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박 5일 무모한 미국여행
San Diego (3)
서쪽을 향해 달리다보니 금세 저 너머로 바다가 보이기 시작했고, 어느 새 우리는 해안가에 닿았다.
코너를 돌자마자 해변가를 띠라서 키 큰 야자수들이 하늘을 향해 높이 뻗어있었고,
왼편에는 넓은 잔디밭이 나타났다.
San Diego City and County Administration 빌딩 앞의 넓은 잔디밭에서
이 곳 주민들이 한가로이 일요일 점심의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우리는 USS Midway Museum이 있는 곳에서 자전거를 반납하고서
바로 코로나도 섬으로 들어가는 Flagship Ferry를 탔다.
파란하늘 아래 커다란 미국 성조기가 펄럭이는데,
비로소 이제서야 미국이라는 실감이 아주 약간 들었다.
(사실 그저께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을 때는, 마치 부산 정도 놀러간 느낌이었다....;;)
어느 새 배낭여행도 10년 차.
미국만해도 서너 번 왔다갔다 했더니 사실 미국이 낯설다는 느낌이 없어졌다.
이렇게 여러번 오갈 수 있는 어른의 자유가 좋기도 하면서
자꾸만 세상 모든 것들이 익숙해지고 설렘과 호기심이 사라지는 어른의 무딘 감정이 슬프기도 하다.
코로나도 섬에서 바라본 샌디에고 쪽 풍경. 참 맑고 깨끗하다.
약 20여분간 샌디에고의 다운타운의 전경을 구경하며 드디어 코로나도 아일랜드의 선착장에 발을 디뎠다.
우린 바로 Orange Ave.를 따라 한적한 동네를 걷고 걸어 가이드 북에 소개된 라운지 버거 (Rounge Burger)를 찾아냈다.
미국 서부에 가면 꼭 먹어봐야 한다는 In&Out은 너무 접근성이 떨어져서
대신 가이드 북이 추천해준 수제 햄버거가게를 골랐다.
라운지 버거는 최근 LA와 샌디에이고를 기반으로 인기 몰이중인 수제 햄버거 체인점이라구.
유즙이 흐르는 스테이크 패티!
가끔 미국이나 캐나다에서 당황하는 것이, 이런 햄버거나 샌드위치 가게다.
다양한 입맛과 알러지 등을 고려하기 때문에 주문자가 일일이 들어가는 재료를 골라야 하는데
패티는? 굽기정도는? 야채는? 번은? 치즈 종류는? 등등을 속사포로 물어보는데
그냥 Default로 모든게 정해진 건 없는거니? ㅠㅠ
나는 열심히 대답하다가 치즈 종류를 고르라는데서 거의 기진맥진 해서 그냥 처음 불러주는걸 다 골랐다.
무조건 처음 불러주는 그걸로 해줘....
어쨌든, 그야말로 스테이크 맛 그 자체인 도톰한 패티와 아메리칸 치즈가 줄줄 흘러 내리는
아메리칸 스타일의 햄버거로 뒤늦은 점심 허기를 채우고
Moo time Cremery 에서 아이스크림까지 촵촵 먹으며 코로나도 호텔로 계속 걸어갔다.
미국에 왔으니 미국인처럼 먹어줄테다!
사실 샌디에고도 그렇고 특히 코로나도 아일랜드는 차로 이동하는 게 훨씬 편할 것 같다.
다운타운은 버스라도 타고 다닐 수 있었지만, 코로나도는 걸어서 섬을 가로지르려니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여...
햄버거와 아이스크림 힘으로 겨우겨우 걸어갔네.
(그리하여 2017년부터 오로지 여행을 위해서 운전연수를 시작했다는 소문이...)
드디어 코로나도 호텔의 해변에 닿았다. 사진보다 훨씬 끝없이 펼쳐져 있던 멋진 해변.
이곳이 코로나도 호텔입니다 :D
하얀 건물에 빨간 삼각뿔 같은 지붕이 인상적인 코로나도 호텔(Coronado Hotel).
1888년에 세워진 유서 깊은 호텔인데, 못 하나 쓰지 않고 나무로만 만든 빅토리아 양식 목조 건물이자
캘리포니아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이라고 한다.
오래 전에 지어져서 세련된 외관은 아니지만, 이 드넓게 펼쳐진 푸른 바다와 어우러져
그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어느 새 오후 4시 30분. 시간이 한없이 짧게만 느껴진다. 아니, 사실 짧았다. 고작 1박 2일이라니.
코로나도 호텔에서는 오래 머물지 않았다.
해가 기울기 전에 되돌아 페리 선착장으로 돌아가야 했기 때문이다.
내가 어제부터 꼭 다운타운 맞은편에서 노을 지는 샌디에고를 보고 싶다고 한,
그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 말이다.
하루종일 뜨겁게 내리쬐던 해가 점점 기운다.
2층 건물조차도 거의 찾아보기 어려운-
이 아름다운 섬의 아기자기한 건물들이
기울어지는 햇살을 받아 점점 오렌지 빛으로 물들고
45도의 따뜻한 그림자가 드리운다.
이곳에서의 평화롭고 따뜻한 시간들이 이제 끝나간다.
나에게는 끝이지만,
이들에게는 보통의 일요일과 다르지 않을 오늘, 여기 바로 지금.
누군가에게는 평범한 일상이 누군가에게는 아주 특별한 순간.
나에게도 평범한 일상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 2016. 2. 28. Coronado Island, San Diego.
황금빛으로 물드는 다운타운의 전경과 그리고 하얀 보트.
페리 선착장에 도착하니 어느새 건너편 다운타운의 빌딩 전면이 황금빛으로 물들어간다.
맨하탄이나 시카고만큼 화려한 스카이라인은 아니지만
아담하고 또 정갈한 이 도시의 스카이라인에 왠지 모르게 애정이 샘솟는다.
나는 이제 너무 큰 도시보다는 적당한 규모와 자연이 어우러지는 그런 아담한 곳이 좋다.
그리고 하늘이 붉으스레 물든다.
우리는 선착장 근처의 레스토랑에 들어가, 코로나 한 병 씩을 시켜 아주 짧은 허세도 부려보았다.
(참고로, 건물 밖 노상에 앉아서 술을 마실 수 없다. 반드시 펍이나 레스토랑 내부에서만 술을 판다.)
모히또에서 몰디브 한 잔!을 떠올리며 코로나에서 코로나도 한 병!을 외쳤다.
그리고 나와 K는 이 소소한 즐거움이 참 행복해서 천진난만하게 웃어댔다.
태평양 너머로, 키 큰 가로수들 너머로 붉게 물들어가는 이 따뜻한 겨울 밤을 오래도록 추억하고 싶어서.
코로나도 섬에서 마시는 코로나 :)
하나둘 불빛이 켜지면서 한국보다 조금 이른 6시 즈음, 어둠이 내려앉았다.
K와 나는 황금빛 노을의 순간부터 어둠이 내려앉을 때까지 후회 없을만큼
시시각각 변하는 그 아름다운 모습을 마음껏 즐기고서 다시 페리를 타고 샌디에이고 다운타운으로 돌아왔다.
이제 내일 새벽이면, 이 짧은 3박 5일의 무모한 미국여행을 끝내고 돌아가야 하기에
우리는 이곳에서의 마지막 만찬을 위해 Bertrand at Mister A's로 향했다.
Lyft 기사 아저씨에게 Mister A's에 간다고 했더니,
기사 아저씨가 wow! 감탄하며 전망이 아름다운 곳이라며 마치 자기가 가는 것처럼 즐거워해줬다.
자기도 가족들과 특별한 일이 있으면 가는 곳이라면서. :)
Bertrand at Mister A's는 샌디에이고 다운타운 한가운데 있는 12층 높이의 레스토랑으로
높은 건물이 많지 않은 샌디에이고에서 다운타운과 바다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이다.
Bertrand at Mister A's가 있는 12층으로 올라가자 굉장히 클래식하고 고급스러운 분위기의 레스토랑이 나타났다.
나와 K 모두 운동화와 패딩...(;;)을 입고 있어서 혹시 드레스코드 때문에 쫓겨날까봐 살짝 쫄았지만
다행히 우리를 친절하게 파티오 석으로 안내해주었다.
야외 파티오 석이 만석이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이 곳도 겨울은 겨울이라 그런지 다들 실내의 따뜻하고 포근한 분위기에서 식사 중이었고
파티오 석에는 우리와 10대 후반즈음으로 보이는, 그런데 굉장히 잘 차려입은 3명의 아이들 뿐이었다.
도심을 가로짓는 저 불빛은 비행기의 흔적이다.
우리가 안내받은 파티오 석 자리는
이번엔 엠바르까데로(Embarcadero)의 뒷편에서 다운타운과 SAN 공항의 야경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자리였다.
역시나 뉴욕이나 서울 같은 대도시처럼 거대하고 화려하지는 않지만
빌딩들과 바다와 공항이 한 눈에 보이는 멋진 파노라마 뷰가 눈 앞에 펼쳐졌다.
그리고 5분에 한 대씩, 비행기들이 빌딩들 사이를 가로질러 내려가기 시작했다.
마지막 만찬답게 흐뭇한 식사
그리고 빠에야 :) 빠에야는 꼭 스페인가서 먹읍시다.
다운타운과 바다, 그리고 오른쪽편이 바로 SAN공항
눈 앞에서 끊임없이 비행기의 착륙을 지켜보며 식사를 하는 곳이라니 :)
야경도 사랑스러운데 비행기가 착륙하는 이색적인 모습까지도 마치 일상처럼 볼 수 있는 곳, 참 특색있고 좋다.
이 아름다운 야경을 보며 배부르고도 맛있게 먹고 참 행복한 눈을 하고 있네요.
그렇게 오늘 하루가 알차고 또 행복했다고.
이제서야 여행하는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
모든 고민과 일에 대한 압박, 걱정, 근심거리 모두 잊고,
마음 속에서 지워버리고,
행여나 마음 속에서 슬금 슬금 기어오르려거든
꾹꾹 눌러 밟으면 보낸 3일이었다고 생각했다.
오길 잘했다.
충분히 이 고생과 피로와 돈이 아깝지 않은,
매력있고 날 즐겁게 만들어준,
그런 사랑스러운 도시였다.
이제 한국에서 추울 때마다,
샌디에고에서의 뜨거웠던 -
그러나 상쾌했던 햇살이 문득 문득 떠오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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