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일은 흔치 않은데 일주일에 영화를 3편씩이나 보기 되었다.
《곡성》, 《싱 스트리트》 그리고 《나의 소녀시대》
모두 보고나서 만족할만큼 좋은 영화들이었고
그 중에서도 《곡성》은 영화가 내뿜는 오로라가 과히 대단하다라고 느껴질 정도였는데
《곡성》이 내 지적호기심을 흔들었다면 나의 감수성을 흔들어 놓은 것은
풋풋했던 시절의 첫사랑 이야기를 그린 《나의 소녀시대》였다.

 


비슷한 대만영화로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를 재밌게 봤었고
《나의 소녀시대》도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즐겁게 관람했다.
그렇게 즐거운 마음으로 영화를 보고나와 집으로 향하는데
영화 속 주인공과 비슷한 스토리가 있는 것도 아닌데
왜 나의 마음이 하염없이 가라앉는걸까?


 

5월의 해가 저무는 초저녁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오고
집까지 터벅터벅 걸어가는데
문닫은 가게 속 유리에 비친 내 모습에 눈길이 닿았다.

 

서른.
나도 영화 주인공 린전신처럼 열여덟나이에 어떤 내 모습을 상상했었던가.
상상을 하긴 했었나.
이제는 기억마저 가물가물하다.
상상을 했는데 이룬건가? 이루지 못한건가?

 


13~4년이 지났는데
내 모습은 그 때로부터 신체적 나이가 들었다는 것 말고는 크게 달라진게 없는 것 같다.
더 예뻐지지도 않았고, 더 날씬해지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해서 더 패셔너블해지지도 않았다.
직장인이 되긴 했지만 경제생활을 하고 있을 뿐 그때 학교를 다니던 것처럼 정해진 시간에 출근해서 일하고 퇴근하고
그런 학창시절과 별반 다를바 없는 생활을 하고 있다.
담배를 피지도 않고 문신도 하나 그려넣지 않았다. 그 시절 내가 나쁘다고 생각한 것들을 하나도 어기거나 깨뜨리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나를 미워하며 사랑하며 애증하며 살아가고 있다. 
 

 

사람은 참으로 쉽게 변하지 않는구나.
십수년 쯤 지나면 뭔가 그럴싸하게 달라질 줄 알았는데.
세월과 시간이 허무하단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시간이 훌쩍 지나서가 아니라
그 훌쩍 지나는 시간동안 나는 여전히 그대로 내가 알던 그대로의 내 모습이여서 말이다.

 


《나의 소녀시대》를 보고나서 첫사랑이 떠오르지도 않았다.
내 고등학교시절 첫사랑도 영화만큼 강렬하고 영화처럼 소중했지만.
오히려 나는 그 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별반 다를바 없음을 깨달았다.
더 이쁜 사람, 더 좋은 사람,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었던것 같은데
지금 내가 그런 사람인가-
과연 나는 지금으로부터 13~4년 뒤엔 내가 바라던 내 모습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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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honey,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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