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아주 즉흥적이었다. 점심을 먹고 옆팀(이라고 해봤자 같은 사무실)에 놀러갔는데 나의 멘토였던 N팀장님께서 오보에를 꺼내 만지작 거리고 계셨다. 곧 연주회가 있어서 연습하러 가지고 오셨다고.
갑자기 왜 그랬는지, 나는 장난반 진심반으로 "제가 바이올린을 할 줄 아니 같이 듀엣 해보는 건 어때요?" 라고 제안을 했다.
"좋아!"
사실 난 여기까지만 해도 이게 정말 실현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왜냐면 내가 진짜 바이올린을 들고 회사까지 올 생각을 안했기 때문) N팀장님의 추진력으로 순식간에 우리 법무실 내에 악기를 다룰 줄 아는 동료들을 섭외했고, 바로 단톡방이 만들어지고, 바로 팀 이름 - Quartet de Legis-가 만들어지고 바로 연주곡과 악보를 구하고 내친김에 회사 근처의 연습실까지 예약을 해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시작된 크리스마스 캐롤 송 맹연습. 중학교 이후로 바이올린을 거의 꺼내지 않았었는데 (2020년에 큰 돈 들여서 점검받았는데 그 떄도 동기부여가 안돼서 그대로 케이스에 넣어뒀다) 진짜 오랜만에 바이올린을 꺼내서 연습이란 걸 했다.
선택한 곡의 난이도가 높지 않아서 초견으로도 금방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정작 내 바이올린 실력이 많이(=20년) 녹슬어서 소리가 이쁘게 나지 않더라. (당연한 얘기)
그래서 연습이 가능한 주말동안 카이저 교본까지 펴놓고 기본기 맹연습을 했고, 드디어 4개 악기가 다같이 첫 합주를 했다.
다들 어느 정도 실력인지 알 수가 없어서 큰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완벽하진 않지만 각자 맡은 역할들을 톡톡히 해내주었고, 오랜만에 이렇게 다양한 악기가 합을 맞추어 하모니를 이루어 과정 그 자체가 너무 행복했다.
중학생 때 청소년 오케스트라를 했었는데, 그때 기억도 새록새록 떠오르고- 오케스트라를 하면 웅장한 곡들을 할 수 있어서 좋긴 한데 개인적으로는 이런 4중주 정도가 더 좋은 것 같다.
한 번만 하고 끝날 줄 알았는데 이 사람들이 생각보다 악기 연주에 진심이었다! (심지어 평소에 자기 의견을 전혀 내지 않는 신님도 한 번만 다시 하자고 할 정도로 적극적이셔서 깜짝 놀랐다) 내친김에 연습실을 한 번 더 예약해서 다시 한 번 합주를 했다. 확실히 연습량이 늘수록 합이 더 잘 맞는 느낌.
연주의 완성도가 아주 높진 않지만, 우리가 무사히(?) 연주를 해내었다는 사실 자체가 뿌듯하기도 하고 또 다른 것에서는 느낄 수 없는 새로운 행복함을 주기도 했다. (출근길에 연주 녹음을 매일 들을 정도 ㅋㅋ)
요즘에는 바이올린보다 첼로에 더 관심이 가서 첼로를 시작할까? 라는 생각도 있었는데 합주를 하다보니 바이올린의 간드러지는 소리에 다시 좀 매료된 것 같기도 하고.
합주를 하고서 영상을 부모님께 보여드렸는데 엄마가 되게 뿌듯해하셨다. 그 옛날에, 군인 아빠의 외벌이 월급으로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두 개나 가르쳐주고 심지어 지금 내 돈으로 사라고 해도 선뜻 사기 어려운 좋은 바이올린을 사준 엄마는 무슨 생각이셨을까. (대충 감사하다는 얘기)
Anyway, 이 기분좋은 설렘과 뿌듯함이 일회성으로 그치지 않고 앞으로도 꾸준한 기회로 이어지면 좋을 것 같다. 추진력 대왕인 N팀장님이 함께 있는 한, 적어도 듀엣은 확보된 것 같으니까 바이올린 연습을 꾸준히 해봐야지!
이번 프랑스 여행은 꼭 여행기로 남겨야겠다고 다짐했었는데, 이런저런 일에 우선순위가 밀리다보니 올 해는 커녕 내년 여름여행 전까지도 다 못 쓸것 같은 불안한 생각이.. 최근에 좀 힘든 일이 있었지만, 무사히 잘 해결되면서 이런 저런 의욕도 같이 생긴 참에 프랑스 여행을 다시 복기해본다.
프랑스에서 맞이하는 두 번째 아침. 아직 적응하지 못한 시차 때문에 오늘도 아침 일찍 깼다. 호텔 근처 카페에서 크로와상과 커피로 간단히 아침을 해결하고 파리 시내로 출발. 오늘 일정은 도리가 가보고 싶어한 마레지구/보주광장, 그리고 오후 5시에 예약된 오랑주리 미술관 말고는 특별한 일정이 없다. 지금 지도를 캡쳐하면서 보니 파리에 갈 곳이 이렇게나 많았는데 왜 이렇게 아무 일정도 계획을 안했지? 싶은...ENFP의 여행 😅
우리는 RER을 타고서 시테섬에 내렸다. 여기서부터는 마레지구까지 걸어가면서 찬찬히 풍경을 즐길 예정. 이른 아침인데 정말 구름 한 점 없이 맑다. (이번 주 토요일에 시드니에 가는데 내내 날씨가 흐리다고 해서 속 쓰린 사람)
우리는 시테 섬을 건너 퐁피두 센터를 지나 마레지구까지 걸어갔다가 보주 광장으로 방향을 틀었다. 도리가 어디서 본 건지, 보주 광장을 알아와서는 자신있게(?) 이 곳으로 인도했는데, 오 나쁘지 않아.
보주광장(Place des Vosges)은 파리에서 가장 오래된 광장으로, 광장이라기보다는 완벽한 대칭을 이루는 사각형의 작은 공원 혹은 정원 같은 모습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파리 건물느낌과 조금 다른 인상을 주는데 그 이유는 외벽이 붉은 벽돌로 되어 있어서 그렇다.
아침에 가까운 오전이었는데도 불구하고, 햇살이 일광소독 급으로 너무 뜨거웠다. 이제 겨우 6월 중하순인데 이렇게나 해가 뜨겁다고? 파리 근처 브뤼셀에 살고 있는 현석오빠에게 물어봤는데, 지난 주까지만 해도 이러지 않았는데 이번 주 이상기온 떄문에 엄청 덥다고.. ㅠㅠ
저 햇살 속을 거닐 자신이 없어 보주 광장 나무 그늘 벤치에 앉아서 보니, 여기 보주 광장에는 (다른 파리의 관광명소에 비해 상대적으로) 관광객보다 파리 주민들이 더 즐겨 찾는 것 같았다. 이 뜨거운 날씨에도 어린 아기들이 까르르 웃으면서 뛰어놀고 있는데 평화롭고 또 행복해보였다.
보주광장 근처를 멤돌다가, 근처에 무료 박물관(?)이 있다고 해서 찾아갔다. 이름은 카르나발레 박물관(Musée Carnavalet)
이 카르나발레 박물관은 프랑스 유력 가문인 웬델 집안 소유의 카르나발레 저택을, 파리 시의회가 매입해서 박물관으로 재단장했다고. 60만점의 소장품 가운데 16~19세기 자료들이 많아서 그 시절 파리의 역사를 엿볼 수 있다.
무료라고 해서 솔깃하기도 했고, 또 너무 뜨거워서 더위를 피할겸 들어오기도 했는데 프랑스의 역사를 잘 모르니, 걸려있는 그림들과 초상화, 소장품들을 보아도 잘 와닿지는 않았다.
다만 한가지 기억에 남는 건, 지금 파리의 로맨틱한 이미지에 한 몫을 하는 파리의 많은 다리들 위에 사실 3~4층 짜리 집들이 줄지어 있었다는 것이다. 아마도 1800년대 후반 파리 개조 사업 때 다리도 함께 정비하면서 다리 위에 있는 건축물들을 쓸어(?)버렸나 싶다.
카르나발레 박물관을 슉슉 둘러보고, 근처에 평점이 높은 한식당이 있어 점심을 먹으러 갔다. 여행하면서 꼭 한식을 먹어야 하는 타입은 아니었는데 나이들었나...어릴 때에 비해서는 한식이 땡기는 빈도가 늘어난 것 같다. ㅠㅜ
점심을 먹고 나니, 2시 정도였는데 햇살이 너무 뜨거운데다 오전 내내 많이 걸어서 휴식이 절실해졌다. 20대였으면 꺾이지 않고 계속 돌아다녔을텐데 40대에 가까워지고 있는 30대 후반은 바로 꺾였다. 중요한 건 무리하지 않고 꺾이는 마음... 오랑주리 미술관이 5시 입장이었는데 그 때까지 카페 같은데서 죽칠까하다가 숙소로 돌아가서 한 시간 정도 쉬다 나오기로 했다.
RER을 타러 가기까지도 덥고 지쳐서 버스를 기다렸는데........땡볕에서 30분을 기다렸는데도 버스가 안와...
그냥 걸어서 RER 역까지 가자는 나와 조금 더 기다려보자는 도리 사이에 살짝 신경전이 벌어졌다. 결국 30분을 기다렸는데도 버스가 안와서 우리는 걸어서 RER을 타러 갔다.
그 동안 여행을 하면서 숙소를 한 번 출발하면 하루 종일 돌아다니다가 해가 지고나서야 돌아갔기 때문에 숙소의 위치가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었다.(내 여행에 중도 복귀란 없다) 그런데 이번에 파리 여행을 하면서 새삼 숙소가 도심 한 가운데 있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 (이번에는 숙소를 못구해서 그런거니까 어쩔 수 없었지만)
그렇게 숙소에 가서 도리는 한 숨 낮잠도 자고, 나는 일기도 쓰고 (그런데 이 일기장 지금 못찾겠다 ㅋㅋ) 전열을 재정비해서 5시 예약시간에 맞춰 오랑주리 미술관으로 향했다.
오랑주리 미술관에 가는 이유는 단 하나, 모네의 수련 연작을 보기 위해서.
Musée de'l Orangerie
이 모네의 수련 연작이 인기가 너무 많은 나머지 오픈할 때 가거나 끝나기 전에 가면 조금 한적하게 볼 수 있다고 해서 일부러 오후 5시로 예약하고 갔는데도, 모네의 수련을 전시한 관은 사람들로 넘쳐났다. 게다가 다들 조용히 관람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틱톡과 인스타에 올릴 사진과 영상을 찍으려는 사람들로 정신이 사나울 정도. 이 그림과 이 공간이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은 느낌과는 정반대의 관람 분위기 때문에 작품에 집중하기 쉽지 않다.
자연광이 쏟아지는 하얀 전시실에 걸린 수련 연작. 아직 해가 떠 있건만 그늘이 져 캄캄해 보이는 연못, 그리고 그 수면 위에 비친 몽글몽글한 구름의 그림자. 뜨거운 여름날의 오후였을까. 이 수련 연작을 그린 지베르니에 가보지는 못했지만, 모네가 보았을 풍경이었을지 모네의 작품을 보고 상상하게 된다. 수련 연작 자체는 상상했던 것만큼 압도적이고 특유의 아름다움으로 감동적이었지만 . 틱톡이나 인스타에 올릴 수련 앞에서의 자신의 예쁜 모습을 담으려고 수십번 작품 앞을 거닐며 영상을 찍던 사람들 때문에 감동이 반감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오랑주리 미술관에서 수련을 보고 나와 루브르 박물관 건물이 보이는 튈르리 공원에서 잠시 멍을 때렸다. 수백년 전에 지은 저 고풍스러운 건물과 2023년을 살고 있는 사람들. 고궁, 유적지 같은 건물들을 제외하고는 현대적인 건물에 둘러싸여 살고 있는 한국인에게는 묘한 이질감이 드는 풍경이다. 그래서 파리가 많은 이들에게 로망같은 도시인가 싶기도 하고.
정처없이 떠돌아다니다 썩 만족스럽지 못한 저녁식사를 하고서 RER을 타러 가는 길에 센 강을 따라 한참 걸었다. 시간은 이미 오후 9시를 넘어가는데, 세상은 이제 막 오후 5시가 되어가는 것 처럼 밝고 환하기 그지 없었다. 여름 오후의 센 강에는 젊은 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나누고 또 야외 펍에는 맥주 파티를 하는지 힙하고 흥겨운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파리에 세 번째 오는데, 이런 센 강의 분위기는 또 처음이네. 뭐랄까. 파리는, - 이 표현은 여러 모로 별로이지만- 지지 않는 태양같은 느낌이다. 도시도 흥망성쇠가 있어서 뜨는 도시가 있고 지는 도시가 있고, 한 때 핫했던 도시가 시간이 많이 지나면 촌스러워지기도 하는데 파리는, 언제와도 핫하고 힙하고 세련된 느낌. 2008년 처음 왔을 때보다도 더 힙해진 느낌이라니. 놀랍다.
여행 전까지만 해도, 생각보다 더럽다, 위험하다는 얘기에 파리에 큰 미련이 없었던 도리도 이틀이긴 했지만 파리의 매력에 푹 빠진 것 같았다. 특히 마지막 날 센강에서 느꼈더 분위기에. 나중에 파리에만 일주일 정도 머물면서 여행해보고 싶다고.
이렇게 아주 짧은 이틀 간의 파리 일정은 마무리를 했다. 마지막에 숙소로 가는 RER이 한참을 오지 않아서 지칠대로 지쳐 다시는 꼭 도심 한가운데 숙소를 잡자는 교훈과 함께. 내일은 이제 고성들이 몰려있는 발 드 루아르(Val de Loire)지역으로 이동한다. 이제부터 진짜진짜 프랑스 로드트립 시작!
지난 주 화요일 오후 한 통의 전화에서 시작되었던, 마음의 고통 이렇게까지 흘러가지 않았을 수도 있는데 예상치 못했던 돌발 상황에 더 악화되어 버린 감당 불가의 나날들 불을 끄면 몰려오던 불안함, 불안함에 떨리던 온 몸, 잠은 오지 않고 숨이 쉬어지지 않았던 밤들. 눈을 떠 모니터를 보고 있지만 긴장감에 땀으로 마우스를 흥건히 적시던 낮들.
그로부터 열흘이 지난 오늘 아침 그 문제가 해결되었고 비로소 불안함에 떨고 불안함을 억누르고 있었던 내 마음도 평화로워졌다. 해결까지 시간이 더 오래걸릴 수도 있었고 일이 더 악화될 수도 있었는데 여기에서 해결되어서 다행이었다. 막상 문제가 해결된 직후에는 마음에 큰 변화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얼마나 마음이 홀가분해지던지, 그래, 이게 원래 평소의 내 마음상태였지. 다시 돌아와줘서 고마워, 나도 컨트롤 할 수 없는 내 마음아.
그 동안 평온한 삶을 지루하다고 불평하고, 작은 좌절에도 크게 상심했었는데 지루하리만큼 평온한 삶, 상심하는 정도의 작은 좌절만 있는 삶이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 깨달았다. 그 동안 내 계획대로 되지 않는 걸 견디지 못했었는데, 내 인생이 내 계획대로만 되어야 한다는 그 마음이 얼마나 오만한 것이었는지도. 지금까지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의 내 삶에 더 감사하고 또 내 계획대로만 될 수 없는 인생 앞에서 겸손하게 살아야겠다. 글로 적으면 뻔한 얘기이지만, 이번 경험을 통해 뼈저리게 느낀 소감을 꼭 적어놓고 싶다.
남은 2023년은 좋은 일만 있길 바라면서 잘 마무리해야지. 이 블로그에 들어오는 모든 분들, 언제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진심으로요!
지난 주말, 부모님 아파트가 이제 시공을 거의 마무리해서 사전점검을 한다고 해서 도리와 함께 구경할 겸 다녀왔다. 날씨는 더할 나위 없이 화창했는데 부모님을 포함해서 소중한 보금자리를 확인하러 가는 집주인들의 마음들은 얼마나 설렜을까 싶다.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아직 상가를 짓는 중인건지 단지 앞은 공사판에 어수선했고 사전점검을 하러 온 차들이 길게 줄지어 주차장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주차장으로 진입하고 몇동 몇호라고 말하니, 차 앞에 동을 표시한 표지판을 올려주었고 인원수에 맞춰 놀이공원에서 찰 법한 종이팔찌를 나눠주었다. 차를 주차하고서, 엄마에게 전달받은 동호수로 엘레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초인종을 누르니 먼저 들어와있던 아빠엄마가 반갑게 우리를 맞아주셨다.
동남향 집은 정오 즈음의 햇살이 들어와 화사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바로 거실에서 보이는 풍경!
여기 서울 한복판이 맞나 싶은 알록달록 가을빛이 들어가는 너무 예쁜 뷰였다. 건물 앞에 가리는 건물 하나 없이 탁 트여있어 답답함도 없고 햇살도 잘 드는 데다가 그 앞으로는 산이 있어 집에서 사시사철 자연을 오롯이 누릴 수 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내가 제일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조건인데 그걸 우리 부모님 집이 해냈다니! 심지어 이미 완성된 집을 보고 산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래서였는지, 집을 방문한 부동산에서 오늘 사점점검으로 돌아본 집 중에 가장 뷰가 좋다면서, 너도 나도 부모님 집 거실 뷰를 사진으로 찍고 영상으로 찍고 수십 번을 찍어갔다. 내 집도 아닌데 괜히 뿌듯.....
아, 사점점검을 하면서 뭔가 엄마아빠를 즐겁게 해드리고 싶어서 플래카드를 준비해서 갔다. 그리고 엄마아빠를 선동해서 기념사진 플래카드를 들고 우리끼리 사진도 찍었다.
내가 플래카드를 펼치니, 엄마는 이런 걸 왜 만들었냐고 하면서도 우리 딸 답다며... (엄마 이거 칭찬이져?)
나도 안다. 이 플래카드가 별 의미 없다는 것을. 이게 부모님 첫 집도 아니고. 아파트 사전점검도 그냥 하나의 절차일 뿐이라는 것도. 하지만, 평범하고 당연한 일상 속에 우리 가족이 재미있게 기억할 수 있는 즐거운 추억을 만들고 싶었달까?
언젠가 시간이 많이 지나 저 플래카드를 보면서,
우리 사전점검하는 날 이런 일 있었지, 저런 일이 있었지. 부동산에서 우리 집 뷰가 좋다고 사진을 그렇게 많이 찍어갔지. 딸이 저런 플래카드도 준비해 왔었지 하면서 이 날을 즐거웠던 하루로 떠올렸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으로 플래카드를 준비했다.
살아보니, 가족이라는 존재가 참 소중한 것이었다. 그리고 가족이 함께 부대끼며 지내온 시간들이 지나고 나면 소중한 추억이 되는 것 같다.(나 진짜 철들었나 봐) 결혼하기 전까지 부모님과 함께 살았던 나라서, 가족과 일상생활을 함께 하는 게 너무나 당연했는데 결혼과 함께 독립한 이후로 원래 가족과는 일부러 시간을 내어 시간을 맞춰 만나야 하는 사이-혹은 환경이 되었다. 그리고 그런 환경 변화를 겪고서야, 우리가 원래 가족으로 새로운 추억을 쌓을 일이 많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함께 살 때와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이 사전점검의 날이 우리 가족에게 (동생은 일하고 있어서 못 왔지만) 특별하고 즐거웠던 추억으로 오래오래 기억되었으면 좋겠다.
9월이 한참 지난 것 같은데도 더위가 물러날 기미가 없더니, 이제 제법 아침 저녁으로는 선선하다 못해 쌀쌀하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내가 아직도 여름 옷을 입고 다녀서 그런가?)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했던가.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혼자 생각하고 있었네. 실질적인 내용은 틀리지 않았지만, 어떤 순서로 생각하느냐에 따라 느낌은 좀 다르구나.
어쨌든, 요즘 드는 생각이 그렇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란 생각. 일상생활에서도 그렇고, SNS에서도 그렇고 모두 아무 문제 없이 행복해보이지만 사실 저마다 크고 작은 어려움, 아픔, 슬픔 등을 갖고 있다는 것.
뻔한 얘긴데, 이 뻔한 얘기에 마음 깊이 공감되는 이유는 나이가 들어서인가.
그래서일까, 희극과 비극이 공존하는 삶의 본질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노력은, 그냥 하루하루 행복하게 사는 것이라는 (뻔한) 결론을 떠올리고 또 떠올린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게 정답인 것 같다.
어짜피 일어날 비극은 일어나고, 때로는 아니, 대다수의 비극은 우리가 컨트롤 할 수 있는 일들이 아니다. 그 비극의 크기가 너무 커서 감당하기가 어려운 날들도 있겠지만, 그것이 인생이라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오늘 하루 시간을 내어 열심히 운동하고, 내 곁의 사랑하는 사람들과 즐겁고 소중한 시간을 보내고, 내가 하고 싶은 취미활동을 하거나 내가 성취하고 싶은 목표를 위해 노력하는 것. 결국 나 자신을 사랑하고, 나의 하루를 나를 위해 살아가는 것. 나는 요즘 그런 마음으로 산다.
이렇게 쓰면, 요즘 나한테 무슨 안좋은 일이 있나 의아한 사람도 있을테지만 사실 아무 일도 없다. 그냥 하루하루를 열심히 또 행복하게 살고 있고 그런 날들이 조금씩 쌓이다보니 그 소소하게 행복한 날들의 집합이 내면의 단단한 힘이 되어주는 것을 비로소 느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