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집에 돌아와 다섯살 아이마냥 괜히 찡찡거리고서
이불을 들추다 끝내 눈물을 찔끔 흘렸다.
짜증이 났다. 그리고 조금 서글펐다.
대학교 동창을 만났다.
이제 대학교 동창은 객관적으로도 오래된 친구가 되었다.
작년 3월 그 친구가 일하는 곳으로 찾아가서 밥 한 번 먹고
이렇게 개인적으로 시간내어 만나는 것은 1년만의 일이었다.
그 친구와의 만남은 편안했다.
언제나 그랬듯이.
나도 인식하지 못하고 있던 내 마음의 경계를 다 내려놓는 느낌이다.
그냥 소소한 사는 얘기일 뿐인데 마음이 편안하고 심지어 안전하다는 안도감이 든다.
평소라면 늦은 시간에 입도 대지 않았을, 떡볶이까지도 아무런 걱정 없이 편안히 먹었다.
(이건 정말 엄청난 일이다.)
나는 -
아주 예전의 나로 돌아간 느낌이 들었다.
내 안에 숨겨져 있던 스무살의 내 마음을 꺼내올린것 같았다.
그리고 그 마음은 아주 오랜만에 느끼는 감정이었다.
우리는 현실에 있었지만 내 마음이 그랬다.
모든 것이 자연스러웠고
편안함, 안도감, 친밀감, 그런 감정들이 몽글몽글 나를 둘러쌌다.
보통 사람은 오래알수록 편안해지는 경향이 있지만
그 친구와 헤어지며 생각했다.
좋은 사람은 처음부터 좋고 끝까지 좋다.
오래 알아서 익숙해지는 것 없이도
그저 그가 좋은 사람이기 때문에,
혹은 나와 맞는 사람이기 때문에 계속 좋은 것이다.
집에 돌아오는 길은 3월 말 답지 않게 바람이 스산하게 서늘했다.
하지만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의 만남덕분에 추우면서도 추운 줄을 몰랐다.
마음 속 작은 난로에 불이 켜진 것처럼, 따뜻했다.
이 기분을 오래도록 느끼고 싶었다.
그리고 나는,
그 친구 옆에서 나도 모르게 마음의 경계를 풀었을 때,
그리고 내 안의 편안하고 따뜻한 온도를 느꼈을 때,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그동안 얼마나 보이지 않는 무의식적인 긴장감 속에서 살았나 깨달았다.
회사라는 곳에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도 친절하고 좋은 사람들이고
또 회사 밖에서 새로 만나는 사람들도 대개는 좋은 사람들이지만
나는 항상 긴장해있으면서 또 낯선 사람들에 대한 경계를 바짝 세우면서
그동안 피곤했었던 것이다.
살얼음같던 내 마음이 와장창 깨져버렸다.
이제 집에 돌아왔다.
마음은 여전히 따뜻했지만, 신데렐라의 마법은 끝났다.
나는 또 내일 그 날선 긴장과 불편한 사회 속으로 경계의 날을 바짝 세우고 가야만 한다.
짜증이 났다.
아주 오랜만에 느낀 이 편안함이, 예전엔 당연했던 이 평온함이
이제는 아주 가끔만 느낄 수 있는 특별한 일이 되어버렸다는 생각에
그래서 서글퍼졌다.
이제는 어쩔 수가 도리가 없어서 짜증이 나면서도 서글프고 또 서러웠다.
갑자기,
추억들이 춤을 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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