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포스팅 『인플레이션』보다 먼저 읽은 책. 『가진 돈은 몽땅 써라』
아니, 티끌 모아 티끌인 시대에 모아서 먼지를 만들어도 모자랄망정, 몽땅 쓰라고?
제목에서부터 너무 과격하게 낚시를 하는 것 같아서 거뜰떠도 보지 않으려다가
일본의 일론머스크라고? (테슬라 주식 산 서학개미로서) 뭐하는 사람이었길래 싶어 훑어보다가 슥슥 읽히는 맛이 있어
머리 식힐 때 읽으면 좋을 것 같아 샀다. 그리고 정말 금방 읽었다.
책을 읽다보면 몇 가지 조금 의아하거나 납득이 되지 않거나 과하다 싶은 부분들이 있다.
예를 들면, 일본인이 일본의 실생활을 비판하며 쓴 부분인데
현금대신 신용카드를 쓰라든지 (이미 상당수가 신용카드가 아니라 삼성페이를 쓰고 있지 않은가!)
월급날 ATM에 길게 줄 서는 것을 비판한다든지 (경조사비 출금 때 ATM을 쓰는 걸 제외하면 인터넷/모바일 뱅킹을 쓰지)
작가가 이를 통해 말하려는 것은 알겠지만, 우리 현실과 맞지 않는 부분들은 일본을 안타까워 하며 넘어갔다.
또, 본인은 호텔에서 살면서 부동산을 소유하는 것이 리스크라고 주장하는데 (논리가 틀렸다기 보다는)
아이가 없는 싱글 남자이기 때문에 가능한 부분도 있어 보인다.
몇 가지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근면성실과 저축을 바람직한 삶의 모토라고 생각하며 살아온 나에게
뒷통수를 때리는 것 같은 조언과 꽤나 긍정적인 영향력을 주었다.
작가는 시종일관 저축신앙을 깨고 열심히 돈을 쓰라고 주장한다.
표현이 다소 급진적이지만, 그의 프롤로그에 분명히 나와 있듯이 무일푼이 되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살면서 도움이 되는 것은 저축한 돈이 아니라 돈을 쓰면서 쌓은 지혜와 풍부한 경험이기에,
돈에 얽매이지 말고 가진 돈을 다 쓸 각오로 해야할 일을 하라고 한다.
이것을 위한 여러가지 실천방법이 곧 본문인데,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이 다소 황당한 챕터들을 거르고 나면 나름 작가가 하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작가는 돈에 맞춰 살지 말고 계획에 맞춰 돈을 쓰라고 한다.
재미있는 술자리는 무조건 가라하고, 패스트푸드 대신 고급 장어덮밥을 먹으라고 한다.
지하철 대신 택시를 타고, 청소와 빨래도 전문가에게 맡기라고 한다.
이렇게 보면 흥청망청 살으라는 듯이 보이지만, 작가에게는 다른 의도가 있다.
작가는 돈을 써서 다양한 경험을 해보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서 네트워크를 만들라고 하는 것이다.
또, 부가가치가 높은 일을 하는 사람이 되어서, 자기의 본업에 자신의 모든 시간을 쏟아붓고
나머지 외주화가 가능한 것들은 외주화하며 사소한 비용을 아끼는 대신 시간을 자신에게 투자하라고 한다.
그리고 그렇게 쓴 돈이 곧 경험과 네트워크가 되어서 자신의 외연을 넓히고 새로운 기회를 맞게 해준다고 한다.
작가는, 한정된 수입원의 지출과 저축계획에 맞춰 절약하고 인내하면서 자신의 삶을 그 안에 가두는 것을
극도로 경계한다.
그런데 그렇게 살아온 사람이 바로 나다.
물론, 내 나름은 새롭고 다양한 것을 경험하면서 다채로운 내가 되자는 목표가 있었지만
작가가 말하는 것 처럼 이렇게 극단적이지는 않았을 뿐더러,
크게는 내 주 수입원인 월급을 낭비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그게 미덕이고 또 올바른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던 것이다.
물론 작가는 사업가이고 나는 월급 받는 근로자이기에 삶의 방향이 완전히 일치할 수는 없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어느 순간 나도 돈을 벌어 나에게 투자하지 않고 은행에 투자(?)하면서 발전이 없었던 것은 아닌지,
나에게 쓰는 돈을 투자라고 생각하지 않고 낭비라고만 생각했던 것은 아닌지 나를 반성하게 됐다.
어쨌든 『가진 돈은 몽땅 써라』를 읽으면서, 나는 작가가 제안한 수준만큼 돈을 쓰면서 (나에게 투자하면서) 살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작가의 생각이 모두 정답인 것도 아니고, 또 작가와 나의 현실적으로 다른 부분도 있고,
무엇보다 아주 솔직히 말하면 난 이미 개미와 배짱이의 개미처럼 이미 34년 반을 살아왔기 때문에
갑자기 지금까지의 나와 180도 다른 내가 될 용기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가진 돈은 몽땅 써라』를 후루룩 읽고 나서 나도 모르게 소소한 일상에 열정을 가지고 임하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
작가의 문장은 다소 급진적이고 거칠었지만 나름 내 안의 나를 일깨우는 작은 울림이 있었던 것이다.
또 비록 나를 180도 바꿀 수는 없겠지만 작가가 내가 일러주려 했던대로
돈을 아끼는데 집중해서 내 경험과 기회의 폭을 한정하며 살기보다는
조금 더 나에게 다양한 경험과 기회를 선사하면서 나에게 투자하고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물론, 생각은 그러한데 실천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는 않을 거다. 끊임없이 떠올리면서 노력해야 한다.
돈을 쓰는 것에도 노력을 해야 한다니. 세상에는 이런 사람도 있다.
작가의 표현이 너무 극단적이라고 생각하면서 읽었는데, 그 정도 충격을 줘야 나에게는 금이라도 갈 수 있었던 것 같다.
어쨌든, 처음 이 책을 살 때는 빠르게 후루룩 읽어버리고 중고서적으로 팔려고 했는데
의외로 나에게 기분좋은 충격을 주는 인싸이트를 많이 담고 있는 책이라
내가 35년 가까이 만들어 온 내 모습에 너무 갇혀버리지 않도록 두고두고 가끔씩 꺼내서 읽을까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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