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오늘 09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뤄진다.
2004년 이후 다시는 나와 연관이 없을 줄 알았던 수능인데
하나밖에 없는 남동생이 드디어 3년간의 고등학교 생활의 종지부를 찍으러 간다.
4년이나 어려서 그런건지, (실제로는 3살 차이지만 학년이 4년 차...)
내가 고등학교 1학년일 때 고녀석은 솜털이 보송보송한 초등학교 6학년이었고
내가 대학교 1학년이 되어서 정말 세월아 네월아 세상만사를 즐길때 고녀석은 그때도 중학교 3학년이었다.
그때 나는 1년 가까이 동생과외를 했었는데
(엄마는 남의 집에 가서 가르치느니 그냥 그 실력으로 집에서 용돈받고 동생을 가르치라고 했다.)
다들 싸워서 못한다는 형제과외를 우리는 정말이지 한 번도 다투지 않았고
가끔은 수다도 떨고, 가끔은 연애상담도 하고, 가끔은 음주과외도 하면서 잘 지냈다.
뽀송뽀송하고 매끈매끈하고 귀엽고 어리기만 했는데
고등학교 1학년이 되던 3년 전, 동생은 몰라보게 쑥쑥 멀대같이 커져버렸고
나한테 잘도 재잘재잘대던 녀석은 말수가 적어졌다. 가끔 장난치면서 재롱을 부리기는 했지만.
동생이 이과로 갈 길을 정하면서 7차 문과 출신인 나는 동생녀석 과외에서 손을 뗐고
그 이후로 동생이랑 오붓한 시간을 함께할 기회가 없었다.
작년이었나, 기말고사가 끝난 동생을 데리고 트랜스포머를 함꼐 본 기억 빼고는.
나는 1년동안 외국에서 생활하게 되었고 가끔 "동생님이"으로 시작하며 엄마아빠 잔소리를 대신 메일로 적어보내주던 동생은
벌써 고 3, 그것도 수능을 코 앞에 둔 고3이 되어 있었다.
언젠가부터 나에게도 대화의 문을 닫아버리고 짜증나는 말투로 대답하고
가끔은 원근법을 3m정도 무시하는 초 이기적인 얼굴크기와
역시나 한국인용 청바지는 짧아서 못입는 초 이기적인 다리기럭지를 내세워
자신만 물려받은 우월한 외양으로 날 제압하려하지만
아직도 엄마가 하는 100마디의 잔소리보다 내가 내뱉는 한마디 말에 깨갱거리고
엄마가 골라주는 옷보다는 내가 가끔 골라주고 사다주는 선물에 센스있다고 실실거리는
아직도 내 눈엔 어리고 순진한 내 동생녀석.
나보다 더 바르게 자랄 것이 분명하지만서도
앞으로도 바른 사람으로 현명한 사람으로 자라줬으면 좋겠고
오늘 보는 수능에도 모든 실력발휘+모든 운이 동생에게 함께했으면 좋겠다.
지나가보니 정말 가장 쉬웠던게 수능공부였던 것 같은데
그때는 정말 수능에 목을 메고 대학입시에 목을 멨지만
지금 뒤돌아서 생각해보니 그렇게 안달할것도 아니었던것 같은데
가끔 동생에게, 난 차라리 수능 보는 너가 부럽다...라고 말하면 동생은 개거품을 물고 뒤로 쓰러지지만
그렇다. 그때는 대학걱정만 했었고 길은 오직 하나였고 방법도 하나였다. 생각할 겨를도 여유도 그럴 필요도 없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대학이 아니라 인생전체를 걱정하는 지금은, 길도, 방법도, 가치관도, 생각도 수천 수만가지라 머릿속이 복잡하다.
너도 4년뒤에 지금 누나 마음을 알겠지.
그때 나는 또 너보다 4년 먼저의 생활을 하며 너에게, 그 시절이 좋니라...라고 훈수를 두고 있겠지.
이렇게 한 번 앞선 인생은 영원히 먼저 굴러가는구나.
그 때 누나가 말했었지.
시험장에 들어갈 때, 최선을 다했다는 마음가지만 있으면 두려울 것이 없다고.
불안함은 부족한 준비와 그리고 최선을 다하지 않았을 때 생기는 거라고,
그러니까 수능을 보는 그날까지 나는 정말 나의 최선을 다했다. 라고 장담할 수 있을만큼 공부하라고.
이제까지 최선을 다했다면, 이제는 정말 너의 운에 맡기자.
너는 항상 누나보다 운이 좋았으니까 잘 될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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