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08월 28일

MJ와 함께하는 헐랭한 프랑스 여행 (2)

Paris, France




"O.M.G. 다음 역이 PARIS에요!!!!"





....이게 무슨 귀신이 도시락 까먹는 소리야....

그러니까, 우리는 아비뇽에서 기차를 잘못 탔는데, 이 다음역이 Paris 라고??!!!?!






머리를 망치로 얻어맞은것 처럼 땡~하고 울렸다.

0.001초의 순간에 엄청난 생각들이 뒤죽박죽 떠올랐다.





- 무임승차로 처리되어서 벌금을 왕창 물면 어떡하지 ? (08년에 이탈리아여행하다 티켓에 펀치 안뚫었다고 100유로를 뜯긴 트라우마)

- 누구한테 말해야하지?

- 내려가는 TGV 기차값은 얼마나 할까? ㅠㅠ

- 파리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아비뇽으로 내려와서 액상프로방스까지 가면 몇시에나 도착하게 될까?

- 그냥 일정을 바꿔서 오늘 파리를 구경했다가 이따 저녁에 다시 아비뇽으로 내려갈까?

- 짐만 아니면 어짜피 내일 출국이라 다시 파리로 올라와야 하는데 아비뇽숙소에 남겨둔 짐이 문제네 ㅠㅠ 



...그냥 아비뇽에 짐을 버려버려?




방금 막 문이 닫힌 파리행 TGV는 서서히 속도를 내기 시작했고 ㅜㅠ 

나와 MJ는 일단 무임승차로 인한 벌금을 피하기 위해서 황급하게 직원을 찾아나섰다.

그리고 우리가 액상프로방스를 가려고 티켓을 샀는데 잘못타는 바람에 이 기차를 탔다고 했더니

마음씨 좋은 승무원이 일단 어쩔 수 없이 파리까지 가야 하고, 거기서 바로 아비뇽으로 내려가면 공짜로 TGV를 탈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누가 프랑스인들이 불친절 하다 했던가!!! 내 기억 속의 프랑스인들은 다들 친절했다 !!!)




ㅠㅠㅠ





일단 벌금문제를 해결하고 나와 MJ는 스낵바 칸에 앉았다.

이제 파리에 도착하면 바로 아비뇽으로 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그냥 파리를 조금 구경하고 저녁에 아비뇽 숙소로 돌아갈 것인가.




그 어느 쪽도 시 to the 망 =_=

아비뇽에서 파리까지는 TGV를 타고 약 3시간 거리.

1안 _ 파리에 1시 넘어 도착해서 바로 아비뇽가는 기차를 타고 내려가서 액상프로방스까지 간다고 해도 오후 5시~6시.

2안 _ 파리를 구경한다면 저녁 7시에는 다시 파리를 출발해야 아슬아슬하게 아비뇽 막차가 끊기기 전에 도착할 수 있다.

그래도 넉넉하진 않아도 파리를 6시간정도 구경할 수 있는  2안을 선택하기로 했다.



이건 마치....

한국에 놀러온 외국인이 부산에 숙소를 잡아두고 

KTX를 타고 당일치기로 서울가서 구경하고 놀다가 

다시 잠만 자러 부산으로 내려오는...=_=



원래 우리가 가려던 곳은 노란색 선. 그러나 우리는 파리로 반(?)강제이송 되고 말았다.ㅠㅠ


쓸모가 없어져버린 기차표. 10시05분 아비뇽을 떠나 10시 26분이면 액상프로방스에 도착했어야 했다.ㅠ



한바탕 소동이 끝나고, 그리고 (원래 계획따위 없었지만) 예정에도 없던 파리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정하고 나니

한껏 긴장했던 몸이 풀리면서 몸이 축 쳐지기 시작했다.

아니, 몸보다도 마음이 더 지쳐버렸었다.


그동안 수많은 여행을 하면서 갖가지 사고를 다 쳐본 나였다.

카드를 녹여먹은 적도 있고, 카드도 고장나고 현금도 없이 밤버스를 타고 겁도 없이 국경도 넘어봤고,

지갑도 도둑맞아봤고, 카메라도 도둑맞아봤고,

밤에 돌아다니다가 숙소주소도 모르는데 길도 잃어봤고, 보쌈도 당할뻔 한 적 있었다.


기차 하나 잘못탄 거.

사실 지금까지 겪은 온갖 수난들에 비하면 사실 아무 것도 아니었다.

그냥 예상과 달리 파리로 실려가서 파리를 구경하다가 집에 오면 되는, 아주 간단한 일이었다.


그런데도 뭔가 예상치 못한 상황에 잔뜩 긴장했고 해결이 되고나니 피로감이 몰려왔다.

잘 알아보고 타지 않아서 생긴 일이라는 나에 대한 자책감도 몰려왔다.

도대체 언제까지 사고 치고 다닐껀지.




그래도,

그 수많은 사고를 치고 다니면서 깨달은게 있었다.

그 때 당시는 당황스럽고 속상한 사건사고도, 여행이 무사히 끝나면 바로 그 기억이 제일 잊지못할 추억으로 남는다는 것이다.

여행지의 자연경관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고

사고쳐서 삽질했던 기억들만 마치 무용담처럼 길이길이 남고,

또 그 기억때문에 여행이 즐거웠다고 기억된다는 걸 말이다.



그래서 나는,

아마 오늘 일이 이번 프랑스 여행에 가장 인상적인, 가장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될 것이라고 믿으며

몸과 마음이 지친 날 다독였다.

 

차창밖으로 보이는 프랑스 어딘가의 들판이 참 이뻤다. 저 잔디밭. 저 구름, 저 양떼.


그림같은 프랑스 농원의 풍경 :)






다행히 무던한 성격의 MJ도 우리가 뜬금없이 파리로 강제이송되는 것에 대해 

별다른 불만이 없었다.

오히려, 이런게 다 기억에 남는거라며 헤헤- 웃더니 

스낵바에 엎드려 쿨쿨 잠을 잤다. (널 긍정왕으로 인정한다.=_=;)


나는, 

차창밖  - 계획에 없던 - 프랑스의 경치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음에 감사하면서

아무 계획도/

가이드 북도/

심지어 지하철 노선도 한장도 없는/

파리에 가서 무엇을 해야 하나 생각했다.




그리고 어느 덧.

우리는 파리(Paris)의 리옹역에 도착했다. 





" ...XX추워.. @@ "



그랬다.

며칠만에 돌아온 파리에서 우리가 느낀 것은, 춥다는 것이었다!

춥다고?

바야흐로 8월인데, 춥다고?!



그도 그럴 것이

우린 남프랑스에서 놀줄알고 얇은 민소매 차림이었는데

TGV타고 3시간 거리의 파리는 뻥안치고 나뭇잎이 다 지고, 낙엽이 뒹굴고, 사람들은 패딩을 입고 다니는 가을이었던 것이다!!!!

말도 안되는 것 같지만, 곧 증거사진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이대로 돌아다니다가는 파리에서 여름옷입고 동사할 것 같아서

우리는 일단 옷을 사러 샹제리제 거리로 향했다.


문제는, 당시에 MJ 카드가 해외사용이 막혀있어서 MJ는 현금을 쓰고, 나는 체크카드를 썼는데

여행이 막바지에 이르러서 둘 다 거의 예산이 바닥나가는 중이었다.

거기다가 뜻하지 않게 파리로 올라오는 바람에 내 카드로 되돌아갈 TGV 티켓 2장을 끊었더니

체크카드에 돈이 얼마 없는 것 같아....ㅠㅠ


그래서 우리는 MJ어머님께 연락해서, 내가 지금 쓰는 체크카드 계좌로 여윳돈을 입금받았고

그 돈으로 샹제리제 거리에 있는 H&M에서 가디건이랑 타이즈를 사서 가을 패션으로 단단히 무장했다.




8월 말에 이미 가을이 되버린 파리의 샹제리제.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옷이 이미 긴 옷 천지다.


honey,H / Paris/ 2011.


honey,H/ Paris/ 2011.








얼어죽을 것 같다/ 우린 따뜻한 남프랑스 구경이 목적이었는데 이거 뭐냐/ 

투덜투덜하던 우리는-

샹제리제 거리에서 가을여자 화보를 남기고는...

우리가 파리에 온 이유는 바로 이 사진을 찍기 위해서였다며..

파리는 이 사진 한 장으로 충분하다며.....

이번 프랑스 여행은 뽕을 뽑은 것 같다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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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honey,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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