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진

■ 삶/III. 삶 2018. 11. 15. 16:22



기진맥진한 상태로 집에 돌아와 

방문을 닫고서 캄캄한 어둠 속에 드러누웠다. 

방문 너머로 저녁식사를 하는 

가족들의 쾌활한 분위기가 들려오는데

나는 겨우 몸을 일으켜 세워 

바람 맞은 사람처럼 청승맞게 훌쩍였다. 


하루종일 울다왔는데도 

투두둑 두둑 

자꾸만 자꾸만 눈물이 훔칠 새도 없이 떨어진다.


이게 뭐야. 

응?

왜이렇게 나는 힘이 드는지.

나쁜 사람을 만나도 좋은 사람을 만나도

왜 내 연애는 항상 이렇게 죽어나는 것처럼 아프고 힘이 드는지

이 나이쯤 되면 내 감정쯤이야 어른스럽게 대처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어렸을 때보다 더 견뎌내질 못하는 것 같다.

내가 문제인건지

아니야, 원래 연애라는 게, 혼자 아닌 둘이라는게 이런거야.

그럼 나는 연애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인걸까?

아니야, 그 사람이 돌아오면 해결될 문제야.

내 안에서 내가 싸운다. 

이렇게 내 안에서 상대방을 잡으려는 나와, 상대방을 놓아버리려는 내가 싸우는게

내 안에 서 내가 싸우며 스스로 진절머리 나고지쳐서 나가떨어지는게 그게 연애인가보다.

그렇다면 나는 연애를 아주 잘 하고 있네.


울다가 머리가 아파 선선한 공기를 쐴겸 밤늦게 아파트 한바퀴를 돌아 

너랑 같이 달려내려왔던 언덕, 너랑 같이 걸어내려왔던 계단, 너랑 같이 앉아있던 벤치에 앉는다.

술마시고 늦은게 괘씸해서 조금 늦게 나왔는데 긴 팔과 다리를 어정쩡하게 늘어뜨리고 나를 기다리던 모습이 떠올라.

튀김소보루 먹을래? 싫어? 그럼 부추빵 먹을래?


지금, 바로 지금 항상 날 데리러 왔던 그 차를 타고 와서

휘적휘적 특유의 걸음걸이로 헐레벌떡 뛰어와서

울고 있는 내 앞에 무릎을 꿇고서

잘못했다고, 미안하다고,

이렇게 오랫동안 널 혼자 놔둬서 힘들게 해서 미안하다고

앞으로는 절대로 혼자 놔두고 가지 않겠다고

응? 으응? 하면서 간절한 표정으로 내 이름을 부르면서 내 무릎을 흔들면

너 때문에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냐고 

잘해주겠다더니 이게 뭐냐고

이게 잘해주는거냐고 온갖 심통을 다 부리고 어깨를 투닥투닥 때리고

기분이 풀릴때까지 울고 미워할거라고 한껏 어깃장을 부리고는

왜 이제왔냐고 이게 뭐냐고 어깨를 헐떡이며 울다가 

나 오늘 너무 많이 울어서 머리 아프니까 아이스크림 사줘 

하고서 못 이긴척 화해해줄텐데 

지금까지 너가 내 마음 아프게 했던거 다 아무일도 아닌걸로 해줄 수 있는데


아무리 혼자서 훌쩍이며 기다려보아도

넌 오지 않아.


넌,

오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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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honey,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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