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오지게 서로 갈구고 장난치던 톰과 제리.
절뚝거리는 다리로 교대역을 한참 걸어 6번출구로 나와 7번출구로 걸어갔다.
바로 앞 빌딩 라운지에 들어가있었더니 금세 전화가 온다.
"야. 나와"
어둑어둑한 길거리에 전화기를 들고 서 있는 사람.
오도방정을 떤다는 걸 알면서도
꺄아아아 소리를 지르며 머리 위로 손을 휘적휘적 흔들어댔다.
내 뒤로 직장인들이 우르르 퇴근하고 있었는데도.
한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똑같이 휘적휘적 흔들어 주는 손.
톰이었다.
7시에 나오려고 소개팅을 간다고 있지도 않은 뻥을 쳤는데 결국 늦어졌다면서
정신없이 안부를 나누며 식당엘 들어갔다.
자리를 잡고 음식을 시키고 이런 저런 이야기들, 수다들.
- 오빠. 이상해. 내가 오빠 처음 만났을 때 오빠 26살이었는데 지금 나보다 어려.
지금 생각하면 오빠 완전 애기였어.
- 그랬어? 나 그거밖에 안됐었어?
- 응. 근데 오빠 완전 나한텐 오빠같았는데. 완전 큰 어른.
- 아닐껄 아닐껄? 1~2살 많게 느껴지지 않았어?
- 아니야. 내가 오빠라고 불러본 사람중에 나랑 5살 차이 나는 사람은 오빠가 처음이었어.
- 야. 무슨 5살이야. 4살아냐?
- 나 87.
- 뭐야. 짜증나. 에잇.
그랬다. 내가 톰을 처음 만난건 2007년 3월.
나는 스물한살. 톰은 스물여섯살.
어느 새 나는 스물여덟살. 톰은 서른세살.
우리가 언제 이렇게 어른이 되었을까.
우리 그때 파릇파릇한 대학생이었는데.
나 그때 톰 완전 어른스럽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되돌아보니 완전 애기.
- 결혼하려면 이왕이면 좋아하는 사람이랑 하는게 좋지.
- 음. 아니야. 좋아하는 거보다 나랑 잘 맞는 사람. 내가 야! 하면 호! 해주는 사람.
생각해봐. 좋아하는 감정은 언제나 변해. 올라가기도 하고 내려가기도 하잖아.
10년만 같이살아봐봐. 좋아하는 감정이 남아있을까?
- 음..아니.
- 그러니까. 잘 맞는 사람. 봐봐. 나는 좀 개구쟁이잖아. 다른 사람 눈치도 잘 안보고.
나는 아까처럼 꺅 인사도 하고 기분이 좋으면 노래도 불러.
내가 학교다닐때 주말이었어. 학교엔 사람도 별로 없었지.
그래서 기분이 좋아서 노래를 좀 흥얼흥얼 거렸다?
그랬더니 그때 남자친구가 내가 쪽팔리다고 날 버리고 먼저 걸어가는거야!
내가 어이가 없어서 왜 먼저 가냐고 물어봤더니, 남들앞에서 튀는 행동을 안했으면 좋겠대.
그때 얼마나 서운하고 눈물이 막 나던지. 정말 서운했어.
나는 그런 사람 만나면 안되는거지.
- 그랬군.
그런데,
나는 너가 그런 지적때문에 너 다운걸 잃어버리지 않았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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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다운걸 잃어버리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 말에 참으로 많은 것이 담겨있다고 생각했다.
나를 나 자체로서 좋아하고 인정해주고 있구나.
내가 애써서 나를 바꾸고 맞추지 않아도
그냥 나 그대로를 좋아해주고 이뻐해주고 이런 나를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해주는 사람.
실은 아주 오래전부터 내 옆에 있었구나.
고마워.
나라는 사람을 나 그 자체로 이뻐해주고 인정해줘서.
고마워.
내 반가운 인사에 그렇게 같이 손흔들어줘서.
고마워.
인연이 아니었으면 내 인생에서 영원히 못만났을 텐데 -
내 인생에 기적처럼 찾아와서 내 친구가 되어줘서.
나- 나를 잃지 않고 나를 지키면서 그렇게 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