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동안 여행기 위주로 블로그를 운영해오고 있었는데
두어시간동안 지난 3년간 로스쿨을 다니면서 썼던 글들을 하나, 하나 읽어보았다.
로스쿨 3학년, 2학년..1학년...시간은 2012년부터 2011년, 그리고 2010년..거꾸로 흐르고
나는 그 순서대로 기진맥진한 가운데 한참 좌절해있다가
시간이 점점 과거로 흐를수록 힘든 상황이지만 최선을 다하며 화이팅하는 당찬 나로 변해갔다.
3년이란 시간이 참 무섭구나 싶었다.
그래도 그 정신적 피폐한 시간들을 다 넘기고, 이렇게 다시 원래의 나로도 되돌아왔구나 싶다.
재미있는 건, 2010년 초반의 일기로 갈 수록 -
학교생활 어려움에 대한 토로보다, 당시 실연의 아픔에서 허덕이는 글들이 많아진다는 것이다.
때로는 미워했다가, 그리웠했다가, 슬퍼했다가, 분노했다가 , 담담했다가, 행복하라고 빌어줬다가 -
온갖 감정의 기복들을, 스물 네 살의 나는 꽤나 자세하게도 기록해놓았다.
그 후로 다른 사람이 지나가버려서 나는 이제 더 이상 그 글을 읽으며 감정이입이 되지도 않고,
신기한건,어린 날의 감정들이 오글거릴법도 한데 전혀 오글거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 이 때 나는 이런 감정들을 겪었었구나...
솔직하게 적어놓은 24살의 마음들이 27살의 마음에 잔잔하게 와닿는다.
2. 이렇게 시간이 지나가버리고 나면
아무렇지도 않게 담담해질 감정들,
굳이 생각나지도 않는 지나간 사람.
어짜피 이렇게 잊혀지고 잊어져버리고 말 것들인데
왜 그 순간순간에는 고통스럽고 마음 아파해야하는지..
그런 힘들고 괴로운 마음들은 내게 아무 것도 남기는 것도 없는데
그냥 아프지도 말고, 속상하지도 말고, 서운하지도 말고, 미워하지도 말고 -
남남이 되는 순간,
지금까지 널 사랑했던 나의 감정과, 나를 사랑해줬던 너의 감정과, 지나간 추억, 그리고 너라는 사람 모두
한순간에 지워져버릴 수는 없는걸까.
어짜피 지워져버리는 거라면.
영화 <Eternal Sunshine of spotless mind>를 좋아하는 이유는,
시간을 되돌리는 영화적 구성,
그리고 서로가 싫어져 헤어져버린 커플도 시작은 정말이지 사랑스러웠던 커플이었음을 일깨워 주는 내용 때문이었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 나와 함께하는 누군가가, 항상 이걸 기억했으면 했다.
언젠가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의 어떤 모습에 질리고 맘에 들지 않아 불평불만이 많아지겠지만
사실 처음엔 그 모습조차도 정말 사랑했었다는 것을.
그러니까, 조금 지겹고 권태로워도 사랑하는 마음으로 잘 이겨내주기를 바랐다.
나도 그렇게 노력할테니까.
그런데, 요즘은 -
영화에서 클레멘타인이 조엘과 이별한 후 그 사람과 그 추억을 모두 지워버리는 그 마음이 너무나도 공감이 된다.
어린 날에는, 지나간 사람도 다 좋은 추억이고 나의 소중한 일부인데 어떻게 지울수가 있지...싶었지만
그건 21살의 너무나도 순진한 생각이었나보다.
사실, 어떤 사람을 잊는다는 것은,
잊어야지...라고 생각한다고 해서 잊혀지는게 아니다.
실은 잊었는지조차 모르고 있어야 정말 잊어버린거다.
잊을때까지, 그러니까 무관심해질때까지
사람은 때로는 폭발적으로, 때로는 덤덤하게 그 사람이, 그 사람과의 추억이 드문드문생각이 난다.
그리고 잔잔했던 감정들이 다시 요동을 친다.
그 과정을 도대체 얼마나 겪어야, 얼마나 오래 겪어야 -
나는 어떤 사람을 잊었는지조차 모르는 채로 잊을 수 있는건가.
유난히, 아주 사소한 것을 잘 기억하고, 감정적으로도 섬세한 나는
그 과정이 너무나도 힘들다.
클레멘타인처럼, 한번에 깨끗이 지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오늘은 일찍 자려고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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