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는 추워도 하늘은 쾌청하니 맑더니.
오늘은 구름도 조금 끼고 괜히 마흠도 흐린 것 같은,
이제 정말 늦가을에서 겨울로 넘어든다는 자각이 드는 날씨다.
회사 건물 안에 대여섯개의 커피전문점이 있는데
그중에 스타벅스 빼고 다 사원증으로 결제가 가능하다.
커피값도 만만치 않은 요즘에 사원증에 들어있는 식비로 커피를 사먹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그래서 나는 그동안 굳이 스타벅스 커피를 사먹지 않았다.
내가 무슨 스타벅스 커피 매니아도 아니고 괜한 오기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상하게 겨울이 되니까
빨간 크리스마스 시즌 컵에 초록색 스틱이 꽂혀있는 스타벅스 커피가 왜그렇게 마시고 싶던지.
월급도 얼마 안남아서 마이너스 긁게 생긴 판에
이번주 월, 화, 수를 참다가 기어코 오늘 아침 스타벅스에서 라떼를 사먹고야 말았다.
여러 브랜드의 라떼를 거쳐 이제서야 느끼는건데
스타벅스 라떼가 우유가 많이 들었는지 마일드하다.
쓰지도 않고 탄 맛도 없다.
커피를 잘 못마시는 내 입에 딱 맞는다.
그렇게 애써 외면했던 빨간색 컵에 초록색 스틱 꽂은 스타벅스 커피를 들고
통창이라 훤하고 휑한 회사 로비를 올라오면서 잠시 생각했다.
우리가 붙잡을 수 있는게 있나.
우리는 시간을 붙잡을 수도 없고
사람의 마음을 붙잡을 수도 없다.
내 몸과 내 머릿속에 새겨놓았던 기억도 날아간다.
저기 떨어지는 나뭇잎을 붙잡을 수도 없고
가을이 지나 가는 것도 붙잡을 수가 없다.
사라지는 것을 알아서 슬프고
붙잡을 수가 없어서 안타까운 것이다.
그 모든게 사실은 너무 당연한 거라고 생각한다면 슬프지도 아쉽지도 않을까.
붙잡지 못한 어제의 나는 날아가버리고
나는 오늘 또 다시 태어났다.
아쉽지도 슬프지도 않다.
날아가버린 어제의 나에게
아직 날아가버리지 못한 내 기억과 마음도 함께 날려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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