空間과 時間

■ 삶 2009. 12. 13. 16:38




시간이 많이 지나버린 어떤 일생의 에피소드가,
정확히 언제 어떤 지역에서 누구와 함께 일어났는지를
세세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이 보통의 사람들에게는
그리 쉬운일은 아닌가보다.


내게, 기억이란 것들은 또래 친구들에 비해
공간과 시간으로 아주 잘게 조각조각나
어떤 연속적인 기억의 흐름이 아닌,
마치 시트콤의 한 편의 에피소드들처럼 기억되곤 한다.


그것은 기억이 일련의 시간 순서가 아니라 공간의 특징으로 결정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어렸을 때부터 거의 6개월/1년/1년반/2년 단위로 지역을 넘나들며 다녔기 때문에
내게는 몇 학 년 때의 기억보다, 어느 지역에서의 기억이 훨씬 더 빠르게 소환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아주 자연스럽게 나는 모든 내 기억들을 시간적 흐름보다는 공간적으로 기억하고 있고
또, 자연스럽게 그렇게 기억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공간의 칼로 잘려진 시간의 단위가 그리 길지 않아서
나의 시트콤 에피소드와 같은 기억의 편린들이 같은 공간안에서 다시 반복되는 일은 거의 없었고
때문에 각각의 기억을 떠올리때마다 그 때의 공간, 그 때의 시간, 그 때의 느낌들이 혼합된 개별적인 기억이었는데
-
문득 이 '서울'이라는 한 공간에- 그 중에서도 '동작구 신대방2'동이라는 작은 공간에
너무 오래 머물렀다는 생각이 든다.
시간에 따라 나는 조금씩 변화하고 있긴 하지만
나는 같은 공간에서 마주치는 아침, 점심, 저녁과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시간의 반복 속에
거의 변할 것이 없는 나의 중복되는 행동패턴에 점점 삶의 활기를 잃어가고 있는 것 같다.
같은 장소의 반복되는 기억들을 떠올리는 것이 지루하고 지겹다.


문득, 2003년 겨울 크리스마스 즈음하여
처음으로 야자를 땡땡이 치고 나왓던 꽤 쌀쌀하고 컴컴했던, 그런데 참으로 분주했던 대전 은행동 끄트머리에서의 기억이
그 때의 당혹스러움, 캄캄한 가운데 반짝였던 주황색 불빛들과 함께 스믈스믈 피어올랐다.
그 이후로 서울에서 수차례 반복되었던 크리스마스의 기억은 모두 뒤섞여 기억조차 나지 않는데 말이다.
더 나를 낙담하게 하는 것은,
앞으로 최소 4년 이상은 계속 서울에 머물러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이 곳에.
하.


ps. 마지막 기말고사는 죽을 쑬 태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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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honey,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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