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온에어

2015.12.19. (2日)



한큐레일을 타고 오사카에 돌아오니 저녁 6시였다. 


 

얼마나 피곤했는지, 돌아오는 길에 잠시 잠들었는데 그대로 오사카 한큐우메다역까지 도착해버렸다. 

 

아이들은 고베로 아경을 보러 가고, 나는 더 이상 골반때문에 걷고 싶지도, 걸을 수도 없다. 

 

플랫폼에 내린 채로 가이드북을 뒤져 한큐우메다 역 주변의 추천집을 찾아보았다.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 우메다 스카이 빌딩 지하에 오꼬노미야끼 맛집이 있단다. 


- 그래, 가서 저녁도 먹고 우메다 스카이 빌딩 39층의 공중정원에서 야경도 봐야겠다. 


한큐우메다 역에서 스카이 빌딩까지 고작 10분정도 거리인데 

골반 통증때문에 마치 만겁의 시간을 걸어 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작은 가방에 미러리스와 필름카메라를 두 개, 그리고 두꺼운 가이드 북까지 넣어다녔더니

이제는 가방을 어느 쪽으로 둘러메도 어깨가 천근만근 무거웠다. 

그렇게 오꼬노미야끼를 먹겠다는 일념 하나로 스카이 빌딩 지하를 찾아갔는데, 

나는 그 지하식당가에서 내가 가려는 곳이 어딘지 물어볼 필요도 없이 한 번에 찾아냈다.

줄이,어마어마하게 긴 가게가 딱 하나 있었다. 


가게 이름은 '키지'

 

 

 

손님의 80%가 중국인과 한국인이었다.


 

나는 가게 밖에서 한 시간을 기다리고, 또 가게 안에서 한 시간을 기다린 후에야 

 

 

Bar석에 소중한 자리 하나를 차지 할 수 있었다. 

 

돼지고기와 소고기와 오징어가 다 들어간 오꼬노미야끼를 하나 시키고서, 

 

쓸데 없이 맥주도 한 잔 시켰다. 

 

술을 좋아하지도 않고, 다 먹을 마음도 없지만 왠지 지금은 그러고 싶었다. 

 

일본에 온지 이틀 연속 술을 마시다니!

 

 

나도 이런 내가 낯설지만, 또 낯선 내 모습이 나쁘지 않다. 

 

여행지에서의 경계가 풀어진 새로운 내 모습이 실은 조금 더 좋았다.

 


오꼬노미야끼를 만드는 중

 

 

 

 

맥주와 오꼬노미야끼 1/4조각. 그릇에 그려진 캐릭터들이 귀엽다.

 

 


 

오꼬노미야끼는 내 앞의 철판에서 바로 구워지고 뒤집어지고 소스가 뿌려져 완성이 되었다.

 

그렇게 완성된 오꼬노미야끼를 온기가 남아있는 철판에 남겨두고

 

먹을만큼씩 잘라 덜어먹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생각해보니 아침도 파운드 조각과 콩 샐러드, 점심 대시 말차 카푸치노와 당고, 슈크림 먹은게 다였다. 

 

제대로 된 식사를 단 한끼도 하지 않은 채로 하루종일 걷기만 했던 것이다. 

 

거기다 2시간을 기다렸으니, 지금 내 눈앞에 놓인 것은 뭐든지 세상 최고의 맛일거다. 

 

그런 상황에서 먹은 키지의 오꼬노미야끼는 정말 정말 맛있었다. 

 

속은 도톰하게 씹혔고, 겉은 약간 바삭한 느낌도 들었다. 소스도 적당히 끈적거리며 입맛을 돋았다. 


내가 오꼬노미야끼라는 것을 먹은게 언제였던가. 

내 기억 속 첫 오꼬노미야끼는 일산의 라페스타 근처의 어느 2층 이자까야. 이름에 '하' 같은 글자가 있었던 것 같다.

술자리를 좋아하던 첫 남자친구가 데려간 그 이자까야에서 처음 먹어보았다.

아닐 수도 있다. 그런데 내 흐릿한 기억 속의 첫 오꼬노미야끼를 아무리 생각해도, 

그 친구와의 오꼬노미야끼가 내 기억력의 한계인 것 같다.

이제는 그 맛이 어땠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그 오꼬노미야끼를

이 오사카의 오꼬노미야끼 가게에서 떠올렸다. 

아마 그 뒤로도 오꼬노미야끼를 몇 번은 더 먹었을 텐데, 어째서 기억나는 건 그 오꼬노미야끼 하나인지.

이래서 사람들이 처음이 중요하다고 하는건가...

굳이 그 친구를 떠올리고 싶어서는 아니었는데, 

생각나는 기억이라고는 그것 밖에 없어서 조금 떨떠름했다. 


그러나 그 떨떠름함을 생각하는 순간은 찰나였다.

너무 배고팠고, 너무 맛있어서 나는 정말 순식간에 내 손바닥 두개 크기의 오꼬노미야끼를 해치워버렸다.


크리스마스 행사중이었던 스카이 빌딩 앞

 

 

 

 

 

 

나무에 달려있던 귀여운 스노우 맨

 

 

스카이 빌딩 앞은 크리스마스 이벤트들로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물씬 났다.

다만, 공중정원으로 가는 줄이 한눈에도 길어보여 일단 오늘은 철수하기로 했다.

우리나라도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이렇게 활기찰까?

내가 늙어서그런건지, 아니면 명동 같이 복작거리는 곳에 가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우리나라 경기침체 탓인지 것도 아니면 저작권때문에 캐롤을 틀지 않기 때문인지.

우리나라에서는 크리스마스 연휴 분위기를 거의 느끼지 못했는데

일본에서 아주 오랜만에 크리스마스 다운 분위기를 만끽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혼자있지만, 쓸쓸하지도 외롭지도 않았다.

그저 이 밝고 명랑한 분위기에 나도 같이 들떴다.

메리크리 -

Posted by honey,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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