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여행 제 21일 째. (1)
London, UK
여행지의 기억과 그 도시에 대한 인상은
단순히 그 곳의 새롭고 낯설었던 풍경때문만이 아니라,
그 곳에서 내가 겪은 일들에 의해서 결정되곤 한다.
낭만적일 것 같던 몬트리올은 추적추적 내리던 비 때문에 쓸쓸하고 음산하게 기억되고
화창하고 상쾌했던 보스턴은 불친절한 사람들때문에 오히려 기분나쁜 도시로 기억되는 것처럼.
런던은, 딱히 어떤 느낌의 도시였다고 말하기 힘들지만,
적어도 이 날, 5월 21일의 런던만큼은 '악몽'같이 기억되고 있다.
어제 그렇게 하루종일 잠만 잔 덕분에
시차 따위는 가뿐히 극복하고 아침일찍 일어났다.
흐린 날씨로 유명한 런던인데
어제에 이어서 오늘도 날씨는 우리나라의 청명한 가을 날씨처럼 맑고 깨끗하고 청명했다.
날씨에 일희일비하는 나는 (포스팅에 날씨얘기를 빼놓은 적이 없는 것 같다),
정말이지 기분이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입에서 절로 흥얼흥얼 노랫소리가 흘러나올 정도였다.
21일째 여행중이었지만, 이제 막 유럽여행의 첫 시작이었는데
어제 푹 쉰 탓에 컨디션도 너무 좋았고 날씨까지 화창해준 덕분에
그래, 기분이 너무 좋았다. 너어무.
아침 9시.
런던시내에 있는 레스터 스퀘어에서
유럽여행의 2/3을 함께할 동행자인 시은언니를 만났다.
서로 한 번도 직접 만난 적이 없지만 이른 아침, 거지 밖에 없는 한적한 공원에서
정통 한국 스타일의 언니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일찍 하루를 시작한 김에 그 유명한 런던의 근위병 교대식을 먼저 보기로 하고
The Mall 을 따라 버킹엄 궁전으로 걸어갔다.
Admirality Arch
트라팔가 광장에서 버킹엄 정문까지 이어지는 The Mall의 정문, Admiralith Arch.
세 개의 아치 중에 중앙문이 국왕 전용문이고 일반인은 좌우의 옆문으로만...(..)
The Mall을 따라 걷다보니 화보인지 광고인지가 촬영중이었다.
가까이서 보니 백인, 동양인, 흑인. 제각강의 빨간망토 녀성들.
드디어 버킹엄 궁전 앞, Horse Guard들이 행진을 하고 있다.
시간이 지나고 알았지만, 여기는 그닥 명당자리라고 할 수 없다 -_-
아직 위병 교대식이 하기 한 시간 전인데도, 좋은 자리를 잡으려는 사람들로 바글바글 했다.
나는 인터넷에 올라온 명당자리가 두 곳이 있었는데,
버킹엄 궁전 정문 바로 옆과, 빅토리아 여왕 기념비 뒷쪽이라고.
우리는 조금 경쟁이 덜 치열한 빅토리아 여왕 기념비 뒷쪽 한 가운데에 자리를 잡았다.
행진하는 위병 관악대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저 자리(기념탑 뒷쪽) 비추다.
물론 버킹엄 궁전과 기념탑 사이로 행진을 하기 때문에 위병 행렬을 보기에는 더 할 나위 없이 좋은 자리이나
정작 위병 '교대식'은 버킹엄 궁전 '안'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기념탑쪽에서는 멀어서 잘 보이지가 않는다.
결국 우리도 저 자리를 박차고 나왔지만 교대식 다운 교대식 장면은 보지 못했다.
이렇게 궁전 안에서 행해지는 교대식. 저 정문앞에는 서 있을 수 없고 통행하며 봐야 한다.
많은 기대를 안고 기다렸건만 상당한 실망감만 느낀 채,
나와 시은언니는 근처의 St. James's Park (세인트 제임스 공원) 에서 잠깐 허기진 배를 채웠다.
학생들이 소풍이라도 나온건지, 아님 다른 유럽국가에서 수학여행이라도 온건지
(5월은 동양인대신 유럽인들이 여행을 다니는 시즌이다!)
공원안은 중고등생처럼 보이는 어린 학생들로 바글바글 했다. (실은 더 어릴지도 모른다.)
나는 이미 벤쿠버와 뉴욕의 센트럴 파크에서 놀다온 사람인지라 별로 감흥이 없었지만
빡빡한 빌딩숲 서울에서 갓 온 시은언니는 런던의 공원 매력에 푹 빠진 듯 했다.
이 때 나는 왠지모를 찝찝함을 느꼈는데,
영어권 나라인 캐나다와 미국을 모두 거쳐서 런던으로 왔더니
전혀 관광지라던가 새로운 느낌이 안난다는 거였다. 물론 이렇게 빨리 단정지으면 안되지만서도.
이왕 비싼 돈이고 금 같은 시간 써가며 왔는데 캐나다나 미국이랑 그리 다르지 않다니..
괜히 욕심부려서 유럽까지 왔나, 일단 한국들어가서 할 일 좀 한다음에
뭔가 한국에서의 삶이 지루하고 답답할 때 기분전환 삼아 나올껄 그랬나...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나무 그늘에서 여유롭게 여행책자를 뒤적여보는 시은언니.
공원 안에는 벤쿠버에서처럼 다람쥐인지 청솔모인지 하는 것들이
사람 무서운줄 모르고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그리고 관광지의 다람쥐답게 사람들에게 얻어먹는 주특기가 아주 뛰어난 녀석이었다.
사람들이 던져준 땅콩을 낼름 집어들고 나무위에 올라가서 갉아먹는 이 녀석.
사람들이 떼로 몰려와 사진을 찍든 말든 관심도 없다.
이 녀석 상당한 복부비만이다.....그만 좀 받아먹어!!돼지다람쥐
먹보 다람쥐에 정신이 팔려있는데 저기서 또 사람들이 웅성웅성한다.
보니까.....펠리칸!!!
입이 정말이지 얼마나 이 녀석은 큰지 쩍쩍 늘려서 사람들 팔 물어뜯기가 주특기다
여기 터줏대감인지 사람들을 겁내기는 커녕, 사람들의 호기심을 즐기는 맹랑한 자식.
사람의 손을 먹어보려는 펠리칸.
....눈을 감았어...-_-
그렇게 세인트 제임스 파크의 동물들과 인사를 나누며,
한참을 걸어서 Horse Guards의 사령부 건물에 도착했다.
아까 위의 사진에서 말을 타고 돌던 기마병.
기념사진! 기념사진을 외치며 눈하나 깜짝도 안하는 기마병과 사진도 찍었는데..
기마병들과 사진도 찍고 이제 내셔널 갤러리고 가려는데
갑자기 왠지 모를 불안감이 명치 끝을 스쳤다.
설마......하면서 옆에 매고 있던 가방을 열어보았는데
오.마이.갓.
말그대로 텅텅 비었다!!
....................내 지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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