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어 39가 있는 부둣가에 도착했을 땐 이미 해가 넘어간 뒤였다.
여느 부둣가들이 그러하듯 조금은 촌스럽고 조금은 올드훼션의 샌프란시스코 부둣가.
이곳의 상징인 꽃게간판이 불빛에 가리긴 했지만 희미하게 보인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종일 걷느라 탈진 일보직전의 우리들은
버거킹으로 돌진해 밀크쉐으크로 바닥난 체력에 수혈을 해주었다.
2시간 전만 해도 샌프란시스코 찬가를 부르던 우리들은 그저 할 말을 잃었다.
그래도 샌프란시스코가 싫진 않으니 찬가를 조금 개사해야겠다.
샌프란시스코가 짱이야 ~♬ (차만 타고 다닌다면야)
부둣가에서 작은 이탈리로 부르는 피어 39로 향했다.
이미 해가 져서 날은 캄캄했지만 아기자기한 피어 39의 타운은
오히려 밤이되어서 작은 놀이동산처럼 더 분위기가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작은 상점들이 아기자기하게 모여있던 피어 39는 너무 시끄럽지도 너무 조용하지도 않았다.
작은 광장에서는 가끔 실수를 하는 경력 20년의 마술사아저씨가 공짜 술쑈+개그쑈를 펼쳤고
상점 뒤의 부두는 고즈넉하니 운치있는 풍경을 그려내고 있었다.
손 잡은 연인들이 키스하러 오는 곳(?)
사진 찍어주는 사람이 없어서 셀카모드를 작동시켰다. 안드로메다로 날아가는 내 팔....
호스텔로 돌아가려다 생각하니 왠지 이 곳의 특산품인 꽃게를 포기해야 하는,
먹을꺼 포기하고는 못사는 우리들의 뇌리를 급습했다.
넉넉치 않은 예산으로 크랩을파는 식당의 가격표를 빼꼼히 넘어다봤지만
크랩가격은 세상어디나 비싼가보다. 크랩반마리가 한 사람 숙박비는 족히 넘었다.
"..언니....그냥 갈까?"
"...에...그래도 여기 아니면 어디서 우리가 크랩을 먹겠어. 그냥 먹고가자.
"...에라. 그냥 내일부터 굶자. 으하하하하"
다음 여행지 타협은 어려워도 먹는 거에 있어서는 절대 타협이다.
우리는 게중에서 그나마 가장 싼 가격을 부르는 크랩레스토랑에 들어갔다.
들어가서 음료고 샐러드고 다 거절하고 킹크랩하나만 불렀다.
대략 여행자처럼 보였는지 직원들도 씽긋 웃으면서 곧 준비해주겠단다.
그러더니 앞에 킹크랩보다 큰 킹크랩이 그려진 냅킨 비스무리한 것을 가져다 주었다.
뻘쭘해하며 무릎에 폈더니 그게 아니랜다.
목에 메는 거란다.
헐.....
하며 머쓱해하는데 친절히(?)도 목에 직접 매준다.
원래 킹크랩 먹을 때 그런거야?...
일단 매기는 맸는데 앞치마도 아니고 둘다 쑥쓰러워서 키득거리며 웃었더니
직원이 사진까지 찍어주겠단다. 이런 과한 친절 같으니라고.
뻘쭘해 어쩔줄 모르는 저 입매를 보라.
어쨌거나 우리는 저 킹크랩 하나를 집게로 부셔가며 열심히도 먹었다.
하루종일 걷느라 허기진 우리에게 저 한마리 킹크랩이 넉넉할리 없지만
어쨌거나 저 레스토랑이 닫을 때 까지 뜯고 발라가며 있는 살 없는 살 쏙쏙 빼먹었다.
시간도 많이 늦고 돌아갈 땐, 샌프란시스코의 명물 전차를 타자면서
되돌아온 길을 돌아가고 있는데
늘어선 가게에 샌프란시스코 엽서가 눈에 띄었다.
10장에 1달러나 하는 곳이 있길래 몇 장 집어들어 들어갔는데
중동계 아저씨가 장삿속이 뻔히 보이는 능글맞은 웃음으로 징글징글 웃으며 말한다
"니하오~"
낯선 여행자에게 웃어주는게 싫지만은 않아서,
그리고 짧은 기간이지만 그간 만난 샌프란시스코인들의 친절이 고마워서,
웃으면서 우리는 중국인이 아니라 한국인이라고 말해줬다.
그랬더니, 어쩐지 예쁘다는둥, 한국인이 이쁜것 같다는 둥 입에 침이 마르도록 아부를 떤다.
어쨌거나 엽서계산을 하는데 내가 메고 있는 수동 카메라를 보더니
아, 자기한테 좋은 필터가 있다고 잘하면 공짜로 줄테니 한번 보란다.
(엽서를 파는 가게가 실은 카메라 가게였다)
그때 내 카메라 렌즈에는, 필터렌즈는 깨지고 남은 찌그러진 필터틀이 박혀있었는데
빠지지도 않고 , 렌즈캡도 들어가지 않아서 그냥 찌그러진 필터틀 그대로 가지고 다녔다.
그런대로 렌즈도 보호할겸.
그런데 아저씨가 마법의 필터(?) 껴준다고 그래서
안그래도 필터프레임 못빼서 달고다니던 참에 그럼 그 찌그러진거 빼고 끼우시라고 했다.
공짜라는 말에 솔깃해서 아저씨가 보여주는 필터를 보니
유리에 반사되는 불빛을 제거해주는 그런 필터였다. (전문용어는 모르겠다)
뭐 설마 정말 공짜로 줄 리는 없을 것 같아서, 얼마냐고 물었더니
가격표를 보여주는데 무려$149불이다. 내가 이런걸 관광지에서 살 리 없잖아.
피식 웃으며 내려놓는데, 아저씨가 씨익 웃으면서
특별가로 $25달러에 팔겠단다. 이거 뭔 헛소리?
아저씨가 자진해서 깎은 거 치고 너무 깎은 게 오히려 수상하다.
뭐 사실 딱히 나한테 필요도 없어서 고민하는 척 하며 안 살 기세를 보이니
열심히 또 렌즈를 돌려가며 뭐가 좋은지 설명을 해준다.
그런데 가뜩이나 킹크랩에 투자하고 오셨는데 쌩돈 $25를 예상에도 없는 렌즈에 사자니
이건 뭐가 아닌 것 같아서 안산다고, 나는 당장 렌즈 캡이 없으니
일단 찌그러진 필터프레임이나 다시 끼워주세요, 라고 했더니
이 아저씨들 , 쎄게 나온다.
필터 프레임? 그런거 버렸댄다.
헉........................나 렌즈캡 없어서 필터 프레임 없으면 렌즈 다 상한단 말이야;;
슬슬 분위기는 험학해지고 옆에서 선희언니가 그걸 왜 함부러 버리냐고 돌려달라고 하니까
아저씨들도 성질내면서 그거 다 짤라서 버렸다고 쓰레기통을 뒤져서
다 뒤틀리고 토막난 필터프레임을 우리 앞에 던졌다.
선희언니는 이걸 왜 이렇게 다 짤라놨냐고 따지기 시작했고
이러다가 정말 큰 싸움이라도 날 것 같아서
내가 필터는 됐으니 렌즈캡이나 달라고 했더니
아저씨가 그러지말고 $20달러에 해줄테니 필터를 사라고 끝까지 나를 얼렀다.
선희언니는 열이 받을대로 받아서 아예 가게 밖에 나가서 계속 가자고 소리 지기 시작했고
나는 일단 렌즈캡 살테니까 렌즈캡이나 주세요. 라고 했더니
막 성질을 내면서 같은 일하는 아저씨한테
"야, 여기 렌즈캡하나 던져줘라" 라면서
$20달러짜리 필터 냅두고 $10달러 짜리 렌즈캡사는 병신이 어딨냐고 비아냥 거리게 아닌가.
기분 상해서 나도 $10달러 던져놓고 렌즈캡만 들고 씩씩거리며 나왔더니
10분 전만해도 이쁘네 어쩌네 하던 그 입으로 아시아인이 어쩌니 쌍욕을 하기 시작했다.
듣고 있던 선희언니가 폭발해서는 한국어로 똑같이 쌍욕을 뱉어주고 발길을 돌렸다.
이제 샌프란시스코 구경한지 하루가 지났는데,
오늘 하루종일 샌프란시스코 너무 이쁘고 , 사람들 너무 착하다고 노래를 불렀는데
하루도 채 가지 않아 이런 일을 당해서 짜증도 나고 속상했다.
게다가 내가 렌즈필터에 혹해서 이런 일이 생긴 것 같아 선희언니에게 미안하기도 했다.
뭐 용팔이나 테팔이나, 샌프란시스코 카메라 장사치나
세계 관광지 장사꾼들은 다 똑같은 거구나- 하며 말없이 전차정류장을 향해 걸었다.
시간이 꽤 늦어서 전차를 타는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았다.
오늘 하루 종일 걸었는데 이렇게 집에 갈 때가 되어서야 전차를 타보는구나.
전차에 매달린 나.
덜컹덜컹-
백년을 넘게 샌프란시스코를 달려온 전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언덕이 가파라서 끙끙대며 올라갈줄 알았는데 시원하게도 올라간다.
아까 관광객들이 셔터한번 누르고 사라졌던 롬바드 스트릿까지 올라오자
전차가 내려가기 시작했다.
속도가 그리 빠르지는 않지만 전차 난간에 매달려 내려가는 그 기분이
롤러코스터 못지 않게 스릴 있다.
스릴뿐만 아니라 조용한 샌프란시스코 밤거리를 달리는 낭만도 함께 있었다.
전차를 타고 내려가는 기분이 사진으로도 느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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