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zeiza Intenacional Aeroperto
돌아오는 길은 무척이나 길었다.
지구 반대편이라는 말이 새삼 실감 났다.
공항에서 4시간을 기다려 10시간을 비행기를 타고 또 3시간을 기다려 5시간을 날고 있는데도
나는 미국 오레곤주 땅 위 어딘가를 날고 있었다.
그 뒤로도 나는 감금같은 10시간을 더 버틴후에야 도착했다.
확실히 한번에 이동하기에 결코 쉽지 않은 거리였고, 그 만큼의 체력과 인내가 필요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내가 그 곳에 있었다는 것이 더욱 소중하고 가치있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또 한 번 가고 싶어졌다.
El cielo de la plaza de Mayo.
돌아오자마자 씻고 머리를 다듬고 아무렇지 않은 척 출근준비를 하고서 잠이 들었다가
평소라면 절대 일어나지 못했을 시간에 나도 모르게 눈이 떠졌다.
마음아래 커다란 홀이 생긴 것 처럼
마음이 쿵 하고 떨어져 내렸다.
그 깊이의 끝이 보이지 않았다.
공허함과 허무함이 온 몸을 감싸안았다.
나는 장장 5개월간을 이 여행 하나만 바라보고 살았다.
내 현실에서 도망가고 싶었고, 한국에서의 내 모습을 외면하고 싶을 때
이 여행을 생각하면서 참고 견뎌왔다.
그런 그 여행이 끝났다.
여행을 했다고 해서 내가 피하고 싶었던 것들로부터 딱히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여행은, 해결책이 아니었다. 여행을 하면서도 이건 해결책이 아니라는 생각을 짐짓 했다.
해결하고 싶었던 문제들은 그대로 내가 뿌리내리고 사는 이곳에서, 침묵으로 나를 그저 가만히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이제는 이 문제들을 온 몸으로 부딪혀 내야 했다.
또다른 일탈을 하려면 또다시 1년이 필요했다.
그래봤자, 그것은 해결이 아니라 일탈일 뿐이다.
해결할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버티게 해줬던 올해의 여행도 끝났다.
나는 이제 정말 정면으로 이 문제들을 해결해야 한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55주의 주어진 시간동안 행복한 2주가 아니라, 행복한 53주가 되어야 내 삶이 진짜로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피하지 말고 도망치지 말고 변화를 일으켜야 할 때라는 것을.
나는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을까
그럴싸한 현실에서, 이런 내 생각을 외면하지 않고 변화할 수 있을까.
Museo Nacional de Bellas Artes
전혀 예상치 못한 이번 여행의 결론은,
그래. 사랑이었다.
짧다면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예상치 못하게 행복한 일도 있었고, 예상치 못하게 스트레스를 받는 일도 있었다.
마음으로 견디기 힘든 일이 생길 때마다 나는 무엇이 이것을 극복하게 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항상 결론은 '사랑'이었다.
내가 비록 이 여행지에서 세찬 비바람을 맞고 춥고 아프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다면 나는 기꺼이 행복했을 것이다.
내가 비록 애지중지하던 카메라를 떨어뜨려, 그렇게 고대했던 사진들을 찍지 못하게 됐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다면 나는 기꺼이 긍정했을 것이다.
내가 비록 떠나고 싶은 이 나라이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공항에서 나를 기다리는 곳이라면 나는 이 곳으로의 복귀를 간절히 기다렸을 것이다.
지금 내게 간절한 것은,
사랑.
사랑하는 사람과의 신실한 관계, 믿음.
누군가의 일기에서 이 사람과 함께라면 지옥까지 같이 갈 수 있었다라는 문장을 읽었는데
나는 그게 무슨 말인지, 어떤 마음인지 뼈저리게 공감했다.
지옥도 이겨내게 해줄 힘.
스물아홉의 여행에서 얻은 가장 큰 결론은,
사랑.
Cementerio de la Recoleta
구름이 끼면 한 낮에도 쌀쌀한 기운이 돌던 곳
새삼 여긴 겨울이구나 싶었던 곳.
쌀쌀한 바람에 얇은 코트를 여미고 바삐 발걸음을 옮기다
길거리 노점상에서 아직 채 피지 않은 프리지아 꽃 다발을 스치듯이 보았다.
봄이 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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