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13일의 금요일 DAY

 

 

 

우리 부문에서 13일의 금요일은 일종의 암호(였)다.

때는 2013년 12월 13일, 역시 금요일.

싱글인 쥬니어들끼리 함께 모여 1박 2일 MT를 준비했고 볼링과 우노게임으로 점철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사실 회사 사람들과 회사 밖에서 어울려 논다는게 쉽지 않다는데

유난히 28세~34세의 젊은 싱글들이 몰려있어서인지 다들 흔쾌히 동참해주었고, 또 즐겁게 보냈다.

물론 이 모든 일은 철저히 회사에서는 비밀이었다.

 

 

 

 

올초 한참 여수사건과 세월호 사건으로 회사도 나라도 뒤숭숭했던 시간들이 조금 가시고,

또 한번 친목을 다질 겸, 제 2차 13일의 금요일 DAY 발동!

이 모든 일은 내가 다 추진하였다.....(...)

 

 

이번 13일의 금요일의 장소는 바로 연희동의 MOJI STUDIO !

크로아티아 여행준비 때문에 한참 airbnb를 뒤적일 땐데, 서울에도 이런 공간이 있지 않을까 싶어서 검색했다가

너무나도 완벽한 시설! 위치! 가격! 이 삼박자가 맞아떨어지는 MOJI STUDIO 발견 +_+ 덜컥 예약 고고.

MOJI STUDIO는 연희동에 있는 마당이 딸린 2층 주택인데

1층은 작곡가들의 작업실이고, 방 4개와 다락방까지 딸린 커다란 2층이 바로 대여공간이다.

(https://www.airbnb.co.kr/rooms/2970798?guests=8&s=qIm8)

 

 

 

드디어 13일의 금요일, 모 대리님이 전무님께 놀러간다는 사실을 발설하는 바람에

우리의 13일의 금요일 계획이 모두 들통나버리는 참사가 있었지만,

어쨌든 퇴근과 함께 연희동으로 출발 ~ ♬

 

 

 

 

회사가 역삼에 있다보니, 2호선을 타고 서울을 반바퀴 돌아 연희동에 도착했을땐 이미 해가 지고 날이 조금씩 어둑해지고 있었다.

사러가 쇼핑에 내려서 장을 보고 골목을 걸어 올라가다보니 MOJI STUDIO 주인분이 커다란 (?) 골든 리트리버를 데리고 산책겸 마중나와주셨다.

친절한 주인분(♥) 이 미리 밥도 해주시고, 된장국도 끓여주시고 식기구도 모두 세팅해주신 덕분에

우리는 짐만 풀고 바로 마당에 상을 펴고 고기 굽기를 시작했다.

 

 

 

 연희동의 이쁜 주택, MOJI STUDIO. 참 따뜻해보인다.

 

소고기가 지글지글! 주인분이 직접 기른 유기농 채소와 함께 :)

 

 

 

소고기는 조대리님이 아버님께 부탁해서 직접 공수해오신 최고급 소고기였다.

숯불에 구워진 소고기는 노릇노릇 얼마나 맛있던지....ㅜㅠ 내 입으로 몇개가 들어가는지도 모르고 야들야들한 고기를 씹어먹었다.

한편, 소정의 비용으로 주인분이 밥, 김치, 야채, 쌈장 등등 필요한 잔반찬들을 다 마련해주셔서

정말 손에 물한방울 안묻히고 저녁식사를 완벽하게 할 수 있었다는 사실.

주인분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__)(--)

 

이 아이가 MOJI 귀여운척 >_<

 

 

이 집엔 MOJI 라는 6개월된 골든 리트리버가 살고 있었는데, 주인은 이 주택에 살지 않고 오로지 대여공간으로만 쓰시는 듯했다.

집 이름이 MOJI STUDIO인데...그럼 이 집 주인장은 MOJI, 너인것이냐?

다들 이 커다란 주택의 소유주가 설마 강아지는 아니겠지 하며 등기부등본을 떼보겠다고 법석을 떨다가 다시 소고기를 폭풍흡입.

 

 

 

조용하고 아늑한 연희동 거리.

 

 

저녁을 먹고서 배를 꺼뜨릴겸 다같이 노래방엘 갔다.

우리 회사는 회식이 거의 없어서 사실 다같이 술을 마실 기회도, 함께 노래방에 가서 유흥을 즐길 기회도 그리 많지 않다.

회식자리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환영할만한 회사 분위기이지만

그러다보니 아무래도 회사 사람들과는 업무적으로만 대하게되고 그 이상으로 친하게 지낼 수 없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고런 아쉬움을....이번 노래방에서 다같이 열창하고 떼창하며 화악 날려버렸다!

모두 한마음 한뜻이 되어 후렴구를 외쳐대는 열광을 보여주었다....하아.

다들...잘 노는 거였어....그 중에도 내가 제일 잘 노는거 같았다.....

 

 

도란도란한 분위기지만 사실은 개그치고 있다.

 

 

노래방에도 다녀왔고 어느새 시간은 11시가 넘었다.

이제 기다리고 기다렸던 UNO 타임~!!!

 

1차 13일의 금요일 DAY에도 그랬고, 빠질 수 없는 우리 부문의 공식 카드 게임.

1차때는 벌칙으로 멍석말이 (ㄷㄷㄷ)를 했었는데, 이번엔 뭘 할까 하다가....

1등이 꼴등 얼굴에 립스틱으로 그림을 그리기로 했다 (^__________________^)/

 

 

...

 

 

평균나이 30세의 게임벌칙 수준..

그렇게 새벽 4시까지 죽음의 패가 돌아가고, 우리들 얼굴은 모두 립스틱으로 난장판이 되었다는.....

 

 

벌칙 기념삿~ 모두의 초상권을 지켜드립니다. 히히

 

 

그렇게 광란의 새벽이 지나고, 모두들 각자 방으로 들어가 굿나잇 -

그리고 아침이 되었다.

 

 

 

커튼을 걷자, 커다란 유리창 사이로 햇살이 환하게 쏟아졌다.

아파트가 아닌 주택들만 있는 동네라 아무것도 햇살을 가릴 것이 없었다.

창문을 열자 시원한 바람이 머리카락을 흐트러뜨렸다.

창가 옆의 오디오 전원 버튼을 누르자, 주인분이 꽂아놓은 USB에 담긴 이루마의 피아노 곡이 방안을 가득 메웠다.

 

칫솔을 물고 창가에 서니

싱그러운 기분이 들었다.

햇살에 널어놓은 하얀 이불처럼

내가 바삭바삭해지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2층 창가에선 스튜디오의 마당과,

작은 골목길과,

건너편 집과

그리고 탁 트인 파란 하늘이 보였다.

 

이런 아침을 매일 맞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지금까지 아파트에서만 살아온 나에게, 단독주택의 2층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낯선 것이었다.

서울에 있지만 서울에 있는 것 같지 않았다.

내 집은 아니지만 또 응당 집 같은 곳이었다.

분명 낯선데 정감이 뚝뚝 묻어났다.

내 삶에서 떨어져 있지만 또 가장 현실적인 누군가의 삶이기도 했다.

 

 

이런 곳에서 살고 싶다라는 생각을 했다.

아파트가 온통 풍경을 가로막고 있는 곳 말고, 창문을 열면 골목길과 하늘이 탁 보이는 곳.
너무 높지않아서 땅에서 가깝고 하늘에서는 먼 곳.
차들이 지나다니는 소리 말고 사람들이 걸어다니는 곳.

햇살이 바짝 비춘 스튜디오의 마당. 하늘색 하늘과 푸르른 나무와 하얀색 농구대가 참 잘 어울린다.

 

연희동 골목

 

 

 

 

어느새, 짧은 1박2일의 일정이 끝나고 -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한채 MOJI STUDIO를 나섰다.

연희동은, 낯설면서도 정감있는 동네였다.

MT가 끝났다는 것보다, 이 곳에서의 하루살이 삶이 끝났다는게 아쉬웠다.

서울에서의 신선한 충격이자 일탈이었고, 또 생각지 못할정도로 커다란 리프레쉬였다.

내가 답답하고 지루한 삶이 벅차다고 느낄 때, 다시 찾아와 하루쯤 지내고 싶다.

 

 

이 날의 느즈막한 토요일 아침을,

나는 한동안은 잊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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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honey,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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