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2월 17일

여행 3일째(2)


시청에서 나오니 구름은 꼈지만 비가 올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서 골든게이트공원으로 가기위해 버스정류장을 찾아 나섰다.
가이드 북에 나온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반 부랑자+반 펑크족 같이 생긴 퀭한, 여성인지 남성인지 구분 못할 백인이 다가와서
어디에 가냐고 묻는다.
그래서 골든게이트공원에 간다고 했더니
그러면 6번 버스를 타야 한다고, 그 버스를 타라고 그게 지름길이란다.

그래?

긴가민가 하는 사이에 6번 버스가 왔다.
지름길이라고 가르쳐준게 고맙지만 가르쳐준 사람의 행색이 못내 못미더워
버스기사에게 골든게이트공원에 가는 버스가 맞냐고 물어봤다.
대답은

"NO"

......헐.
우리 바로 앞서 탄 그 사람은 자기는 모르는 일이라는 듯 시치미를 뚝 떼고 버스에 앉아있다.
뭐야, 지금 우리가 멋모르는 동양인 관광객이어서 무시하는거야?
기분 나빴지만 엉뚱한 동네에 가지 않음에 감사하며 무사히 제대로 된 버스를 탔다.
....고 생각했지만 그닥 제대로 된 버스도 아니었다.
거의 기어가다시피 하던 그 버스는 갑자기 운전기사가 승객과 버스를 내팽개치고
어디론가 사라져버리는 바람에 길 한복판에 15분이나 서있어야 했다.
....어젯밤부터 샌프란시스코 이러기냐...


어쨌든 우여곡절끝에 골든게이트공원의 근처까지 도착했다.
공원까지는 몇 블럭 걸어내려가야 했는데
그 길이 마치 홍대주변처럼 예술의 혼이 물씬 풍기는 길목이었다.
슬슬 허기가 진 우리는 마지막 여행지인 멕시코에 대비할겸
인테리어가 제법 괜찮아 보이는 멕시코음식점에 들어갔다.
들어갔는데 메뉴판에는 정말 무슨 음식인지 하나도 알 수 없는 음식들 뿐,
게다가 주문 받는 사람도 영어를 잘 못해서 대충 제일 싼 걸 시켰다.
선희언니는 그 안에서 사람들이 먹고 있는 음식을 물어물어 시켰는데
그것이 우리가 여행중에 처음 맛본 , 아니 살아 생전 처음 맛본 '브리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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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장식이 독특했던 멕시칸 음식점




우리가 이 날 이 곳에서 맛 본 브리또는 앞으로 영영 못 먹어볼 만큼 맛있었고
이 날의 브리또 덕택에 미국 여행내내 허기지면 '브리또' 만 생각나는 후유증에 시달렸다.


쨌거나, 이쁜 음식점에서 맛있는 음식먹고 배 든든히 채워 나온 우리는
골든게이트 공원 입구에서 자전거를 빌렸다.
나는 전날 밤을 새워 쓴 크리스마스 카드들을 반드시 이 날 부쳐야 했기에
빌린 자전거를 타고 다시 번화가 거리로 나왔고
언니는 먼저 골든게이트 공원으로 들어갔다.

우체국이 어딨느뇽 하고 두리번 거리다가 "우체국 뒷집" 이라는 간판의 옷가게를 발견했고;
덕분에 우체국을 찾아 무사히 크리스마스 카드들을 한국으로 보낼 수 있었다.

치마를 입고 있었지만 난 뭐 그런거에 개의치 않아,
자전거 페달을 밟아 골든게이트 공원으로 돌진했다.
지도상으로 공원은 오늘 안에도 다 못돌아 볼 만큼 어마어마해서
공원 한 바퀴를 도는 건 포기하고 대충 이리저리 녹음을 뚫고 바이킹을 즐기다
언니와 만나기로 한 공원 내의 박물관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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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커트입고도 달리는거다.




미리 약속장소에 도착해 셀카짓을 하며 깐죽거리던 나는 선희언니를 만나
공원내에 있는 일본식 정원에 들어갔다.

세계 어디에 있는 차이나타운이 어딘들 다르지 않듯이
세계 어디에 있는 일본식 정원도 항상 거기서 거기인 느낌이다.
작고 앙증맞고 구불구불한 소나무에 연못이 있고 작은 돌탑들도 있고.
봄이었다면 벚꽃이라도 만발하였을텐데
겨울인지라 약간의 을씨년스러움이 느껴지는 그런 일본식 정원이었다.
.....게다가 코딱지만한 정원에 무려 $4달러나 입장료를 받았다...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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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 왤케 얼굴이 뭉개진거지? ;ㅅ;






대충 골든게이트공원 라이딩을 끝나고 일몰시간에 맞춰 그 유명한 금문교로 향했다.
언니나 나나 둘 다 모를땐 무작정 붙잡고 물어보는데는 일가견이 있어서
길따위 좀 몰라도, 버스 번호 따위 좀 몰라도 걱정없다. 우리는 간다. 하하하

골든게이트 공원을 나올때쯤엔 구름이 잠시 걷혀서 노을속의 금문교를 보겠구나! 하며
기대하고 둑흔둑흔 하며 갔는데, 왠걸, 구름 도로 꼈다. 쳇.

어쨌든 샌프란시스코의 영원한 상징, 금문교다-
선희언니말로는 원래 이 곳이 안개가 자주 끼는 곳이라
멀리서도 잘 보이도록 다리를 붉은색으로 칠한거란다.
중요한 건 <원래 안개가 자주 끼는 곳> 이라는 거.
그러니까 날씨 좀 안좋다고 낙담치 말고 즐겁게 관광해야지 ♬

확실히 금문교는 관광포인트여서인지 관광객들이 꽤 많았다. 바글바글바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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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는 안좋아도 기분은 좋아요 :D





이리저리 자리를 옮겨가며 금문교와 기념사진을 찍는데 번뜩 요상한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어떤 생각이냐고? 그럼 밑에 사진을 한 번 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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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둘 , 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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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mp !!



....이 무슨 쪽팔린 짓이냐고 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저건 대 히트였다 분명!!
지나가던 사람들도 키득키득 거리며 쳐다보고는 나를 따라 같이 뛰기 시작했다.
그동안 나의 엽사에 혀를 끌끌차던 선희언니도 이건 재밌어 보였는지
몇번 해보라고 채근했더니 낼름 올라가서 뛰었다.
그리고 여러번의 엉거주춤 자세 끝에 대박 사진을 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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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베스트샷!




한참을 저 자리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다
금문교까지 온김에 딱 금문교 반절까지 걸어갔다.
차들이 쌩쌩 지나다녀서 다리도 흔들리고 조금 위험한 느낌도 들지만
보행자를 위한 인도도 넓고 또 다리를 건너는 관광객들이 많아서 건너볼 만 하다.
(그리고 반대쪽에서 보는 금문교 경치도 멋있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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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다 지친건 결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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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둘씩 가로등도 켜졌다.


반절쯤 건너오자 날이 꽤 어두워져서 서서히 가로등이 켜지기 시작했다.
시간이 좀 더 넉넉했다면 금문교 끝까지 걸어가보고도 싶었지만
이미 날은 어둑어둑해졌고 갔다가 되돌아오려면 넉넉잡아 한 시간 반은 걸릴 것 같아서
이쯤에서 기념사진 한 방 찍고 온길을 되돌아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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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팔짝뛰고 난리부르스를 추던 그 곳으로 돌아오니 어느새 이리도 컴컴하게 날이 어두워졌다.
그렇지만 되돌아와서 본 금문교는 처음 보았을 때 보다 훨씬 운치있었달까.
처음 도착했을땐 구름도 잔뜩 끼고 안개가 뿌옇게 껴서 다리마저 침침해보였는데
오히려 날이 어두워지고 가로등을 켜니 반짝반짝 이쁘다.
이제서야 내가 상상하던 금문교같다.

화창한 날씨의 금문교를 못 볼바에야 차라리 이렇게 느즈막한 시간의 금문교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아니, 오히려 더 운치있고 분위기 있다고 생각했다.


날이 어두워지기는 했지만
사실 그리 늦은 시간은 아니었다.
오후 5시쯤.

이대로 호스텔로 돌아가자니 뭔가 아쉬웠다.
내일은 요세미티, 내일 모레는 몬터레이와 카멜 투어를 예약해놓았기 때문에
더이상 샌프란시스코 시내를 돌아다닐 시간이 없었다.


"언니, 그냥 돌아가기는 좀 아쉬운데, 안그래?"
"응. 근데 뭐 딱히 할 것도 없잖아"
"....그럼 야경보자! 트윈픽스에 가는거야!!!"


트윈픽스 !!
샌프란시스코의 야경 포인트로 꼽히는 한 곳이다.
느긋하고 여유로운 여행 따위는 쳐주지 않는다.

우리는 시간 낭비 없이 알차게 여행한다고 서로 박수치며 트윈픽스를 향해 떠났다.

극기훈련 뺨치는 야간등산이 기다리고 있는줄도 모르고....

Posted by honey,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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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2월 17일.

여행 3일째

눈을 떴다.
날씨가 어제 만큼 좋지 않았다.
언니와 나 모두 나갈 채비를 하고 어디 갈지 정하기 위해 가이드 북을 펴고 앉았다.

대충 오늘 샌프란시스코 시청금문교를 가는 것 까지는 정했는데
선희언니는 골든게이트공원에 가고 싶다고 하고,
나는 공원보다도 모던아트뮤지엄이나
동성연애자의 거리같은 도시의 색채가 강한 샌프란시스코의 유명한 거리들을 가고 싶었다.

꼭 가봐야 할 곳이라던가 대충 그 곳을 돌아보는데 걸리는 시간이 정해져 있는
라스베가스나 로스앤젤레스와는 달리
도시 곳곳 전체가 하나의 관광지인 샌프란시스코는
어딜 가느냐에 따라 관광코스가 수십가지로 나뉠 수 있는 도시였다.
그야말로 어떤 것에 우선가치를 두느냐에 따라 관광의 내용이 아예 달라지는 것이다.
오늘만 넘기면 내일은 요세미티를, 내일 모레는 몬트레이에 갈텐데 쉽지가 않았다.
게다가 아직 여행 초반이라 각자 원하는 여행에 대한 욕심도 앞섰고
서로의 여행스타일이 어떤지 잘 모르고 있던 터였다.
그리고, 둘 다 각자 원하는 바를 포기할 마음이 별로 없는게 가장 큰 문제였다.
게다가 어제 체력소모도 심했고 날씨까지 찌뿌둥해서 몸도 기분도 불편했다.


비가 올 것 같이 음침한 분위기였기 때문에
일단 날씨를 봐서 비가 오면 박물관에 가고 비가 안오면 공원에 간다는 조건으로
시청을 향해 어제와 정 반대방향인 St, John을 따라 내려가는데
어제와 사뭇 다른 샌프란시스코의 모습에 나와 선희언니는 깜짝 놀랐다.
호스텔을 기점으로 어제 아기자기했던 북쪽 언덕길은 백인들 주거지였고
시청쪽으로 향한 남짝 아래막길은 흑인들과 부랑자들의 주거지였던 것이다.

과연 여기가 어제의 샌프란시스코가 맞을까 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어제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던 흑인들과 거지, 노숙자들이 넘쳐나는 길을 따라
몸을 한껏 웅크린채 빠른걸음으로 도망가듯 걸어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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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아치돔 형태의 샌프란 시스코 시청


날씨가 어제에 비해 많이 흐렸다. 이쁜 시청건물인데 하늘이 좀더 파랬다면 얼마나 더 이뻤을까...
가이드 북에 써있었듯이, 시청주변에 부랑자와 거지들이 너무 많아서
총총걸음으로 시청으로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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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에 안맞게 브이질 좀 해봤다 V-_-V



갑자기 우리나라 시청이 어땠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건물이 꽤나 오래되고 낡아서 새로 짓는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내부로 들어가니 일단 짐과 몸수색부터 시작한다.
우리나라 시청에 들어가려해도 그런가?
시청도 끽해봤자 공무원들이 일하는 곳인데 짐수색 몸수색을 하다니,
역시 미국다운 발상이라는 생각 먼저 들었다.
어쨌거나, 시청 내부는 겉모습에서 예상할 수 있듯이 으리으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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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리석으로 조각된 시청 내부. 시청직원들은 어디서 일하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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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 종이학이 달려있던 크리스마스 트리




크리스마스라고 금빛학을 잔뜩 단 크리스마스 트리가 위의 사진에 보다시피
번쩍번쩍이며 성탄절 분위기를 물씬 내고 있었다.
결혼식촬영지로도 인기가 있는지
끊임없이 턱시도와 웨딩드레스를 입은 '중국인 신혼부부'들이 들어와
연신 사진을 찍어댔다. 물론 중국인답게 한 번 명소를 차지하면 자리를 비켜주는 법이 없다.
더 사진을 찍고 말고 자리를 뺏겨서 슬금슬금 시청을 둘러보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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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다 분위기가 어제만큼 신나거나 발랄하지 않았다.
그래서 동상에 팔짱끼고 즐거운 척이라도 잠깐 해보았다.
근데 ....별로 안웃기는구나.

Posted by honey,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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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어 39가 있는 부둣가에 도착했을 땐 이미 해가 넘어간 뒤였다.
여느 부둣가들이 그러하듯 조금은 촌스럽고 조금은 올드훼션의 샌프란시스코 부둣가.
이곳의 상징인 꽃게간판이 불빛에 가리긴 했지만 희미하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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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종일 걷느라 탈진 일보직전의 우리들은
버거킹으로 돌진해 밀크쉐으크로 바닥난 체력에 수혈을 해주었다.
2시간 전만 해도 샌프란시스코 찬가를 부르던 우리들은 그저 할 말을 잃었다.
그래도 샌프란시스코가 싫진 않으니 찬가를 조금 개사해야겠다.

샌프란시스코가 짱이야 ~♬ (차만 타고 다닌다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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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둣가에서 작은 이탈리로 부르는 피어 39로 향했다.
이미 해가 져서 날은 캄캄했지만 아기자기한 피어 39의 타운은
오히려 밤이되어서 작은 놀이동산처럼 더 분위기가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작은 상점들이 아기자기하게 모여있던 피어 39는 너무 시끄럽지도 너무 조용하지도 않았다.
작은 광장에서는 가끔 실수를 하는 경력 20년의 마술사아저씨가 공짜 술쑈+개그쑈를 펼쳤고
상점 뒤의 부두는 고즈넉하니 운치있는 풍경을 그려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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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잡은 연인들이 키스하러 오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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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어주는 사람이 없어서 셀카모드를 작동시켰다. 안드로메다로 날아가는 내 팔....




호스텔로 돌아가려다 생각하니 왠지 이 곳의 특산품인 꽃게를 포기해야 하는,
먹을꺼 포기하고는 못사는 우리들의 뇌리를 급습했다.
넉넉치 않은 예산으로 크랩을파는 식당의 가격표를 빼꼼히 넘어다봤지만
크랩가격은 세상어디나 비싼가보다. 크랩반마리가 한 사람 숙박비는 족히 넘었다.

"..언니....그냥 갈까?"
"...에...그래도 여기 아니면 어디서 우리가 크랩을 먹겠어. 그냥 먹고가자.
"...에라. 그냥 내일부터 굶자. 으하하하하"

다음 여행지 타협은 어려워도 먹는 거에 있어서는 절대 타협이다.
우리는 게중에서 그나마 가장 싼 가격을 부르는 크랩레스토랑에 들어갔다.
들어가서 음료고 샐러드고 다 거절하고 킹크랩하나만 불렀다.
대략 여행자처럼 보였는지 직원들도 씽긋 웃으면서 곧 준비해주겠단다.
그러더니 앞에 킹크랩보다 큰 킹크랩이 그려진 냅킨 비스무리한 것을 가져다 주었다.
뻘쭘해하며 무릎에 폈더니 그게 아니랜다.
목에 메는 거란다.

헐.....

하며 머쓱해하는데 친절히(?)도 목에 직접 매준다.
원래 킹크랩 먹을 때 그런거야?...
일단 매기는 맸는데 앞치마도 아니고 둘다 쑥쓰러워서 키득거리며 웃었더니
직원이 사진까지 찍어주겠단다. 이런 과한 친절 같으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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뻘쭘해 어쩔줄 모르는 저 입매를 보라.



어쨌거나 우리는 저 킹크랩 하나를 집게로 부셔가며 열심히도 먹었다.
하루종일 걷느라 허기진 우리에게 저 한마리 킹크랩이 넉넉할리 없지만
어쨌거나 저 레스토랑이 닫을 때 까지 뜯고 발라가며 있는 살 없는 살 쏙쏙 빼먹었다.


시간도 많이 늦고 돌아갈 땐, 샌프란시스코의 명물 전차를 타자면서
되돌아온 길을 돌아가고 있는데
늘어선 가게에 샌프란시스코 엽서가 눈에 띄었다.
10장에 1달러나 하는 곳이 있길래 몇 장 집어들어 들어갔는데
중동계 아저씨가 장삿속이 뻔히 보이는 능글맞은 웃음으로 징글징글 웃으며 말한다

"니하오~"

낯선 여행자에게 웃어주는게 싫지만은 않아서,
그리고 짧은 기간이지만 그간 만난 샌프란시스코인들의 친절이 고마워서,
웃으면서 우리는 중국인이 아니라 한국인이라고 말해줬다.
그랬더니, 어쩐지 예쁘다는둥, 한국인이 이쁜것 같다는 둥 입에 침이 마르도록 아부를 떤다.
어쨌거나 엽서계산을 하는데 내가 메고 있는 수동 카메라를 보더니
아, 자기한테 좋은 필터가 있다고 잘하면 공짜로 줄테니 한번 보란다.
(엽서를 파는 가게가 실은 카메라 가게였다)


그때 내 카메라 렌즈에는, 필터렌즈는 깨지고 남은 찌그러진 필터틀이 박혀있었는데
빠지지도 않고 , 렌즈캡도 들어가지 않아서 그냥 찌그러진 필터틀 그대로 가지고 다녔다.
그런대로 렌즈도 보호할겸.
그런데 아저씨가 마법의 필터(?) 껴준다고 그래서
안그래도 필터프레임 못빼서 달고다니던 참에 그럼 그 찌그러진거 빼고 끼우시라고 했다.
공짜라는 말에 솔깃해서 아저씨가 보여주는 필터를 보니
유리에 반사되는 불빛을 제거해주는 그런 필터였다. (전문용어는 모르겠다)

뭐 설마 정말 공짜로 줄 리는 없을 것 같아서, 얼마냐고 물었더니
가격표를 보여주는데 무려$149불이다. 내가 이런걸 관광지에서 살 리 없잖아.
피식 웃으며 내려놓는데, 아저씨가 씨익 웃으면서
특별가로 $25달러에 팔겠단다. 이거 뭔 헛소리?
아저씨가 자진해서 깎은 거 치고 너무 깎은 게 오히려 수상하다.
뭐 사실 딱히 나한테 필요도 없어서 고민하는 척 하며 안 살 기세를 보이니
열심히 또 렌즈를 돌려가며 뭐가 좋은지 설명을 해준다.

그런데 가뜩이나 킹크랩에 투자하고 오셨는데 쌩돈 $25를 예상에도 없는 렌즈에 사자니
이건 뭐가 아닌 것 같아서 안산다고, 나는 당장 렌즈 캡이 없으니
일단 찌그러진 필터프레임이나 다시 끼워주세요, 라고 했더니

이 아저씨들 , 쎄게 나온다.
필터 프레임? 그런거 버렸댄다.
헉........................나 렌즈캡 없어서 필터 프레임 없으면 렌즈 다 상한단 말이야;;
슬슬 분위기는 험학해지고 옆에서 선희언니가 그걸 왜 함부러 버리냐고 돌려달라고 하니까
아저씨들도 성질내면서 그거 다 짤라서 버렸다고 쓰레기통을 뒤져서
다 뒤틀리고 토막난 필터프레임을 우리 앞에 던졌다.
선희언니는 이걸 왜 이렇게 다 짤라놨냐고 따지기 시작했고
이러다가 정말 큰 싸움이라도 날 것 같아서
내가 필터는 됐으니 렌즈캡이나 달라고 했더니
아저씨가 그러지말고 $20달러에 해줄테니 필터를 사라고 끝까지 나를 얼렀다.

선희언니는 열이 받을대로 받아서 아예 가게 밖에 나가서 계속 가자고 소리 지기 시작했고
나는 일단 렌즈캡 살테니까 렌즈캡이나 주세요. 라고 했더니
막 성질을 내면서 같은 일하는 아저씨한테
"야, 여기 렌즈캡하나 던져줘라" 라면서
$20달러짜리 필터 냅두고 $10달러 짜리 렌즈캡사는 병신이 어딨냐고 비아냥 거리게 아닌가.
기분 상해서 나도 $10달러 던져놓고 렌즈캡만 들고 씩씩거리며 나왔더니
10분 전만해도 이쁘네 어쩌네 하던 그 입으로 아시아인이 어쩌니 쌍욕을 하기 시작했다.
듣고 있던 선희언니가 폭발해서는 한국어로 똑같이 쌍욕을 뱉어주고 발길을 돌렸다.



이제 샌프란시스코 구경한지 하루가 지났는데,
오늘 하루종일 샌프란시스코 너무 이쁘고 , 사람들 너무 착하다고 노래를 불렀는데
하루도 채 가지 않아 이런 일을 당해서 짜증도 나고 속상했다.
게다가 내가 렌즈필터에 혹해서 이런 일이 생긴 것 같아 선희언니에게 미안하기도 했다.
뭐 용팔이나 테팔이나, 샌프란시스코 카메라 장사치나
세계 관광지 장사꾼들은 다 똑같은 거구나- 하며 말없이 전차정류장을 향해 걸었다.


시간이 꽤 늦어서 전차를 타는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았다.
오늘 하루 종일 걸었는데 이렇게 집에 갈 때가 되어서야 전차를 타보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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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차에 매달린 나.



덜컹덜컹-
백년을 넘게 샌프란시스코를 달려온 전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언덕이 가파라서 끙끙대며 올라갈줄 알았는데 시원하게도 올라간다.

아까 관광객들이 셔터한번 누르고 사라졌던 롬바드 스트릿까지 올라오자
전차가 내려가기 시작했다.
속도가 그리 빠르지는 않지만 전차 난간에 매달려 내려가는 그 기분이
롤러코스터 못지 않게 스릴 있다.
스릴뿐만 아니라 조용한 샌프란시스코 밤거리를 달리는 낭만도 함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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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차를 타고 내려가는 기분이 사진으로도 느껴질까?

Posted by honey,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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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2월 15일 토요일 오후 1시


벤쿠버 인터내셔널 공항,
샌프란시스코발 UA 1137이 이륙할 게이트 80번 앞.

"언니, 나.....보딩패스가 없어졌어!"
".......뭐?!!!!!!!!!!!!!"


비행기 이륙이 15분도 채 남지 않았는데
나의 3주간의 사고다발 겨울방학 배낭여행은
탑승권 분실과 함께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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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2개월 전,
추운 건 싫다는 단순한 이유로 남들이 다 가는 크리스마스에서의 뉴욕을 마다하고
나와 선희 언니는 덜컥 미국서부와 멕시코시티까지 가는 비행기표를 결제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야말로 '무모한 도전'이 아니었나 싶다.
여행사도 가이드도 없었고, (사실 원하지 않았고)
같이 동행해줄 든든한 남성도 없었고, (이건 정말 없었고)
미국 서부여행의 필수인 차도, 면허증도 없었고, (
더더욱 계획도 없었다.
그냥 지도에 보이는대로
샌프란시스코-라스베가스-로스앤젤레스-멕시코시티 순서대로 비행기표를 끊었고
그 이후로는 시험이니 퀴즈니 과제니 어영부영하다가
덜컥 여행날이 다가와버렸던 것이다.


게다가 나는 여행 하루 전날인 14일까지 빡빡하게 기말고사를 치뤘고
지친 몸을 이끌고 시내에 나가서 환전을 하고, 그랜드캐년에 갈 그레이하운드 버스표를 사고,
마지막으로 앤디네 집에 들러 한국으로 돌아갈 에밀리에게 작별인사까지 했다.
기진맥진한 상태로 밤 11시쯤 집으로 기어들어와 그 때부터 짐싸기에 돌입했다.
짐을 싸다가 지치면 여행정보를 찾아보고, 피곤하면 또 짐싸고. 여행정보 찾고. 짐싸고.
그러다 보니 어느 새 여행 첫날의 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쓰러질만큼 피곤했지만 어쨌든 비장한각오로
캐리어를 달달달 끌며 벤쿠버 국제 공항으로 향했다.
21일간의 여행동안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감히 상상도 못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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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가 어디어디 갔었지? 팀홀튼이랑 또 어디갔지? 빨리 되돌아가서 찾아보자"
선희언니가 다급하게 외쳤다.

내가 지금까지 있었던 곳을 다시 다 되돌아보기엔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팀홀튼까지 뛰어가면 비행기가 우릴 놔두고 이륙할 태세였다.
눈 앞이 캄캄했다. 망했다.
 
-아직 여행 시작도 못했는데 여기서 집으로 돌아가야 하나?
내가 못가면 선희언니는 3주나 혼자 여행하게 되는거야?
무슨 낮짝으로 집에 돌아가지? 나 어떻게해?

그 때 갑자기 무슨 정신이 들었는지
지푸라기라도 잡아본다는 심정으로
검표하는 데스크에 달려가 책상을 내리치며 직원에게 말했다.

"I lost my boardingpass!!!"

- 뭐라고 대답할까? 이 원칙주의 나라에서 그냥 타라고 하지 않겠지?
표를 다시 끊어오라고 할까? 아님 어쩔수 없다고 할까?


"....."


피가 말렸다. 손에는 진땀이 흘렀다.
직원은 날 한번 치켜올려보더니


"What's your last name?"
"...p...p....park?"

여권검사 한 번 없이 그 자리에서 보딩패스를 바로 발권해줬다.
마치 별거 아니라는듯이.
원래 이런 거라는 듯이.


원래 그렇게도 재발권 해주는 건지
아니면 이례적으로 재발권을 해줬던 건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팀홀튼까지 뛰어가는 수고 없이
나와 선희언니는 가슴쓸어내리며 비행기에 탑승할 수 있었다.
그때 바로 발권받았다고 흥분해서 신나게 떠들며 비행기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탑승권 분실이 이제 시작되는 21일 간의 울고 웃는 여행의 전초전에 불과 하다는 것을,
그 때. 아주 조금 짐작하고 있었다. 아주 조금.



Posted by honey,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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