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 온에어

2015.12.21. (4日)

 

 

 

월요일 아침.

오랜만에 잠에서 깨지 않고 아침까지 푸욱 잠들었다.

물론 매일 깨던 시간이 있어 눈을 뜨고, 다시 눕고를 반복했지만.

 

커텐을 여니 일기예보대로 밖에서는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었다.

비도 오고, 할 것도 없고, 하고 싶은 것도 없고

그냥 집에 가고 싶다 생각했지만

천천히 일어나 샤워하고 나오니 그 마음이 조금 사그라들었다.

 

집 주인에게 우산을 빌려 나왔다.

어제 그제 오가면서 봐둔 집 앞의 프랑스 베이커리에서 조용히 커피를 마시고 싶었는데

이런, 오늘 문을 안열었다.

 

 

아, 오늘은 정말 아무런 계획도 없는데.

 

 

문닫은 베이커리앞에서 몇 초간 서성이다 나는 발길을 돌려

에어비앤비 주인이 추천해준 Tea Cafe까지 걸어올라갔다.

비는 내리고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발걸음은 가볍다.

 

그런데 막상 그 Tea Cafe는 완전 영국식 찻집이었고 나는 따뜻한 라떼 한 잔이 먹고 싶었다.

한숨 쉬며 돌아서려는데 바로 그 건물 옆에 사람들이 꽤 북적거리는 -

그리고 신사동에 있을 법한 브런치 가게가 있어서 조심이 문을 열었다.

 

 

- 저..커피만 마셔도 되나요?

 

 


 

분주한 오픈 키친. 그런데 왠지 낯익다.

 

 

 

따뜻한 분위기의 실내. 날씨가 좋으면 테라스에 나갔을텐데.

 

 

 

따뜻한 카페라떼를 한 잔 시키고서, 오랜만에 평일의 여유를 즐기고 있다.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니- 꼭 해봐야 하는게 뭐가 있을지 생각하게 되고, 마음이 조급해지지만

그러지말자.

따뜻한 라떼를 한 모금 마시니 조급했던 마음이 사르르 녹아내린다.

일본에 와서 꼭 일본스러운 것 하라는 법 있나.

그냥 휴가라고 생각해.

하고 싶은 걸 해.

그 어느 강박관념도 갖지 말아.

 

 

든든하게 차려진 함박스테이크 정식

 

 

 

이 곳 카페 이름은 Northshore.

늦게 일어나 늦게 아침을 먹기도 했고, 커피까지 마셔서

점심은 나중에 먹으려고 했는데

옆 사람들이 먹는 브런치 정식이 너무 괜찮은 것 같아서

나도 결국 함박스테이크 정식을 시키고야 말았다.

 

이 여유.

이 낯선 곳에서 여유와 평안을 느끼는 이유는 뭘까.

일하지 않는 평일은 시간이 천천이 흐른다.

월요병에 시달리지도 않고,

만원 지하철에서 치이지도 않고,

1시까지 점심시간을 맞출 필요도 없다.

 

나는 천천히 커피를 마시고

천천히 일기를 쓰고

천천히 식사를 한다.

나는 아직 오사카에서 오사카성 말고는 본게 없지만

지금 이 순간이 너무 좋다.

 

 

-

 

느긋하게 점심식사를 마치고, 나는 전철을 탈 수 있었지만

비도 그치고 해서 천천히 우메다역까지 걷기 시작했다.

그저께 아주 오랜만에 그것도 너무 많이 걷는 바람에 골반이 아팠고

여행하는 내내 아프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오히려 점점 통증이 줄어들고 걷는 걸음이 경쾌해졌다.

통증에서 벗어나니 한 결 마음이 가볍다. 별거 아닌데도 행복하다.

그렇게 마음 편히 걸으며 우메다 역에 도착했다.

 

 

 

한큐 백화점에서 엄마와 아빠에게 줄 손수건을 사고 Grand Front Osaka 건물로 들어왔다.

쇼핑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나는 9층에 있다는 야외정원에 가고 싶었다.

 

 

그랜드 프론트 오사카

 

 

 

 

그랜드 프론트 오사카 9층 정원에서 바로본 전경

 

 

 

Grand Front Osaka 9층 정원에 나와 우메다역 근처의 광경을 내려다보며

비가 그친 뒤의 상쾌한 바람을 즐기고 있다.

뭔가 명상을 해야 할 것만 같은 배경음악과 함께.

 

오전 내내 흩뿌리던 비가 멈췄다.

아직도 구름이 가득 하지만,

이 바람에 따라 구름이 서서히 몰려가고 아기같은 하늘이 드러났다.

 

역 근처여서 끊임없이 전철의 덜커덩 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보이지 않지만 구름 위를 날아가고 있을 비행기의 소리도

저 공기를 뚫고 들려온다.

이 곳엔 나말고는 아무도 없다.

사각사각 거리는 펜 소리마저 들릴 정도로.

 

 

한참을 홀로 바라보았던 그 하늘.

 

 

좋다.

이 월요일에 천천히 일어나 원할 때 식사하고 빗속을 걷는 하루.

 

구름이 황금빛으로 물든다.

오후 4시 20분.

공항에서 내려 노을이 진다고 생각했던 시간이다.

여기 이렇게 앉아있으니 참 좋다.

내 머리 위로 펼쳐진 하늘이 다 내 것 같다.

저 멀리서 들리는 차소리, 전철소리가 아득해서

현실에서 떨어져 있따는 실감이 들게 한다.

최근 여행다니면서 가장 일기를 많이 쓰는 여행 같다.

그만큼 나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시간이 많았다.

 

난 오늘 비가 와서 참 좋다.

날씨가 좋았으면 뭐라도 밖에서 더 해야하나 싶어서

오사카 만에 가야 하나 아님 오사카성 공원을 돌아야 하나

안절부절하고 웬지 둘 다 해야할 것만 같아서

아침 일찍 시간 아끼려 일찍 일어나 나왔겠지.

 

다행이다.

비가 와줘서.

날이 흐려서.

푹 자고,

한참을 누워있고,

생각 없이 걸어다니고,

해가 질 때까지- 이렇게 앉아서 기다릴 수 있어서.

Posted by honey,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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