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삶/IV. 삶'에 해당되는 글 60건

  1. 2020.11.09 유독 긴 가을,
  2. 2020.10.26 나에게 행복은.
  3. 2020.10.19 2020년의 가을
  4. 2020.09.14 여름이 간다
  5. 2020.07.18 2020년, 서울에서의 여름 (1)
  6. 2020.07.07 성수동 바이브
  7. 2020.07.04 여행을 추억하는 한 가지 방법 :)
  8. 2020.06.05 행복하다고.
  9. 2020.05.29 ♡ 결혼 기념 기부 ♡
  10. 2020.05.24 안녕? 나의 새로운 인생 :)

유독 긴 가을,

■ 삶/IV. 삶 2020. 11. 9. 10:48

 

 

 

 

 

알람 없는 일요일 아침, 

느즈막히 일어나 암막커튼을 걷어보니 

하늘은 맑고 푸른데 창 밖의 커다란 황금빛 나무잎들이

바람에 싸아아아아 - 싸아아아아 - 마치 파도가 치는 듯 소리를 내며 찬란하게 흔들리고 있다.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해서 내가 고른 첫 신혼집.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조건은 예산, 동네, 역까지의 거리, 회사까지의 이동거리, 그런 것들이었는데 

(물론 그런 유용함은 매일매일 체감하고 있다)

이 집에 6개월 가량 살면서 느끼는 가장 큰 행복은

앞에 가릴 것 없이 시원하게 뚫려있는 공간과 그 사이 우리 창문까지 높게 뻗은 커다란 나무의 풍경이다. 

여름에는 시원하고 푸르른 계절을, 가을에는 황금빛으로 물들어가는 계절을 바로 눈 앞에서 감상하는 기분이란.

서울 한복판에 살고 있지만, 어떤 날에 교외에 있는 듯, 또 이렇게 바싹 마른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릴 때는 

밴쿠버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가고싶다)

 

창틀에 앚아 저 커다란 나뭇잎들이 바람에 차르르 차르르 흔들리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노라니, 

문득 - 이 바람에 저 잎이 다 떨어지고 나면 한동안은 황량한 나뭇가지만 뻗어있을테고, 

또 이런 풍경을 보려면 겨울과 봄과 여름의 사계의 시간을 모두 지나 보내야 하는구나. 

그렇게 가을을  두 번 보고 나면, 어쩌면 이 곳을 떠나야만 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살아보니 너무 좋은 이 집의 단 한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내 집이 아니라는 것. 

집주인은 이 집을 보지도 않고 샀다던데, 정말 운도 좋지. 

같은 아파트라도 같은 동이라도 층 수에 따라 라인에 따라 보이는 풍경이 다른데 어쩜 이 집을 딱 골랐을까?

여튼, 그렇게 생각하니 이 집에서 이런 풍경을 보며 지낼 수 있는 시간도 빠르게 줄어두는구나. 아쉽다. 

 

처음 집을 계약하고 신혼집이라고 도배를 하고 청소하러 갔던 초 봄의 어느 늦은 밤,

밖은 캄캄하고 집 안은 가구 하나 없이 덩그라니 휑한 가운데 내가 과연 결혼생활을 잘 할 수 있을까 두려워

방 닦다 말고 주저앉아서 엉엉 운 적도 있었는데. 

살다보니, 도리와 함께하는 즐거운 추억들이 조금씩 조금씩 쌓여가면서 어느 새 이 집에 대한 애정이 많이 들었다.

 

나중에 이 곳보다 여건이 더 좋은 곳으로 갈 수도 있겠지만 - (지금 집값/전세값 생각하면 ....)

아파트 한 채만큼 커다란 나무 전체가 가을빛으로 물들어 시원한 바람소리를 내는 풍경을 가진 집은, 

또 만나기는 어렵겠지.

먼 훗날, 이 풍경이 그리워질까봐 덜컹거리는 방충망을 열고서 오늘의 풍경을 소리와 함께 동영상으로 담아보았다.

창 밖의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서, 넋놓고 하염없이 보게되는 그런 집에 살았었다고 기억해야지. 

 

여름은 짧았던 것 같은데, 올해 가을은 끝날 듯 끝나지 않고 여전히 가을 한 가운데 인것 같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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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쁘다가도 여유롭고, 여유롭다가도 바쁜 10월의 마지막 주말을 보내고서

나 그리고 친구들의 SNS 계정을 훑어보다가 저마다가 생각하는 행복의 모습이 이렇게 드러나는구나. 생각했다.

누군가는  맛있는 음식 사진을, 누군가는 취미활동 사진을, 누군가는 가족사진을, 누군가는 쇼핑 사진을 올리는 가운데

내가 남긴 것은 대부분 풍경사진, 하늘 특히 노을 사진, 그리고 그 속의 나와 너와 우리의 사진들. 

아침부터 밤까지,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우리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비슷비슷할텐데

사람마다 각별히 고르고 올린 일상의 모습은 이렇게 제각각인 것이다. 

그러게.

요즘 내가 생각하는 행복은, 

아름다운 날에, 노력과 정성을 들여서 좋은 사람들과 좋은 순간의 추억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것. 

그것이 어떤 특별한 이벤트가 아니더라도, 그저 평범한 일상 속의 한두 시간일지라도. 

조금 더 어릴 적엔, 행복하기 위해 노력해야하는 어른이 되었다는 사실에 씁쓸해 했었는데

이제는 내가 노력해서 행복할 수 있다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삶에 대해 아주 조금, 겸손해진 것 같다. 

그렇게, 행복하기 위해 맑고 청명한 2020년의 가을 날에, 

단풍색이 발갛게 물들어가는 아름다운 풍경을 찾아, 행복을 찾아 다닌 나의 기록들. 

 

창덕궁에서. 

 

창덕궁 내 커다랗고 웅장한 나무. 나무 좋아하는 거보니 나이 들었다. 

 

기울어지는 햇살 속에 창덕궁 인정전 

 

아름다운 인정전과 그 뒤의 나무숲이 어우러져 얼마나 아름답던지.

 

파란 하늘 아래, 알록달록한 단청이 홀릴만큼 매혹적이다. 저 색감 어쩔꼬.

 

덕수궁 말고 창덕궁 돌담길. 

 

(막혀서 들어갈 수 없었지만) 창덕궁의 후원 가는 길의 아름다운 풍경. 

 

너무 물들지 않아서 오히려 좋았던 풍경 

 

단풍이 띠를 이루어 감싸는 올림픽 공원

 

올림픽공원의 아름다운 단풍길 

 

처음 가본 명동성당. 내부 관람을 할 수 없어 아쉬웠지만 벽돌로 지은 성당이 멋있었다. 

 

명동성당 앞에서 기념 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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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의 가을

■ 삶/IV. 삶 2020. 10. 19. 02:19

 

쩐지 근황을 글로 남기기 선뜻 어려운 요즘.

슬픔이 내 글의 원동력이었던 것일까? 아니면 혼자있는 시간과 공간이 없어서일까? 아니면 조심스러워서일까?

이상하리만큼 그 어떤 감정적인, 감상적인 마음의 물결이 일지 않는 서른 네살의 나날들. 

오랜 기간에 걸쳐 나를 괴롭혔던 불면증도 사라지고 말그대로 '평화의 시대' 라고 인정할 수 밖에 없다. 

(물론 현실적인 고민들과 신경쓰이는 것들이 있지만 대체적으로 그렇다는 말이다.)

평화롭고 평온하지만, 글로 남기고 싶은 그 어떤 소재도 떠오르지 않아서 조금 답답하달까. 

 

가을이 되면 커다란 나무들이 가을색으로 물들어 가고, 어쩐지 외국에 온 거 같은 느낌을 물씬 풍기는 이 곳. 

 

 

지난 토요일, 청명한 가을 날 - 코로나19로 외식 한 번 쉽게 하지 못하셨던 엄마아빠를 위해서

온 가족(엄마, 아빠, 동생, 나, 그리고 신랑!)이 청평으로 가을 소풍을 다녀왔다. 

봄에도, 여름에도 한 번씩 계획했었는데 이런 저런 사정으로 계속 취소하다가 가을이 되어서야. 

그래도 내 경험상 이 곳은 가을이 가장 아름다운 곳이기에 날씨만 맑다면 모두가 좋아할 것임을 믿어의심치 않았다. 

아무래도 날씨좋은 가을날이라 청평까지 가는 길이 많이 막힐까 걱정이 되기도 하고, 

또 결혼하고 나서 (이걸 글로 쓰면 왜이렇게 어색한지 모르겠다...) 남편(이것도 말로 하면 괜찮은데 쓰면 어색함.....)까지 

집을 벗어나 야외에서 모이는게 처음이었기 때문에 아무래도 평소보다 더 어색하지 않을런지,

모임 주최자인 나는 전날 밤 마음이 콩닥콩닥. 

 

밀릴까봐 너무 걱정해서 아침 7시반에 서울에서 출발한 탓에(;;) 양평 스타벅스에 들렀다가 안개 자욱한 청평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탁구장에 마음 설렌 아빠를 위해 한 시간 정도 탁구를 치고 나왔더니

안개는 어느 새 사라져버리고 우리 모두가 기대했던 맑고 청명한 가을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점심을 먹기 전에 가볍게 청평호를 산책했다.

 

뭐랄까. 나무 수종이 정말로 캐나다를 떠오르게 하는 면이 있다. 

 

잘 정돈된 호수의 산책로. 햇살은 따뜻했고 바람이 청량했다.

 

산책로를 걷는 아빠와 아들. 

 

 

드디어 점심시간이 되어 캠핑장으로 향했다.

어느 늦은 가을 날, 회사 사람들과 이 곳에서 야외 bbq 파티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 풍경과 정취, 그리고 그 날의 분위기가 너무 좋아서 언젠가 부모님 모시고 가을날에 꼭 한 번 와바야지 했었다.

그 날만큼 단풍이 완연하진 않았지만, 적당히 단풍이 든 나무들과 푸릇한 나무들이 섞여 아름답기 그지 없었다.

항상 카메라에 다 담기지 않는 이 풍경의 아름다움이 아쉬울 뿐. 

 

 

평화롭고 또 아름다운 풍경

 

고기와 새우와 소세지를 굽는 동생과 신랑 

 

아빠는 이렇게 앉아계시더니 나중에 토치한번 못잡아봤다고 아쉽다는 농담을....

 

 

그릴에 번개탄과 숯을 올리고 불을 붙였다.

다들 캠핑장비는 처음이라 불을 붙이는 건 쉽지 않았지만 숯을 깨부시고 부채질을 하며 열심히 불을 피웠다. 

나랑 엄마는 준비된 밑반찬들을 차리고 동생과 도리(남편)는 그릴에 열심히 고기와 새우와 소세지를 구웠다. 

두 장정이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열심히 고기를 굽는데 뭐랄까, 집에 아들(?) 둘이 있어서 든든하다는 생각을 했다.

엄마아빠도 그런 생각을 하셨을까?

숯불향 가득한 고기로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후식으로는 집에서부터 챙겨온 드롱기 포트에 물을 끓여 카누와 함께 양평 스타벅스에서 사온 케이크를 꺼냈다. 

그늘 아래 있어 날이 좀 쌀쌀하기는 했지만, 따뜻한 커피가 든 종이컵으로 손을 녹이면서

동생의 파란만장했던 대학입시후기와 학부생활 얘기를 들으며 다들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다들 저녁엔 약속도 있고 또 늦게 출발하면 서울 가는 길이 막히기 때문에 귀가를 채비하던 때, 

삼각대와 카메라를 꺼냈다.

언젠가부터 졸업식, 결혼식, 같은 행사가 아니면 가족사진을 찍은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엄마는 나이가 들어서 이제 사진에 예쁘게 나오지 않는다고 사진 찍는걸 별로 좋아하지 않으시기도 했지만

나도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이젠 부모님과 함께 하는 시간, 그 순간의 기록들을 많이 그리고 오래오래 남겨놓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부터 사진을 위해 항상 예쁘고 젊을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했다.

뒤돌아보면 오늘의 우리가 가장 젊었고, 소중한 추억을 만든 행복한 오늘이 가장 예쁜 것이었다. 

언젠가 이 날을 되돌아보면서 참 좋은 날이었다고 기억할 수 있는 사진이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감사하게도 날씨도 좋았고, 풍경은 아름다웠으며, 음식도 맛있었고, 분위기도 화기애애하고 모든 것이 완벽했다.

이 날의 사진엔, 그 모든 기억들이 다 아름답게 스며있을 것이다. 

 

5인가족사진 (초상권 허락을 받지 않은 Son & Son in law. 나의 자리 배치 미스 때문에 얼핏보면 형제같음....ㅋㅋ;;)

 

 

아빠는, 정말 너무 오랜만에 코로나를 생각하지 않았던 시간이라고 하셨다. 

코로나가 터져서 외부 출입을 거의 삼가고 다른 사람들과의 만남도 거의 없는 터라 아빠가 많이 힘들어하셨는데 

이렇게 아주 잠깐이나마 생기가 넘치는 시간을 선물 드릴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돌아오는 길은 올 때의 2배 정도 걸렸다. 

돌아와서 가족 단톡방에 찍은 사진을 올렸는데, 

아빠가 오래만에 바람도 쐬고 탁구도 치고 고기도 구워먹고,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멋진 하루가 되었다고.

또 도리(남편)과 오손도손 단란한 모습도 보기 좋았다고 답을 하셨다.

(도리(남편)이랑 오손도손 단란했던 특별한 기억이 없는데 ... ㅎㅎ)

그런 아빠의 카톡을 받으니, 이제 결혼하고 내가 꾸린 가정에서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드리는게 

부모님이 바라고 또 기대하는 모습이시겠구나..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초새벽부터 집에 돌아오기까지, 주말 이틀 중에 하루를 온전히 내어주고 

장인어른하고 열심히 탁구도 치고, 처남이랑 열심히 고기도 굽고, 와이프에게 새우도 까주고, 

돌아오는 길엔 긴 운전도 묵묵히 해준 도리에게 고마웠다. 

나로 인해 가족이란 이름으로 묶였지만 그래도 아직은 많이 어색하고 낯선 부분이 있을텐데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려 많이 노력해 준 우리 도리. (이 포스팅은 못 보겠지만) 고마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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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간다

■ 삶/IV. 삶 2020. 9. 14. 18:58



올 해 여름은
입사 이래로 해외여행 없는 첫 여름이었고
역대 가장 긴 장마로 내내 비만 내리면서
여름다운 느낌도 없었는데
처서가 지나자마자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아침과 밤으로 찬 기운의 바람이 분다.
이렇게 2020년 여름이 끝나는구나.


잠수교를 거너며 본 노을지는 풍경



유난히도 맑고 청량했던 어제,
정말 매일이 이렇기만 하면 소원이 없을 것만 같던 날씨.
자전거를 타고 잠수교를 가로질러 강변북로 아래의 한강공원까지 달려갔다왔다.
일본 애니메이션에서나 봤을 법한 분홍색 노을이 물들여가는 서울의 풍경을 보니
노을때문인가, 평소와 다른 곳에서 보아서인가-
이 곳에서 보는 서울의 풍경도 참 아름답구나.

항상 차를 타고 다녀서 비슷한 속도로 비슷한 풍경을 보고 다녔는데
자전거를 타고 한 바퀴 한 바퀴 나아가며 보는 세상은
차를 타고 보는 세상과 또 다르다.
새삼 서울이 이렇게 커다란 도시였구나,
(고작 잠수교 하나만 건넜을 뿐이지만) 강북의 자전거도로는 이런 풍경과 이런 느낌이구나.
새삼 강남과 강북이 내 마음 속에서 또렷하게 나뉘어져 다가온다.
차로 다니면 거기서 거기인 땅일 뿐인데
내 발로 가려니 강북은 내 세계와는 또 다른 세상인 것만 같다.
나와는 다른 삶의 양식을 가진 사람들이 (비슷하지만) 지금 나와는 또 다른 그들만의 문화를 만들어내며 살아가고 있을 것만 같다.
같은 공간에서 느끼는 낯설고 또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이 생경한 느낌,
좋아.


한강과 반포를 배경으로 내 짝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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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새, 7월 하고도 중순.

장마가 온다 온다 하면서 미뤄지는 7월의 중순에 3일의 연차휴가를 냈다.

코로나 사태가 없었더라면, 지금 3일의 연차휴가를 쓰는 게 아니라 

곧 다가올 2주간의 여름휴가를 위해서 사무실에서 열심히 일 하고 있었을텐데, 

올해는 아무래도 가망이 없는 것 같다.

 

 

2주의 휴가(10일의 연차)중에서 1주일(5일)은 9월 초로 남겨 두고

3일만 앞당겨 쓴 여름 휴가. 

결혼생활에 적응하면서 오는 정신적, 육체적 피로감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한동안 일에서 멀리 벗어나고 싶은 느낌이 간절했다.

같은 회사에서 무려 8년 차, 만 7년을 일하고 있었고 

맡은 업무가 프로젝트성 업무(시작과 끝이 있는 업무)가 아니다 보니,

끊임없이 과거에 자문했던 일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내 발목을 잡는 듯, 

일의 연속성의 측면에서 과거 검토자에게 올무를 씌우듯 돌아오는 일에

때로는 살짝 구역질이 났던 것도 같다.

쉴 때가 되긴 되었다. 

 

- ㅇ - 

 

 

그렇게 맞이한 7월 중순의 짧은 여름 휴가.

그런데, 여름에 여행을 가지 않고 휴가를 보내는 것은 입사 이래로 처음 있는 일이라 

계획도 없이 덜컥 맞은 소중한 나의 재충전 시간에

서울에서 도대체 무얼 해야 만족스러울지

방안에서 정처 없이 서성이다가 (그 중에 하루의 반나절 씩은 밀린 집안일을 했다.)

찌는 무더위, 대중교통의 불편함을 뚫고 새로운 곳엘 다녀왔다. 

성수동만큼 아주 새롭진 않았지만, 

이 아래는 3일 간의 나의 재충전의 일기이자, 행복했던 순간에 대한 나만의 작은 사진전이다. 

 

1. 북촌 - 현대카드 디자인 라이브러리 

 

안국역 1번 출구에서부터 10여분 간 걸어 올라 가는 작은 골목길에서 본 풍경들 

 

 

길 왼편에서 덕성여자고등학교가 있다. 덕성여대는 알고 있었는데 덕성여고도 있었구나.

 

닫힌 교문의 철창 너머, 크고 작은 나무들로 아름다웠던 덕성여고의 교정 

 

올라오다 뒤돌아본 길 - 아기자기 하다.

 

덩굴이 뒤덮은 안동교회의 빨간 외벽의 건물과 덤덤한 십자가  

 

이날 따라 하늘이 유독 파랬다. 디자인 라이브러리 맞은편의 코너 갤러리. (우드앤브릭 별관인듯)

 

 

현대카드 디자인 라이브러리로 들어왔다. 

사실 디자인 서적을 읽으러 온 것은 아니고,

북촌에 있다길래 - 그리고 공간이 주는 감각적인 느낌이 좋을 것 같아서.

 

디자인 라이브러리는 디귿(ㄷ)자, 혹은 미음(ㅁ)자 형태로 가운데 중정을 두고 지어져있었다.

실제 사용 공간은 탁 트인 개방형 공간이 아니라 구석구석 각이 져 있어서 

얼핏 보기에는 크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는데

미로같이 숨겨진 구석들이 많아서 눈에 보이는 것 보다 큰 것도 같다.

1층과 2층이 오픈되어 있었는데, 2층에는 책 읽는 사람들이 많이 있어서 촬영은 되도록 자제했다.

 

2층에서 바라본 디자인 라이브러리의 풍경, 멀리 남산타워도 보이고요. 

 

가지고 온 책이 있다면 1층에서만 읽을 수가 있었다.

1층에는 여러 가지 종류의 의자를 전시하고 있었는데 마음에 드는 의자에 앉아서 편하게 독서를 할 수 있다.

 

알록달록한 의자들, 도서관이 아니라 이 자체로 미술관에 온 것 같은 느낌. 

 

1층에 앉아서 보이는 풍경, 저 작품 이름을 알 듯 말 듯.

 

라이브러리답게, (사람들이 사진을 찍기는 하지만 최대한 조심스럽게)

사람들은 말소리를 꺼내지 않았고 이 공간에 어울릴 법한 음악들이 플레이 되고 있었다. 

나는 미술관 같이 디스플레이 된 세련되고 아름다운 공간에 앉아서 

집에서부터 봇집지듯 지고 온 책을 꺼내어 읽었다. 

음악 소리는 귀에 들려오지만 마음은 고요한 이 느낌. 

새로운 공간, 새로운 배경, 새로운 음향의 조화가 선물하는 경험과 감각.

똑같은 생활반경에서는 느끼지 못하는 새로운 느낌. 

딱히 디자인을 위한 연구를 하러 온 것은 아니지만,

한 번 와보기를 잘 했다고 생각하면서,

앞으로도 불편함에 개의치 말고 새로운 곳을 찾아다니자 생각하면서 

아쉽지만 이제 다시 집에 간다.  

 

디자인 라이브러리의 맞은편 건물

 

코너 갤러리의 정면. 

 

이번에는, 올라올 때의 길 말고 덕성여고 건물의 반대편 너머의 길로 내려가 본다. 

어짜피 길은 다 통하게 되어 있으니까. 

이 골목은 또 어떤 풍경일까 기대하면서.

 

수리를 위해 쌓아둔 오래된 장들.  북촌과 잘 어울린다.

 

원래 서울 하늘이 이토록 파랬나. 

 

사람도 많지 않고 커다란 나무가 드리워져 참 아름다웠던 길

 

담벼락에서 만난 작은 덩굴과 이름모를 아름다운 꽃.

 

 

눈 앞에 펼쳐진 낮 시간의 아름다운 풍경을 핸드폰 카메라에 이렇게 저렇게 잘라 담으면서,

참 행복했다.

사진을 찍고 싶게 만드는 피사체를 만나는 것도 쉽지 않은 요즘이기에.

내 마음이 동해서 눈 앞의 풍경을 나만의 사각 프레임에 가두어두고 또 그 결과물에 뿌듯하다. 

 

 

- ㅇ - 

 

 

섯시가 다 되어 가는 시간이었는데도, 날은 여전히 밝고 또 맑다. 

낮이 이렇게 긴- 긴 - -  시간이었구나. 

사무실에서는 느끼지 못하는 낮이라는 시간이 주는 여유와 포근함. 

어린아이이던 시절에 느꼈던 그런 느낌.

놀다가 놀다가 엄마가 저녁을 먹으러 오라고 불렀는데도 아직 해가 지지 않던 그 느낌.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냥, 다시 어린아이 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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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로나의 [카페보사리]와 성수동의 [진지함]의 아치 모양의 익스테리어 조합

 

 

급격한 생활의 변화(결혼과 독립!)으로 요즘은 글을 쓸 시간도, 글을 쓸 마음의 여유도 충분치 않고

무엇보다 글쓰기의 원동력인 나만의 감상적 영역이 도대체 채워지지가 않는다.

이건 하루하루 일하고 먹고 청소하고 자기 바빠서 인 것 같다.

그야말로 생활형 모드가 풀 가동되고 있어 감상적 영역에 새로운 감성에 노출되고 젖어있을 여유가 없다 해야하나.

 

하여 토요일에 이어, 일요일에도 성수동 나들이를 다녀왔다. 

일요일의 이른 오후 내내 집 청소를 하고, 운전면허증 사진을 찍다보니 주말에도 일만 한 느낌. 

이대로는 일요일을 보내는게 억울해서 데이트 하는 느낌으로 예쁘게 원피스도 입고 렌즈도 꼈다. 오랜만에.

 

서울은 하나의 도시이지만 각 동네별로 특유의 분위기들이 있다.

근 2년 가까이는 강남/역삼 일대와 여의도 일대만 오고갔는데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높고 커다란 빌딩 숲, 주차에 대한 편의, 건물 내부에 칸을 나눠 만들어진 편리함과 익숙함이 보장된 프랜차이즈 가게들. 

편리하고 세련되었지만 전달되어 오는 감성이란게 없다. 

 

성수동은, 서울숲까지는 와본 적이 있어도 카페거리까지 깊숙이 들어와 본적은 처음인데

아, 뭐랄까.

가게 하나 하나 건물 외벽의 소재, 창과 문의 모양, 간판의 종류 저마다의 개성이 눈길을 붙잡고

이 가게는 어떤 가게지, 저 가게는 어떤 가게지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더라. 

5~6년 전의 연희동/연남동의 느낌이 나면서도 조금 더 깔끔하고 세련된 느낌이랄까. 

게다가 아직 그렇게 무덥지 않은 여름 저녁,

테라스와 통창을 개방한 가게들이 많아서 더욱 자유분방하고 활기찬 분위기까지.

 

 

(가본 적 없지만) 왠지 브루클린 느낌을 연상시키던 [STDO] 

 

[다 로베]에서 웨이팅을 기다리며 감상하는 길게 늘어지는 황금빛 노을. 어딘가 안정되고 여유롭다. 

 

추천받은 [다 로베]의 시그니처 피자 

 

지난 해의 이탈리아 여행을 추억하면서 - * 

 

 

한참의 웨이팅을 기다려 저녁을 먹고 나왔는데도, 여름의 낮은 길었다.

해는 졌지만 하늘은 푸르른 기운만 감돌고 낮에 보았던 가게들은 하나 둘 씩 불을 켰다. 

조명이 더해지니 감성충만한 분위기가 가득 차는 이 곳.

낮에는 카페로 복작거렸던 어느 카페에서는 소규모 공연이 진행 중이라 감미로운 노랫소리가 흘러나오고,

이제 마감하고 뒷 정리를 하는 베이커리 근처에서는 고소한 빵 구운 냄새의 여운이 가게 앞을 감싼다. 

무더위와 장마가 시작되기 전, 아직은 선선한 바람이 살곁을 스치는 여름 밤.

눈과, 귀와, 코와, 살결 모두 즐거운 이 거리. 

 

 

하나 둘 주황불이 켜지는 성수동 카페거리 

 

주황빛 조명과 창문 너머의 화분 하나. 아치형 창문이 액자가 된다. [진지함]

 

검붉은 벽돌에 한자로 쓴 가게 이름도 멋스럽다. 

 

옥상에도 아기자기한 전등이 켜졌다.

 

 

분명 낯선 동네이지만 어딘가 익숙하고 마음이 편안한 느낌이 들었다. 

낯선 동네에서 알게 모르게 20대 시절의 향수가 느껴지는 듯 했다.  

15년 전, 대학생 시절에 홍대 깊숙한 곳 골목골목을 걸어다니며 받았던 그 느낌. 

2020년을 살고 있지만 문득 그 시절의 나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살짝 들었고, 그리고 그 기분이 좋았다.

기분이 좋았던 건, 성수동에서 그 시절의 분위기를 느껴서가 아니라,

그때 그 시절의 호기심이 충만하고 감각이 예민하던 나로 돌아온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였던 것 같다.

내가 가장 나답다고 생각했던 나.

지금은 어쩐지 사라져버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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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쿠아 델 엘바 서울숲 스토어 :)

 

 

성수동 거리에서 - 

 

 

오늘 회사분 따님의 결혼식에 갔다가 픽업하러 온 남편(!)을 만나 성수동에 들렀다. 

목적지는 아쿠아 델 엘바(Aqua dell Elba), 이유는 디퓨저를 사러. :)

 

코가 예민하기도 하고 원래 향수도 디퓨저도 큰 관심이 없는 나인데

작년 여름, 이탈리아 토스카나를 여행할 때 가장 인상깊었던 숙소에서 아쿠아 델 엘바 디퓨저를 처음 보았다.

토스카나도 좋았고, 숙소도 좋았고, 디퓨저 향도 좋았고, 또 토스카나 브랜드여서 사오고 싶었는데

한참 여행 중이라 짐이 되는게 걱정되기도 했고,

(프로포즈 받은지 얼마 안 되었던 때라) 결혼하면 살게 될 내 공간에 두고 싶은 로망(?)도 있어서

이탈리아에서의 구매는 잠시 미루었다가 드디어 때가 되어 서울숲에 있는 아쿠아 델 엘바 스토어에 들르게 된 것이다.

 

아쿠아 델 엘바의 시그니처 향은 마레(Mare)이고, 숙소에서도 마레(Mare)향을 맡았던 터라, (여름이기도 하고) 마레(Mare)를 살까 하다가

여러 가지 향을 시향해보고 조금 더 포근한 느낌의 몬테 카파네(Monte Capanne)를 골랐다.

 

 

아쿠아 델 엘바 디퓨저 (코가 예민한 편이라 약한 발향이 좋아서 스틱은 4개만)

 

 

저마다 여행을 추억하는 여러 가지 방법들이 있다.

나 같은 경우에는 어렸을 적엔 그것이 주로 사진, 마그넷, 기념품 컵 같은 것이었는데,

최근 몇 년 사이에는 여행하면서 만나는 특별한 (나만의 여행의 추억이 깃든) 물건 - 

단지 장식장에 세워두는 그런 것 말고 일상생활 속에서 쓸 수 있는 물건을 찾게 된다.

그것도 여행을 기념하기 위해 억지로 찾는 것 대신, 여행 속에서 우연히.

호스텔에서 수건을 제공하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샀던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의 빨간 타올, 

우산이 없어 급하게 샀던 캐나다 밴쿠버에서의 분홍색 3단 우산, 

우연히 걷다가 들어간 가게에서 샀던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의 주황색 지갑.

기념품과 달리 일상에서 사용하는 물건들이기에 쓰다보면 점점 낡고 망가져가지만

일상생활 속에 스며든 물건들은,

나의 삶 속에서 문득문득 그 때의 여행을 불쑥 떠오르게 하는 가장 소중한 추억환기제랄까. 

잊은 듯 살아갔지만 그 물건을 집을 때마다 여행했던 순간의 추억이 떠오르고, 

내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그 기억에 미소짓게 되는 그 특별한 느낌이 좋다. 

비록 이탈리아에서 이 디퓨저를 사오지는 못했지만, 다행히 한국에서 구할 수 있었고 

나의 소중한 보금자리에서 매일 비슷한 일상을 살아가다가도

디퓨저 병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에는 2019년의 이탈리아 여행을 떠올리고 흐뭇해하겠지. :)

 

 

이제 디퓨저 뚜껑을 열고 스틱을 꽂아놓으며 지난 여름 이탈리아 여행을 떠올려본다.

이탈리아 북부에서부터 시작해서 돌로미티 산맥을 돌고 토스카나 지방을 거쳐 로마까지 내려갔던 2주간의 여행.

이번에 코로나 사태로 유럽에서 이탈리아가 가장 심각한 피해를 입고 있다는 소식에 마음이 많이 아팠다.

하룻 밤 짧게 머물렀지만 기대보다도 훨씬 더 아름답고 무엇보다 진심으로 평화로워서

다음에 다시 오면 일주일은 머물러야지 마음먹었던 토스카나. 

아름다웠던 풍경사진을 하나씩 꺼내보면서 너무 멀지 않은 때에 다시 가볼 수 있기를 희망해본다. ♡

올해는 작년에 못 다 쓴 여행기나 써야겠다. 그럴 여유가 많지 않겠지마는!

 

사이프러스나무가 뻗은 숙소 뒷뜰에 누워 휴식하던 날.

 

숙소에 딸려있던 프라이빗 수영장. 하늘도 맑고 물도 맑고 저 멀리 보이는 풍경이 일품이었다. 

 

조금씩 물들어가는 토스카나의 저녁 

 

아름다웠다. 진심을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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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다고.

■ 삶/IV. 삶 2020. 6. 5. 13:59



 

아주 오랫동안 나는, 

종종 아드레날린이 치솟는 듯 행복한 순간들도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깊은 늪에 빠져있는 듯 

- 물론 그런 사실을 모른 채로 살아갈 때도 있었다. - 

많은 순간 순간들에서 삶이 허무한 느낌이 들고, 

때로는 살아있다는 것이 무섭고 때로는 그냥 사라지는 존재가 되고 싶을 때가 많았다.

나이가 들수록 행복함을 느끼려면 노력해야 했고

나 스스로에게 행복하자고 화이팅을 외치며 노력했지만 때로는 그래야만 하는 사실이 싫기도 했어.

 

 

그런데 요즘은 내 마음이 순간순간 나에게 말을 건다. 

나 행복하다고. 

행복하자고, 가 아니라 행복하다고.

좋은 사람과 함께하며 순간순간 느껴지는 좋은 기분.

행복해.

그리고 감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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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5월 10일.

인생에서 가장 큰 행사 중 하나였던 결혼식을 많은 분들의 축하 속에서 행복하게 잘 마쳤다.  :)

준비하는 동안에는 결혼식이 내 행사라는 느낌보다는 그저 해야만 하는 통과의례처럼 느껴졌는데,

끝나고 나니 내 인생에 다시 없을 나를 위한 커다란 파티였구나, 싶고

지나간 순간들이 다 끝나고 나서야 애틋하고 소중하게 느껴진다.

많은 분들의 도움이 있어 큰 일 없이, 그리고 내가 소원했던 것들을 이룬 행복한 결혼식이기도 했고.

 

ㅡ o ㅡ o ㅡ o ㅡ o ㅡ 

결혼식을 구성했던 하나, 하나가 다 나를 기쁘게 해주었는데 (내가 계획한 거라)

결혼식을 준비하면서는 예상하지 못했던 또 다른 차원의 기쁜 일이 결혼식 끝나고서 있었다. 

 

우리 결혼식은 주례가 있는 결혼식으로, 주례는 신랑의 대학원 지도교수님께 부탁드렸는데

선뜻 수락해주셔서 감사하게도 교수님의 첫 주례의 영광까지 얻게 되었다. 

주례도 수락해 주시고 또 결혼식 날에도 의미 있는 주례사로 축하해주셔서 감사의 마음을 전하려 했는데

교수님께서는 이를 사양하시고 나와 도리 이름으로 기부를 하는게 좋겠다고 하신 것이다.

 

으아니, 이렇게 좋은 제안을!

 

교수님께서 제안해주신 좋은 일에 그 뜻을 함께 하고 싶어서

원래 드리려던 사례비와 그 만큼의 우리의 뜻을 모아 

서울대학교 어린이병원의 경제적 사정이 어려운 소아환자에게 전달했다. 

그리고 어제 서울대학교 어린이병원으로부터 '결혼 기념 기부 증서'를 받았다.

그동안 매년 학교와 병원에 기부하면서 기부증서를 받았고 그 때마다 뿌듯하긴 했는데

결혼 기념 기부 증서라고 쓰인 증서를 받으니 그 간의 감동과는 또 다른 뭉클함이 느껴졌다. 

 

우리의 결혼이,

단지 우리 두 사람만의 개인적인 기쁨에 머무르지 않고 사회에도 의미있는 기쁨이 되었다는 생각.

또, 우리 두 사람이 그 전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는 소중한 계기가 되었다는 생각.

물론, 어떤 계기가 있지 않아도 기부를 할 수 있고, 또 그렇게 해왔지만 

개인에게 기쁜 일에 이렇게 사회적으로 뜻 깊은 의미를 더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나니,

결혼 기념 기부를 통해 내가 생각해왔던 결혼의 의미에,  더 가치있고 소중한 의미가 추가되었다.

 

특히, 결혼 기념 기부를 통해 느낀 기쁨과 뿌듯함은 내가 준비하고 계획했던 것이 아니기에 

결혼을 통해 받은 기대하지 않았던 서프라이즈 선물과도 같았달까. :)

아마, 결혼을 이유로 기부하지 않았더라면 영원히 몰랐을 기쁨이었겠지. 

 

 

나의 기쁨이 사회의 기쁨이 될 수 있는 방법. 

앞으로도 이런 기쁨을 더 많이 누리고 또 베풀수 있기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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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비보다 액자 기능을 열심히 수행중인 티비와
토요일 아침 꽃시장에 가서 데려온 연분홍 장미
아래 빼꼼히 보이는 애정하는 칸딘스키의 겨울 풍경
그리고 처음 보고 마음을 빼앗겼던 호두나무 식탁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어우러진 내 첫 보금자리.
아직은 적응할 것도 많고 해야할 것도 많지만
문득 모니터 너머 내 눈 앞에 보이는 풍경이 좋아서
잔잔히,
흐뭇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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