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가까이, 혹은 이 주 가까이 노래를 불렀던 홍대 AGIO엘 다녀왔다.
언젠가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있는데, 정말이지 갑자기 3년전, 햇살이 바짝 내리쬐던 그 날
홍대에서 길을 잃고 들어갔던 AGIO에서, 파스타를 먹으면서 수다를 떨던 그 날이 생각났다.
우연히 찾아들어간 곳이었기 때문에 그곳에 어떻게 가는지, 이름이 뭐였는지도 기억나지 않았지만
딱 하나, 그 레스토랑 앞에 빨간 꽃을 가득 실은 꽃수레가 있었던 기억만큼은 또렸했다.
내 2007년도 사진첩에 꽂혀있는.
딱히 그 곳의 파스타가 맛있었다거나 인상적이었던 것도 아니었는데
갑자기 왜 그렇게 거기에 가서 햇살 아래 느긋하게 늘어져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되어버린건지.
어쨌든, 주말에 날씨 좋은 날, 무슨 일있어도 찾아가리라 벼르던 차에
어제 드디어 그곳을 찾아, 답답한 학교에서 홍대로 도망쳤다.
찾았다. AGIO. Italian Pub.
그 꽃수레 덕분에 AGIO를 찾아내는 건 생각보다 쉬웠다. 형법보강을 들으면서 네이버에 검색했더니 바로 찾았다.
워낙 상권이 빨리 변하는 곳이 홍대인지라 없어지지 않았을까 생각도 했는데, 다행히 여전히 신나게 영업중 :)
홍대도 홍대거니와, 학교 주변을 벗어난지 너무 오랜만이어서일까.
사람들이 북적북적하는 토요일 오후의 홍대입구 5번 출구는, 짜증스럽기보다는 너무나도 생기있어 보이고 활기차보였다.
나도 이 곳을 아무렇지 않게 들락날락 하던 때가 있었는데, 지금 사람들이 복작거리는 걸 보고 감동받고 있다니.
나름 월화수목금토일 학교 출근하는 요즘 생활에 그리 큰 무기력함이라던가 회의감을 느끼지 않고
그럭저럭 그러려니 하면서 즐겁게 생활하고 있었는데,
또 이렇게 막상 정말 사람사는 것 같은 현장 속에 , 그리고 얼마전까지 너무나도 당연했던 내 삶속으로 들어오니
내가 얼마나 많은 것들을 다 잊어버리고 혹은 억누르고 살아가고 있었는지 조금 씁쓸하기도 했다.
화덕에 구운 Italian Classic Pizza
키친의 크림파스타와는 비교도 안되는 Creamy Porcini Pasta
이렇게 햇살이 바짝 내리쬐는 것도, 복작복작한 홍대에 와있는 것도 좋은데 -
거기다가 기꺼이 날 위해서 회사까지 과감히 째고 일산에서 홍대까지 달려와준(?) 사람과 이 짧은 휴가를 즐길 수 있다니!
마침 AGIO에 꿈에 그리던 정원석이 비어있었는데, 직원은 햇살이 너무 강하다며 만류했지만
난 바로 그 햇살 속에 앉아있고 싶어서 온거라면서 기어코 햇살이 직빵으로 내리쬐는 야외석에 앉았다.
화덕피자랑 크림 포르치니 파스타를 시키고, 호가든도 한잔! 아, 천국이 따로 없어라~
오랜만에 만난 오빠한테 완전 두서없이 조잘조잘조잘조잘조잘 ♬
파스타를 먹는건지 마시는건지, 피자를 몇조각 째 먹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그렇게 한참을 AGIO에서
내가 부릴 수 있는 여유도 한 껏 다 부리고, 까르르 웃었다가 심각하게 고민했다가 오도방정을 떨면서
정말 아무 눈치보지 않고 편안한 마음으로 수다를 떨었네. (아, 물론 직원 눈치는 봤다.)
담쟁이 덩굴이 울창한 AGIO, 2년전 파리의 안쪽 골목에서 보았던 그 작은 카페를 떠올리게 한다
참,AGIO에 앉아있다가 밖으로 지나가는 박광현도 봤다.+_+
...........................잘생겼다+키도크다+옷빨도+머리는작다+귀여우면서도 반듯하게 생겼다 = 눈호강했다.
조금씩, 조금씩 해가 기울고 있어서 우리는 AGIO에서 aA로 자리를 옮겼다.
오후가 되니까 조금씩 더 많아지는 사람들.
서로 다른 개성이 묻어나는 카페와 레스토랑, 제각각 멋을 부린 사람들.
누가 뭘 하든, 무슨 말을 하든, 뭘 어떻게 입었든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자유분방한 그 곳.
지금 내가 있는 곳과는 너무나도 다르고, 예전의 내가 있던 곳과는 똑닮은 그 곳의 거리를
나는 뭐라 말할 수 없는 편안함과 해방감과 알듯모를듯한 불안한 마음으로 또각또각 걸었다.
aA를 찾아들어가는 길목.
여기도 참 오랜만에 오는 카페.aA
레이첼이 한 번 데려가준 이후로, 홍대에 오면 괜시리 aA로 발길이 간다.
딱히 aA의 디자인가구들이 좋아서라던가, 분위기가 독특해서라던가, 음료가 맛있어서라기보다
그냥, 한 번, 두 번, 세 번 그렇게 다녔더니 홍대에서 가장 맘놓고 갈 수 있어서.....
(그런데 아직도 길은 못찾아서 아이폰지도로 검색해서 다녀야...)
작년까지만 해도 같이 촬영하면서 시나리오 얘기를 하고, 편집 얘기를 하던 - 같은 얘기를 나누던 사람인데
이제 오빠는 내가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통신사얘기를 하고, 나도 이젠 오빠가 공감하기 힘든 대학원생활과 법학 얘기를 한다.
함께 말할 꺼리들이 조금씩 , 아니 너무 많이 줄어들어서 우리가 서로 대화를 하는건지 아님 서로 각자 얘기를 하는 건지 모를땐
아, 이렇게 서로 다른길을 가는구나..라면서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는 걸, 그렇게 느꼈지만
여전히 오빠는 누구보다도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들어주는 사람이고,
얘기할 때 어떤 걱정이나 거리낌 없이 말할 수 있는, 편안한 사람이라는 사실은 시간이 흘러도 변함이 없다.
아마, 앞으로 점점 더 다른 길을 가겠지만, 오빠는 여전히 그대로일 것 같아.
마지막으로 홍대입구역에서 막 들어오는 지하철을 타러 뛰는 오빠한테 나는 잘가, 도 아니고 고마워-라고 외쳤다.
오빠는 씨익 웃으면서 개구쟁이처럼 손을 머리위로 흔들고는 쏙 사라져버렸다.
(비록 나는, 나도 그 방향으로 타야한다는 걸 까맣게 잊어버리곤 신촌행을 탔지만;;)
응, 고마웠다.
그러고 보면 오빠한텐 항상 고마웠다.
3년 전에도, 2년 전에도, 작년에도 - 그리고 올해도.
시간은 흐르지만, 항상 고마운 사람이었다.
aA앞에서, 오빠도 카메라 놓은지 참 오래됐다고 투덜거렸는데 그래도 그 실력이 어디 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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