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넷도 이제 두 달이 채 남지 않았다.

아직은 젊은 나이에 더 가깝겠지만, 그렇다고 어린 것도 늙은 것도 아닌 어중간한 나이.

이 나이가 되어서 그런지, 결혼때문인 건지 아무런 생각이 없이 지나보낸 것 같은 2020년, 그리고 나의 서른 네살.

아무 생각 없음의 좋은 면은 마음이 많이 안정되었고 (그래서인지 10년 가까이 날 괴롭히던 수면장애가 사라졌다.)

아무 생각 없음의 나쁜 점은 아무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

아무 생각이 없이 하루하루를 사는 와중에 가뭄에 단비처럼 나를 스치고 가는 짤막한 생각들의 모음. 

 

#. 

아무 생각이 없는 것 뿐만 아니라, 어떠한 감정, 어떠한 선호도 모두 사라져 버린 것 같다.

작은 일에 행복하고 작은 일에 슬프고 일희일비하며 오르락 내리락하던 감정이 이젠 추억처럼 남았다. 

이젠 어떤 슬픈 노래를 듣고 가사에 귀 기울이고 옛 시절을 떠올려봐도 슬퍼지지가 않는다. (이 말이 행복해 죽겠다는 의미는 아니다.)

나는, 슬픈 감성에 젖어있는 나를, 그 순간을 많이 좋아하고 또 즐겼는데, 

그리고 그 때 떠오르는 생각들과 술술 써내려가는 나의 글들이 좋았는데, (내 글의 No.1 팬은 나라고 장담한다.)

어느 순간 더이상 그런 감상에 젖어들기가 어렵다. 솔직하고 섬세한 그런 마음과 생각들이 더이상 마음과 손끝에 차오르지 않는다.

어쩌면 이제는 불안하지 않고 슬프지 않고 우울하지 않기 때문일텐데 -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내 안의 슬픔을 잃고 행복해진 대신, 글이 써지지 않는 섭섭한 슬픔을 얻었다.

 

그러는 와중에, 좋아하는 것. 그리고 좋아하는 마음도 같이 사라져 버린 것 같다.

입으로는 계속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다고 하면서, 정작 하고 싶은게 무엇인지 무엇을 해야 즐거운지 모르겠다.

적성, 그런 거창한 것 뿐만 아니라 요즘에는 취미생활조차도 무얼 하고 싶은지 모르겠다.

반쯤은 코로나 때문에 못하게 되어서 사라진 것 같고, 반쯤은 내 안의 우선순위가 바뀌면서 사라져버린 것 같다.

그러므로 생각한다.

내가 좋아하고 몰입할 수 있는 일을 열심히 찾아보고, 시도해보고, 또 꾸준하게 해보려 노력해야 한다고. 

할만큼 해보아서, 혹은 해봤더니 별 거 없어서, 혹은 해봤는데 귀찮아서의 이유로 이제는 아무런 시도조차 하지 않지만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을 위해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서 해보자고 마음을 먹어본다. 

(그래서 요즘 쓰고 싶은 얘기가 넘치는 건 아니지만 블로그에 계속 글을 써내려고 노력중이다)

 

#.

 

예전에는 퇴근하고 나면, 운동같은 취미활동을 하고 밖에서 데이트를 하고, 친구들을 만나면 연애얘기를 했다면

요즘에는 퇴근하고 나면, 집에와서 저녁식사를 같이 준비하고, 빨래와 청소같은 소소한 살림을 하고, 친구들을 만나면 부동산 얘기를 한다.

아주 오랫동안 우리들 대화의 주제였던 꿈, 사랑, 낭만, 영화, 음악 같은 이야기들은 어디론가 모두 사라져버리고 

이제는 부동산, 육아, 이직, 투자, 결혼과 같은 이야기들이 오고간다. 

이제 나와 친구들은 엄마 아빠 어른들이 하던 이야기를 한다. 

친구들은 이미 진작에 어른이 되었고, 나는 이제야 어른이 되었다.

 

사랑, 낭만, 영화 같은 이야기를 하고 싶어도 내 삶에서 가장 현실적인 부분을 고민하고, 또 현실적인 주제를 얘기할 수 밖에 없다. 그것은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었다. 

좋고 싫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는 이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그 다음 단계로 넘어온 것 뿐이다. 

내 안에서도 삶의 우선순위가 그렇게 자연스럽게 많이 바뀌어버렸다. 

그러길 원해서도 아니고, 내 삶에 닥친 일들이라 그렇게 되어버렸다. 

..에....그래서 삶에 재미와 흥미가 사라진건가 (O_O)?

 

그 때 듣던 노래들을 아무리 들어도 그 시절의 감성이 느껴지지 않는 서른 넷의 나이에.

이제는 너무 오래 전 이야기지만,

대학교 동기들과 밤새 팝송 가사 하나를 두고서 서로 다른 상상의 소설을 쓰고 견주던 시절이 

다같이 몰려다니며 전시와 공연을 보고서 가볍게 소줏잔을 기울이며 오늘 본 것들에 대한 열띈 얘기를 하던 시절이

꿈같이 느껴진다. 

우리 모두 다 어른이 되어버린 지금, 그런 이야기들로 밤을 지새우던 날들과 그 때의 마음이 다시는 오지 않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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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honey,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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