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12시 52분.
새벽 1시 52분이 아닌게 얼마나 다행인가.
창문을 열었다.
늦깍이 태풍이 가까워져 오고 있는 10월 초의 새벽의
시원한, 아직은 춥다는 기운이 느껴지지 않을 딱 그 정도의 청량하고 시원한 밤공기가
창문이 열리자마자 후덥지근한 방으로 새어들어온다.
이 늦은 시각에
주섬주섬 방청소를 한다.
어짜피 내일 출근하고 나면 도둑맞은 것같은 방이 될거란걸 알면서도
이 새벽, 나는 주섬주섬 옷가지를 주워 옷걸이에 걸고
가방을 정리하고, 물건을 주워담고, 머리카락을 쓸어담는다.
고요한 이 새벽이 좋다.
아직 동생은 들어오지 않았고, 부모님은 주무시기 때문에 고요한 집에서
내 방에 혼자서 창문을 열어놓고
아파트 단지 너머 찻길에서 간간이 차가 지나가는 저 아득한 소리-
무슨 소리인지 정의하기 어려운 특유의, 밤의 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이런 밤 들으면 좋을,
이런 가을에 들으면 좋을,
사실은 비올때 들으면 가장 좋은,
내 마음 속 가장 깊은 곳에 - 내 인생의 테마곡 - 이라고 내멋대로 정의해버린
가장 좋아하는 음악을 틀었다.
똑같은 멜로디 라인이 반복되지만
그 아래 조금씩 비트가 추가되는
가사없이 멜로디와 비트로만 이루어진 곡.
왜 이 곡을 -내 인생의 테마곡-이라고 내멋대로 정의해버렸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곡에 대한 나의 기억은 2007년쯤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처음 알게된게 언제였는지는 정확히 기억할 수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듯 한 것은, 아마도 밴쿠버에서 나는 이 곡을 참 많이 들었다는 것이다.
기숙사의 작은 방, 작았지만 아기자기해서 마음에 들었던 그 방에서
비가 오는 겨울밤이면 나는 따뜻한 얼그레이 한 잔과 함께 이 곡을 들으며
우울하기 짝이 없는, 오후 3시 반이면 비와 함께 해가 져버리는 그 긴 밴쿠버의 겨울밤을 보냈다.
우울할 것 같았지만, 사실 나는 그 순간들이 그다지 우울하지 않았다. 우울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건 이 곡이 주는 묘한 - 그리운 느낌과 조금 슬프듯 들리지만 또 한편 꿈을 좇는 것 같은 미약하게 느껴지는 희망의 느낌때문이 아닐까 싶다.
참으로 묘하디 묘한 멜로디이다.
그리운 듯 하지만 사무치지는 않고,
슬픈듯 하지만 처지지는 않으며,
담담한 듯 하지만 어둡지만은 않은.
남들이 이 곡을 얼마나 알고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이런 저런 내 얘기하기를 좋아하는 나지만,
이 곡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 그 누구에게도 - 언급한 적이 없다.
이 곡을 -내 인생의 테마곡-이랍시고 내 멋대로 정의내린것 처럼
내 마음은 왠지, 이 곡에 대해서는- 이 곡이 내게 갖는 의미에 대해서도 -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마치 말하고 나면 사라져버리는 마법같은 것이어서
오직 나만이, 내 마음만이 알고 있어야할 것만 같다.
그 순간 나는 이중적인 내 자신을 느낀다.
누군가와 나를 공유하고 싶어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세상 모든 사람들로부터 나를 숨기고 싶어하는.
사람은 원래 양면적인 존재라는 것을 또 한번 깨닫는다.
생각이 많은 밤이다.
일단 또 하나 정리하고 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