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새, 7월 하고도 중순.

장마가 온다 온다 하면서 미뤄지는 7월의 중순에 3일의 연차휴가를 냈다.

코로나 사태가 없었더라면, 지금 3일의 연차휴가를 쓰는 게 아니라 

곧 다가올 2주간의 여름휴가를 위해서 사무실에서 열심히 일 하고 있었을텐데, 

올해는 아무래도 가망이 없는 것 같다.

 

 

2주의 휴가(10일의 연차)중에서 1주일(5일)은 9월 초로 남겨 두고

3일만 앞당겨 쓴 여름 휴가. 

결혼생활에 적응하면서 오는 정신적, 육체적 피로감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한동안 일에서 멀리 벗어나고 싶은 느낌이 간절했다.

같은 회사에서 무려 8년 차, 만 7년을 일하고 있었고 

맡은 업무가 프로젝트성 업무(시작과 끝이 있는 업무)가 아니다 보니,

끊임없이 과거에 자문했던 일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내 발목을 잡는 듯, 

일의 연속성의 측면에서 과거 검토자에게 올무를 씌우듯 돌아오는 일에

때로는 살짝 구역질이 났던 것도 같다.

쉴 때가 되긴 되었다. 

 

- ㅇ - 

 

 

그렇게 맞이한 7월 중순의 짧은 여름 휴가.

그런데, 여름에 여행을 가지 않고 휴가를 보내는 것은 입사 이래로 처음 있는 일이라 

계획도 없이 덜컥 맞은 소중한 나의 재충전 시간에

서울에서 도대체 무얼 해야 만족스러울지

방안에서 정처 없이 서성이다가 (그 중에 하루의 반나절 씩은 밀린 집안일을 했다.)

찌는 무더위, 대중교통의 불편함을 뚫고 새로운 곳엘 다녀왔다. 

성수동만큼 아주 새롭진 않았지만, 

이 아래는 3일 간의 나의 재충전의 일기이자, 행복했던 순간에 대한 나만의 작은 사진전이다. 

 

1. 북촌 - 현대카드 디자인 라이브러리 

 

안국역 1번 출구에서부터 10여분 간 걸어 올라 가는 작은 골목길에서 본 풍경들 

 

 

길 왼편에서 덕성여자고등학교가 있다. 덕성여대는 알고 있었는데 덕성여고도 있었구나.

 

닫힌 교문의 철창 너머, 크고 작은 나무들로 아름다웠던 덕성여고의 교정 

 

올라오다 뒤돌아본 길 - 아기자기 하다.

 

덩굴이 뒤덮은 안동교회의 빨간 외벽의 건물과 덤덤한 십자가  

 

이날 따라 하늘이 유독 파랬다. 디자인 라이브러리 맞은편의 코너 갤러리. (우드앤브릭 별관인듯)

 

 

현대카드 디자인 라이브러리로 들어왔다. 

사실 디자인 서적을 읽으러 온 것은 아니고,

북촌에 있다길래 - 그리고 공간이 주는 감각적인 느낌이 좋을 것 같아서.

 

디자인 라이브러리는 디귿(ㄷ)자, 혹은 미음(ㅁ)자 형태로 가운데 중정을 두고 지어져있었다.

실제 사용 공간은 탁 트인 개방형 공간이 아니라 구석구석 각이 져 있어서 

얼핏 보기에는 크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는데

미로같이 숨겨진 구석들이 많아서 눈에 보이는 것 보다 큰 것도 같다.

1층과 2층이 오픈되어 있었는데, 2층에는 책 읽는 사람들이 많이 있어서 촬영은 되도록 자제했다.

 

2층에서 바라본 디자인 라이브러리의 풍경, 멀리 남산타워도 보이고요. 

 

가지고 온 책이 있다면 1층에서만 읽을 수가 있었다.

1층에는 여러 가지 종류의 의자를 전시하고 있었는데 마음에 드는 의자에 앉아서 편하게 독서를 할 수 있다.

 

알록달록한 의자들, 도서관이 아니라 이 자체로 미술관에 온 것 같은 느낌. 

 

1층에 앉아서 보이는 풍경, 저 작품 이름을 알 듯 말 듯.

 

라이브러리답게, (사람들이 사진을 찍기는 하지만 최대한 조심스럽게)

사람들은 말소리를 꺼내지 않았고 이 공간에 어울릴 법한 음악들이 플레이 되고 있었다. 

나는 미술관 같이 디스플레이 된 세련되고 아름다운 공간에 앉아서 

집에서부터 봇집지듯 지고 온 책을 꺼내어 읽었다. 

음악 소리는 귀에 들려오지만 마음은 고요한 이 느낌. 

새로운 공간, 새로운 배경, 새로운 음향의 조화가 선물하는 경험과 감각.

똑같은 생활반경에서는 느끼지 못하는 새로운 느낌. 

딱히 디자인을 위한 연구를 하러 온 것은 아니지만,

한 번 와보기를 잘 했다고 생각하면서,

앞으로도 불편함에 개의치 말고 새로운 곳을 찾아다니자 생각하면서 

아쉽지만 이제 다시 집에 간다.  

 

디자인 라이브러리의 맞은편 건물

 

코너 갤러리의 정면. 

 

이번에는, 올라올 때의 길 말고 덕성여고 건물의 반대편 너머의 길로 내려가 본다. 

어짜피 길은 다 통하게 되어 있으니까. 

이 골목은 또 어떤 풍경일까 기대하면서.

 

수리를 위해 쌓아둔 오래된 장들.  북촌과 잘 어울린다.

 

원래 서울 하늘이 이토록 파랬나. 

 

사람도 많지 않고 커다란 나무가 드리워져 참 아름다웠던 길

 

담벼락에서 만난 작은 덩굴과 이름모를 아름다운 꽃.

 

 

눈 앞에 펼쳐진 낮 시간의 아름다운 풍경을 핸드폰 카메라에 이렇게 저렇게 잘라 담으면서,

참 행복했다.

사진을 찍고 싶게 만드는 피사체를 만나는 것도 쉽지 않은 요즘이기에.

내 마음이 동해서 눈 앞의 풍경을 나만의 사각 프레임에 가두어두고 또 그 결과물에 뿌듯하다. 

 

 

- ㅇ - 

 

 

섯시가 다 되어 가는 시간이었는데도, 날은 여전히 밝고 또 맑다. 

낮이 이렇게 긴- 긴 - -  시간이었구나. 

사무실에서는 느끼지 못하는 낮이라는 시간이 주는 여유와 포근함. 

어린아이이던 시절에 느꼈던 그런 느낌.

놀다가 놀다가 엄마가 저녁을 먹으러 오라고 불렀는데도 아직 해가 지지 않던 그 느낌.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냥, 다시 어린아이 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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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honey,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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