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동기의 부친상으로 아산병원에 다녀왔다.
3월 끝자락 밤공기 냄새, 아산병원.
그러고보니 정확히 10년 전, 검사를 받으러 아산병원에 가던 기억이 떠올랐다.
역에서 한참 떨어져있어 엄마랑 같이 걸어가던 기억이.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더니,
아산병원이 있는 잠실쪽은 정말 10년동안 많은 것들이 변했다.
성내역이 잠실나루역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롯데월드 옆엔 100층짜리 건물이 끝없이 올라가고 있다.
19살, 이제 새내기였던 나도 직장생활에 힘겨워 하는 29살의 내가 되었다.
변하지 않은 건, 한강따라 흐르는 봄날의 밤공기 냄새뿐인것 같다.
10년 전, 이 봄바람 따라, 이 밤공기 따라 신천역에서부터 한강까지 걸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10년의 서울생활 중 새로운 기억으로 뒤덮여버리지 않은 곳은 이 곳의 한강인것 같다.
신천역에서부터 재건축을 앞둔 폐허같은 아파트 단지를 지나 한강공원으로 걸어들어갔다.
둔치에 걸터앉아 건너편 강가를 바라보며 한참을 도란도란 수다를 떨었었다.
기억은 흐릿해지고 멋대로 미화되어가지만,
10년전 이 맘때의 이 곳에서의 기억은 강렬하게 남았다.
밤공기 냄새가 그 날의 기억들을 불러모았다.
10년이 참 느릿느릿하게도, 또 참 빠르게도 흘러 지나간 것 같다.
너무 많은 것을 한 것 같기도, 또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도 같다.
많은 사람들을 만난 것 같은데, 또 곁에 남은 사람들은 많지 않은 것도 같았다.
장례식장에서 잠실나루역을 향해 돌아가는 다리 위에서 한동안 서 있었다.
한강줄기에서 삐져나온 하천 위에 반달이 비쳐 흔들렸다.
지난 10년을 잘 살았는지, 못 살았는지는 믿기 나름인것 같았다.
지난 10년간 나는 왜 이럴까..를 고민했었다.
언제나 질문은 "왜"였다.
그 질문을 이끌어내는 것은 결국 나는 남들보다 못했다는 자책에서 비롯되었다.
수없이 많은 질문을 던지고서
이제 나는 그냥 그런 사람이라고 받아들이게 되었다.
나는 원래 그런사람이었다.
남들과 같지도 않고, 같을 수도 없고, 같을 필요도 없는 원래 이런 사람.
원래 이런 것이니,
내 행동양식이 더 좋은건지 남들의 행동양식이 더 좋은건지 비교할 필요가 없어졌다.
남들처럼 살지 못했다고 자괴감을 느끼거나 자책할 이유도 없어졌다.
받아들이는 내가 좋든 싫든, 나는 그냥 이런 사람이었고
나를 받아들이는 마음이 한층 덤덤해졌다.
10년이 이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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