.

그저께 아주 오랜만에 그것도 너무 많이 걷는 바람에 골반이 아팠고

여행하는 내내 아프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오히려 점점 통증이 줄어들고 걷는 걸음이 경쾌해졌다.

통증에서 벗어나니 한 결 마음이 가볍다. 별거 아닌데도 행복하다.

그렇게 마음 편히 걸으며 우메다 역에 도착했다.

 

 

 

한큐 백화점에서 엄마와 아빠에게 줄 손수건을 사고 Grand Front Osaka 건물로 들어왔다.

쇼핑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나는 9층에 있다는 야외정원에 가고 싶었다.

 

 

그랜드 프론트 오사카

 

 

 

 

그랜드 프론트 오사카 9층 정원에서 바로본 전경

 

 

 

Grand Front Osaka 9층 정원에 나와 우메다역 근처의 광경을 내려다보며

비가 그친 뒤의 상쾌한 바람을 즐기고 있다.

뭔가 명상을 해야 할 것만 같은 배경음악과 함께.

 

오전 내내 흩뿌리던 비가 멈췄다.

아직도 구름이 가득 하지만,

이 바람에 따라 구름이 서서히 몰려가고 아기같은 하늘이 드러났다.

 

역 근처여서 끊임없이 전철의 덜커덩 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보이지 않지만 구름 위를 날아가고 있을 비행기의 소리도

저 공기를 뚫고 들려온다.

이 곳엔 나말고는 아무도 없다.

사각사각 거리는 펜 소리마저 들릴 정도로.

 

 

한참을 홀로 바라보았던 그 하늘.

 

 

좋다.

이 월요일에 천천히 일어나 원할 때 식사하고 빗속을 걷는 하루.

 

구름이 황금빛으로 물든다.

오후 4시 20분.

공항에서 내려 노을이 진다고 생각했던 시간이다.

여기 이렇게 앉아있으니 참 좋다.

내 머리 위로 펼쳐진 하늘이 다 내 것 같다.

저 멀리서 들리는 차소리, 전철소리가 아득해서

현실에서 떨어져 있따는 실감이 들게 한다.

최근 여행다니면서 가장 일기를 많이 쓰는 여행 같다.

그만큼 나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시간이 많았다.

 

난 오늘 비가 와서 참 좋다.

날씨가 좋았으면 뭐라도 밖에서 더 해야하나 싶어서

오사카 만에 가야 하나 아님 오사카성 공원을 돌아야 하나

안절부절하고 웬지 둘 다 해야할 것만 같아서

아침 일찍 시간 아끼려 일찍 일어나 나왔겠지.

 

다행이다.

비가 와줘서.

날이 흐려서.

푹 자고,

한참을 누워있고,

생각 없이 걸어다니고,

해가 질 때까지- 이렇게 앉아서 기다릴 수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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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 온에어

2015.12.20. (3日)


 

료안지에서 나와 버스를 타고 기온거리로 되돌아갔다.

주말에 쉬지를 못하고 오사카와 교토를 오가며 걸어다녔더니 피곤했나보다.

잠깐 버스 창문에 머리를 기대고 있었는데, 눈을 떠 보니 어느 새 목적지 근처에까지 왔다.

 

 

오늘의 저녁식사는 '니시키 시장' 에 있는 카츠쿠라.

회사 과장님이 돈까스가 맛있는 집이라고 추천해줘서 찾아왔다. 

약간 고급져보였는데, 어짜피 하루 종일 굶은터라 저녁 한 끼는 제대로 먹어야 하지 않나.

 

 

카츠쿠라

 

 

 

작은 히레까스 정식을 주문했다.

 

 

 

바삭하게 튀겨진 히레까스

 

 

약간 저녁시간보다 이른 시간에 왔던 터라, 나는 대기 없이 바로 자리에 앉아 피곤하고 허기진 배에

갓 튀겨져 나온 히레까스를 채웠다.

돈까스 종류뿐만 아니라 양도 고를 수 있었는데, 양에 따라 가격이 달라져서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는 교토에서 유명한 산죠오하시 스타벅스에 가려고 했지만 오사카로 돌아가는 시간을 고려해서

니시키 시장에 근처에 있는 스타벅스에 들어갔다.

저녁도 먹었는데 굳이 커피가 마시고 싶었던 것도 아니었다.

 

나는 오늘 여기 교토에서 해야만 하는 미션이 있었기 때문이다.

작년에 현장연수를 함께 갔던 회사 동기가, 내가 오사카와 교토에 간다고 했더니

자신이 교토에서 사온 시티 텀플러와 그 안의 쿠폰을 주면서

꼭 교토에 가면 이 쿠폰으로 음료를 한 잔 마시라고 했다.

그래서 나, 하루종일 이 시티 텀블러를 들고 돌아다녔다.

 

 

 

교토 스타벅스에서 교토 텀블러에 담아 마시는 라떼 인증샷.

 

 

비록 산죠오하시점에는 가지 못했지만,

씨티 텀블러를 내밀자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그리고 깍듯이 웃으며 건네주던 교토 스타벅스 스태프들의 서비스,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이제 여행의 반이 지나갔다.

Full day로 3일. 총 4박 5일의 여행이.

 

항상 해외여행은 2주를 꼬박 채워서 해왔기에 3일은 짧지 않을까 걱정했었다.

하지만 오사카에 도착한지 3일째만에, 나는 한국에서의 어두운 나의 기운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한국은 여전히 변함없이 움직이고 있을텐데,

시차도 나지 않는 2시간 거리의 도시에서

나는 흠뻑 여행의 기분을 느끼고 있다.

 

이 곳의 낯섦보다도 익숙한 곳에서의 벗어남이 더 크게 와닿는 것도 같다.

변화가 필요한가보다.

그것이 직업을 바꾸는 것인지,

다른 나라에서 사는 것인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변화가 필요한 시점인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오사카 여행을 선뜻 결정하지 못한 이유 중 하나는,

혼자서 하루종일 무료하게 돌아다니는게 싫었기 때문이다.

뉴욕에서도, LA에서도 혼자 있는 그 하루가 너무 싫었다.

그런데 말도 안통하는 도시에서 혼자 5일이라니!

 

하지만 왜일까.

이번 여행은 전혀 외롭지 않다.

일본이어서?

핸드폰으로 친구들과 여전히 연락중이어서?

아니면 이제는 혼자인게 익숙해져서?

 

여전히 스미마센과 아리가또고자이마스를 빼면 할 줄 아는 말은 단 하나도 없지만

그리고 나는 노래조차 듣고 있지 않지만.

혼자 오가는 순간들이 나쁘지 않다.

아니, 오히려 좋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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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 온에어

2015.12.20. (3日)


 

날이 참 맑다.

창밖의 풍경이 한국인듯 일본인듯 하면서

일본 같다.

 

 

금각사는 교토에서도 약간 서북쪽에 동떨어져있다.

버스를 타고도 한참을 가야 한다.

창밖의 날씨는 화창하고, 버스에 타고 한참을 가려니 노곤노곤하니 졸립다.

한 30~40분을 갔을까, 교토의 관광지가 아니라 교토의 사람 사는 곳들을 지나

드디어 버스는 금각사(킨카쿠지) 앞에 멈춰섰다.

 

 

 

푸르른 금각사 입구 전경

 

 

 

금각사 안으로 들어가니, 오래 걸을 것도 없고 관광객들이 움직이는 방향으로 따라가면

호수 가운데서 금색으로 반짝이는 금각사를 만날 수 있다.

 

 

잔잔한 호수 위의 화려한 금각사

 

 

 

바람도 불지 않고 물결이 잔잔해서 모든 것들이 그대로 비친다.

 

 

 

멋드러진 소나무 사이의 금각사

 

 

 

부적같이 생긴 이 것은 금각사 입장권이다. 은각사 입장권도 비슷하다.

 

 

 

소나무 사이의 금각사. 개인적으로 소나무가 더 멋있는건 왜일까.

 

 

 

 

금각사와 함께 인증샷

 

이름부터 찬란한 금각사.

교토에서 청수사(기요미즈데라) 다음으로 금각사(긴카쿠지)가 가장 유명하다고 하는데,

이 금으로 뒤덮인 절 하나를 보려고 관광객들은 발 디딜 틈이 없다.

비약일수도 있지만, 마치 봄 가을에 앞 등산객 꽁무니만 보고 쫓아가는 등산길 같은

그런 느낌을 받았다.

유명하다고 해서 오긴 왔지만, 남는 거라고는 엽서에 나올법한 이쁜 사진들 정도인걸 보면

내 여행의 취향도 점점 확고해지는 것 같다.

 

 

팥(?) 단고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했는데

미식여행은 또 내 타입이 아니어서

여행하다보면 끼니를 대충 때우게 된다.

특히 해가 짧은 겨울엔 중간 중간 당만 보충하면서 이동하는데

대신 평소 다이어트하느라 참아야 하는 간식들을 마음껏 먹을 수 있다는 즐거움이 있달까.

 

 

안녕, 두더쥐 친구?

 

 

금각사 다음 갈 곳은 '료안지'

역시나 에어비앤비 주인 Mark가 추천한 곳.

Mark의 취향도 한적하고 느긋하게 정취를 즐기는 편인 것 같아서

(사실 더이상 교토에서 가고 싶은 곳도 없었다.)

금각사에서 그리 멀지 않은 료안지에 가기로 했다.

구글맵으로 검색해보니 걸어서도 갈 수 있는 거리라

금각사에서부터 료안지까지, 천천히 골목 골목을 누비며

자유를 만끽하면서 그렇게 걸어갔다.

 

료안지 가는 길

 

 

 

참 예쁜 대문

 

 

 

금각사에서부터 료안지까지

구글맵이 가르쳐주는 최단거리를 무시하고 마음껏 골목을 쏘다니며 걸었다.

영화에서 애니에서 보던 그런 일본의 골목들.

나는 멋드러지게 꾸며놓은 관광지보다, 사찰보다도

이런 사람 사는 그대로의 모습을 엿보는게 더 좋다.

 

료안지 가는길에 리츠메이칸 대학을 보았다.

UBC 시절 기숙사 중 하나였던 리츠메이칸 대학이 교토에 있는 대학이었다니!

별거 아니지만 묘한 우연을 신기해하며 드디어 료안지에 도착했다.

 

 

 

 

 

늦가을이 한창인 료안지의 호수

 

 

 

금각사도 그렇고, 료안지도 그렇고 사찰보다도 호수와 그 풍경이 참 아름다웠다.

특히 료안지의 호수는 숲에 둘러싸여 있어서 훨씬 더 아늑하고 평화롭달까.

 

 

료안지의 유명한 정원

 

 

 

 

대청마루에 앉아 돌로 된 정원을 감상하는 사람들

 

 

 

 

호수를 한 바퀴 걸어나오며.

 

 

사실 금각사와 료안지 부분은 내 여행일기에 단 한 줄도 적혀있지 않다 .

아마 내가 정말 가고 싶어서 간 곳이 아니어서일수도 있고,

명성에 비해서 딱히 내게 와닿는 점이 없어서였을 수도 있고.

누군가 교토에서 어디갔다왔어? 라고 묻는다면 금각사와 료안지의 이름을 댈 수는 있을 정도.

 

 

오늘이 교토에 오는 마지막 날이니,

이제 교토에서의 미션을 행하러 가야겠다.

 

첫번째는 카츠쿠라에서 돈까스를 먹는 것.

두번째는 교토의 스타벅스에 가서 시티 텀플러에 커피를 마시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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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 온에어

2015.12.20. (3日)


 

 

오하이요 고자이마스

 

 

오사카성 가는 길 자판기에서 뽑은 로얄밀크티!

 

오하이요 고자이마스!

일본어 아침인사가 생각이 안나더니, 드디어 생각났다.

 

오늘은 일요일 아침.

날씨는 더할 나위 없이 상쾌하다.

코 끝의 공기는 조금 차갑지만 굉장히 청량해서

마치 밴쿠버에 온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오사카와 밴쿠버라니..

 

 

 

 

 

 

깨끗한 오사카의 거리

 

아직도 노란 은행나뭇잎이 12월의 가을느낌을 준다.

 

 

숙소가 있는 사카이스지 혼마치 역에서 오사카 성까지는 지하철로 한 정거장. 걸어서는 15분.

동쪽을 향해 걸었더니, 드디어 넓은 오사카성 공원이 등장했다.

잔디밭이 넓게 펼쳐진 공원을 보자마자,

아! 너무 좋다!!

행복해진다.

교토보다 여기가 더 좋아!

 

 

 

공원을 따라 들어가면 저 멀리 오사카성이 보인다.

너무너무 유명한 건물이라서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역시나 가까이 가니 아침 9시인데도 관광객들이 모여있다.

나도 관광객이지만.

이렇게 아침부터 돌아다니는 관광객은 중국인, 한국인 밖에 없어.

 

 

나는 어제 교토에서 만났던 동완이와 양갱이를 오사카 성으로 들여보내고

조심스럽게 오사카성 뒤쪽을 찾아 조용히 들어갔다.

 

어제 밤, 에어비앤비 주인인 Mark에게 오사카성 공원에 간다고 했더니,

성 안에는 (Mark기준) 별볼거 없는 박물관 같은게 있고, 사람만 디글디글 많은데

그 성 뒤로 돌아가보면 성벽을 따라 오사카 공원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장소가 있다고 했다.

마치 사유지처럼 느껴질 정도로 사람이 없는데, 절대 사유지는 아니고

또 사람이 없어서 정말 평화롭고 좋을 거라고.

 

 

오사카 성 뒤편에서 바라본 모습

 

 

 

낙엽에 어우러진 오사카성 참 이쁘다.

 

 

오사카 성을 끼고서 낙엽이 가득한 성벽길을 따라 조금 걸었는데,

갑자기 탁 트인 전경이 나타났다.

 

 

오사카성 뒤쪽 성벽에서 바라본 풍경

 

 

회사분이 꼭 교토 스타벅스에서 마시라고 준 교토 시티 텀블러도.

 

저 아래 공원이 한 눈에 내려다보인다.

가을이었으면 더욱 예뻤을텐데.

그래도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 사이로 아침햇살이 비추는 저 넓은 공원의 모습이 참 아름답고 평화롭다.

고마워, Mark!

여기 정말 계속 있고 싶다.

 

그리고 넓게 펼쳐진 공원. 실제로 보는게 훨씬 멋있었는데.

 

 

 

공원에서 주운 빨간 나뭇잎과 함께.

 

 

 

한적하기 그지 없었던 가을 정취의 오사카 공원

 

 

 

 아직 다 돌아보지 못했지만

오사카에서 제일 좋은걸 꼽으라고 한다면,

오사카 성을 둘러싼 오사카 공원을 고르고 싶다.

 

도심 한 가운데 커다란 나무들로 둘러싸여 있는 오사카공원은

날씨 좋은 날이면 언제든 가볍게 운동화만 신고 나와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걷고 싶은, 그런 곳이었다.

 

만약 내일도 날씨가 좋아 오사카에서 뭘 하고 싶냐고 한다면,

카메라 같은건 다 내려놓고, 청명한 늦가을 날씨를 즐기면서

따뜻한 라떼 한 잔을 손에 들고 혼자서 걷고 싶다.

 

왜 혼자이고 싶은지는 모르겠지만.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서

기다리지도 않고,

조마조마하지도 않고, 그냥 온전히 나로서만 그 시간을 즐기고 싶다.

 

 

 

어느새 마스코트가 된 것 같은 빨간 나뭇잎!

 

 

 

수 많은 인파들 사이에서 겨우겨우 인증샷!

 

 

 

아기자기한 푸드 트럭. 하늘과 나뭇잎과 햇살과 노란 푸드트럭.

 

 

 

나무 사이로 보이는 오사카 성

 

오사카 성 안에 들어가보지 않았지만,

단 1g의 후회도 없었다.

나는 오사카 성 뒤편 아무도 오지 않는 곳,

늦가을의 나뭇잎이 가득 밟히는 곳,

그 곳에서 홀로 일요일 아침, 오사카가 깨어나는 순간을 지켜보는 것이

훨씬 더 좋았다.

정말 좋았다.

 

 

봄이나 여름, 가을이면 더 좋았을텐데

겨울이다 보니 해는 짧고, 나는 이제 한큐패스를 마저 쓰기 위해 교토에 가야해서

오사카 공원을 다 둘러보지 못하는 아쉬움을 가득 안은 채

몇번이고 뒤돌아보면서 그렇게 공원에서 빠져나왔다.

 

 

괜히 교토에 2일씩이나 쓴다는 후회도 조금 들었다.

원래 휴가 계획은 오사카에서 그냥 서울에 있듯이 여유를 즐기는 거였는데

관광객 버릇을 못고치고 이틀 내내 정신없이 관광지만 둘러보는 일정이라니!

 

 

나오면서도, 이 공원 때문에 오사카에 또 오고 싶다고 생각했다.

 

참 아이러니하지.

어느 도시에나 있는 공원 하나 때문에 이 도시에 또 오고 싶다니.

하지만, 정말 다음에 온다면 나는 오사카성 공원에만 들러붙어 있을거야.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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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온에어

2015.12.19. (2日)



한큐레일을 타고 오사카에 돌아오니 저녁 6시였다. 


 

얼마나 피곤했는지, 돌아오는 길에 잠시 잠들었는데 그대로 오사카 한큐우메다역까지 도착해버렸다. 

 

아이들은 고베로 아경을 보러 가고, 나는 더 이상 골반때문에 걷고 싶지도, 걸을 수도 없다. 

 

플랫폼에 내린 채로 가이드북을 뒤져 한큐우메다 역 주변의 추천집을 찾아보았다.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 우메다 스카이 빌딩 지하에 오꼬노미야끼 맛집이 있단다. 


- 그래, 가서 저녁도 먹고 우메다 스카이 빌딩 39층의 공중정원에서 야경도 봐야겠다. 


한큐우메다 역에서 스카이 빌딩까지 고작 10분정도 거리인데 

골반 통증때문에 마치 만겁의 시간을 걸어 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작은 가방에 미러리스와 필름카메라를 두 개, 그리고 두꺼운 가이드 북까지 넣어다녔더니

이제는 가방을 어느 쪽으로 둘러메도 어깨가 천근만근 무거웠다. 

그렇게 오꼬노미야끼를 먹겠다는 일념 하나로 스카이 빌딩 지하를 찾아갔는데, 

나는 그 지하식당가에서 내가 가려는 곳이 어딘지 물어볼 필요도 없이 한 번에 찾아냈다.

줄이,어마어마하게 긴 가게가 딱 하나 있었다. 


가게 이름은 '키지'

 

 

 

손님의 80%가 중국인과 한국인이었다.


 

나는 가게 밖에서 한 시간을 기다리고, 또 가게 안에서 한 시간을 기다린 후에야 

 

 

Bar석에 소중한 자리 하나를 차지 할 수 있었다. 

 

돼지고기와 소고기와 오징어가 다 들어간 오꼬노미야끼를 하나 시키고서, 

 

쓸데 없이 맥주도 한 잔 시켰다. 

 

술을 좋아하지도 않고, 다 먹을 마음도 없지만 왠지 지금은 그러고 싶었다. 

 

일본에 온지 이틀 연속 술을 마시다니!

 

 

나도 이런 내가 낯설지만, 또 낯선 내 모습이 나쁘지 않다. 

 

여행지에서의 경계가 풀어진 새로운 내 모습이 실은 조금 더 좋았다.

 


오꼬노미야끼를 만드는 중

 

 

 

 

맥주와 오꼬노미야끼 1/4조각. 그릇에 그려진 캐릭터들이 귀엽다.

 

 


 

오꼬노미야끼는 내 앞의 철판에서 바로 구워지고 뒤집어지고 소스가 뿌려져 완성이 되었다.

 

그렇게 완성된 오꼬노미야끼를 온기가 남아있는 철판에 남겨두고

 

먹을만큼씩 잘라 덜어먹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생각해보니 아침도 파운드 조각과 콩 샐러드, 점심 대시 말차 카푸치노와 당고, 슈크림 먹은게 다였다. 

 

제대로 된 식사를 단 한끼도 하지 않은 채로 하루종일 걷기만 했던 것이다. 

 

거기다 2시간을 기다렸으니, 지금 내 눈앞에 놓인 것은 뭐든지 세상 최고의 맛일거다. 

 

그런 상황에서 먹은 키지의 오꼬노미야끼는 정말 정말 맛있었다. 

 

속은 도톰하게 씹혔고, 겉은 약간 바삭한 느낌도 들었다. 소스도 적당히 끈적거리며 입맛을 돋았다. 


내가 오꼬노미야끼라는 것을 먹은게 언제였던가. 

내 기억 속 첫 오꼬노미야끼는 일산의 라페스타 근처의 어느 2층 이자까야. 이름에 '하' 같은 글자가 있었던 것 같다.

술자리를 좋아하던 첫 남자친구가 데려간 그 이자까야에서 처음 먹어보았다.

아닐 수도 있다. 그런데 내 흐릿한 기억 속의 첫 오꼬노미야끼를 아무리 생각해도, 

그 친구와의 오꼬노미야끼가 내 기억력의 한계인 것 같다.

이제는 그 맛이 어땠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그 오꼬노미야끼를

이 오사카의 오꼬노미야끼 가게에서 떠올렸다. 

아마 그 뒤로도 오꼬노미야끼를 몇 번은 더 먹었을 텐데, 어째서 기억나는 건 그 오꼬노미야끼 하나인지.

이래서 사람들이 처음이 중요하다고 하는건가...

굳이 그 친구를 떠올리고 싶어서는 아니었는데, 

생각나는 기억이라고는 그것 밖에 없어서 조금 떨떠름했다. 


그러나 그 떨떠름함을 생각하는 순간은 찰나였다.

너무 배고팠고, 너무 맛있어서 나는 정말 순식간에 내 손바닥 두개 크기의 오꼬노미야끼를 해치워버렸다.


크리스마스 행사중이었던 스카이 빌딩 앞

 

 

 

 

 

 

나무에 달려있던 귀여운 스노우 맨

 

 

스카이 빌딩 앞은 크리스마스 이벤트들로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물씬 났다.

다만, 공중정원으로 가는 줄이 한눈에도 길어보여 일단 오늘은 철수하기로 했다.

우리나라도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이렇게 활기찰까?

내가 늙어서그런건지, 아니면 명동 같이 복작거리는 곳에 가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우리나라 경기침체 탓인지 것도 아니면 저작권때문에 캐롤을 틀지 않기 때문인지.

우리나라에서는 크리스마스 연휴 분위기를 거의 느끼지 못했는데

일본에서 아주 오랜만에 크리스마스 다운 분위기를 만끽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혼자있지만, 쓸쓸하지도 외롭지도 않았다.

그저 이 밝고 명랑한 분위기에 나도 같이 들떴다.

메리크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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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 온에어

2015.12.19. (2日)

 

 

 

우리는 요지야 카페에서 나와 다시 버스를 타고 교토의 관광 제1번지 기요미즈데라(청수사)로 향했다.

기요미즈데라까지는 조금 넓은 골목길을 따라 계속 올라가야 했는데

 

정말이지 관광객들과 장사꾼들로 정신없이 북적이는 통에

 

방금 전 요지야 은각사점에서 느꼈던 그런 고요함, 평온함이 와장창 박살나는 느낌이 들었다. 



빨간 기둥이 인상적인 기요미즈데라의 입구

 

 


 

기요미즈데라 입구에서 내려다본 풍경

 

 


 

동완이와 양갱이

 


 

아이들은 기요미즈데라 안을 굳이 둘러보기보다는, 니넨자카와 산넨자카를 돌아보고 싶다 했다.

나는 사실 기요미즈데라에서 노을 지는 모습을 볼 요량으로 왔으나 

날씨도 흐리고 해가 지기까지 한참이나 남은 듯 해서 나도 청수사의 코앞에서 이 아이들과 함께 발길을 돌렸다.

 

 



복작거리는 산넨자카에서


 


 

니넨자카와 산넨자카는 그야말로 관광객을 위한 전통거리 같았다.

우리나라로 치면 인사동이랑 비슷하다고 해야 하나.

아기자기한 기념품과 일본 전통 음식들 가게들에 손님들이 북적북적거렸다.

이런 쇼핑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런 거리를 좋아하겠지만,

 

이 길을 따라 걸어내려갈 수록 내 마음은 갈팡질팡하기 시작했다.

 

흐리던 날씨는 점점 개어 노을을 볼 수 있을 것 같았고, 

 

기요미즈데라 코앞까지왔는데 그냥 돌아가는게 계속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내일 교토에 다시 올꺼니까 일찍 혼자 오면 되지..라고 생각하면서도

 

이왕이면 여기까지 온 거 기요미즈데라는 보고 가고 싶다는 마음이 점점 간절해지기 시작했다. 

 

 

 


후지나미 니넨자카점

 

 


 

후지나미 가게의 미다라시 단고

 

 


 

맑게 개여가는 하늘

 

 


 

한복입은 동완군과 기모노를 입은 일본 여성들



여기 기요미즈데라와 니넨자카, 산넨자카에는 유독 유카타와 기모노를 입은 사람들이 많았다. 

유카타를 입고 교토를 구경하는 것이 관광객들 사이에서도 나름 트렌드인듯 했다. 

요즘 우리나라의 전주에도 한복 입고 관광하는 것이 유행이라고 하던데. 

어쨌든, 각 나라마다 그 고유의 전통과 문화를 지켜나간다는 것은 소중하고 중요한 것 같다.

물론 관광객의 입장에서, 유카타를 입고 다니는 사람들의 98%가 일본인이 아니라 중국인이라는 점은 좀 당황스러웠지만.

 

 



좁은 골목길에 모여드는 인파들

 

 


 

자, 나는 여기까지.

 

 


 

아직도 가을느낌의 교토

 

 


 

관광객으로 복작복작거리던 니넨자카와 산넨자카의 길이 끝나고, 

아이들이 기온거리로 간다고 할 때쯤, 나는 아무래도 다시 기요미즈데라에 가야할 것 같다고 했다.


- 누나는 사실 기요미즈데라의 노을이 보고 싶었는데, 날씨가 개는게 오늘 볼 수 있을 것 같아.


원래 일행이 아니니, 더 이상 같은 경로를 밟지 않는다고 해서 서운해할 일도

그들이 가고 싶은 곳에 같이 가지 않는다고 해서 미안해 할 일도 없었다.

그렇게 거기서 인사를 하고서 다시 기요미즈데라를 향해 걸어올라가는데

 

이유를 알 수 없지만 발길이,마음이 한 결 홀가분해졌다.

 

그 아이들이 나를 끌고 다닌 것도 아니었는데, 갑자기 자유로워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어제만 해도 혼자 여행 다니면 심심하고 지루하지 않을까걱정하던 나는 어디로 간걸까 

 

홀로 걷는 발걸음이 이렇게 경쾌할 수 있나. 

 

나는 되돌아온 길을 날아갈 것 같은 발걸음으로 걸어 올라갔다. 

 


털모자를 쓴 석상

 

 

 

유카타를 입은 멋쟁이 커플

 

 

 

노을 대신 햇살이 비치는 기요미즈데라

 

 

 

낡은 느낌이 먼저 드는 기요미즈데라의 전통 건물

 

 

 

이제 사진찍어줄 사람이 없으니 티켓으로 인증샷

 


 

기요미즈데라 안은 정말이지 오롯이 관광객만을 위한 곳 같았다 .

우리나라 경복궁이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뭔가 일본적인 것을 보러 왔는데, 

땅과 건물만 일본 양식이고 그 안을 채우고 있는 사람과 언어는

온통 중국어와 한국어 일색인 느낌. 

 

유카타를 입은 사람들도 중국어와 한국어로 대화를 한다. 

 

게다가 나뭇잎들이 다 떨어진 12월의 기요미즈데라 내부는 황량하고 쓸쓸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내가 바라던 노을은 보지 못했다. 


그러나 햇살에 잠시 황금빛으로 물드는 기요미즈데라의 전경

 


 

오색찬란한 유카타를 입은 아가씨들

 


 

 


 

 

 

기요미즈데라 내부는 별로 볼 게 없어서 한 번 둘로보고 나왔지만,

그 밖에서 나는 한참을 서성였다.

천천히 해가 지면서 종종 구름사이로 황금빛 햇살이 붉은 기요미즈데라의 건물을 비추었고,

관광객들로 정신없기는 했지만, 그들이 기요미즈데라 앞에서 환하게 웃으며 사진 찍는 모습을 구경하는게 좋았달까.

오늘 아침부터 어스름 지는 저녁까지 하루종일 걸어다닌 탓에

이젠 고질병처럼 되어버린 골반 통증이 심하게 아프기 시작했다.

더 이상 걷는 것은 무리다.

그리고 이제 어두움이 내리고 있었다.

이젠 돌아가야겠다. 오사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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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사카 온에어

2015.12.19. (2日)

 

 

오사카/교토 가이드 북을 읽으면서 종종 눈에 띄는 것이 웬 사람 캐릭터로 라떼아트를 해 놓은 녹차라떼였다.

단순히 어느 카페 캐리커쳐인줄 알았는데, 일본에서 유명한 화장품 브랜드 '요지야'라고 한다.

나름 교토여행의 시그니처 음식인 것 같아서 가보고 싶었는데

다행히 라떼아트따위에 관심없어 보이는 한국 청년들도 그 라떼를 꼭 마실거라고 한다.

그리고 심지어 은각사 근처에 그 요지야 카페가 있다는 것도 알려주었다.

그렇게 은각사에서 나와 철학의 길을 한참 따라 걷다가 포기하려던 찰나,

바로 코 앞에서 요지야 카페 은각사점에 도착했다.

 

 

 

 

 

 

 

요지야 카페 은각사점은 일반 현대식 건물이 아니라 전통 일본 가옥같은 곳이었다.

여기선 녹차라떼가 아니라 전통 차라도 따라마셔야 할 것 같은.

안내에 따라 들어가니 직원은 우리를 전면유리를 통해 정원이 내다보이는 다다미 방에 데려다 주었다.

딱딱한 다다미 바닥에 따닥따닥 아빠다리를 하고 앉으니

바로 눈 앞의 통유리 너머의 일본식 정원이 한 눈에 들어왔다.

고작 말차 카푸치노 하나를 먹으러 왔는데, 일본 전통문화 체험을 하는 듯한 착각이 든다.

낯설기도 하면서, 힘들이지 않고 이런 경험을 할 수 있다니 -

 

 

 

요지야 카페 긴카쿠지점

 

 

 

 

정원을 내다볼 수 있는 카페 내부

 

 

 

 

이런 풍경을 보면서 차를 마신다

 

 

이렇게 일본식 정원이 내다보이는 다다미 방에 앉아서 차를 마시고 있으려니

한편으로는 일본이 간직하고 유지해나가는 日本다움이라는게 대단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부럽기도 했다.

중국, 한국, 일본이 그렇게 다르지 않을텐데 이토록 외부인으로 하여금 문화를 향유할 수 있게 하는

일본문화의 매력과 저력은 무엇일까.

수많은 사람들이 이 일본다움을 경험해보고 싶어 이 곳을 찾아온다.

우리나라는 왜 이렇게 해내지 못한 걸까.

겨우 카페에서 말차 카푸치노 한 잔 마시면서 별별 생각을 다 한다.

그런데 이 카페 하나가 이런 별별 생각을 다 하도록 한다.

 

 

 

마셨다. 요지야 말차 카푸치노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여기 이 카페가 굉장히 좋았다.

테이블과 의자가 아니라 다다미에 앉아있는게 특이하기도 했고,

조용하기도 했고,

따뜻하게 차 한잔 마시면서 가만히 - 호젓하게 앉아서 일기도 쓰고, 정원도 감상하고 그러고 싶었다.

하지만 함께다니는 이 열혈청년들이 너무 패기가 넘친다.

하루 일정으로 돌아다닐건데 심지어 기차를 잘 못타서 1시간이나 일정이 늦어졌다는 아이들에게

여기서 일기쓰면서 조금 더 이 순간을 즐기자고 말하지 못했다.

차를 홀짝홀짝 다 마시고는 이제 여기서 해야할 일은 다 끝났다는 마음으로 서둘러 일어났다.

혼자 여행한지 반나절만에,

혼자하는 여행이 얼마나 자유롭고 내맘대로 할 수 있어 좋은지 깨닫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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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 온에어 

2015.12.19. (2日) 



이틀간은 교토에 가야한다. 

어제 오사카/간사이 공항에 내리자마자 교토를 오갈 수 있는 한큐투어리스트 패스 2일치짜리를 사버렸기 때문이다.

도시에서 산책을 하고, 책을 읽고, 커피를 마시고 이런 휴가를 가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준비하는 이틀사이에 마음이 좀 바껴서 그래도 뭔가 관광지 같은 교토를 돌아다니는게 낫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교토로 가는 한큐우메다역은 사카이스지혼마치역에서 그렇게 멀지 않았지만,

우메다 역자체가 어마어마하게 컸다. 

3개의 지하철선과 JR, 한신, 한큐레일선이 모여있는데다가 백화점까지 연결되어 있어서 

그 규모가 어마어마했다. 

아직 한자가 눈에 익지는 않지만 한큐레일 간판을 짚어가며 많이 헤메지 않고 교토로 가는 한큐레일의 플랫폼에 도착했다.



 

 


 

3번 플랫폼의 전철이 달리기 시작했고, 창밖으로 맑고 화창한 오사카의 풍경이 지나갔다. 

금세 도시를 빠져나가 근교의 주택지가 나타나고 저 멀리 아직도 울긋불긋한 산이 나타난다.

마치, 서울에서 춘천을 가는 느낌이다. 

날씨는 제법 쌀쌀한데 여기 오사카엔 아직 가을이 떠나지 않았다.


그렇게 한 40여분을 달려 한큐레일은 도쿄의 카와리마치 역에 도착했다.

나는 아직 어디 갈지조차 정하지 못했는데, 등떠밀리듯 카와리마치 역 밖으로 나오니

하늘에서 반짝이는 것들이 흩뿌려졌다. 

눈인가 했는데 햇빛을 받으며 떨어지는 싸라기 같은 비였다. 

일단은 남들이 다 간다는 청수사(기요미즈데라)에 가려고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관광안내소에서 얼핏 보았던 한복입은 남자가 내 앞에 서 있다.


- 이 것만 입고 안 추워요?



별로 안춥다고 말하는 그 한복입은 남자는 은각사에 먼저 갔다가 청수사에 간다고 한다 .

그러는 사이에 은각사에 가는 버스가 먼저 도착했다.


- 저 오늘 교토에 처음왔는데 아무 계획이 없어서요. 따라가도 될까요?


나는 그렇게 엉겁결에 은각사에 가는 두 한국 청년에 덥석 따라 붙었다.

외로운게 걱정이 되었다기보다, 아무 계획이 없었던 찰나에 누군가의 계획에 편승하고 싶었던 마음이 컸다. 


날씨는 일기예보보다 궂었고 이따금씩 보슬보슬거리며 보슬비가 내렸다.

간단하게 서로 자기소개를 하며 은각사까지 걸었다. 

어리게 보이긴 했지만 이 청년들은 내 동생보다도 어린 93년생 대학생들이었다. 

갑자기 큰 누나가 된 것 같은 느낌. 

그리고 은극사에 도착했을 때, 나는 미러리스 카메라에 배터리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분명 출국 전날 충전을 다 했는데 왜 배터리가 없다고 뜨는거지?

지난 남미여행에서부터 이 미러리스 카메라가 문제구나.

내게 남은건 필름카메라와 핸드폰 카메라인데, 핸드폰은 해필 보조배터리가 없고, 필름 카메라는 보조카메라일 뿐. 


잠시 멍...했지만, 카메라가 안된다는 건 이제 아무렇지도 않았다. 

사실 사진찍기도 귀찮았다.

내가 여행하면 사진찍는게 귀찮을 때도 있다니!

그만큼 이번 여행에 대한 아무런 기대가 없었다고 해야 하나. 

아님 이제 그런 사진 찍어봐야 나중에 '아  내가 이 때 이렇게 이쁜 사진을 남겨 두었지  -' 회상하며

이따금씩 꺼내볼 뿐, 실은 지나고 나면 시간이 흐르면

뭐 얼마나 잘 찍은 사진이었든지 말든지 생각조차 안날만큼 무의미 한 것이란 걸 느껴서였을까. 


사진을 찍는것조차 재미가 없다라...




은각사에서 찍은 사진

 

 

 

은각사에서 찍은 사진2

 

 

생각해보니 나는 '재미있다, 심장이 뛴다'고 했던 일조차도 끈덕지게 해내지 못했다.

사진 찍는게 세상에서 가장 좋은 줄 알았지만,

2년 바짝 찍고서는 차츰 차츰 흥미를 잃어서

지금은 찍어도 그만, 안찍어도 그만.

심지어 너무 잘 찍으려 옥심이날 때면 그런 내가 싫어지는 지경까지 왔다.

신나게 쓰던 여행기도 완결을 못낸게 수두룩.

뭐든지 좋아한다고 호들갑 떨면서도 끝까지 해낸 것들이 거의 없다.

 

좋아하는 마음도 시간이 지나면서 사그라져간다.

그러면 어쩌면, 그냥 이 일을 계속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아닐까.

어짜피 좋아하는 일이 아니니까.

더 싫어지지도 않을꺼고.

심장뛴다며 좋아하던 것도 끝내 시시해지는데, 굳이 내가 즐거운 일 하며 살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릴 필요가 있나.

처음으로 그런 생각이 마음속에서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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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 온에어

2015. 12. 19. (2日)

 


 

내가 앞으로 4일간 묵게될 방은 한국에 있는 내 방보다도 더 아늑하게 생겼었지만

그 아늑하게 생긴 오사카 숙소에서의 첫날밤은 결코 아늑하지 않았다.

우선 바깥의 공기는 그렇게 차갑지 않았는데도 벽을 통과한 공기는 분홍빛 갓등의 따뜻한 분위기를 비웃기라도 하듯

이 방을 골방같이 냉랭한 기운이 들게 했다. 

히터도 켰고, 이불도 두툼했지만 나는 양말을 신고 얇은 패딩까지 껴입고서 

서걱거리는 차가운 이불 속에서 한참을 웅크려 덜덜덜 떨어야 했다.

분명 주인은 히터만으로 괜찮을 거랬는데, 나는 결국 온풍기까지 켜고서야 방안 공기가 누그러지는걸 느꼈다.

그렇게 잠이 드나 했지만, 역시나 그 밤은 쉬운 밤은 아니었다.

나는 온풍기를 켰다가 껐다가 켰다가 껐다가를 반복했다. 잠 역시 깼다가 들었다를 반복했다.

급기야 몇시이지도 알 수 없는 캄캄한 한밤 중에, 나는 온몸이 무겁게 짓눌리는 느낌에 잠이 퍼뜩 깼다.

가위였다. 

손과 발이 침대에 들러붙는 것 같았고, 가위라는 자각이 든 순간 크게 소리치고 싶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텁텁하고 후끈한 방안 공기와 달리 내 목뒤는 마치 파스를 붙여놓은것마냥 싸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생생한 가위눌림이었다. 


- 귀신이 내 목 뒤에 들러붙어 있는게 분명해!!!


낯선 도시, 낯선 사람들이 저 건너편에서 잠들어 있는 낯선 공간, 짙은 남색 어둠으로 가득한 그 방에서

나는 공포에 떨며 있는 힘껏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입은 떨어지지 않았다.


- 무서워!!


무섭다고 속으로 되뇌이다가, 나는 나를 짓누르는 것 같은 무거운 그 느낌에 눌려 까무룩 다시 잠들고야 말았다.




 


 


다시 눈을 뜬 건, 매일 아침 출근시간마다 듣는 내 핸드폰의 알람이 울리는 시간이었다. 

커텐을 걷으니 저 멀리 그리 높지 않은 빌딩들 사이로 발그스름한 빛과 함께 해가 떠오르는게 보였다. 

어젯밤 온풍기를 껐다 켰다, 가위에 눌렸다 말다 한 것 치고 컨디션이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뭐랄까. 

낯선 도시에서 이렇게 커텐을 걷어 아침을 맞는 것은 생각보다 기분 좋은 일이었다. 

한국의 내 방에선 블라인드를 걷어올려야 창 밖이 보였지만, 이 곳에선 커텐을 양 옆으로 걷어내야 했다. 

한국에선 사실 출근준비에 쫓겨서 블라인드를 걷어 올릴 시간도,

이렇게 아침 해가 뜨는 걸 느끼고 있을 여유도 없었다. 

그리고, 조금 멀찍이 떨어져 있기는 하지만,

맞은 편의 아파트들 때문에 내 방은 남향이면서도 해 뜨는 걸 보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나는 여기 오사카 사카이스지 혼마치 역 근처의 어느 아파트 방에서, 

조용히 아침이 밝아오는 것을 보고 있다.

여전히 낯선 곳이기는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어느 유럽이나 미국과 같이 딴 세상에 있는 느낌은 아니다.

그래서 좋다.

내 삶과 맞닿아 있으면서, 내 삶에서는 누리지 못했던 순간을 누리고 있는 것 같다.

 

조금 더 이불 속에서 부비적거리고서, 주인 부부가 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샤워를 했다.

생각보다 주인 부부는 늦게 일어나는 것 같았다. 뭐, 주말이니까.

뭔가 아침에 함께 식탁에 앉아 씨리얼이라도 먹으면서 활기찬 아침을 보낼 수 있을까 기대했는데,

늦잠을 자는 주인 부부 덕분에 굳이 주방에서 덜그럭거리고 싶지 않아

나는 아침햇살이 방안을 가득 비춰오는 내 방 침대 한 구석에 앉아 

어제 세븐일레븐에서 사온 콩 샐러드와 파우드 케잌 한조각을 아무 말 없이 챙겨먹었다. 

그리고 바나나는 돌아다니다가 배가 고프면 먹을 요량으로 가방에 챙겨넣었다.

 

 



 

 


 

8시쯤엔 숙소에서 출발할 계획이었는데, 

침대에서 우물쭈물, 아침식사하며 우물쭈물,

비록 잠은 설쳤지만 아침 햇살이 깊이 비쳐오는 그 방이 맘에 들어

방에서 우물쭈물 하다보니 어느 새 8시 반이 지나서야 나는 집을 나서게 되었다. 

 

아침 오사카의 공기는 청량하고 맑았다. 

가로수엔 아직 떨어지지 않은 나뭇잎들이 온전히 붙어있었다. 

12월 중순. 한국은 이미 겨울인데 이 곳은 아직 늦가을인 것만 같았다. 

어제 밤 숙소가는 종이와 구글맵을 보며 두리번 거리던 길을,

나는 상쾌한 발걸음으로 되돌아 걸어가기 시작했다. 

 

은 제대로 못 잔게 분명한데, 아침 공기에 기분은 상쾌했다.

오늘은, 교토에 갈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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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honey,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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