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이탈리아 여행기는 여건상 여러 가지 이유로 못쓰지 않겠나.. 싶어 포기하고 있었는데

그 누구가 아닌 스스로를 위해서 쓰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써놓은 기록이 없기도 하고, 기억이 희미하기도 하지만 쓰는 것에 의의를 두고 써보려고 합니다.

 

여행의 시작은, 밀라노부터였지만 밀라노부터 쓰다가는 영원히 이 여행기를 끝낼 수 없을 것 같아서,

과감하게 밀라노(Milano), 그리고 중간에 들렀던 시르미오네(Sirmione)를 건너뛰고 

돌로미티(Dolomites) 지역부터 여행기를 시작합니다. :)

 


[여정] 밀라노에서 시르미오네를 거쳐 돌로미티로

 

[돌리미티] 시작은 알페 디 시우시

 

 

Buon giorno! 본죠르노 :)

돌로미티 지역에서 시작하는 첫 아침 해가 밝았다. 

눈을 뜨자마자 날씨앱부터 켜봄. (가장 중요한 일!)

오전 6시만 햇님, 오전 9시부터 구름 구름 구름...OTL

괜찮아, 이번 여행엔 날씨요정(?)이 있으니까! 그렇지, 날씨요정?

 

오늘은 이번 이탈리아 여행에서 가장 기대하는 곳 중에 하나인, 알페 디 시우시(Alpe di siusi)를 걷기로 한 날. 

축구장 8000개  크기의 광활한 초원지대인데 그만큼 트레킹 코스도 많아서 가장 공부를 많이 했던 곳이고,

또 그만큼 놓칠 수 없는 멋진 풍경이 있는 곳이기에 날씨가 더더욱 중요한데 흐림이라뇨. ㅠ

(사실 어제 본 일기예보엔 앞으로 3일동안 천둥번개여서 여행 다 때려치우고 싶었다고 한다.)

하지만 창문을 열어보니 아직은 아침이라 화창하고 전날 비가 내려준 덕분에 쾌청한 느낌까지 든다.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 걸? 

흐려지기 전에 얼른 맑은 하늘 보러 가보자! 

 


 

숙소에서부터 차로 30여분을 달려 알페 디 시우시로 올라가는 Mont Seuc 케이블 카 매표소에 차를 세우고,

돌로미티 슈퍼썸머 패스를 사서 드디어 케이블카에 탑승했다. 

사진으로만 봐왔던 알페 디 시우시는 과연 어떤 풍경일까, 두근두근 - 

게다가 9시가 되었는데도 일기예보와는 달리 날씨가 맑아서 더 두근두근 ♡

 

Mont Seuc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는 길. 저 아래 오르티세이 마을과 오른쪽 편에 세체다(Seceda)가 보인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한참을 솟아오르던 Mont Seuc(몽삭, 이라고 쓸 예정이지만 정확하지 않음;) 케이블 카가 드디어 멈춰 섰다.

설레는 마음으로 케이블 카에서 내려서 알페 디 시우시를 향해 한 걸음 내딛는 순간, 

카메라에 다 담을 수 없는 - 

그 광활하고 멋진 풍경에 그동안의 날씨 걱정을 홀딱 잊고 탄성을 지르게 만든다.

우와우! 쏘리질뤄!

 

왼편에 3181m 높이의 싸소룽고(Sasso Lungo)와 싸소 피아토(Sasso Piatto), 그리고 오른편에는 카티나치오(Catinaccio)의 일부. 사진으로 보니 조막만해 보이지만 사실 어마어마어마어마어마하게 넓고 큰 지형이다. 

 

핸드폰 파노라마로 담아본 풍경. 현대기술은 턱없이 모자라다.

 

저 멀리 스칠리아(Sciliar)를 배경으로!

 

 

몽삭 케이블카 승강장에서 보는 알페 디 시우시의 풍경은 입이 떡 벌어질 만큼 멋있었다.

이 여행 준비를 위해 인터넷 블로그와 구글을 돌아다니면서 수 없이 스쳐지나 봤을 풍경이었을 텐데도,

실제 눈 앞에 펼쳐진 풍경은 나의 상상력의 한계를 뛰어넘는 장관 같은 풍경이었다.

이미 2000M 높이의 산에 올라와있는데 평지같이 너른 초록색 들판이 펼쳐져 있고,

그 너머로 거대하고 뾰족한 암봉들이 우뚝 솟아있다니.

같은 알프스인데 스위스와는 또 다른 느낌! 

 

게다가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을, 케이블카만 타고 올라오면 이렇게 쉽게 볼 수 있다! 개꿀!

좌에서 우로 보아도, 우에서 좌로 보아도

너무 멋지고 아름다워서 한참을 몽삭 케이블카 승강장 앞을 벗어나지를 못했다.

한편으로는, 자연도 산도 좋아하는 우리 엄마 아빠도 같이 왔으면 얼마나 좋아하셨을까, 마음이 찡긋찡긋..ㅜ.

예전엔 좋은 곳을 보아도 부모님 생각이 나지 않았는데 (도시 위주의 여행을 했기 때무네?...)

요즘은 나도 부모님도 나이가 들어서인지 멋진 자연환경을 보면 부모님이 먼저 생각난다.

이래서 내가 재작년에 캐나다 로드트립을 하고 다시는 가나 봐라 하고 작년에 또 미국 여행을 했나 보다.

아 여기도 부모님 모시고 오면 얼마나 좋았을까 ㅠ.ㅠ

나조차도 이렇게 환호성이 튀어나올 만큼 좋은데, 풍경러버인 우리 엄마 물개박수치면서 좋아하셨을 텐데.ㅠ.ㅠ

 

 

어쨌든, 몽삭에서 보이는 풍경만 보고 내려가도 충분할 수 있겠지만

이번 나의 여정은 짧게나마(과연) 트레킹을 하면서 돌로미티의 속살을 걸어보는 것이었으므로!

부모님 타령을 하는 넋을 바로 잡아 전격! 트레킹을 시작해본다.

여러 블로그님들의 정보를 참고해서 결정한 오늘의 루트 :

몽삭(Mont Seuc)에서 9번 루트를 따라 싸소 룽고(Sasso Lungo)를 바라보며 평원을 걸어 살트리아(Saltria)까지 걷기 

→ 살트리아(Saltria)에서 11번 버스를 타고 콤파치 (Compach) 마을까지 이동하기

→ 콤파치(Compatch) 마을에서 파노마라 리프트를 타고 2번 루트를 따라 마음껏 걷고 돌아오기

 

[알페 디 시우시 코스] 분홍색 (케이블/리프트), 노란색 (트레킹), 하늘색(버스)

 

싸소 룽고(Sasso Lungo)를 바라보며 걷는 한적한 9번 루트

 

풍경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걷다 쉬다(찍다) 걷다 쉬다(찍다) 해봅니다. 스칠리아를 배경으로!

 

쾌청한 하늘과 초록빛 잔비밭, 그리고 그 너머의 암봉들까지. 보고만 있어도 행복한 이 풍경 

 

살트리아(Saltria)까지 열심히 걷는 나

 

 

몽삭에서부터 살트리아까지 두어시간 남짓을 - 

동화 속 삽화 같은 풍경을 보면서 눈누난나 ♬ 콧노래를 부르며 수십 번을 감탄하며 걸었다.

날이 너무 맑고 풍경이 너무 깨끗해서 덩달아 시력까지 좋아지는 느낌.

살트리아까지 오르막도 없이 내리막과 평지를 걸어서 무탈히 도착했다.

이건 등산도 트레킹도 아니고 산책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살트리아에서 11번 버스를 타고서 콤파치(Compatch) 마을로 이동!

버스로 이동하는 이 길도 굉장히 풍경이 아름다웠는데, 걸으며 보면 더 좋을 풍경이었지만

우리는 파노라마 리프트를 타고 트레킹을 하고 마지막 리프트 시간 전에 다시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살트리아에서부터 콤파치까지의 루트는 과감히 생략하기로 했다.

콤파치 마을에서 파노라마 리프트를 타고 알페 디 시우시의 가장 오른편에 위치한 평원으로 솟아올랐다.

파노라마 리프트에서 내리니 어느덧 점심시간.

아침 9시부터 시작해서 어느새 3시간 여가 지났다. 덜덜덜덜.

점심은 파노라마 호텔에서 먹을까 생각했는데 친구가 가져온 크루아상을 먹자고 해서 

저 멀리 스칠리아(Sciliar)의 풍경을 보면서 가볍게 크루아상과 에너지 바로 점심을 해결했다.

풍경이 얼마나 멋진지, 풍경만 봐도 배부르다야~ 

 

파노라마 리프트 승강장에서 보는 스칠리아 (Sciliar)

 

 

파노라마 호텔에서부터 Goldknof 호텔 방향으로,

이번에는 싸소 룽고(Sasso Lungo)를 왼편에 두고서 그 옆면을 보면서 걸어가 본다.

정말 끝없이 펼쳐진 푸른 잔디밭. 

가는 길에 나무 한 그루 없다. 

그 말은 해발고도 2000m 높이에 내리쬐는 직사광선을 가려줄 그늘 한 점 없다는 것.

그러므로 돌로미티에 간다면 반드시 얼굴의 앞, 옆까지 꼼꼼히 가려줄 챙 넓은 모자는 필수!

그리고 선크림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므로 가급적 긴 팔과 긴 옷을 입는 게 좋다. 

(그리고 여름이지만 산 위라서 쌀쌀한 바람도 불기 때문에)

날씨요정 내 친구 이 날 반바지 입었다가 전기구이 통닭급으로 타서

밤새 뜨거워 뜨거워를 외치다 그 뒤론 긴 바지만 입었음. 

 

여러분~ 돌로미티로 오세요~

 

이 곳이 바로 천국입니다아~

 

 

Goldknof 호텔까지 걸어가던 중에 만난 산장 (아마도 에델바이스 산장!) 앞에서 자리를 펴고 누워서

잠시 느긋하게 낮잠을 즐겼다. (그런데 바람은 차갑고 햇살은 따가워서 눈만 감고 있었음.)

산장에는 이 천국을 함께 누리는 가족 단위 관광객들이 마치 제 집 앞인 양 드러누워들 있었는데

그 편안한 모습이 너무 좋아 보였다. 

이 신선놀음을 마치고, 이제 왔던 길을 그대로 되돌아간다. 

올 때는 몽삭에서부터 살트리아까지 걸어 내려갔었는데, 돌아오려면 걸어 올라가야 하기 때문에

돌아가는 길엔, 중간에서 Sole 리프트를 타고 몽삭 승강장까지 올라가기로 했다.

(운행 마감 시간을 못 맞추면 걸어올라가야 하기 때문에 운행시간을 맞추는 게 아주 중요하다!)

 

 

Sole 리프트를 타고 올라가는 길에 돌아본 싸소 룽고의 모습

 

처음 감탄을 내질렀던 몽삭 승강장까지 왔는데, 

으아니?

싸소 룽고가 오전과 달리 너무나 도드라지게 멋있어 보이는 것이다.

분명 오전에 보았던 풍경 그대로인데, 오전에는 너른 벌판 뒤에 그저 우뚝 솟은 봉우리였을 뿐인데

오후에 햇살이 기울어지기 시작하면서 싸소 룽고의 암석 사이사이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암석의 결이 입체적으로 도드라지면서 오늘 하루 보았던 그 어느 때보다도 웅장하고 드라마틱한 위용을 뽐내고 있었던 것이었다. 

아침에 찍을 만큼 사진을 찍었는데, 싸소 룽고와 또 마지막 기념사진을 찍음.....

(알페 디 시우시를  트레킹 없이 케이블카 승강장에서만 구경할 예정이라면 햇살이 기울어지는 오후에 오는 것을 추천추천!)

 

싸소 룽고와의 마지막 기념사진

 

하. 이 드라마틱하게 도드라지는 우리 싸소 룽고 좀 보세요 ♡

 

아침 9시에 시작해서 몽삭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오니 어느새 오후 4시 즈음이 되었다.

(간단히 걷는다더니....????)

날씨 앱이 예고했던 것과 달리, 하루 종일 날씨는 너무나도 쾌청하게 맑았고 

걸을 때마다 방향을 달리하며 보았던 싸소 룽고의 풍경은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웠다.

몽삭에서 바라만 보는 풍경도 멋있었지만, 그 너른 들판을 한 걸음씩 걸어가며 만끽하는 그 아름다움이란! 

이 곳에서 보는 석양은 또 얼마나 아름다울까, 또 캄캄한 밤에 쏟아지는 은하수는 얼마나 아름다울까.

케이블 카가 저녁까지 운행하지 않기 때문에 케이블카 시간에 맞춰 내려와야 했지만

상상했던 것, 기대했던 것보다도 멋있는 순간들을 만끽했기 때문에 보지 못하는 석양과 은하수가 결코 아쉽지 않았다.

게다가, 이번 돌로미티 여행에서 가장 맑아야 한다면, 알페 디 시우시에서의 하늘이 맑기를 바랐고

그 소원이 이루어져서 오늘 하루, 충분히 만족스럽고 한 걸음, 한 걸음 행복한 순간들이었다. 

여러분, 알페 디 시우시는 사랑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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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honey,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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