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H.O.T.를 좋아하던 90년대 후반의 (하 이미 10년도 더 지났다)
아이돌 가요계에는 립씽크 논란이 끊이질 알았다.
도대체 언제부터, 누구부터 립씽크가 문제가 되었는지는 알 길이 없으나
퍼포먼스의 중심의 아이돌 시대를 열었던 H.O.T.이후로
남녀그룹 할것 없이 유명세를 탄 아이돌 그룹들은 립씽크 논란에서 자유롭지를 못했다.
그들의 팬덤은 '격한 춤을 추며 노래를 깔끔하게 부르기가 어려운 법'이라며 사랑하는 오빠/누나들을 옹호했지만
기본적으로 가수라는 직업은 '노래를 잘 불러야 한다'것이 가장 기본적인 전제이기 때문에
확인할 길이 없는 실제 무대에서의 가창력은 항상 아쉬웠다.
그리고 그 이후부터 '아이돌' 가수들은'가창력 확인불가' 혹은 노래를 잘 못하는 퍼포머정도로 깊이 인식되어버리고 말았다.
2000년대 초반, 젝스키스와 H.O.T.의 해체를 비롯하여
90년대 후반 가요계를 군림하다시피 했던 대형 아이돌 가수들이 하나 둘 들어가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바야흐로 발라드와 R&B가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그동안 아이돌 그룹들의 립씽크 논란과 더불어
춤추며 노래하는 아이돌 가수와 달리 철저히 라이브 실력으로 평가를 받는 발라드 가수들 때문에
가요계에는 자연스럽게 '실제 무대에서도 라이브를 해야 진정한 가수다' 라는 인식의 기반이 다져지기 시작했다.
일단 라이브를 진짜 잘하든, 못하든 간에 무대에서는 라이브를 하는 것이 진리요 대세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리고 2000년대 중반, 2세대 아이돌 동방신기, 더블에스501, 천상지희 등을 지나
3세대 아이돌 빅뱅, 원더걸스, 소녀시대, 샤이니, 카라들의 등장으로 다시 한번 가요계는 아이돌의 전성기를 보내고 있다.
이들도 가요계의 대세를 거스를 수는 없는지라 거의 모든 가요 프로그램에서 라이브 무대를 보여주고 있다.
라이브 무대의 부담감 때문인지 확실히 2, 3세대 아이돌돌의 퍼포먼스는 10년 전 1세대 아이돌들의 퍼포먼스에 비해 많이 부드러워졌다.
1세대 아이돌돌은 정말 춤으로 모든 것을 보여주려는 듯, 춤추기만도 벅찬 그런 무대를 보여줬었고 그것이 그때의 트랜드였다.
2,3세대 아이돌들이 분명 라이브 무대를 하고 있기는 하지만 잘 들어보면 (사실 잘 들어볼 필요도 없다;)
순도 100%의 라이브는 아니다. 흔히들 밑에 MR을 깔고 그 위에 라이브를 한다고 하는데
MR(Music Recored)은 가수의 보컬 없이 반주와 코러스만 녹음된 상태를 말한다.
내 기억속에 MR을 가장 적나라하게 까는 가수는 사실 '비'였다. -_-
그의 거의 모든 댄스곡을 보면 인트로부분만 부르다가 메인 멜로디는 MR을 깔고 비는 열심히 춤을 춘다
그리고 반주 중간중간 "컴언 요!" 만 열심히 외친다는...-_- 그래, 비의 무대는 1세대 아이돌보다도 더 격하다고 해두자.
어쨌든 요즘 아이돌들의 무대를 잘 들여다보면 후렴구는 MR이 부르고, 중간 멜로디는 라이브로 부르고
어떨땐 라이브랑 MR이 겹쳐서 같이 들렸다가 어떨 땐 분명 입은 부르고 있는데 들리기는 MR만 들리는,
이렇게 MR과 라이브의 4가지 조합이 적절히 잘 버무려진 무대를 볼 수 있었다.
이렇게 기술발전이 가수들의 부족한 무대위에서의 라이브 실력 (혹은 기본기 없는 실력)을 열심히 가려주었건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놈의 기술발전이 그들의 실력을 적나라하게 까버리고야 말았다.
바로 MR제거 놀이. 전문적인 기술도 필요없다.
프로그램을 다운 받아서 메인 주파수(보컬)만 두고 잡주파수들 소리를 줄여버리는 것이다.
MR이 완벽하게 제거되는 것은 아니지만,
MR을 줄이고 나면 실제 무대위에서의 순도95% 정도의 라이브 실력을 적나라하게 들을 수가 있는 것이다.
마치 연예인들의 노메컵 쌩얼을 엿보는 듯한 재미에 네티즌들은 무서운 속도로
현재 인기있는 아이돌 가수들의 라이브 무대에서 MR을 제거 하기 시작했다.
동방신기, 빅뱅, 소녀시대, 원더걸스, 샤이니, 슈퍼주니어, 보아, 천상지희, 카라, 비, 세븐 등등등.
MR제거 논란이후 오히려 더 좋은 평가를 받은 동방신기.
결과는 어떻게 되었냐고?
각종 게시판과 기사글의 의견을 대충 조합해보면
MR제거 논란으로 가장 수혜를 보게 된 것은 SM군단일 듯 싶다.
(물론 세븐, 비, 빅뱅도 MR을 제거하고 가창력에서 인정을 받았다.
하지만 빅뱅같은 경우는 이미 실력파 아이돌이라는 이미지가 있었으므로 SM군단에 초점을 더 두고 말하겠다.)
그동안 일반 사람들의 SM군단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은 "외모만 뛰어난, 춤만 잘추는 비디오형 아이돌"이었다.
실제로 SM은 인간적인 모습의 아이돌보다는 유난히 겉보기에 이쁘장한 인형같은 외모의 아이들을 골라 내놓았다.
그래서인지 SM의 2,3세대 아이돌들은 자연스럽게 "이쁘면 머리가 나쁘다"와 같은 식의
"얼굴만 이쁘다", "얼굴만 잘생겼다" = "가창력은 글쎄?" "나쁘겠지뭐" 라는 고정관념의 틀에 갇혀버렸던 것이다.
일반 대중들은 아무도 SM아이돌이 '실력파'일 것이라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고정관념의 근저에는 립씽크 이미지가 강했던 SM 1세대 아이돌에 대한 짙은 잔영이 분명 있었을 것이다.
아무리 그들의 팬들이 "동방신기 라이브 실력도 좋아요", "소녀시대 노래 잘해요" 라고 떠들어도
그것은 그들의 눈과 귀에 콩깍지가 씌인 팬들의 어이없는 우기기정도라고 생각했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MR을 지웠더니-!
다른 아이돌들보다 더 격한 안무를 추면서도 음정이나 박자 흔들림없이 듣기 편안하게 라이브를 소화해내고 있었던 것이다.
빅뱅은 실력파 아이돌이고, 동방신기는 춤만 잘추는 아이돌이라고 당연히 생각하고 있었는데
원더걸스나 소녀시대나 실력이래봤자 거기서 거기인 아이돌이라고 당연히 생각하고 있었는데
막상 까보니까, 아니었다라는 말이다.
특히 동방신기의 경우는 타 남성아이돌 그룹에 비해 격한 춤을 추면서도 깔끔하게 라이브를 소화했으며
소녀시대의 경우도 항상 비교되어 왔던 원더걸스와 비교되어 가창력은 소녀시대가 낫다라는 생각을 확실히 해버렸다.
보아의 경우 논란의 여지가 없었고,
현재 한국활동의 휴식기를 갖고 있는 천상지희의 경우는 아이돌 걸 그룹중에 최고라는 평가를 받았고
갓 데뷔한 샤이니도 괜찮은 평가를 받았다.
결과적으로 SM군단의 아이돌 가수 중에서 어느하나 크게 까이기는 커녕
현재 활동하는 아이돌중에 (예상과 다르게) 가장 들어줄만한 라이브 실력을 가졌다는 것으로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각종 포탈싸이트 기사나 관련 동영상에 SM군단 가수들을 다시 봤다는 댓글들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한편으로는 혹평을 받는 가수들도 있다. 원더걸스, 카라, 태군 등.
특히, 대중적인 인기와 달리 항상 가창력에 있어 지적을 받아왔던 원더걸스.
원더걸스는 활동하는 중에도 종종 가창력 논란으로 유난히 연예계 기사에 자주 이름을 올렸는데
시청자들이 제발 원더걸스는 립씽크를 해달라고 부탁(?) 할 정도였다.
그리고 정말 MR을 지워보니 그리 어렵지도, 격한 춤도 없는 노래를 불안불안하게 부르는데
유독 (그동안 가장 질타를 많이 받았던) 한 멤버의 라이브 실력은 정말 손발이 오글오글해질정도였다.;
특히 가장 히트를 쳤던 텔미의 경우 '어~머나!' 뒤에 부르는 '다시 한번 말해봐' 부분은 절대로 고음이 아닌데도
바로 MR로 넘겨버려, 저 부분을 MR을 깔았다니! ..하는 뒷통수 맞은 팬들의 배신감을 이끌어 내었다.
그리고 이 MR제거 논란의 시발점이 된 태군....제 2의 비라는 이름으로 요즘 call me의 상승세를 끌고 있는데
MR지우고 나니까 부르는 라이브로 부르는 부분은 98% 오직 call me뿐..
되돌아보면 나는 오래된 H.O.T.의 팬으로서 그들의 가창력에 대한 짙은 아쉬움이 있었다.
앨범을 낼 때마다 100만장을 넘기고, 연말 가요대상을 독식하고 중국에 한류붐을 일으키네 어쩌네 자랑해도
가창력은? 이란 질문엔 왠지 모르게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었던 아쉬움이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잘생기고 춤을 잘 추고 말을 잘 하고 앨범을 많이 판다해도, 가수는 무대에서 노래로 감동을 자아내야 하는 것은 진리니까.
SM도 그런 아쉬움을 느꼈던 것일까.
물론 뽑을때부터 몇천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들어오는 다듬어지지 않은 뛰어난 아이들도 있겠지만
분명 대부분 긴 연습생시간을 거치면서 연습하고 또 연습하며 노래실력을 키웠구나 - 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SM군단의 아이돌들이 일본에 진출하면서부터 그들의 라이브 실력이 부쩍 성숙했다.
SM군단의 아이돌이 다른 발라드 가수들처럼 온 국민의 인정을 받을만큼 가창력이 뛰어나다는 것이 아니다.
외모만 잘났다고 생각했던, 춤만 잘 춘다고 생각했던, 노래실력은 관심사가 아니었던 SM 아이돌 가수들이
여타 아이돌가수들에 비해 '가수'라는 업에 부끄럽지 않을만큼의 가창력들은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가수라는 직업에 있어 일단 가창력의 논란을 벗어났다는 것만큼 가수에게도, 팬들에게도 마음 뿌듯한 일이 없을 것이다.
적어도 가수라는 활동하는데 있어서 '노래'라는 본질에 있어 부끄럽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원더걸스vs소녀시대의 대결구도에서 가창력의 우위를 점한 소녀시대
아마 SM에게 있어서 H.O.T.에서부터 불거진 라이브 실력 논란이 찝찝했겠지만
(그렇다고 그때 그들이 완전 개허접실력이었느냐? 그건 아닌것 같다.
라이브를 자주 하지 않았을 뿐, 라이브를 해야할 땐 지금의손발이 오그라드는 아이돌보다 훨씬 안정적인 라이브 실력을 보여줬다.)
지금의 더욱 발전한 2, 3세대 아이돌을 키워내는데 튼튼한 밑거름이 되지 않았나 싶다.
특히, SM의 상술에는 치를 떨면서도 감히 SM에게 잠시의 박수를 쳐주고 싶은 점은
부족한 점을 그냥 넘어가지 않고 바꾸려고 노력하고, 또 바꿔내었다는 점이다.
특히 동방신기의 경우, 데뷔 후에 일명 SMP라고 하는 SM특유의 강한 퍼포먼스 위주의 무대를 보였고
또 가창력 논란에도 많이 휘말렸던 2세대 아이돌이었다.
하지만 지금, MR제거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춤추고 뛰며 노래하지만 흔들리지 않는 라이브로
가창력 논란을 가볍게 뛰어넘고, 그동안의 전형적인 SM아이돌의 선입견까지도 벗어버렸다
분명 현재 비판을 받는 다른 아이돌처럼, 혹은 90년대의 아이돌들처럼
외모만 번듯한 아이들을 여럿 뽑아다가 한 두명 멜로디를 이끌어나갈 수 있는 보컬을 꽂아넣고
춤연습만 딥따리 시킨다음 화려한 MR을 깔아서 가수로 데뷔를 시킬 수도 있었다.
가창력 논란이 불거져도 인기만 끈다면 눈 한 번 질끈 감아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지금까지 보통 사람들의 일반 아이돌 그리고 'SM아이돌'에 대한 선입견이기도 했다.
(실제로 원더걸스도 끊이지 않고 삑사리 논란이 나는데도 릴리즈하는 노래마다 대히트를 치고 인기를 누리고
급기야는 가창력논란속에도 이번 서울가요대상의 대상까지 받지 않았는가 말이다.)
그러나 그런 아이돌의 선입견속에서도, 비록 모든 연습생들이 발라드 가수 뺨치게 잘 부르는건 아니지만
행여 각 멤버가 한 소절을 부르고, 그들의 목소리가 MR에 뒤섞여 버릴지라도
그들은 꿋꿋하게 자기 맡은 파트만큼은 책임지고 부르게끔 훈련을 받았구나. 라는게 나의 생각이다.
한 때 H.O.T.를 좋아했고 그로 인해 SM아이돌에 대한 애정과 함께 날카로운 눈빛으로 지켜봐오던 나에게
이번 MR제거 논란으로 인해 SM아이돌이 적어도 선입견의 틀을 깼다는 사실이 뿌듯하다.
어쨌든 이번 MR제거논란으로 누군가는 빛을 보고 누군가는 호되게 얻어맞았다.
하지만 호되게 얻어맞았다고 해서, 그들의 실력이 적나라하게 까발려졌다고 해서 끝난 것이 아니다.
사람은 언제나 발전의 여지를 가지고 있으니까.
그리고 실제로 몇몇 가수들은 데뷔 초의 가창력논란을 디딤돌 삼아 노력하고 이제는 인정을 받으니까 말이다.
그러니 까였다고 숨을 것이 아니라, 다음 번에 발전된 가창력으로 다시 평가받으면 되는 거다.
그리고 기획사들은 좀더 가창력에 집중해서 신인을 발굴하면 되는 것이고.
90년대 아이돌 가수의 립씽크 논란이, 지금 2,3세대 아이돌의 발전된 라이브 실력이라는 결과를 낳았듯이
00년대 아이돌 가수의 MR제거 논란이, 그 다음 세대 아이돌의 더 큰 발전을 일으켜 줄 수 있기를 바라면서
여전히 아이돌 가수에 대한 애정끈을 놓지 않은 1세대 아이돌 팬은 이만 일하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