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여행 제 7일째,
Boston, USA.
어슴푸레 밝아오는 빛에 눈을 떴다.
아, 드디어 미국이다!
레이첼이 그랬던 것처럼
이상하게 캐나다에 살다보면 미국이 싫어진다고.
나도 그랬던 것 같다.
왠지 캐나다에 있으니까, 괜시리 미국이 싫은 느낌.
거기다 사실 보스턴은 그닥 가고 싶은 도시가 아니었는데
그냥 동부에 가는 김에 빼놓기 아쉬워서 하루이틀 일정에 넣은 도시였다.
별로 기대도 없이 하버드나 좀 보자...하고 갔는데
막상 새벽에 눈떠 저 멀리 해뜨는 걸 보니
기분이 설레이기 시작했다.
새벽 5시가 되기 조금 이른 시간, 구름도이 장엄하기까지 하다.
일출이라 말하지 않는다면, 노을이라 해도 믿을 것 같아..
한참 고속도로를 달리는 듯 싶더니,
금새 보스턴 시내로 들어와버렸다.
새벽 6시.
청소부만이 빗질하는 보스턴버스 터미널에 내려
바로 뉴욕으로 가는 차이나 버스표를 샀다. 15달러.
어제 환전하고 25달러 가져왔는데, 또 10달러 밖에 안남았다.
(거지같이)
터미널 화장실에 들어가 짐풀러서 옷도 갈아입고,
폼클렌징 꺼내서 세수도 하고, 양치질도 하고........(...)
엄마가 알면 속도 좀 상하시겠지만
난 뭐, 부끄럽지도 않고 오히려 언제 또 이런 경험할까 싶어서 실실거리며 씻었다.
원래 계획은
일단 보스턴에 숙박을 잡을 돈이 없으므로...
짐들은 터미널에 있는 코인락커에 넣어두고 하버드만 구경한 다음에
바로 뉴욕으로 건너가자. 거기에 가면 사촌오빠가 있으니까....
....였는데.
........아뿔싸.
코인락커가 없다. 코인락커가!!!!
그렇다. 911이후로 폭발물 위험에 대비하여 미국 터미널에서 코인락커는 사라져 버린 것이다.!
헐....대략 15키로가 넘는 캐리어 하나와, 3~4키로 하는 작은 가방과,
3키로는 족히 되는 랩탑꾸러미와, 필름카메라와 작은 쌕까지 메고
.........어떻게 하버드에 가란 말이야!!!!!
그래도 혹시나 기차 터미널에는 코인락커가 있을까 싶어서
그 짐 다 끌고 한 시간동안 터미널들 사이를 왔다갔다 했지만,
결론은....
없다....없다......없다아아아!!!
여행하면서 가장 짜증났던 순간에 상위 랭킹되신 사건이었다.
어제부터 거의 굶다시피하고 걷기만 했지,
야간버스에서 쭈구리고 자는 바람에 잠은 제대로 못잤지,
버스터미널에서 씻고 닦아서 좀 쪽도 팔렸지,
그리고 아침도 못먹었는데
이 짐 다끌고 하버드에 가야 한단 말이야?!!!
그렇다고 내가 안갈 한민인가?
그건 또 아니지.
오기가 생겨서라도 나는 간다고
왜?
난 한민이니까. 훗.
절대 지지 않는거다.
총합 20키로가 넘는 짐들을 다 이끌고 어쨌든 지하철을 탔다.
코인락커에 3달러 쓸 생각이었는데 아싸, 3달러 굳혔다~라고 생각하면서.
남자들은 뭐, 군장지고 행군도 하는데,
까이꺼 20키로....
찰스강. 아마 '이터널선샤인'에서 클레멘타인과 조엘이 누워 별자리를 헤어렸던 곳이, 이 곳이 맞을꺼다.
사실 보스턴에 들어서는순간,
갑자기 보스턴에 더 있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가장 사랑해 마지않는 영화 '이터널 선샤인'에서
클레멘타인과 조엘이 누워 별자리를 헤아렸던 곳인 찰스강이
여기 보스턴에 있었기 때문이다.
지하철을 타고 하버드를 가는 길에 찰스강을 건넜다.
아침 7시, 하늘도 강물은 맑았고, 나도 엉겁결에 들뜨기 시작했다.
그 이름도 자랑스러운 HAVARD 역.
드디어 하버드 역에 도착했다. 온 짐 다 이끌고.
하버드도 Town처럼 여기저기 건물들이 흩뿌려져있었는데
내가 너무 일찍 도착해서 (아침 7시 반)
인포메이션센터조차 열려있지 않았다...ㅠ
사실 모든 대학이 그렇지만
그 대학교 학생 아니면 어디가 어딘지도 모르고 어떤 건물이 이쁜지도 모른다는거..
완전 에라 모르겠다, 인포메이션 센타에 걸려있는 하버드지도를 디카로 찍어서 그냥 냅다 가는거다.
과연 정문은 어디일까.
.....라고 생각하고 캐리어끌고 하버드 주변을 뱅뱅돌기 시작한지 30분째
근데, 도대체 정문이 어디야?........-_-
그래서 일단 그냥 제일 가까운 쪽문(?) 으로 들어갔다.
(쪽문이 아닐수도 있다.난 정말 어디가 어딘지 하나도 모르겠단 말이다 ㅠㅠ)
그리스 신전처럼 생겼구료..
역시나 그리스 신전 같다...(..건물형식이...)
학교에 너무 일찍 온 탓에, 보다시피 학교에 사람이 없다......(...)
하버드에 왔으니 하버드로스쿨이라도 가보고 싶은데. 물어볼 학생도 없다...(..)
이 드넓은 교정에 있는 사람들이라곤,
이 초 새벽에 나처럼 관광온 중국인 단체 관광객들 뿐... OTL
이미 학교 밖에서 어디가 문인지 몰라서 뱅뱅 돌은 나는 진이 다 빠져서
온 짐 다 내려놓고 바닥에 주저앉아서
혹시나 인터넷에 잡힐까 싶어서 랩탑을 켰지만.
하버드생이 아닌 관계로 access불가.....급그리워지는 UBC wireless...ㅠㅠ
나와 함께한 캐리어,짐가방, 그리고 카메라...랩탑은 내 무릎에 있다.
저렇게 짐 다 앞에다 풀러놓고 한참을 생각해도 뾰족한 수가 안나는 거다.
야간버스에서 잠도 제대로 못자고, 샤워도 못하고,
어제부터 베이글과 작은 머핀 하나 먹고 버티고 있는데
정말 이 넓은 캠퍼스를 가이드 한 명 없이 이 짐 다 끌고 다니는건 무리다.
무리무리무리데쓰.
에효....그러나 또 걸어보자........
남들이 보면 캐리어 끌고 다니는 나를 뭐라고 생각할까?;
관광객?; 써머를 신청해놓고 기숙사 못찾아 돌아다니는 하버드생? (설마......)
....어짜피 날 뭐라고도 생각해줄 사람 한 명도 없었다. 청소부말고는. 아차, 중국인들도.
그래도 대충 인포센터가 문을 열었을 것 같아서 청소부에게 물어물어 찾아가던 길에
캠퍼스 내에 흐드러지게 핀, 짝퉁벚꽃을 만났다.
분명 적벚꽃도 아닌데, 무슨 꽃인지는 모르겠고.
이른 아침, 낯선 땅 낯선 학교에서
힘들고 지쳐 헤메던 그 때의 내게
유일하게 위로를 건네던 한아름 꽃잎들...
하버드 캠퍼스에 꽃이 활짝 피었다.
파란 하늘에 분홍 꽃잎. 아름다워.
나도 찬란히 피어나는 꽃잎처럼 되어야지..
하얗게...발그랗게..
하버드 교정을 나오니
이제 제법 아침 수업시간에 가까워졌는지 길가에 사람들이 바글바글 거렸다.
이 사람들 속을 ...캐리어 끌고 가기가..참....
그래도 지지 말자-! 해서 열심히 인포센터 까지 찾아갔건만,
하버드 내에도 (당연히) 락커따위는 없고,
하버드 지도는 (당연히) 사는 거라고, 친절하게 한글로 된 안내책자를 권유해주었다.
...됐거든?
나 그냥 뉴욕 갈꺼거든?
그래서 나는 보스턴 관광 3시간만에 뉴욕으로 바로 가기로 급 결정!
인포센터를 나오며 눈에 띈 것은 The Harvard,Crimson...
Crimson........고대?! ㅋ ........(...)
어쨌거나, 나는 간다! 뉴욕으로!!! NYC , 기다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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