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학한지, 그래 정식으로 학교를 다닌지 이제 3일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마음의 지치는 정도로 치면 벌써 3주는 다닌 것 같다.
첫 날 오후 2시부터 밤 10시까지 연강으로 몰아듣고 (아, 오전에도 수업을 하나 또 들었다.) 집에 돌아와서 파김치 마냥 늘어져버린데다
요 며칠 알 수 없는 불면증으로 잠까지 설쳐서 체력적으로 따지면 거의 배터리 방전 수준일텐데 자습할때 잠시 졸린걸 빼면
아무렇지도 않은 걸 보면 ......체력이 좋다기보다 나 스스로 자각을 못하는 피곤함인가 싶기도 하고.


어쩄든, 어제부터 말로만 듣고 항상 지나치기만 했던 '법오' 열람실에 자리를 잡고 책을 폈다.
법대 친구들은 시작부터 달리냐고 물었지만, 아침에 자리 잡으러 가보면 이미 칸막이 칸마다 얼굴만 겨우 익힌
로스쿨생들이 가득가득 앉아있어서 이것이 달리는 페이스가 아님을 깨달았다.

또 한편으론 이게 달리는 건가? 라는 생각도 드는게 워낙 입학전부터 비법학사들은 죽을만큼 고생한다는
살떨리는 소리들을 많이 들은터라 뒤쳐지지 않으려면 죽을 각오로 덤벼야겠다고 생각한 탓도 있고,
아직 과제가 휘몰아친다거나 순식간에 지나가는 진도를 맞출 필요가 없어서 조금은 내 공부할 시간이 있음이 감사하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무궁무진한 미지의 세계인 법학의 그 다음 장은 어떤 곳일까 스스로 궁금해서 견딜 수 없기 때문에
나는 이게 달리는 건지도 잘 모르겠지만 달리는 거라면 타의가 아니라 나 스스로 기쁘게 달리기 때문에 아무렇지도 않다.


Pentax MeSuper 2008. 06. 25



어제 처음 법오에 자리를 맡았는데 텅텅 빈 오픈형 테이플 맞은편에 KJ가 앉아있었다. (너 지금 읽고 있지?ㅋ)
첫날 우왕좌왕한 유민홀에서 잠시 마주쳤었는데, 같은 열람실에서 마주보는 식으로 공부하게 될 줄이야.
앞에 독서대를 세우고 차분하게 책을 읽고 있는 KJ를 보면서- 나는 사실 뭐라 형용할 수 없는 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그리고 그렇게 덥지 않았던 2008년 6월의 이른 여름 날이 잠시 생각이 났다.
'출사'라는 목적이 있었던 것도 같다. 나도 KJ도 카메라를 들고 만났었으니까.
그러나 '출사'라는 목적이 무안하게도 나는 그 날 딱 2장의 사진만을 찍었었다.
그 날, 자하연에 걸터 앉아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KJ가 졸업하면 무슨 일을 할껀지도 물었었고
나는 법대생인 KJ에게 조심스럽게 당시에 로스쿨 얘기를 꺼냈었던 기억이 난다. 구체적인 대화는 기억나지 않지만
분명 그런 얘기를 꺼냈다는 사실만큼은 정확하게 기억이 나니까.

그러고 나서 KJ가 사물함에 책을 넣고 오겠다고 법대에 잠시 들어갔는데 - 15동이었을까?
나도 따라서 1층에 잠깐 들어가서 KJ를 기다렸는데 내 기억속의 그 법대의 1층과 현재 15동의 1층의 모습이 조금 다르다.
그땐 1층에 소파가 있고 낮은 키의 테이블이 있어서 거기에 앉아서 기다렸던 기억이 나는데.


어쨌든, 2008년 그 여름날, 낯설고 조심스러웠던 그 곳이 - 이제는 내가 가장 익숙해져야할 곳이 되어버렸다는 사실,
내게 학교를 안내해줬던 친구가 이제는 같은 열람실에서 얼굴을 마주하고 공부하게 되었다는 사실,
그리고 밴쿠버와 사진과 노래에 관한 것 말고도 KJ와 더 많은 이야기를 공유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

이 모든게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1년 반 전, 자하연에 앉아 조심스럽게 꺼냈던 그 이야기가, 그 때 꿈꾸었던 것보다 더 큰 현실이 되어 내 앞에 펼쳐졌다는 것까지도.


Pentax MeSuper, 2008. 06.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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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honey,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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