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6월 24일 여행 2일차

 
 


이번 프랑스 여행은 꼭 여행기로 남겨야겠다고 다짐했었는데, 
이런저런 일에 우선순위가 밀리다보니 올 해는 커녕 내년 여름여행 전까지도 다 못 쓸것 같은 불안한 생각이..
최근에 좀 힘든 일이 있었지만, 무사히 잘 해결되면서 이런 저런 의욕도 같이 생긴 참에 프랑스 여행을 다시 복기해본다.


프랑스에서 맞이하는 두 번째 아침.
아직 적응하지 못한 시차 때문에 오늘도 아침 일찍 깼다. 
호텔 근처 카페에서 크로와상과 커피로 간단히 아침을 해결하고 파리 시내로 출발. 
오늘 일정은 도리가 가보고 싶어한 마레지구/보주광장, 그리고 오후 5시에 예약된 오랑주리 미술관 말고는 특별한 일정이 없다. 
지금 지도를 캡쳐하면서 보니 파리에 갈 곳이 이렇게나 많았는데 왜 이렇게 아무 일정도 계획을 안했지? 싶은...ENFP의 여행 😅
 


우리는 RER을 타고서 시테섬에 내렸다. 여기서부터는 마레지구까지 걸어가면서 찬찬히 풍경을 즐길 예정.
이른 아침인데 정말 구름 한 점 없이 맑다. (이번 주 토요일에 시드니에 가는데 내내 날씨가 흐리다고 해서 속 쓰린 사람)

 

시테섬 궁전 시계탑과 그 뒤에 콩시에르 주리, 그리고 노트르담 다리까지

 

시테섬과 센 강, 그리고 싱그러운 가로수까지, 파리가 이렇게 이쁜 도시였던가.

 

건물은 낮은데 나무는 키가 커서 도시가 더 예쁜 것 같다.

 


우리는 시테 섬을 건너 퐁피두 센터를 지나 마레지구까지 걸어갔다가 보주 광장으로 방향을 틀었다. 
도리가 어디서 본 건지, 보주 광장을 알아와서는 자신있게(?) 이 곳으로 인도했는데, 오 나쁘지 않아.

보주광장(Place des Vosges)은 파리에서 가장 오래된 광장으로,
광장이라기보다는 완벽한 대칭을 이루는 사각형의 작은 공원 혹은 정원 같은 모습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파리 건물느낌과 조금 다른 인상을 주는데 그 이유는 외벽이 붉은 벽돌로 되어 있어서 그렇다.

 

작은 동네 공원 같은 느낌의 보주 광장

 

 


아침에 가까운 오전이었는데도 불구하고, 햇살이 일광소독 급으로 너무 뜨거웠다.
이제 겨우 6월 중하순인데 이렇게나 해가 뜨겁다고?
파리 근처 브뤼셀에 살고 있는 현석오빠에게 물어봤는데, 지난 주까지만 해도 이러지 않았는데
이번 주 이상기온 떄문에 엄청 덥다고.. ㅠㅠ


저 햇살 속을 거닐 자신이 없어 보주 광장 나무 그늘 벤치에 앉아서 보니,
여기 보주 광장에는 (다른 파리의 관광명소에 비해 상대적으로) 관광객보다 파리 주민들이 더 즐겨 찾는 것 같았다.
이 뜨거운 날씨에도 어린 아기들이 까르르 웃으면서 뛰어놀고 있는데 평화롭고 또 행복해보였다.


보주광장 근처를 멤돌다가, 근처에 무료 박물관(?)이 있다고 해서 찾아갔다.
이름은 카르나발레 박물관(Musée Carnavalet)

이 카르나발레 박물관은 프랑스 유력 가문인 웬델 집안 소유의 카르나발레 저택을, 파리 시의회가 매입해서 박물관으로 재단장했다고.
60만점의 소장품 가운데 16~19세기 자료들이 많아서 그 시절 파리의 역사를 엿볼 수 있다.  

 

태양왕 루이 14세 조각상이 있는 카르나발레 박물관의 안뜰

 

1층에 들어가면 예전 파리 상점에 걸렸던 간판들을 모아놓았는데 앤티크하고 이쁘다.

 

프랑스 역사 잘 모르지만 열심히 보는 (척) 나..

 


무료라고 해서 솔깃하기도 했고, 또 너무 뜨거워서 더위를 피할겸 들어오기도 했는데
프랑스의 역사를 잘 모르니, 걸려있는 그림들과 초상화, 소장품들을 보아도 잘 와닿지는 않았다.

다만 한가지 기억에 남는 건, 지금 파리의 로맨틱한 이미지에 한 몫을 하는 파리의 많은 다리들 위에 사실 3~4층 짜리 집들이 줄지어 있었다는 것이다.
아마도 1800년대 후반 파리 개조 사업 때 다리도 함께 정비하면서 다리 위에 있는 건축물들을 쓸어(?)버렸나 싶다.

 

1556년 시테섬 지도 - 잘 보면 다리를 따라 건물들이 지어져있다.

 


카르나발레 박물관을 슉슉 둘러보고, 근처에 평점이 높은 한식당이 있어 점심을 먹으러 갔다.
여행하면서 꼭 한식을 먹어야 하는 타입은 아니었는데
나이들었나...어릴 때에 비해서는 한식이 땡기는 빈도가 늘어난 것 같다. ㅠㅜ

 

퀄리티가 좋았던 파리 순그릴의 돌솥비빔밥

 


점심을 먹고 나니, 2시 정도였는데 햇살이 너무 뜨거운데다 오전 내내 많이 걸어서 휴식이 절실해졌다.
20대였으면 꺾이지 않고 계속 돌아다녔을텐데
40대에 가까워지고 있는 30대 후반은 바로 꺾였다. 중요한 건 무리하지 않고 꺾이는 마음...
오랑주리 미술관이 5시 입장이었는데 그 때까지 카페 같은데서 죽칠까하다가 숙소로 돌아가서 한 시간 정도 쉬다 나오기로 했다.

RER을 타러 가기까지도 덥고 지쳐서 버스를 기다렸는데........땡볕에서 30분을 기다렸는데도 버스가 안와...

그냥 걸어서 RER 역까지 가자는 나와 조금 더 기다려보자는 도리 사이에 살짝 신경전이 벌어졌다.
결국 30분을 기다렸는데도 버스가 안와서 우리는 걸어서 RER을 타러 갔다.

그 동안 여행을 하면서 숙소를 한 번 출발하면 하루 종일 돌아다니다가 해가 지고나서야 돌아갔기 때문에
숙소의 위치가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었다.(내 여행에 중도 복귀란 없다)
그런데 이번에 파리 여행을 하면서 새삼 숙소가 도심 한 가운데 있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 (이번에는 숙소를 못구해서 그런거니까 어쩔 수 없었지만)

그렇게 숙소에 가서 도리는 한 숨 낮잠도 자고, 나는 일기도 쓰고 (그런데 이 일기장 지금 못찾겠다 ㅋㅋ) 전열을 재정비해서
5시 예약시간에 맞춰 오랑주리 미술관으로 향했다.

오랑주리 미술관에 가는 이유는 단 하나, 모네의 수련 연작을 보기 위해서.

Musée de'l Orangerie

 

이 모네의 수련 연작이 인기가 너무 많은 나머지 오픈할 때 가거나 끝나기 전에 가면 조금 한적하게 볼 수 있다고 해서 
일부러 오후 5시로 예약하고 갔는데도, 모네의 수련을 전시한 관은 사람들로 넘쳐났다.  
게다가 다들 조용히 관람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틱톡과 인스타에 올릴 사진과 영상을 찍으려는 사람들로 정신이 사나울 정도. 
이 그림과 이 공간이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은 느낌과는 정반대의 관람 분위기 때문에 작품에 집중하기 쉽지 않다. 

 

진심으로 문 닫는 시간이 되어서야 텅 빈 모네의 수련 연작관

 

자연광이 쏟아지는 하얀 전시실에 걸린 수련 연작.
아직 해가 떠 있건만 그늘이 져 캄캄해 보이는 연못, 그리고 그 수면 위에 비친 몽글몽글한 구름의 그림자. 뜨거운 여름날의 오후였을까.
이 수련 연작을 그린 지베르니에 가보지는 못했지만, 모네가 보았을 풍경이었을지 모네의 작품을 보고 상상하게 된다.    
수련 연작 자체는 상상했던 것만큼 압도적이고 특유의 아름다움으로 감동적이었지만 . 
틱톡이나 인스타에 올릴 수련 앞에서의 자신의 예쁜 모습을 담으려고 수십번 작품 앞을 거닐며 영상을 찍던 사람들 때문에 감동이 반감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오후 6시가 지났는데도 한낮같은 튈르리 정원의 풍경

 

오랑주리 미술관에서 수련을 보고 나와 루브르 박물관 건물이 보이는 튈르리 공원에서 잠시 멍을 때렸다.  
수백년 전에 지은 저 고풍스러운 건물과 2023년을 살고 있는 사람들. 
고궁, 유적지 같은 건물들을 제외하고는 현대적인 건물에 둘러싸여 살고 있는 한국인에게는 묘한 이질감이 드는 풍경이다.    
그래서 파리가 많은 이들에게 로망같은 도시인가 싶기도 하고. 

 

9시가 넘어야 조금씩 기울어지는 햇살

 

여유로운 여름날의 센강의 풍경

 

파티가 한참인 센강의 저녁

 

 

 

정처없이 떠돌아다니다 썩 만족스럽지 못한 저녁식사를 하고서 RER을 타러 가는 길에 센 강을 따라 한참 걸었다. 
시간은 이미 오후 9시를 넘어가는데, 세상은 이제 막 오후 5시가 되어가는 것 처럼 밝고 환하기 그지 없었다. 
여름 오후의 센 강에는 젊은 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나누고 또 야외 펍에는 맥주 파티를 하는지 힙하고 흥겨운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파리에 세 번째 오는데, 이런 센 강의 분위기는 또 처음이네.  
뭐랄까. 파리는, - 이 표현은 여러 모로 별로이지만- 지지 않는 태양같은 느낌이다.
도시도 흥망성쇠가 있어서 뜨는 도시가 있고 지는 도시가 있고, 한 때 핫했던 도시가 시간이 많이 지나면 촌스러워지기도 하는데
파리는, 언제와도 핫하고 힙하고 세련된 느낌. 2008년 처음 왔을 때보다도 더 힙해진 느낌이라니. 놀랍다. 

여행 전까지만 해도, 생각보다 더럽다, 위험하다는 얘기에 파리에 큰 미련이 없었던 도리도  
이틀이긴 했지만 파리의 매력에 푹 빠진 것 같았다.  특히 마지막 날 센강에서 느꼈더 분위기에. 
나중에 파리에만 일주일 정도 머물면서 여행해보고 싶다고.

  
이렇게 아주 짧은 이틀 간의 파리 일정은 마무리를 했다.  
마지막에 숙소로 가는 RER이 한참을 오지 않아서 지칠대로 지쳐 다시는 꼭 도심 한가운데 숙소를 잡자는 교훈과 함께.  
내일은 이제 고성들이 몰려있는 발 드 루아르(Val de Loire)지역으로 이동한다.
이제부터 진짜진짜 프랑스 로드트립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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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6월 23일 여행 1일차 

 

 

 

어제 (프랑스 현지 시간 기준) 초저녁부터 잠든 것도 있고 한국과의 시차 탓에 새벽 5시 좀 넘어 잠에서 깼다. 

"도리야, 일어나. 우리 에펠탑 보러 가야해"

"....지...지금???.............(도리살려)"

 

이번 2주 간의 프랑스 일정에서 파리에서 머무는 시간은 단 이틀.

나는 이미 파리가 세 번째이고, 도리는 파리에 큰 기대가 없었는데 (어디서 파리는 더럽고 소매치기가 많다는 얘길 들어왔음)

그래도 도리는 프랑스 자체가 처음이어서 관광객 모드로 파리를 집중적으로 이틀동안 돌아보기로 했다.

 

파리에서 가장 첫 번째로 보러 간 것은, 바로 에펠탑(Eiffel Tower)

일찍 일어난 것도 있지만, 조금만 시간이 지나도 사람이 바글바글해진다고 해서 에펠탑부터 가보기로 했다.

여러 스팟 중에서도 에펠탑을 한 눈에 볼 수 있다는 트로카데로 광장(Place du Trocadero)으로 바로 갔는데 

아침 7시 반인데 벌써부터 에펠탑을 배경으로 스냅사진을 찍으려는 커플들과 스냅사진 작가들이 각자 한 자리씩 차리하고 있었다. 

우리도 이렇게 아침 일찍 에펠탑에 오는게 가능할 줄 알았으면, 스냅사진 찍을걸 그랬나? ^_^........

 

 

 

아침햇살에 싱그러운 공원과 저 너머의 에펠탑

 

에펠탑 앞에서 포즈 고민 중.................

 

 

금요일 아침 8시 즈음의 에펠탑 주변은, 촉촉하고 상쾌하고 싱그러운 느낌이었다. 

도시는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나고 있었고, 우리처럼 일찍 여정을 시작한 몇몇의 관광객들 외에는 사람이 없어 한적했다.

어제의 피로는 다 날아간 듯 했고 날씨도 화창해서 시작이 좋은 느낌이었다. 

도리는, 에펠탑은 안봐도 된다더니 막상 보고나니 생각보다 엄청 크다는 인상을 받은 것 같았다. 

(도리는 일단 뭐든 다 안봐도 된다고 하면서, 막상 보고 나면 다 좋다고 하는 스타일) 

 

우리는 스타벅스에서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세느강을 따라 산책하듯이 튈르리 공원을 지나 루브르 박물관까지 갔다.

우리는 나비고 카드가 있어서 사실 교통편이 무제한이었지만 파리는 걸어야만 그 진가를 알 수 있다. 

 

 

파리에 세 번째 왔지만, 이런 초여름 파리의 싱그러운 모습은 또 처음인걸?

 

이번에 파리에 가면 꼭 부고 싶었던 튈르리 정원의 풍경- 정말이지 동화같고 예쁘다.

 

 

점심시간에 가까워지기도 했고, 파리의 Must visit place 중 하나여서 그런지 루브르 박물관 앞은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루브르 박물관 인기는 역시 여전하구나!

하지만 우리는 루브르 박물관 앞에서 인증샷 하나씩만 찍고 쿨하게 입장은 포기했다. 🤣

2008년, 이 루브르 박물관에 처음 왔을 때, 나란 인간은 박물관 관람보다 풍경을 더 사랑한다는 것을 제대로 깨달았었다. 

루브르 박물관 내부까지 입장을 했다가, (내내 우중충하던 날씨가) 갑자기 맑게 개이자 못참고 뛰쳐나왔기 때문이다. 

게다가 위에서도 말했지만, 도리는 꼭 안가도 그만이라는 굉장히 자유로운(?) 여행철학을 가지고 있어서 

루브르 박물관에 못 들어간다는 아쉬움보다 저 긴 인파와 함께 줄서지 않는 것만으로도 만족하는 것 같았다. 

 

 

어느새 이런 인생샷도 (가끔) 척척 찍어주는 도리가 되었다!

 

 

루브르 박물관에서 인증샷을 찍고 점심으로 쌀국수를 먹었다. 

어디서 들었는데, 파리에서 파는 쌀국수가 진짜 맛있다고. 

점심을 먹고나서는 오르세 미술관(Musée d'Orsay)에 갔다.

오르세 미술관도 처음은 아니라서, 유명한 미술 작품들 위주로 슉슉슉 보고 지나갔다. 

 그 중에서도 이번 여행 일정 중에 엑상프로방스(확정)와 아를(미확정)이 있어

프로방스 지역을 그린 세잔과 고흐의 그림들은 관심을 가지고 신경써서 보았다. 

 

 

세잔이 그린 "생트 빅투아르 산"의 전경. 나 며칠 뒤에 이 풍경을 직접 볼 수 있을까?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 중 하나인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

 

 

개인적으로 나는 고흐를 아주 좋아하는 편은 아니고,

그의 작품 "별이 빛나는 밤에"는 너무 유명하고 많이 접해와서 크게 기대하지 않았는데 

이 원작을 두 눈으로 직접 보았을 때,

고흐가 많은 고민을 하며 그려 넣었을 거친 붓터치에서 예상치 못한 감동을 살짝 받았다. 

이 그림을 사진으로 찍어 보면 붓터치의 결이 보이는 평면적인 그림이지만, 

실제로 보면 이 붓터치의 두께감과 높이 때문에 그림이 훨씬 입체적으로 보인다. 

왜 사람들이 이 그림을 참 좋아하는지, 비로소 알 것 같았다. 

미술관에는 선생님과 함께 현장학습을 나온 것 같은 어린이들이 그림 앞에 앉아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있었는데

이런 명작들을 어릴 때부터 당연하게 접할 수 있는 환경이 살짝 부러웠다. 

 

 

오르세 미술관에서 나와, 버스를 타고 생 샤펠 성당(Sainte-Chapelle)이 있는 시테 섬으로 왔다. 

예전에 여행 할 땐, 노틀담 성당(Cathedrale Notre-Dame de Paris)이 워낙 유명해서 시테 섬에 생 샤펠 성당이 있는 줄도 몰랐는데, 

2019년 노틀담 성당에 화재가 난 뒤로는, 생 샤펠과 콩시에르주리를 묶어서 많이 관광하는 것 같았다. 

 

 

시테섬의 풍경

 

노틀담 성당 근처의 크레페 가게 "La Creme de Paris"

 

 

개인적으로 크레페를 아주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 

무려 2008년 (몇...몇년 전인가...눈물이 앞을 가린다 ㅠㅠ) 처음 파리에 왔을 때 정처 없이 세느 강을 따라 걷다가

아마도 시테섬 근처이지 않았을까 싶은, 작은 창이 밖으로 뚫려있는 크레페 가게를 발견했었다. 

크레페 하나를 주문하자 흑인 주방장(?)이 동그란 철판에 반죽을 살짝 두르고 긴 막대기 같은 것으로 휘휘 얇게 펴 구운 다음

그 위에 누텔라를 발랐던가 초코를 발랐던가, 그리고 부채꼴 모양으로 착착 접어 주었는데

갓 구워낸 파르페가 바삭하면서도 촉촉하게 정말 맛있었었다. 

해질녘의 그 어둑어둑했던 그 시간, 파리에 있는 내내 우중충 해서 으슬으슬 했던 날씨가 아직도 생생히 기억날만큼. 

그 뒤 파리에 올 때마다 크레페를 시도해보지만, 기억 속 크레페만큼 감동을 주는 크레페는 아직 만나지 못했다. 

 

생샤펠 성당은 시테섬에 위치한 스테인드 글라스가 인상적인 성당인데, 

말 그래도 스테인드 글라스가 화려하기는 하지만 성당 규모도 꽤 작고

그동안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오만군데 성당을 둘러본 나에게는 크게 인상적이진 않았다.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의 생샤펠 성당

 

 

생샤펠 성당 관람을 마지막으로, 우리는 아르퀘이에 있는 숙소로 돌아왔다. 

여행을 3주 앞두고 비행기표를 예약하고, 그 때부터 숙소를 찾아봤는데 

파리 안의 웬만한 가격대의 호텔은 다 완판이 되어서 파리 내에서는 호스텔을 가거나 초고급 호텔을 가는 선택지 밖에 없었다. ㄷㄷㄷㄷ

그래서 가격대와 룸 컨디션을 고려해서 찾은 곳이 파리 남쪽 아르퀘이 지역의 코트야드 바이 메리어트 파리 아르퀘이 

파리 관광지로부터는 약 7km 정도 떨어져있는데, 다행히 호텔이 RER 역에 거의 바로 붙어있어서 

공항에서부터도 RER선을 타고 한 번에 오갈 수 있고, 또 노틀담까지도 RER로 20여분 걸려서 나쁘지 않았다.

그때는 성수기에 근접하고 있어서 그랬는지 1박에 거의 30만원 가까이 했는데, 지금은 가격도 훨씬 괜찮네.

 

지도로 보면 생각보다 멀어보이지만...숙소에서 노틀담까지 강남역에서 잠실역 정도 거리다.

 

 

새벽 5시 반부터 일어나 하루종일 파리를 헤메다 숙소에 도착해 저녁을 먹으니 밤 9시였다. 😅

오늘 하루에만 무려 2만 7천보를 걸었다. 내 도가니 살려!

밤 9시지만 날은 이제야 막 노을이 지고 있었다. 이렇게 해가 긴 여름에 여행하는 것도 축복이다.  

피곤하긴 했지만, 파리에서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은 이제 하루 밖에 남지 않아서 내일도 바쁘게 하루를 시작해야 할 것 같다. 

그럼 우리 내일 만나요. Bonne nuit😍 

 

 

6월 23일, 9시 반의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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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6월 22일 출국

우리가 탔던 에어프랑스. 에어프랑스도 12년만이네.

 

 

나이가 들기는 제대로 들었나보다. 고작 3개월 전 여행의 기억이 흐릿하다.

여행기를 쓰려고 노트북을 열었다가 순간 매우 당황스러웠다. ㅠㅠ.......

 

사실 올해 여름휴가는 오랫동안 미정인 상태였다. 늦어도 봄에는 여행지와 비행기표까지는 정해두는 나답지 않게.

그도 그럴것이, 모든 걸 자유롭게 정할 수 있었던 싱글인 때와 달리 이제는 도리(남편)의 스케줄도 중요해졌기 때문인데

도리가 올 초부터 이직 준비를 하고 있어서 타이밍 잡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결혼의 장점 : 같이 여행 갈 사람이 있다😀 vs. 결혼의 단점 : 그 사람과 맞춰야만 한다🤣)

그러다가 드디어 도리가 확정적으로 회사를 옮기게 되었고, 갑자기 3주 뒤에 떠나야 하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사실 그때까지도 딱히 떠오르는 여행지가 없었는데 (내 취향 여행지는 결혼하기 전에 다 돌아다녀버렸.....................)

갑자기 커다란 나무들이 있는 정원과 돌로 지은 프랑스 주택에서 느긋한 휴가를 보내고 싶다는 뽐뿌가 와서

이번 여름 휴가 여행지를 프랑스로 정하게 되었다. 

그렇게 아직 새벽 공기는 서늘하던 6월 하순, 우리는 서울을 떠나 무려 14시간을 날아 파리에 도착했다. 

 

* * * * * 

 

12년 만에 도착하는 파리의 샤를 드골 공항은, 내가 걱정했던 것과 다르게 특히 한국인에 대해 매우 호의적이었다.

12년 전만해도 중국인 취급을 받았었는데, 공항의 직원들은 우리에게 먼저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해주고 한국어를 더 배우고 싶다고 했다. 

@_@ 이것이 BTS와 블랭핑크의 힘인가요.............? 요즘 해외에서 대한민국 위상이 높아졌다더니. ㄷㄷㄷ

하지만, 이 기분좋은 파리의 첫인상은 오래 가지 못했는데,

입국심사 줄에서도, 나비고 카드를 사는 창구에서도 비효율적인 일처리로 어마무시한 시간을 기다려야 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다른 나라 외국인들이 항의하는 지경이었는데 프랑스 직원은 태연하게 "이게 바로 프랑스야"라고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 프랑스는 이랬었지.

무얼 해도 너무 오래 걸리는 일처리 때문에 여행 일정이 의도치 않게 질질 늘어지던 경험과

미묘한 인종차별이 그동안 프랑스를 여행지로 선택하는데 기피하게 하는 이유 중 하나였던 것이다. 

우여곡절끝에 두시간여만에 공항을 빠져나와 공항철도를 1시간 가량 타고서

(아참, 공항철도 의자 상태를 보고 도리와 나는 진짜 기겁을 했다. 정말 앉기 싫을 정도....ㅠㅠ)

파리 바로 아래 아르퀘이(Arcueil)에 있는 숙소에 도착했을 땐, 정말이지 녹초가 되어 있었다. 

출발전 3시간 + 비행 14시간 + 파리공항 2시간 반 + 숙소 이동 1시간 .......휴...................

너무 힘들어서 나는 저녁도 스킵하고 바로 뻗어버렸고, 도리만 호텔 근처에서 저녁을 먹고 돌아와 잠이 들었다. 

제대로 된 여행은 내일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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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쿠아 델 엘바 서울숲 스토어 :)

 

 

성수동 거리에서 - 

 

 

오늘 회사분 따님의 결혼식에 갔다가 픽업하러 온 남편(!)을 만나 성수동에 들렀다. 

목적지는 아쿠아 델 엘바(Aqua dell Elba), 이유는 디퓨저를 사러. :)

 

코가 예민하기도 하고 원래 향수도 디퓨저도 큰 관심이 없는 나인데

작년 여름, 이탈리아 토스카나를 여행할 때 가장 인상깊었던 숙소에서 아쿠아 델 엘바 디퓨저를 처음 보았다.

토스카나도 좋았고, 숙소도 좋았고, 디퓨저 향도 좋았고, 또 토스카나 브랜드여서 사오고 싶었는데

한참 여행 중이라 짐이 되는게 걱정되기도 했고,

(프로포즈 받은지 얼마 안 되었던 때라) 결혼하면 살게 될 내 공간에 두고 싶은 로망(?)도 있어서

이탈리아에서의 구매는 잠시 미루었다가 드디어 때가 되어 서울숲에 있는 아쿠아 델 엘바 스토어에 들르게 된 것이다.

 

아쿠아 델 엘바의 시그니처 향은 마레(Mare)이고, 숙소에서도 마레(Mare)향을 맡았던 터라, (여름이기도 하고) 마레(Mare)를 살까 하다가

여러 가지 향을 시향해보고 조금 더 포근한 느낌의 몬테 카파네(Monte Capanne)를 골랐다.

 

 

아쿠아 델 엘바 디퓨저 (코가 예민한 편이라 약한 발향이 좋아서 스틱은 4개만)

 

 

저마다 여행을 추억하는 여러 가지 방법들이 있다.

나 같은 경우에는 어렸을 적엔 그것이 주로 사진, 마그넷, 기념품 컵 같은 것이었는데,

최근 몇 년 사이에는 여행하면서 만나는 특별한 (나만의 여행의 추억이 깃든) 물건 - 

단지 장식장에 세워두는 그런 것 말고 일상생활 속에서 쓸 수 있는 물건을 찾게 된다.

그것도 여행을 기념하기 위해 억지로 찾는 것 대신, 여행 속에서 우연히.

호스텔에서 수건을 제공하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샀던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의 빨간 타올, 

우산이 없어 급하게 샀던 캐나다 밴쿠버에서의 분홍색 3단 우산, 

우연히 걷다가 들어간 가게에서 샀던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의 주황색 지갑.

기념품과 달리 일상에서 사용하는 물건들이기에 쓰다보면 점점 낡고 망가져가지만

일상생활 속에 스며든 물건들은,

나의 삶 속에서 문득문득 그 때의 여행을 불쑥 떠오르게 하는 가장 소중한 추억환기제랄까. 

잊은 듯 살아갔지만 그 물건을 집을 때마다 여행했던 순간의 추억이 떠오르고, 

내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그 기억에 미소짓게 되는 그 특별한 느낌이 좋다. 

비록 이탈리아에서 이 디퓨저를 사오지는 못했지만, 다행히 한국에서 구할 수 있었고 

나의 소중한 보금자리에서 매일 비슷한 일상을 살아가다가도

디퓨저 병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에는 2019년의 이탈리아 여행을 떠올리고 흐뭇해하겠지. :)

 

 

이제 디퓨저 뚜껑을 열고 스틱을 꽂아놓으며 지난 여름 이탈리아 여행을 떠올려본다.

이탈리아 북부에서부터 시작해서 돌로미티 산맥을 돌고 토스카나 지방을 거쳐 로마까지 내려갔던 2주간의 여행.

이번에 코로나 사태로 유럽에서 이탈리아가 가장 심각한 피해를 입고 있다는 소식에 마음이 많이 아팠다.

하룻 밤 짧게 머물렀지만 기대보다도 훨씬 더 아름답고 무엇보다 진심으로 평화로워서

다음에 다시 오면 일주일은 머물러야지 마음먹었던 토스카나. 

아름다웠던 풍경사진을 하나씩 꺼내보면서 너무 멀지 않은 때에 다시 가볼 수 있기를 희망해본다. ♡

올해는 작년에 못 다 쓴 여행기나 써야겠다. 그럴 여유가 많지 않겠지마는!

 

사이프러스나무가 뻗은 숙소 뒷뜰에 누워 휴식하던 날.

 

숙소에 딸려있던 프라이빗 수영장. 하늘도 맑고 물도 맑고 저 멀리 보이는 풍경이 일품이었다. 

 

조금씩 물들어가는 토스카나의 저녁 

 

아름다웠다. 진심을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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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honey,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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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아....

내가 이 돌로미티 편을 4번째 쓰고 있는 중...

다 쓰고 저장했는데 어디론가 날아가버려서 생고생 중입니다...ㅠㅠ

 

[돌로미티] 미주리나 호수 → 트레치메 → 라가주오이 → 미주리나 호수

 

 

돌로미티에서 맞이하는 3일째 아침 (실제 여행에서는 5일째 아침).

오늘은 돌로미티하면 뺴놓을 수 없는 트레치메 디 라바레도 (Tre cime de Lavaredo, 줄여서 '트레치메')에 간다!

한국인들에게 돌로미티 여행은 크게 서쪽 South tyrol 지역의 알페 디 시우시&세체다, 그리고 동쪽 Cortina d'ampezzo 지역의 트레치메로 나뉘어지는데

같은 돌로미티 지역이지만 서쪽은 푸른 초원지대가 펼쳐진 아름다운 트레킹이라면,

 동쪽의 트레치메는 돌바닥의 거친 느낌의 상남자 같은 트레킹이랄까.

(트레치메 트레킹 때문에 특별히 트레킹화도 새로 샀다! 그 뒤로 신발장에서 잠자고 있음...)

사실 돌로미티 여행 주간 내내 일기예보에서 흐림+천둥이라고 했는데

(날씨요정이 날씨얘기 듣고 신나게 Thunder노래를 부르다가 나한테 혼남)

다행히도 이 날도 날씨가 끝내주게 좋았다.

아침 일찍 트레킹 준비를하고서 트레치메 트레킹의 시작점인 아우론조 산장으로 고우고우씬~

 

트레 치메로 향하는 입구. 입장료 30유로를 준비해야한다.

 

아우론조 산장 주차장에 빼곡히 들어찬 차들, 그리고 그 너머 뾰족뾰족하게 솟은 크리스탈로 산군 

 

시작부터 날이 너무 좋아서 크리스탈로 산군과 함께 인증샷샷샷

 

아우론조 산장 주차장에 주차하고 차에서 내리니, 여태껏 느끼지 못한 싸늘한 공기가 느껴진다.

아직 8월 중순인데 산악지대라 그런지 살곁에 닿는 공기 느낌이 차갑다. 

어제까지는 반팔에 자외선을 가려줄 얇은 셔츠 하나면 충분했는데, 

햇살은 밝아도 기온은 낮은지 레깅스도 신고 야주 약간의 기모가 들어간 티셔츠도 겹쳐입었다.

그리고 트레킹화와 내 무릎연골을 지켜줄 잠스트 무릎보호대, 그리고 등산스틱까지!!

만반의 준비를 끝내고서 아우론조 산장을 거쳐 101번 트레킹 코스를 따라

전 세계에서 온 관광객들과 함께 트레킹을 시작했다. 

처음 차에서 내렸을땐 공기가 싸늘했는데 그래도 해가 떠오르고 걷기 시작하면서 적당히 상쾌한 느낌이 난다!

 

아름다운 야생화 너머로 신선구름이 피어오르는 협곡의 장관. 

 

101번 코스를 따라, 라바레도 산장(Lavaredo Rifugio)를 거쳐 로카텔리 산장(Locatelli Rifugio)까지 갑니다.

 

101번 코스를 따라 보이는 크리스탈로 산군이 너무나 멋있어서 행복한 인증샷!

 

 

트레치메를 돌아보는 코스는 크게 2가지로 나뉘어지는데, 101번과 105번 코스다. 

두 코스 모두 아우론조 산장에서 시작해서 로카텔리 산장까지 왕복하는 코스인데, 

101번 코스를 따라갈 경우 아우론조 산장(시작) ▶ 라바레도 산장 (스침) ▶  로카텔리 산장 (반환점) 순서 걷게 된다.

105번 코스는 트레 치메를 가운데 두고 101번 코스의 맞은편인데, 아우론조 산장에서 바로 로카텔리 산장으로 가게 된다.

돌아올 때 101번으로 돌아올지, 105번으로 돌아올지 결정하지 않고, 우선은 101번을 따라 걸었는데

101번을 따라 걸을 때, 왼편에는 거대한 트레 치메가 솟아있고, 오른편으로는 깊은 협곡과 아우론조 산장 뒷편으로 크리스탈로 산군이 펼쳐져 있어서, 

그 풍경을 보면서 걷느라 힘든줄도 모르고 신나게 라바레도 산장까지 걸어갔다. 

(걱정을 많이 했는데 사실 힘들 것이 없음ㅋㅋㅋ)

 

라바레도 산장에서 올라오면 보이는 웅장한 트레치메의 북쪽면 (사진 왼쪽 개미같은게 사람!) 

 

줄여서 트레치메라고 부르는 트레 치메 디 라바레도(Tre cime di Lavaredo)는 라바레도의 세 개의 봉우리라는 뜻.

치마 그란데, 치마 피콜라, 치마 오베스트라 이름붙여진 세 개의 거대한 암석 봉우리를 의미한다.

사진에서 보면 트레치메만 보이기 때문에 그냥 좀 커다란 돌덩이 같지만, 

암석 하나당 약 500~600의 높이로, 30층 정도의 빌딩 높이랄까?

사진에서도 보면 왼쪽 귀퉁이에 사람들이 서 있는데 개미같아 보일 정도로 실제로 보면 어마어마하게 큰 암석봉우리다.

 

영차영차 걸으며 트레치메와 인증샷

 

저기 저기 로카텔리 산장이 눈앞에 보인다. 

 

왕복코스의 1/4지점이자, 편도코스의 1/2지점인 라바레도 산장을 지나 트레 치메를 등지고 걷다보면

드디어 반환점격인 로카텔리 산장이 눈앞에 나타난다.

101번으로 왔든, 105번으로 왔든 모두 로카텔리 산장에서 모이게 되어 있기 때문에 

로카텔리 산장에서는 우리보다 바지런히 걸어온 사람들로 바글바글했다.

날씨요정과 나도 트레치메가 한눈에 보이는 명당자리에 (로카텔리 산장 앞은 탁 트여있어서 사실 어디든 다 명당)

아빠다리하고 앉아서 저~ 멀리 맞은편에 우뚝 솟은 트레치메를 마음껏 구경했다.

그리고서, 대망의 인스타 동굴샷을 찍기 위하여 로카텔리 산장 뒷편의 급경사 언덕을 기어오름...

(여기가 제일 어려움....급경사라 기어 올라야...)

인스타그램에서 트레치메를 검색해보면 종종 등장하는 동굴에서 찍은 샷이 있는데, 

바로 로카텔리 산장 뒤에 비밀스럽게 파여진 동굴에서 찍은 것!

로카텔리 산장에는 사람들이 진짜 많은데, 이 곳은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았는지 

이런 보석같은 스팟을 아는 두세명만이 동굴샷을 찍는 영광을 누리고 있었다.

나도 그 영광열풍에 동참!

 

바로 동굴 프레임 속에 쏙 들어온 트레치메!

 

트레치메와 내 뒷모습...헷

 

동굴에서 이렇게도 찍고 저렇게도 찍고 실루엣도 찍고 오도방정을 떨고서

로카텔리 산장에서 샌드위치로 점심을 해치우고서 처음 왔던 101번 길을 따라 다시 돌아간다.

105번 길은 가보지 못했지만, 101번 길을 걸으며 보는 풍경이 너무 아름다웠기 때문에

한 톨의 아쉬움도 없이 다시 101번코스를 따라 걷기로!

개인적으로, 트레치메는 돌로미티의 상징 같은 곳이라서 코스에 넣었는데 

트레치메 자체는 커다란 돌덩이이고, 풍경을 좋아하는 나는 트레킹 코스에서 보는 풍경이 훨씬 좋았다 ♡

물론 트레치메 자체도 멋있긴 멋있고.

 

돌아가는 길에 저 멀리 보이는 아우론조 산장. 저기까지 가면 오늘의 트레치메 여정이 끝난다.

 

101번 코스에서 볼 수 있는 멋진 협곡의 풍경. 저멀리 호수와 (아마도) 아우론조 마을이 보이는 것 같다.

 

 

아우론조 산장에서 Tre Cime 간판과 함께 (5시간 걸어댕겨서 표정 약간 지침...)

 

 

그렇게 돌로미티에서 가장 유명한 트레치메 트레킹을 마치고 나니, 시간이 어느덧 세시무렵에 가까워 지고 있었다.

아우론조 산장에서부터 로카텔리 산장까지를 왕복하는 것 자체는 사실 2~3시간이면 될 것 같은데

걷다가 사진 찍고, 걷다가 사진 찍고, 걷다가 감상하고, 걷다가 노래부르고(읭?)

동굴에 기어올라가서 오도방정을 떨고 로카텔리 산장에서 샌드위치까지 먹다보니 의외로 시간이 오래걸렸다.

물론, 나는 이만큼 걸릴 것을 알고 있었지.

 

이렇게 날씨요정과 함께 오전부터 시작된 산행을 마치고 차를 타고서 

어제 스쳐지나갔던 라가주오이 산장(Rifugio Lagazuoi)으로 다시 고우고우씽!

우리가 첫날 샀던 슈퍼썸머패스는 개시일로부터 4일동안 3일을 선택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데

첫째 날 알페 디 시우시, 둘째 날 세체다, 셋째 날은 쉬고 오늘이 유효기간 마지막 날이어서

야물딱지게 슈퍼썸머패스를 써주기 위해서 라가주오이 산장으로 오르는 케이블 카를 타기로 했다.

참고로 라가주오이 산장으로 오르는 케이블 카 급경사가 으마으마함....고소공포증 있는 분들 조심

 

라가주오이 산장에서 바라본 풍경

 

라가주오이 산장에 올라 내려다보는 돌로미티 산맥의 너른 풍경은 멋졌다!

하지만, 이미 알페 디 시우시와 세체다에서 보았던 감동 뒤에 마주한 풍경이어서 그랬을까, 

처음 알페 디 시우시에서 몽삭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서 마주했던 풍경에 말문이 막히던 그런 감동은 없었다. 라가주오이 쏘리.

아마도 제일 처음 라가주오이를 왔다면 입이 쩍 벌어졌을텐데~!

어쨌든, 야무지게 슈퍼썸매패스를 마무리하고 돌아오는 길에 코르티나 담베초(Cortina d'ampezzo)에 차를 대고,

백화점 COOP에서 먹을거리가 있나 (혹시라도 아시아 음식이 있나) 살펴보다가 

샐러드바에서 보리밥과 쌀밥으로 만든 샐러드를 발견했다!

아무래도 돌로미티 지역이 로마같은 대도시가 아니기 때문에 아시아 레스토랑찾기도 힘들고 마트에도 아시아 음식이 없어서 슬펐는데, 

COOP 샐러드바가 우리를 구원하였다. (이후에도 쌀밥먹고 싶으면 COOP에서 해결함 ㅋ)

 

이번 여행을 위해서 시원스쿨 여행 이탈리아 편을 열심히 수강하고 중요한 단어들을 열심히 외워갔었는데,

여기 이탈리아 북부에서 아주 알차게 써먹었다는 거!

밀라노에서도 호텔 데스크에서 아꾸아 어쩌고 하길래, 내가 아꾸아 나뚜랄레(미네랄 워터)달라고 해서

날씨요정이 너 지금 이탈리아어 하는거냐 @@ 놀랐는데, 

특히 여기 돌로미티 지역에서는 더더욱 유용한 이탈리아어를 구사함..호호

COOP 샐러드바에서 약간 나이가 지긋한 아주머니에게 짧은 이탈리아어로

쌀밥들어간 샐러드 주세요, 문어 샐러드 주세요, 포크랑 숟가락은 어디에? 등등의 표현으로

훌륭하게 음식을 주문하고 1회용 포크와 숟가락도 사서 나올 수 있었다능....

단어만 나열중인 내 이탈리아어에도 환하게 웃으면서 친절하게 대해주었던 이탈리아 아주머니♡

비록 단어만 나열하는 의사소통이긴 하지만 현지인과 대화가 된다는 그 기쁨은 이루 설명할수가 없다.

역시, 여행에서 그 나라 언어를 구사할 수 있으면 여행의 즐거움이 10배는 배가 되는 것 같다.

숙소에서 바라보이던 노을지는 미주리나 호수

 

그렇게, 저녁까지 싸들고서 숙소에 돌아오니 어느 새 창밖으로는 미주리나 호수에 황금빛 노을이 내려앉고 있었다. 

아, 그 풍경이 얼마나 평화롭고 아름답던지. 

이번 이탈리아 여행을 하면서 좋았던 순간들이 너무나도 많았지만, 

여기 미주리나 호수 숙소에서의 순간들이 물결처럼 마음을 휩쓸고 지나갈 때가 있다.

숙소 문을 열때마다 내 눈높이에서 바라보이던 창 밖의 호수 풍경, 

잔잔하고 고요한 풍경이 너무나 당연하게 눈앞에 펼쳐지던 그 공간.

오늘 하루 트레킹을 하느라 고생많았다고, 이제 남은 시간은 모두 자유시간이라고, 이제는 푹 쉬어도 된다고 말해주는 것만 같았던 

그 날의 공간과 그 날의 느낌, 

크게 기대하지 않았지만, 아련한 여행의 추억은 항상 예상치 못한 곳에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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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honey,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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