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너 자리잡고나서 결정하자"
뒷통수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그동안 다양한 핑계를 들어봤지만
내가 자리를 잡아야한다는 조건은 생각지도 못했다.
하지만 할 말이 없었다.
나는 아무런 결정권이 없었다.
그냥-
지금 내 인생의 많은 것들이 도대체 왜 '내가 자리잡는 것'에 붙잡혀 보류된 상태인건지
이건 마치 작년 한 해 동안 나의 많은 것들이 '시험에 붙으면'에 저당잡혀있던 거랑 뭐가 다른지.
이런 상황속에 처한 내 자신이 처량해졌다.
빠져나올 수 없는 구덩이 한 가운데 빠져버린 느낌.
나는 왜 탈출할 수 있을때 탈출하지 못했나.
나한테 끝까지 버티자고 한 놈이 누구였나.
이 모든 상황은 결국 내 탓이지만,
내 탓을 하기 싫어서 괜히 이리저리 남 탓, 상황 탓을 해봤다.
그렇게라도 해야 내가 나를 탓하며 더 깊은 구덩이를 파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
사람들은 정답찾기를 좋아한다.
세상 일에 대한 정답, 사람 마음에 대한 정답, 니가 한 말의 의미에 관한 정답.
정답을 찾기위해선 생각이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생각을 관두기로 했다.
궁금한 것들이 투성이지만,
어짜피 정답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내게 정답을 보여주지 않는 이상
알 수도 없는 정답을 찾기 위해서 생각의 가지를 치고 쳐나가는게
나한테 얼마나 무익하고 때로는 해로운 것인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어짜피 내가 알 수 없는 것이라면
조금 답답하고 찝찝해도 그냥 거기에서 멈추기로 했다.
그냥 내게 던져진 채로 포장지를 풀지 않고 들고만 있기로 했다.
생각하고 의미부여하는게 내가 제일 잘하는 일이자 좋아하는 일이지만
지금은 잠시 멈춰두어야 할 때.
===
사람은 손에 쥐고 있을때 두려움을 느낀다.
내가 쥐고 있는 것을 잃을까봐.
잃는 것 자체도 무섭고, 잃고나서 겪을 후폭풍도 무섭다.
깨달았다.
나는 지금 아무 것도 가진게 없다.
잃을게 없다.
그래서 두려워 할 필요도 없다는 걸.
나도 모르게
이 정도면 내가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나보다.
나의 착각이 나에서 비롯된 것이든, 상대방이 유발한 것이든 간에
결과적으로는 나는 아무것도 갖지 못한 것으로 판명이 났다.
한동안은 왜 잡아놓지 못한거지, 더이상 뭘 어떻게 해야하는거지
조급하고 조바심이 나고
어느정도 진전이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지리하게도 계속 쳇바퀴돌듯 원점으로 돌아가고 또 돌아가는 이 상태에 진절머리가 났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나는 아무것도 없다.
그러니까 두려워하지 말자.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버리자.
잃을 게 없으니까 잃을 걸 겁내지 말자.
나도 너한테 참 모질게 굴었지만
너도 나한테 만만치않게 모질게 군다.
나는 원죄가 있으니, 이게 너의 복수라면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다.
원망하지 않는다.
오히려 나는 죄책감을 들고 미안함을 내버릴수 있어서 좋다.
이젠 내가 지쳐 나가떨어져도 나는 홀가분하게 갈 수 있게 되어서 좋다.
그때쯤엔 미련도, 미안함도 없이 갈 수 있겠지.
===
그래서 말인데
원래 인생은 독고다이.
혼자가는 거.
누군가를 엮어 내 인생을 계획하지 말고
남이 내 인생 문제 풀어주길 바라고 있지 말고
내 인생,
내가 열심히 밭갈고 씨뿌리고 잡초뽑고 물뿌리고 해야하지 않겠나.
===
인생 참 어렵다.
배워도 배워도 끝이 없다.
남은 보전처분신청서는 언제쓰냐.
'■ 삶'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혹시라도 들릴까봐. (0) | 2013.07.09 |
---|---|
야- 7월이다 ! (4) | 2013.07.04 |
눈물의 일기 (6) | 2013.06.30 |
사람의 마음. (0) | 2013.06.28 |
리움 (Leeum) 에서 바람소리를 듣다. (3) | 2013.06.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