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온에어

2015.12.19. (2日)



한큐레일을 타고 오사카에 돌아오니 저녁 6시였다. 


 

얼마나 피곤했는지, 돌아오는 길에 잠시 잠들었는데 그대로 오사카 한큐우메다역까지 도착해버렸다. 

 

아이들은 고베로 아경을 보러 가고, 나는 더 이상 골반때문에 걷고 싶지도, 걸을 수도 없다. 

 

플랫폼에 내린 채로 가이드북을 뒤져 한큐우메다 역 주변의 추천집을 찾아보았다.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 우메다 스카이 빌딩 지하에 오꼬노미야끼 맛집이 있단다. 


- 그래, 가서 저녁도 먹고 우메다 스카이 빌딩 39층의 공중정원에서 야경도 봐야겠다. 


한큐우메다 역에서 스카이 빌딩까지 고작 10분정도 거리인데 

골반 통증때문에 마치 만겁의 시간을 걸어 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작은 가방에 미러리스와 필름카메라를 두 개, 그리고 두꺼운 가이드 북까지 넣어다녔더니

이제는 가방을 어느 쪽으로 둘러메도 어깨가 천근만근 무거웠다. 

그렇게 오꼬노미야끼를 먹겠다는 일념 하나로 스카이 빌딩 지하를 찾아갔는데, 

나는 그 지하식당가에서 내가 가려는 곳이 어딘지 물어볼 필요도 없이 한 번에 찾아냈다.

줄이,어마어마하게 긴 가게가 딱 하나 있었다. 


가게 이름은 '키지'

 

 

 

손님의 80%가 중국인과 한국인이었다.


 

나는 가게 밖에서 한 시간을 기다리고, 또 가게 안에서 한 시간을 기다린 후에야 

 

 

Bar석에 소중한 자리 하나를 차지 할 수 있었다. 

 

돼지고기와 소고기와 오징어가 다 들어간 오꼬노미야끼를 하나 시키고서, 

 

쓸데 없이 맥주도 한 잔 시켰다. 

 

술을 좋아하지도 않고, 다 먹을 마음도 없지만 왠지 지금은 그러고 싶었다. 

 

일본에 온지 이틀 연속 술을 마시다니!

 

 

나도 이런 내가 낯설지만, 또 낯선 내 모습이 나쁘지 않다. 

 

여행지에서의 경계가 풀어진 새로운 내 모습이 실은 조금 더 좋았다.

 


오꼬노미야끼를 만드는 중

 

 

 

 

맥주와 오꼬노미야끼 1/4조각. 그릇에 그려진 캐릭터들이 귀엽다.

 

 


 

오꼬노미야끼는 내 앞의 철판에서 바로 구워지고 뒤집어지고 소스가 뿌려져 완성이 되었다.

 

그렇게 완성된 오꼬노미야끼를 온기가 남아있는 철판에 남겨두고

 

먹을만큼씩 잘라 덜어먹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생각해보니 아침도 파운드 조각과 콩 샐러드, 점심 대시 말차 카푸치노와 당고, 슈크림 먹은게 다였다. 

 

제대로 된 식사를 단 한끼도 하지 않은 채로 하루종일 걷기만 했던 것이다. 

 

거기다 2시간을 기다렸으니, 지금 내 눈앞에 놓인 것은 뭐든지 세상 최고의 맛일거다. 

 

그런 상황에서 먹은 키지의 오꼬노미야끼는 정말 정말 맛있었다. 

 

속은 도톰하게 씹혔고, 겉은 약간 바삭한 느낌도 들었다. 소스도 적당히 끈적거리며 입맛을 돋았다. 


내가 오꼬노미야끼라는 것을 먹은게 언제였던가. 

내 기억 속 첫 오꼬노미야끼는 일산의 라페스타 근처의 어느 2층 이자까야. 이름에 '하' 같은 글자가 있었던 것 같다.

술자리를 좋아하던 첫 남자친구가 데려간 그 이자까야에서 처음 먹어보았다.

아닐 수도 있다. 그런데 내 흐릿한 기억 속의 첫 오꼬노미야끼를 아무리 생각해도, 

그 친구와의 오꼬노미야끼가 내 기억력의 한계인 것 같다.

이제는 그 맛이 어땠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그 오꼬노미야끼를

이 오사카의 오꼬노미야끼 가게에서 떠올렸다. 

아마 그 뒤로도 오꼬노미야끼를 몇 번은 더 먹었을 텐데, 어째서 기억나는 건 그 오꼬노미야끼 하나인지.

이래서 사람들이 처음이 중요하다고 하는건가...

굳이 그 친구를 떠올리고 싶어서는 아니었는데, 

생각나는 기억이라고는 그것 밖에 없어서 조금 떨떠름했다. 


그러나 그 떨떠름함을 생각하는 순간은 찰나였다.

너무 배고팠고, 너무 맛있어서 나는 정말 순식간에 내 손바닥 두개 크기의 오꼬노미야끼를 해치워버렸다.


크리스마스 행사중이었던 스카이 빌딩 앞

 

 

 

 

 

 

나무에 달려있던 귀여운 스노우 맨

 

 

스카이 빌딩 앞은 크리스마스 이벤트들로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물씬 났다.

다만, 공중정원으로 가는 줄이 한눈에도 길어보여 일단 오늘은 철수하기로 했다.

우리나라도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이렇게 활기찰까?

내가 늙어서그런건지, 아니면 명동 같이 복작거리는 곳에 가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우리나라 경기침체 탓인지 것도 아니면 저작권때문에 캐롤을 틀지 않기 때문인지.

우리나라에서는 크리스마스 연휴 분위기를 거의 느끼지 못했는데

일본에서 아주 오랜만에 크리스마스 다운 분위기를 만끽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혼자있지만, 쓸쓸하지도 외롭지도 않았다.

그저 이 밝고 명랑한 분위기에 나도 같이 들떴다.

메리크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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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 온에어

2015.12.19. (2日)

 

 

 

우리는 요지야 카페에서 나와 다시 버스를 타고 교토의 관광 제1번지 기요미즈데라(청수사)로 향했다.

기요미즈데라까지는 조금 넓은 골목길을 따라 계속 올라가야 했는데

 

정말이지 관광객들과 장사꾼들로 정신없이 북적이는 통에

 

방금 전 요지야 은각사점에서 느꼈던 그런 고요함, 평온함이 와장창 박살나는 느낌이 들었다. 



빨간 기둥이 인상적인 기요미즈데라의 입구

 

 


 

기요미즈데라 입구에서 내려다본 풍경

 

 


 

동완이와 양갱이

 


 

아이들은 기요미즈데라 안을 굳이 둘러보기보다는, 니넨자카와 산넨자카를 돌아보고 싶다 했다.

나는 사실 기요미즈데라에서 노을 지는 모습을 볼 요량으로 왔으나 

날씨도 흐리고 해가 지기까지 한참이나 남은 듯 해서 나도 청수사의 코앞에서 이 아이들과 함께 발길을 돌렸다.

 

 



복작거리는 산넨자카에서


 


 

니넨자카와 산넨자카는 그야말로 관광객을 위한 전통거리 같았다.

우리나라로 치면 인사동이랑 비슷하다고 해야 하나.

아기자기한 기념품과 일본 전통 음식들 가게들에 손님들이 북적북적거렸다.

이런 쇼핑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런 거리를 좋아하겠지만,

 

이 길을 따라 걸어내려갈 수록 내 마음은 갈팡질팡하기 시작했다.

 

흐리던 날씨는 점점 개어 노을을 볼 수 있을 것 같았고, 

 

기요미즈데라 코앞까지왔는데 그냥 돌아가는게 계속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내일 교토에 다시 올꺼니까 일찍 혼자 오면 되지..라고 생각하면서도

 

이왕이면 여기까지 온 거 기요미즈데라는 보고 가고 싶다는 마음이 점점 간절해지기 시작했다. 

 

 

 


후지나미 니넨자카점

 

 


 

후지나미 가게의 미다라시 단고

 

 


 

맑게 개여가는 하늘

 

 


 

한복입은 동완군과 기모노를 입은 일본 여성들



여기 기요미즈데라와 니넨자카, 산넨자카에는 유독 유카타와 기모노를 입은 사람들이 많았다. 

유카타를 입고 교토를 구경하는 것이 관광객들 사이에서도 나름 트렌드인듯 했다. 

요즘 우리나라의 전주에도 한복 입고 관광하는 것이 유행이라고 하던데. 

어쨌든, 각 나라마다 그 고유의 전통과 문화를 지켜나간다는 것은 소중하고 중요한 것 같다.

물론 관광객의 입장에서, 유카타를 입고 다니는 사람들의 98%가 일본인이 아니라 중국인이라는 점은 좀 당황스러웠지만.

 

 



좁은 골목길에 모여드는 인파들

 

 


 

자, 나는 여기까지.

 

 


 

아직도 가을느낌의 교토

 

 


 

관광객으로 복작복작거리던 니넨자카와 산넨자카의 길이 끝나고, 

아이들이 기온거리로 간다고 할 때쯤, 나는 아무래도 다시 기요미즈데라에 가야할 것 같다고 했다.


- 누나는 사실 기요미즈데라의 노을이 보고 싶었는데, 날씨가 개는게 오늘 볼 수 있을 것 같아.


원래 일행이 아니니, 더 이상 같은 경로를 밟지 않는다고 해서 서운해할 일도

그들이 가고 싶은 곳에 같이 가지 않는다고 해서 미안해 할 일도 없었다.

그렇게 거기서 인사를 하고서 다시 기요미즈데라를 향해 걸어올라가는데

 

이유를 알 수 없지만 발길이,마음이 한 결 홀가분해졌다.

 

그 아이들이 나를 끌고 다닌 것도 아니었는데, 갑자기 자유로워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어제만 해도 혼자 여행 다니면 심심하고 지루하지 않을까걱정하던 나는 어디로 간걸까 

 

홀로 걷는 발걸음이 이렇게 경쾌할 수 있나. 

 

나는 되돌아온 길을 날아갈 것 같은 발걸음으로 걸어 올라갔다. 

 


털모자를 쓴 석상

 

 

 

유카타를 입은 멋쟁이 커플

 

 

 

노을 대신 햇살이 비치는 기요미즈데라

 

 

 

낡은 느낌이 먼저 드는 기요미즈데라의 전통 건물

 

 

 

이제 사진찍어줄 사람이 없으니 티켓으로 인증샷

 


 

기요미즈데라 안은 정말이지 오롯이 관광객만을 위한 곳 같았다 .

우리나라 경복궁이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뭔가 일본적인 것을 보러 왔는데, 

땅과 건물만 일본 양식이고 그 안을 채우고 있는 사람과 언어는

온통 중국어와 한국어 일색인 느낌. 

 

유카타를 입은 사람들도 중국어와 한국어로 대화를 한다. 

 

게다가 나뭇잎들이 다 떨어진 12월의 기요미즈데라 내부는 황량하고 쓸쓸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내가 바라던 노을은 보지 못했다. 


그러나 햇살에 잠시 황금빛으로 물드는 기요미즈데라의 전경

 


 

오색찬란한 유카타를 입은 아가씨들

 


 

 


 

 

 

기요미즈데라 내부는 별로 볼 게 없어서 한 번 둘로보고 나왔지만,

그 밖에서 나는 한참을 서성였다.

천천히 해가 지면서 종종 구름사이로 황금빛 햇살이 붉은 기요미즈데라의 건물을 비추었고,

관광객들로 정신없기는 했지만, 그들이 기요미즈데라 앞에서 환하게 웃으며 사진 찍는 모습을 구경하는게 좋았달까.

오늘 아침부터 어스름 지는 저녁까지 하루종일 걸어다닌 탓에

이젠 고질병처럼 되어버린 골반 통증이 심하게 아프기 시작했다.

더 이상 걷는 것은 무리다.

그리고 이제 어두움이 내리고 있었다.

이젠 돌아가야겠다. 오사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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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사카 온에어

2015.12.19. (2日)

 

 

오사카/교토 가이드 북을 읽으면서 종종 눈에 띄는 것이 웬 사람 캐릭터로 라떼아트를 해 놓은 녹차라떼였다.

단순히 어느 카페 캐리커쳐인줄 알았는데, 일본에서 유명한 화장품 브랜드 '요지야'라고 한다.

나름 교토여행의 시그니처 음식인 것 같아서 가보고 싶었는데

다행히 라떼아트따위에 관심없어 보이는 한국 청년들도 그 라떼를 꼭 마실거라고 한다.

그리고 심지어 은각사 근처에 그 요지야 카페가 있다는 것도 알려주었다.

그렇게 은각사에서 나와 철학의 길을 한참 따라 걷다가 포기하려던 찰나,

바로 코 앞에서 요지야 카페 은각사점에 도착했다.

 

 

 

 

 

 

 

요지야 카페 은각사점은 일반 현대식 건물이 아니라 전통 일본 가옥같은 곳이었다.

여기선 녹차라떼가 아니라 전통 차라도 따라마셔야 할 것 같은.

안내에 따라 들어가니 직원은 우리를 전면유리를 통해 정원이 내다보이는 다다미 방에 데려다 주었다.

딱딱한 다다미 바닥에 따닥따닥 아빠다리를 하고 앉으니

바로 눈 앞의 통유리 너머의 일본식 정원이 한 눈에 들어왔다.

고작 말차 카푸치노 하나를 먹으러 왔는데, 일본 전통문화 체험을 하는 듯한 착각이 든다.

낯설기도 하면서, 힘들이지 않고 이런 경험을 할 수 있다니 -

 

 

 

요지야 카페 긴카쿠지점

 

 

 

 

정원을 내다볼 수 있는 카페 내부

 

 

 

 

이런 풍경을 보면서 차를 마신다

 

 

이렇게 일본식 정원이 내다보이는 다다미 방에 앉아서 차를 마시고 있으려니

한편으로는 일본이 간직하고 유지해나가는 日本다움이라는게 대단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부럽기도 했다.

중국, 한국, 일본이 그렇게 다르지 않을텐데 이토록 외부인으로 하여금 문화를 향유할 수 있게 하는

일본문화의 매력과 저력은 무엇일까.

수많은 사람들이 이 일본다움을 경험해보고 싶어 이 곳을 찾아온다.

우리나라는 왜 이렇게 해내지 못한 걸까.

겨우 카페에서 말차 카푸치노 한 잔 마시면서 별별 생각을 다 한다.

그런데 이 카페 하나가 이런 별별 생각을 다 하도록 한다.

 

 

 

마셨다. 요지야 말차 카푸치노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여기 이 카페가 굉장히 좋았다.

테이블과 의자가 아니라 다다미에 앉아있는게 특이하기도 했고,

조용하기도 했고,

따뜻하게 차 한잔 마시면서 가만히 - 호젓하게 앉아서 일기도 쓰고, 정원도 감상하고 그러고 싶었다.

하지만 함께다니는 이 열혈청년들이 너무 패기가 넘친다.

하루 일정으로 돌아다닐건데 심지어 기차를 잘 못타서 1시간이나 일정이 늦어졌다는 아이들에게

여기서 일기쓰면서 조금 더 이 순간을 즐기자고 말하지 못했다.

차를 홀짝홀짝 다 마시고는 이제 여기서 해야할 일은 다 끝났다는 마음으로 서둘러 일어났다.

혼자 여행한지 반나절만에,

혼자하는 여행이 얼마나 자유롭고 내맘대로 할 수 있어 좋은지 깨닫는 순간이었다.

 

 

Posted by honey,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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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 온에어 

2015.12.19. (2日) 



이틀간은 교토에 가야한다. 

어제 오사카/간사이 공항에 내리자마자 교토를 오갈 수 있는 한큐투어리스트 패스 2일치짜리를 사버렸기 때문이다.

도시에서 산책을 하고, 책을 읽고, 커피를 마시고 이런 휴가를 가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준비하는 이틀사이에 마음이 좀 바껴서 그래도 뭔가 관광지 같은 교토를 돌아다니는게 낫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교토로 가는 한큐우메다역은 사카이스지혼마치역에서 그렇게 멀지 않았지만,

우메다 역자체가 어마어마하게 컸다. 

3개의 지하철선과 JR, 한신, 한큐레일선이 모여있는데다가 백화점까지 연결되어 있어서 

그 규모가 어마어마했다. 

아직 한자가 눈에 익지는 않지만 한큐레일 간판을 짚어가며 많이 헤메지 않고 교토로 가는 한큐레일의 플랫폼에 도착했다.



 

 


 

3번 플랫폼의 전철이 달리기 시작했고, 창밖으로 맑고 화창한 오사카의 풍경이 지나갔다. 

금세 도시를 빠져나가 근교의 주택지가 나타나고 저 멀리 아직도 울긋불긋한 산이 나타난다.

마치, 서울에서 춘천을 가는 느낌이다. 

날씨는 제법 쌀쌀한데 여기 오사카엔 아직 가을이 떠나지 않았다.


그렇게 한 40여분을 달려 한큐레일은 도쿄의 카와리마치 역에 도착했다.

나는 아직 어디 갈지조차 정하지 못했는데, 등떠밀리듯 카와리마치 역 밖으로 나오니

하늘에서 반짝이는 것들이 흩뿌려졌다. 

눈인가 했는데 햇빛을 받으며 떨어지는 싸라기 같은 비였다. 

일단은 남들이 다 간다는 청수사(기요미즈데라)에 가려고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관광안내소에서 얼핏 보았던 한복입은 남자가 내 앞에 서 있다.


- 이 것만 입고 안 추워요?



별로 안춥다고 말하는 그 한복입은 남자는 은각사에 먼저 갔다가 청수사에 간다고 한다 .

그러는 사이에 은각사에 가는 버스가 먼저 도착했다.


- 저 오늘 교토에 처음왔는데 아무 계획이 없어서요. 따라가도 될까요?


나는 그렇게 엉겁결에 은각사에 가는 두 한국 청년에 덥석 따라 붙었다.

외로운게 걱정이 되었다기보다, 아무 계획이 없었던 찰나에 누군가의 계획에 편승하고 싶었던 마음이 컸다. 


날씨는 일기예보보다 궂었고 이따금씩 보슬보슬거리며 보슬비가 내렸다.

간단하게 서로 자기소개를 하며 은각사까지 걸었다. 

어리게 보이긴 했지만 이 청년들은 내 동생보다도 어린 93년생 대학생들이었다. 

갑자기 큰 누나가 된 것 같은 느낌. 

그리고 은극사에 도착했을 때, 나는 미러리스 카메라에 배터리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분명 출국 전날 충전을 다 했는데 왜 배터리가 없다고 뜨는거지?

지난 남미여행에서부터 이 미러리스 카메라가 문제구나.

내게 남은건 필름카메라와 핸드폰 카메라인데, 핸드폰은 해필 보조배터리가 없고, 필름 카메라는 보조카메라일 뿐. 


잠시 멍...했지만, 카메라가 안된다는 건 이제 아무렇지도 않았다. 

사실 사진찍기도 귀찮았다.

내가 여행하면 사진찍는게 귀찮을 때도 있다니!

그만큼 이번 여행에 대한 아무런 기대가 없었다고 해야 하나. 

아님 이제 그런 사진 찍어봐야 나중에 '아  내가 이 때 이렇게 이쁜 사진을 남겨 두었지  -' 회상하며

이따금씩 꺼내볼 뿐, 실은 지나고 나면 시간이 흐르면

뭐 얼마나 잘 찍은 사진이었든지 말든지 생각조차 안날만큼 무의미 한 것이란 걸 느껴서였을까. 


사진을 찍는것조차 재미가 없다라...




은각사에서 찍은 사진

 

 

 

은각사에서 찍은 사진2

 

 

생각해보니 나는 '재미있다, 심장이 뛴다'고 했던 일조차도 끈덕지게 해내지 못했다.

사진 찍는게 세상에서 가장 좋은 줄 알았지만,

2년 바짝 찍고서는 차츰 차츰 흥미를 잃어서

지금은 찍어도 그만, 안찍어도 그만.

심지어 너무 잘 찍으려 옥심이날 때면 그런 내가 싫어지는 지경까지 왔다.

신나게 쓰던 여행기도 완결을 못낸게 수두룩.

뭐든지 좋아한다고 호들갑 떨면서도 끝까지 해낸 것들이 거의 없다.

 

좋아하는 마음도 시간이 지나면서 사그라져간다.

그러면 어쩌면, 그냥 이 일을 계속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아닐까.

어짜피 좋아하는 일이 아니니까.

더 싫어지지도 않을꺼고.

심장뛴다며 좋아하던 것도 끝내 시시해지는데, 굳이 내가 즐거운 일 하며 살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릴 필요가 있나.

처음으로 그런 생각이 마음속에서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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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 온에어

2015. 12. 19. (2日)

 


 

내가 앞으로 4일간 묵게될 방은 한국에 있는 내 방보다도 더 아늑하게 생겼었지만

그 아늑하게 생긴 오사카 숙소에서의 첫날밤은 결코 아늑하지 않았다.

우선 바깥의 공기는 그렇게 차갑지 않았는데도 벽을 통과한 공기는 분홍빛 갓등의 따뜻한 분위기를 비웃기라도 하듯

이 방을 골방같이 냉랭한 기운이 들게 했다. 

히터도 켰고, 이불도 두툼했지만 나는 양말을 신고 얇은 패딩까지 껴입고서 

서걱거리는 차가운 이불 속에서 한참을 웅크려 덜덜덜 떨어야 했다.

분명 주인은 히터만으로 괜찮을 거랬는데, 나는 결국 온풍기까지 켜고서야 방안 공기가 누그러지는걸 느꼈다.

그렇게 잠이 드나 했지만, 역시나 그 밤은 쉬운 밤은 아니었다.

나는 온풍기를 켰다가 껐다가 켰다가 껐다가를 반복했다. 잠 역시 깼다가 들었다를 반복했다.

급기야 몇시이지도 알 수 없는 캄캄한 한밤 중에, 나는 온몸이 무겁게 짓눌리는 느낌에 잠이 퍼뜩 깼다.

가위였다. 

손과 발이 침대에 들러붙는 것 같았고, 가위라는 자각이 든 순간 크게 소리치고 싶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텁텁하고 후끈한 방안 공기와 달리 내 목뒤는 마치 파스를 붙여놓은것마냥 싸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생생한 가위눌림이었다. 


- 귀신이 내 목 뒤에 들러붙어 있는게 분명해!!!


낯선 도시, 낯선 사람들이 저 건너편에서 잠들어 있는 낯선 공간, 짙은 남색 어둠으로 가득한 그 방에서

나는 공포에 떨며 있는 힘껏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입은 떨어지지 않았다.


- 무서워!!


무섭다고 속으로 되뇌이다가, 나는 나를 짓누르는 것 같은 무거운 그 느낌에 눌려 까무룩 다시 잠들고야 말았다.




 


 


다시 눈을 뜬 건, 매일 아침 출근시간마다 듣는 내 핸드폰의 알람이 울리는 시간이었다. 

커텐을 걷으니 저 멀리 그리 높지 않은 빌딩들 사이로 발그스름한 빛과 함께 해가 떠오르는게 보였다. 

어젯밤 온풍기를 껐다 켰다, 가위에 눌렸다 말다 한 것 치고 컨디션이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뭐랄까. 

낯선 도시에서 이렇게 커텐을 걷어 아침을 맞는 것은 생각보다 기분 좋은 일이었다. 

한국의 내 방에선 블라인드를 걷어올려야 창 밖이 보였지만, 이 곳에선 커텐을 양 옆으로 걷어내야 했다. 

한국에선 사실 출근준비에 쫓겨서 블라인드를 걷어 올릴 시간도,

이렇게 아침 해가 뜨는 걸 느끼고 있을 여유도 없었다. 

그리고, 조금 멀찍이 떨어져 있기는 하지만,

맞은 편의 아파트들 때문에 내 방은 남향이면서도 해 뜨는 걸 보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나는 여기 오사카 사카이스지 혼마치 역 근처의 어느 아파트 방에서, 

조용히 아침이 밝아오는 것을 보고 있다.

여전히 낯선 곳이기는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어느 유럽이나 미국과 같이 딴 세상에 있는 느낌은 아니다.

그래서 좋다.

내 삶과 맞닿아 있으면서, 내 삶에서는 누리지 못했던 순간을 누리고 있는 것 같다.

 

조금 더 이불 속에서 부비적거리고서, 주인 부부가 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샤워를 했다.

생각보다 주인 부부는 늦게 일어나는 것 같았다. 뭐, 주말이니까.

뭔가 아침에 함께 식탁에 앉아 씨리얼이라도 먹으면서 활기찬 아침을 보낼 수 있을까 기대했는데,

늦잠을 자는 주인 부부 덕분에 굳이 주방에서 덜그럭거리고 싶지 않아

나는 아침햇살이 방안을 가득 비춰오는 내 방 침대 한 구석에 앉아 

어제 세븐일레븐에서 사온 콩 샐러드와 파우드 케잌 한조각을 아무 말 없이 챙겨먹었다. 

그리고 바나나는 돌아다니다가 배가 고프면 먹을 요량으로 가방에 챙겨넣었다.

 

 



 

 


 

8시쯤엔 숙소에서 출발할 계획이었는데, 

침대에서 우물쭈물, 아침식사하며 우물쭈물,

비록 잠은 설쳤지만 아침 햇살이 깊이 비쳐오는 그 방이 맘에 들어

방에서 우물쭈물 하다보니 어느 새 8시 반이 지나서야 나는 집을 나서게 되었다. 

 

아침 오사카의 공기는 청량하고 맑았다. 

가로수엔 아직 떨어지지 않은 나뭇잎들이 온전히 붙어있었다. 

12월 중순. 한국은 이미 겨울인데 이 곳은 아직 늦가을인 것만 같았다. 

어제 밤 숙소가는 종이와 구글맵을 보며 두리번 거리던 길을,

나는 상쾌한 발걸음으로 되돌아 걸어가기 시작했다. 

 

은 제대로 못 잔게 분명한데, 아침 공기에 기분은 상쾌했다.

오늘은, 교토에 갈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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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혼자하는 여행의 즐거움  (0) 2015.12.25
Posted by honey,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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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사카 온에어 

 

2015.12.18. (1日)  


 

사카이스지혼마치 역으로 나오니 아직 7시가 채 되지 않았는데도

한밤중인 것 마냥 캄캄하다.

에어비앤비 주인이 적어준 주소와 구글지도의 도움을 받아 그의 집앞에 다다랐다.

주인이 있는 집에 함께 머무른다고 생각하니 조금 뻘쭘하다고 생각하며 벨을 눌렀다.

문 앞에서 서성거리니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외국인 남자 하나가 뛰쳐나왔다.

생각보다 젊고 쾌활한 외국인 남자가 뛰쳐나와서 깜짝 놀랐다.

간단하게 집에 대해 소개를 받고서 저녁시간이라 배를 좀 채우러 밖으로 나왔다.

오사카에 가봤던 친구들은 어서 도톤보리에 가라고 채근했지만

어제 자정까지 일하고, 잠도 몇 시간 못잔채로 짐을 싸들고 낯선 곳에 왔더니

너무 피곤해서 지금 이 낯선 도시를 또다시 헤메고 싶지 않다.

이 동네에서 해결해야지....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리 옆 나라라지만 외국은 외국이었다.

낯선 동네에서 저녁 한끼 해결하기가 쉽지 않았다.

여긴 관광지가 아닌 주택가여서 그런건지

8시가 넘어가자 가게들은 하나 둘 문을 닫았고,

일본어를 모르는 나는 간판만 보고서 여기가 뭘 파는덴지,

식사를 할 수 있는지 아니면 이자까야인지 알 길이 없었다.

그렇게 처음 온 그 동네를 얼마나 많이 휘젓고 다녔는지 모른다.

일단 아무데라도 들어갈까말까 문앞에서 고민하다 돌아나오기를 수차례.

그러다 영어 메뉴가 쓰여진 곳을 발견했다.

La Oliva!!

 

 

 

 

 

 

 

아, 영어가 아니라 스페인어였다. 이렇게 반가울 수가!

규모가 아주 아담해보였는데 가족단위 손님들이 오손도손 외식하고 있는 모습이

따뜻해보여서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런데 단체석이 2테이블이 다인 그런 곳이었다.

나는 손짓으로 나는 1명인데 식사가 가능하냐고 물어봤는데

키친에서 요리를 하던 주인아저씨가 아주 빠른속도의 일본어로 장황하게 대답을 했다.

먹을 수 있다고 하는 것 같긴한데 왜이렇게 뒤 설명이 긴건지....

한참 설명 후에도 내가 약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니, 그제서야 영어가 되냐고 물어보신다.

내가 먼저 영어로 물어볼걸.

앉아도 되는데 앞에 단체손님이 있어 식사하기까지는 조금 기다려야 한다고.

그렇게 나는 키친이 바로 보이는 Bar자리에 홀로 앉았다.

그리고 원래는 술을 안마시는데 여행지고 해서 샹그리아를 한 잔 시켰다.

 

여행은 사람의 마음을 풀어지게 한다.

 

한국에선 그 어떤 술자리에서도 먼저 술에 손대는 법 었던 내가,

말 한마디 통하지 않는 곳에선 먼저 주문하고 홀짝인다 .

빈 속이고 피곤하기까지 한데 술이 들어가니 금세 술기운이 돌았다.

그래도 참 좋다.

 

부부로 보이는 가게 주인은 친절하게 대해줬고,

더듬거리며 한국어로 한 두 마디 말도 걸어주었다.

이 동네가 관광지가 아니라 한국인이 별로 없었을텐데도

따뜻하게 맞아주는 마음씨에 살짝 감동을 받았다.

이게 바로 일본인가.

5년 전 도쿄에선 이런 느낌을 못받았던 것 같은데.

 

따뜻한 리조또와 직접 만든 샹그리아

 

 

 

 

그나저나, 일본에 와서 먹은 첫 끼니가 스시도, 우동도, 라멘도 아닌

리조또라니!!!

이런 상황에 조금 실소가 나왔지만, 어쩌랴 -

일본어로만 쓰인 메뉴를 보고 들어가기엔 겁이 났고,

여기까지와서 편의점 음식을 먹을 순 없으니 그래도 이렇게라도 식사를 해야지.

샹그리아가 반잔 정도 남았을때 하얀 도기그릇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정갈한 리조또가 나왔다.

양이 많지는 않았지만, 오히려 그런 점이 맘에 들었다.

배가 고팠던지라 순식간에 먹어치워버렸다.

그리고 맛있게 먹었다 웃으며 인사를 했다.

주인 아내분이, 한국어로 즐겁게 여행하라고 대답을 했다.

그리고 주인 아저씨는, 당신은 아름답기 때문에 항상 조심하라고 해주었다.

하하. 배가 부르니 살 것 같은데

가이드 북에도 나오지 않은 동네의 작은 스페인 음식점에서 먹은 따뜻한 리조또 한 그릇에

마음이 따뜻하다.

괜한 자신감도 생긴다.

내일부터는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

남은 여행도 괜찮을 것 같다.

 


Posted by honey,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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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사카 온에어

2015.12.18. (1日)


아는 것이라고는 명탐정 코난의 코난 친구가 그 곳 출신이라는 것 하나 뿐.

오직 그것밖에는 아는게 없는데 정말 뜻하지 않게 오사카에 간다.

2월 말 미국여행을 가기 때문에 되도록 여행은 자제하고 싶었는데

최근 주말동안 어떤 외로움과 자괴감 속에서 허우적 거리던 내가

예상치 못한 회사의 휴가 독려 압박에 생긴 아무 계획 없는 긴 휴가 기간 동안

더욱 더 침잠해버릴까 그것이 두려워

십수번의 망설임 끝에 기어코 나는 오사카행 티켓을 끊고 말았다.

오사카에 대해서는 정말이지 쥐뿔도 모르면서.

관심이라고는 '1'도 없었으면서.

 어느 새 내게 여행은 낯선 곳에 대한 궁금함, 그곳에서의 예상치 못한 새로운 경험을 위해서가 아니라

질릴대로 질린 일상에서의 도피를 위한, 어떤 최고의 효과를 보장하는 탈출구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래서일까.

이제는 완전히 새로운 곳, 낯선 곳에서 헤메는 것 보다

조금 낯선 환경에서 평소 쉬면서 하던 것들을 하며 쉬고 싶다는 생각이 더 많이 든다.

지쳤나보다. 아니면 - 어른이 되었나보다.

이렇게들 어른이 되었나보다 .

 

 

 

 

아무리 여행을 좋아한다지만, (2년 전 미국여행을 빼고는)

그래도 나름 앞서 많이 조사도 하고 대강의 루트라도 준비를 했는데

이번 오사카 여행은 출발 3일 전 비행기 티켓 구매, 2일 전 숙소 예약.

그리고 전날 자정까지 야근, 공항 게이트 앞에서까지 일을 하고서

비행기에 앉아서야 가이드북을 뒤적거리며 숙소까지 가는 길을 알아보고 있다.

그나마 비행기 안에서 일하지 않는 것을 다행으로 생각해야 하나?

 

직장인의 휴가는 이런 것이구나.

휴가 앞뒤로 몰아서 일 처리를 하느라 여행준비는 사치일 뿐이고,

여행지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가이드북 보고 당당 갈 곳을 정해야 하는.

여행 전에 준비하고 싶어도 준비할 시간과 체력이 없다.

일만해도 피곤한데, 여행 준비라니!

여행은 가고 싶은데, 여행 가기가 귀찮다.

이래서 어른들은 패키지 여행을 하는구나.

일일이 싸이트 뒤져가며 정보 알아보고 가격을 비교하는 건 학생 때나 가능한 일이었다.

지금은 그럴 체력도, 정신도, 마음도 없다.

무조건 자유여행이 최고인 줄 알았던 어린 날의 내가 조금 부끄럽다..

이제 막 외국여행 10년째인데,

10년이면 이렇게 사람이 변하는 구나.

 

 

 

 

 

인천에서 오사카까지는 1시간 40분 비행이라 비행거리가 짧아서인지

이륙하자마자 바로 식사 서비스가 시작되었다.

샌드위치를 하나 먹고 몸이 노곤노곤해질 때쯤, 밀린 피로에 눈이 스르르 잠겨 올 때 쯤.

비행기는 서서히 해가 기울어지는 오사카/간사이 공항에 말그대로 편안히 내렸다.

 

 

이번 여행은 혼자였다.

긴 여행 중 하루 이틀 씩 혼자인적은 있었지만, 4박 5일 여행을 모두 혼자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래서 사실 겁도 났다.

혼자인게 무서워서라기보단 혼자서는 심심하고 지루할까봐 나는 그런 겁이었다.

그런 주저하는 마음을 이번 여행에서는 이겨보자고 마음먹었다.

 

 

수하물 찾는 사람들 사이에 서서 내 짐가방을 기다리며

혼자 여행하는 즐거움을 찾자는 다짐과, 욕심을 버리자는 다짐도 했다.

4박 5일 여행이라고 해서 덜 중요한 건 아니지만

이번 여행은 계획에 없었던 덤으로 갖게 된 것이니까

관광을 목적으로 하기 보다는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에서 떠나 낯선 곳에서의 일상을 즐겨보자는 목적이 있었는데

나는 카메라를 2개나 이고 지고, 책도 2권씩이나 챙겼고, 짐싸기도 바쁜 와중에 이 옷 저 옷 입었다 벗었다를 하고서야

겨우 짐을 다 챙겼다.

가볍게 떠나자 했던 여행인데 등과 목에 멘 가방이 그 어느때 보다 무겁게 느껴졌다.

나는 욕심을 이기지 못한 것이다.

 

- 욕심을 버리자.

이번 여행의 목적에 집중하자. 천천히, 여유롭게 쉬는거야...

 

라며 나를 토닥이는 갑자기 콧잔등이 시큰해졌다.

그래, 나는 욕심이 많았다.

뭐 하나 놓기 싫어하고 바라는 것은 어떻게든 가져야만 행복했다.

그리고 나 스스로에게 바라는 것이 가장 많았다.

욕심이 많은 만큼 이기적이었던 것도 같다 .

그런데 왜 콧잔등이 시큰해지는 것일까.

욕심이 많은 걸, 이기적인게 나인걸 어떡해.

 

나의 20대는 나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

스스로를 깨달아가고, 이를 부정하고, 고치고 싶어하고 좌절하고 그리고 순응하고 받아들이려 노력하는

혹은 체념하는 길고 긴 시간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부정적인 내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내 안에서 나의 여러 자아들이 서로의 모습을 인정하지 못하고 싸워댔다.

그게 나의 20대였던 것 같다.

 

이번 여행의 시작과 함께 알게된 첫 깨달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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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비행

10 東京 2010. 7. 27. 10:00



오랜만에 가방을 꾸렸다.
이웃나라로의 짧은 여행이라 사실 준비할 것도 별로 없어서 왠지 캐리어 무게가 더 나가는 것 같지만 ..

중간고사 즈음에 실낱같은 탈출구삼아 계획했던 일본여행-
큰 기대도 없고 38도에 이르는 거대한 습식사우나라는 말에 그냥 편하게 놀고먹다 와야겠다라는 편안한 마음가짐 :)


그러고보니 반년전엔 면접을 보려고 김포공항을 들락날락거렸는데-
반년만에 여전히 학생으로, 그리고 여전히 여행객으로 공항에 다시 가고 있다.
아마 내가 대학원을 포기하고 대한항공을 선택했다면 나 아마 오늘 공항에서 "어서오세요- 여권 주시겠어요?" 라면서 열심히 여행객들 티켓팅을 하구 있겠지?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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