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2월 17일

여행 3일째(2)


시청에서 나오니 구름은 꼈지만 비가 올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서 골든게이트공원으로 가기위해 버스정류장을 찾아 나섰다.
가이드 북에 나온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반 부랑자+반 펑크족 같이 생긴 퀭한, 여성인지 남성인지 구분 못할 백인이 다가와서
어디에 가냐고 묻는다.
그래서 골든게이트공원에 간다고 했더니
그러면 6번 버스를 타야 한다고, 그 버스를 타라고 그게 지름길이란다.

그래?

긴가민가 하는 사이에 6번 버스가 왔다.
지름길이라고 가르쳐준게 고맙지만 가르쳐준 사람의 행색이 못내 못미더워
버스기사에게 골든게이트공원에 가는 버스가 맞냐고 물어봤다.
대답은

"NO"

......헐.
우리 바로 앞서 탄 그 사람은 자기는 모르는 일이라는 듯 시치미를 뚝 떼고 버스에 앉아있다.
뭐야, 지금 우리가 멋모르는 동양인 관광객이어서 무시하는거야?
기분 나빴지만 엉뚱한 동네에 가지 않음에 감사하며 무사히 제대로 된 버스를 탔다.
....고 생각했지만 그닥 제대로 된 버스도 아니었다.
거의 기어가다시피 하던 그 버스는 갑자기 운전기사가 승객과 버스를 내팽개치고
어디론가 사라져버리는 바람에 길 한복판에 15분이나 서있어야 했다.
....어젯밤부터 샌프란시스코 이러기냐...


어쨌든 우여곡절끝에 골든게이트공원의 근처까지 도착했다.
공원까지는 몇 블럭 걸어내려가야 했는데
그 길이 마치 홍대주변처럼 예술의 혼이 물씬 풍기는 길목이었다.
슬슬 허기가 진 우리는 마지막 여행지인 멕시코에 대비할겸
인테리어가 제법 괜찮아 보이는 멕시코음식점에 들어갔다.
들어갔는데 메뉴판에는 정말 무슨 음식인지 하나도 알 수 없는 음식들 뿐,
게다가 주문 받는 사람도 영어를 잘 못해서 대충 제일 싼 걸 시켰다.
선희언니는 그 안에서 사람들이 먹고 있는 음식을 물어물어 시켰는데
그것이 우리가 여행중에 처음 맛본 , 아니 살아 생전 처음 맛본 '브리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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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장식이 독특했던 멕시칸 음식점




우리가 이 날 이 곳에서 맛 본 브리또는 앞으로 영영 못 먹어볼 만큼 맛있었고
이 날의 브리또 덕택에 미국 여행내내 허기지면 '브리또' 만 생각나는 후유증에 시달렸다.


쨌거나, 이쁜 음식점에서 맛있는 음식먹고 배 든든히 채워 나온 우리는
골든게이트 공원 입구에서 자전거를 빌렸다.
나는 전날 밤을 새워 쓴 크리스마스 카드들을 반드시 이 날 부쳐야 했기에
빌린 자전거를 타고 다시 번화가 거리로 나왔고
언니는 먼저 골든게이트 공원으로 들어갔다.

우체국이 어딨느뇽 하고 두리번 거리다가 "우체국 뒷집" 이라는 간판의 옷가게를 발견했고;
덕분에 우체국을 찾아 무사히 크리스마스 카드들을 한국으로 보낼 수 있었다.

치마를 입고 있었지만 난 뭐 그런거에 개의치 않아,
자전거 페달을 밟아 골든게이트 공원으로 돌진했다.
지도상으로 공원은 오늘 안에도 다 못돌아 볼 만큼 어마어마해서
공원 한 바퀴를 도는 건 포기하고 대충 이리저리 녹음을 뚫고 바이킹을 즐기다
언니와 만나기로 한 공원 내의 박물관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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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커트입고도 달리는거다.




미리 약속장소에 도착해 셀카짓을 하며 깐죽거리던 나는 선희언니를 만나
공원내에 있는 일본식 정원에 들어갔다.

세계 어디에 있는 차이나타운이 어딘들 다르지 않듯이
세계 어디에 있는 일본식 정원도 항상 거기서 거기인 느낌이다.
작고 앙증맞고 구불구불한 소나무에 연못이 있고 작은 돌탑들도 있고.
봄이었다면 벚꽃이라도 만발하였을텐데
겨울인지라 약간의 을씨년스러움이 느껴지는 그런 일본식 정원이었다.
.....게다가 코딱지만한 정원에 무려 $4달러나 입장료를 받았다...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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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 왤케 얼굴이 뭉개진거지? ;ㅅ;






대충 골든게이트공원 라이딩을 끝나고 일몰시간에 맞춰 그 유명한 금문교로 향했다.
언니나 나나 둘 다 모를땐 무작정 붙잡고 물어보는데는 일가견이 있어서
길따위 좀 몰라도, 버스 번호 따위 좀 몰라도 걱정없다. 우리는 간다. 하하하

골든게이트 공원을 나올때쯤엔 구름이 잠시 걷혀서 노을속의 금문교를 보겠구나! 하며
기대하고 둑흔둑흔 하며 갔는데, 왠걸, 구름 도로 꼈다. 쳇.

어쨌든 샌프란시스코의 영원한 상징, 금문교다-
선희언니말로는 원래 이 곳이 안개가 자주 끼는 곳이라
멀리서도 잘 보이도록 다리를 붉은색으로 칠한거란다.
중요한 건 <원래 안개가 자주 끼는 곳> 이라는 거.
그러니까 날씨 좀 안좋다고 낙담치 말고 즐겁게 관광해야지 ♬

확실히 금문교는 관광포인트여서인지 관광객들이 꽤 많았다. 바글바글바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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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는 안좋아도 기분은 좋아요 :D





이리저리 자리를 옮겨가며 금문교와 기념사진을 찍는데 번뜩 요상한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어떤 생각이냐고? 그럼 밑에 사진을 한 번 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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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둘 , 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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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mp !!



....이 무슨 쪽팔린 짓이냐고 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저건 대 히트였다 분명!!
지나가던 사람들도 키득키득 거리며 쳐다보고는 나를 따라 같이 뛰기 시작했다.
그동안 나의 엽사에 혀를 끌끌차던 선희언니도 이건 재밌어 보였는지
몇번 해보라고 채근했더니 낼름 올라가서 뛰었다.
그리고 여러번의 엉거주춤 자세 끝에 대박 사진을 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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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베스트샷!




한참을 저 자리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다
금문교까지 온김에 딱 금문교 반절까지 걸어갔다.
차들이 쌩쌩 지나다녀서 다리도 흔들리고 조금 위험한 느낌도 들지만
보행자를 위한 인도도 넓고 또 다리를 건너는 관광객들이 많아서 건너볼 만 하다.
(그리고 반대쪽에서 보는 금문교 경치도 멋있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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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다 지친건 결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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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둘씩 가로등도 켜졌다.


반절쯤 건너오자 날이 꽤 어두워져서 서서히 가로등이 켜지기 시작했다.
시간이 좀 더 넉넉했다면 금문교 끝까지 걸어가보고도 싶었지만
이미 날은 어둑어둑해졌고 갔다가 되돌아오려면 넉넉잡아 한 시간 반은 걸릴 것 같아서
이쯤에서 기념사진 한 방 찍고 온길을 되돌아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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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팔짝뛰고 난리부르스를 추던 그 곳으로 돌아오니 어느새 이리도 컴컴하게 날이 어두워졌다.
그렇지만 되돌아와서 본 금문교는 처음 보았을 때 보다 훨씬 운치있었달까.
처음 도착했을땐 구름도 잔뜩 끼고 안개가 뿌옇게 껴서 다리마저 침침해보였는데
오히려 날이 어두워지고 가로등을 켜니 반짝반짝 이쁘다.
이제서야 내가 상상하던 금문교같다.

화창한 날씨의 금문교를 못 볼바에야 차라리 이렇게 느즈막한 시간의 금문교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아니, 오히려 더 운치있고 분위기 있다고 생각했다.


날이 어두워지기는 했지만
사실 그리 늦은 시간은 아니었다.
오후 5시쯤.

이대로 호스텔로 돌아가자니 뭔가 아쉬웠다.
내일은 요세미티, 내일 모레는 몬터레이와 카멜 투어를 예약해놓았기 때문에
더이상 샌프란시스코 시내를 돌아다닐 시간이 없었다.


"언니, 그냥 돌아가기는 좀 아쉬운데, 안그래?"
"응. 근데 뭐 딱히 할 것도 없잖아"
"....그럼 야경보자! 트윈픽스에 가는거야!!!"


트윈픽스 !!
샌프란시스코의 야경 포인트로 꼽히는 한 곳이다.
느긋하고 여유로운 여행 따위는 쳐주지 않는다.

우리는 시간 낭비 없이 알차게 여행한다고 서로 박수치며 트윈픽스를 향해 떠났다.

극기훈련 뺨치는 야간등산이 기다리고 있는줄도 모르고....

Posted by honey,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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